실내. 성준의 원룸 현관

Angle on: 성준의 얼굴 화면을 잔뜩 노려본다.  꽃미남에 킹카까지는 아니지만 소개팅 나가면 귀엽다는 소리는 들을만한 외모의 김성준 (21).

성준

(갑자기 한가득 미소 띈 얼굴로)

...망치... 다 쓰셨어요? ... 좀 있다 주셔도 되구요. ...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거라도...

성준은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번쩍 화면을 노려본다.  갑자기 두 손으로 볼을 짝짝짝 두드린다. 긴장한 표정으로 짧은 숨을 훅 내쉰다. 

성준, 거울에서 몸을 돌려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성준의 POV: 외시경 화면 굳게 닫힌 건너편 원룸 현관문이 보인다.

성준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켰다 길게 내쉰다.  비장한 각오로 입을 굳게 다물며 현관문을 노려본다.  마침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성준;

이때, 성준의 얼굴에서 멈춰지는 화면.  그리고:

성준 (V.O.)

나는 지금 그녀에게 10년전 하지못했던 바로 그 고백을 하러가는 중이다.

Cut to:

졸업앨범 사진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꼬마아이의 흑백사진.  그리고 그 밑에 선명한 이름: ...

성준 (V.O.)(계속)

그래.  내겐 이유정이라야만했다.

Smash cut to:

몽타쥬과거

역대 여자친구들과 성준의 모습이 챨리 채플린 영화같은 빠른 흑백화면으로 보여진다; 만화같은 말풍선으로 처리되는 성준의 대사들:

1.             강변공원: 성준이 변정수 스타일,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회사원 여자와 심각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다.

성준 (V.O.)(계속)

나이가 어쨌건...

   성준의 말풍선: 그래서... 누난 이제 내가 싫증났단 말야?

    30대 초반 회사원 여자는 성준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입만 달싹이며 답답한 얼굴로 대답을 못한다.

2.             베스킨 라빈스: 성준이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중학생 여자아이는 잔뜩 뿔이 난 표정이다.

성준 (V.O.)(계속)

학력이 어쨌건...

성준의 말풍선: 그 치마는 오빠가 아르바이트 월급 타면 사준다고 그랬잖아.  

                        이제 화 풀어 응?

여자아이는 계속 심술궂은 얼굴로 성준에게서 고개를 돌린채 다른 곳을 쳐다볼 뿐이다.

3.             요가 스튜디오: 요가 매트 위에 앉아 할 수 있는 최대한 다리를 쫙 뻗고 있는 성준.  뒤에서 또래로 보이는 여자 요가강사가 성준의 어깨를 누르기 시작한다.

성준 (V.O.)(계속)

혹은 직업이 어쨌건...

성준의 말풍선: 요가강사 남자친구라고 꼭 요가를 잘 해야되는 건 아니잖아? 

요가강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성준의 어깨를 짓누른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의 성준, 아아악- 자지러질듯 비명을 질래댄다.

성준 (V.O.)(계속)

난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이름만은 반드시,

4.             화면이 셋으로 나누어지며 성준의 세 여자친구가 동시에 화면에 나타난다.  그리고 모두들 차례로 한결같이:

여자친구들의 말풍선: 이유정/ 이유정/ 이유정

성준 (V.O.)(계속)

이유정이라야만 했다.

Cut to:

실외. 평창동 언덕길 과거 계속

10살박이 어린 성준이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른다. 

헉헉대며 숨이 차 붉게 상기된 얼굴이지만 언덕길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언덕 중간 정도에서 갓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멈춰선다. 

어린 성준의 저쪽 먼발치에서 또래 여자아이 하나가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어린 유정이다.

성준 (V.O.)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아련한...기억...  난 그 기억을 안고 10여년의 시간을 더 살아온 것이다.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물건을 보는 듯, 어린 성준은 그렇게 떨리는 눈으로 멀어져가는 어린 유정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과거 끝

cut to:

실내. 원룸복도

자신있게 현관문을 열어제치고 나오는 성준.  유정의 원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간다.

하지만 문 앞에서 그만 마음이 약해진다.  멈춰서서 머뭇거린다.  슬그머니 외시경으로 안을 들여다보려한다: 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성준은 주먹을 몇번 쥐었다 폈다 해본다.  용기를 내 초인종으로 손을 가져간다.

Angle on: 초인종 - 성준의 손가락이 초인종에 닿지만 더 이상 힘을 주어 누르지 못한다.  그렇게 잠시 초인종에 닿은채 머무른다.  성준의 손이 마침내 힘을 잃고 떨어진다. 

그와 함께 자신감에 차 있던 얼굴도 푹 수그러든다.  성준은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땅이 꺼질듯 낮고 긴 한숨을 내쉰다. 

성준 (V.O.)

하지만 이렇게 첫사랑에 대한 조그만 기억이라도 간직해보려는 나의 노력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미안한듯)

그래.  언제나 실패였다는 편이 좀 더 솔직하겠다.

Smash cut to:

실내. 대학로 스타벅스 과거

성준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맞은편에 앉은 요가강사 여자친구 이유정,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성준을 쏘아보고 있다.

유정

오랫동안 생각했던거야.  일주일 있다 인도로...요가 유학 가는데, 그전에 끝내는게 좋을꺼 같아서. 

성준

(중얼거리듯)

일주일만 있음 우리 오백일인데...

유정

헤어질 사람들한테...  오백일, 천일...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난 이미 마음 정리 다 했으니까, 너도 빨리 정리해.

일어서는 유정.  이때, 성준이 유정의 팔을 획 잡아채며 자리에 다시 앉힌다.  유정은 놀란 눈으로 성준을 노려본다.  성준은 생각했던대로 당장 말이 안나오는지, 먼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성준

넌 왜 그렇게 맨날 니 맘대로만 해?!  니가...니가 그런다고...내가 없어지니?!

(아예 소리를 지르며)

이번만큼은 니 맘대로 안돼!  넌 나한테서 절대 못떠나!!  지구 끝까지라도 널 따라갈꺼야!!! 

smash Cut to:

실외. 대학로 거리 과거 계속

오가는 청춘남녀들;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일요일 오후의 대학로 거리. 

성준이 엉엉 소리를 내어 서럽게 울며 거리를 걷고 있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 이따금씩 손으로 눈물을 닦아보지만 오히려 두 뺨에 검은 먼지 얼룩만 만들 뿐이다.

Cut to:

실내. 성준의 원룸 과거 계속

플립 열린 핸드폰이 보인다.  갑자기 삑삑거리는 신호음을 내며 몇차례 불을 번쩍인다.  그리고 액정화면에 찍히는 문자멧세지:

기념일 알림 서비스: 이유정님과의 500일 기념일을 축하드립니다.

핸드폰 뒤로, 얼굴을 베게에 반쯤 파묻은 채 입을 벌리고 자는 성준의 모습이 보인다.  밖에서 사람들이 이삿짐을 나르는지 쿵쾅거리는 소음이 간간히 들려온다. 

와장창!  이번에는 무언가 제대로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는 성준, 아직도 졸음이 덜 깬 눈으로 현관문 쪽을 노려본다.

Cut to:

원룸 복도 계속

성준이 현관문을 획 열어제치면서 고개를 쑥 내민다. 

한 여자 (20대 초반) 울상을 지으며 바닥에 깨진 벽걸이 거울을 보며 서 있다.   양 손으로 액자 몇개를 더 보듬어 안고 있는 하얀 피부의 여자. 

순간, 성준의 얼굴이 굳어진다.  잠이 확 깨는 듯 커지는 두 눈...

주위의 모든 소음들이 쥐죽은 듯 고요해지며 찬송가와도 같은 코러스 음악이 어디선가로부터 은은하게 들려온다.

Quick insert: 이유정의 초등학교 졸업사진

성준 (V.O.)

(속삭이듯)

이유정!

성준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유정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유정이 고개를 들어 성준을 본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성준은 엄마 몰래 못된 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흠칫 숨을 머금는다.

과거 끝 

Cut to:

실내. 원룸 복도

낙심한 성준,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일어나 굳게 닫힌 유정의 현관문을 묵묵히 바라본다. 

성준 (V.O.)

10년을 지나 다시 찾아온 첫사랑을 그냥 보낼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때문에 내게 주어진 선택 역시 단 한가지였다.

성준은 마지막 용기를 내 초인종을 누르려한다.

바로 이때, 유정의 현관문이 거짓말처럼 열린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성준. 

유정이 나오다 성준과 눈이 마주친다.  역시 깜짝 놀라며 멈춰서는 유정.  유정의 손에는 조그만 망치 하나가 들려있다. 

성준은 멀뚱히 말도 못하고 유정의 얼굴을 본다.  유정 역시 아무 말 없이 잠시 그렇게...  성준이 입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을 꺼내보려 한다.  하지만,

유정

,...

성준, 크게 뜬 눈으로 숨을 머금는다.

CUT TO BLACK.

End of PART 1

 

 

 

 

 

 

실내. 유정의 원룸

Angle on: 화장대, 깨진 거울 스카치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깨진 거울 속으로,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각을 잡고 조그만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성준의 모습; 그 뒤로 유정이 냉장고와 싱크대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엄기영 앵커의 9 뉴스 방송이 들려온다.

성준은 손에 쥔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마치 대단한 조각상을 보는 듯 넋을 잃고 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성준 (V.O.)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구? ... 아마도...천국?...

cut to:

흑백 스틸 사진: 원룸 복도 성준의 회상

빠르게 편집되는 성준과 유정의 흑백사진 위로 그들의 대화가 흐른다.

1.      유정: 안 그래도 망치 드리려고...

2.      성준: 천천히 주셔도...

3.      유정: 라면...좋아하세요?

4.      황당하고 어색한 표정의 성준

5.      유정: 저녁...라면 먹을 건데, 안 드셨으면,혼자 사는 첫날인데,

혼자 먹는 밥,아직은 좀... 그래서요

6.      성준: ......좋죠.  저 라면 되게 좋아해요.

cut back to:

유정이 흘끔 성준을 본다.  성준은 얼른 안그런척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딴청을 부린다.

성준

...그럼, 짐 정리 뭐...도와드릴 것도 없어요?

유정

아뇨.  괜찮아요 혼자해도.  , 그냥 기다리기 그러시면 저, 혹시 컴퓨터 많이 아세요?

성준

?  아니, 그냥 보통 정도는...

유정

인터넷 셋팅 한번만 봐주시겠어요?  아까 제가 하다 잘 안돼서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디카로 찍은 거 친구들한테 빨리 보내줘야는데...

성준은 주섬주섬 책상으로 간다.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직여보는 성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성준 (V.O.)

대부분의 여자들이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솔직히 하느님께 무척 감사해야할 일이다.  원빈같은 외모나 김재동같은 말발, 그 어느 것 하나 가지지못한 나같은 사람에게 이 천금같은 기회를 날려버리지않을 희망을 주기 때문에...

성준은 금세 성공적으로 인터넷 창을 띄운다.  만족한 표정이다.

조그만 식탁에 김치며 수저 등을 놓는 유정. 

성준이 자기의 홈피 사진앨범 창을 연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올려진 사진들을 검색한다; 사진 하나를 띄운다: 한 남자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그 밑에 선명한 이름: ... 

유정은 빙그레 웃으며 컴퓨터 앞에서 열심인 성준의 뒷모습을 본다.

성준은 초등학교 자기 사진을 유정의 모니터에 띄워놓고 곰곰히 무언가 생각에 열중이다.

성준 (V.O.)

하지만 때로 하느님은 조금은 가학적인 면 역시 즐기시는 것 같기도 하다.

유정

만두 넣는 거 좋아하세요?

깜짝 놀란 듯 유정을 보는 성준.  동그랗게 커진 그의 두 눈.

Smash cut to:

실내. 어린 성준의 , 마루 성준의 회상

느와르 영화같은 강한 명암대비의 흑백화면:

ANGLE ON: 밥상 밥상 위에는 오직 봉지 안 내용물만 담백하게 끓여낸 라면 두사발과 김치, 그리고 나무젓가락.

성준 (V.O.)

나는 사실, 순수라면 신봉주의자.

어린 성준(10), 무릎을 꿇고 밥상 앞에 앉아있다.  그 맞은 편에는 알이 굵은 교수님형 네모안경을 쓴 성준 아버지(43)가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를 하고 있다:

성준 아버지

(경상도 사투리로)

성준아.  무릇 라면은 이렇게, 어떤 것도 느치않은 상태에서 그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기다. 

(성준이 잘 알아듣는지 확인한 후)

이 아부지 같은 연구원들이 최고의 라면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 을마나 밤낮으로 노력하는지 아나?  그러니까 여기 머를 넣는다는 거는 그 연구원들의 노고를 배신하는 행윈기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어린 성준

(신중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  아버지.

성준 아버지

(만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 그럼 묵자. 

마치 정갈한 정찬을 맛보기 전처럼 경건한 표정의 두 사람.  나뭇젓가락을 둘로 쪼갠다.

성준의 회상 끝

CUT TO:

실내. 유정의 원룸

유정은 대답을 기다리며 뚫어져라 성준을 바라본다.  입만 달싹일뿐인 성준.  그리고,

몽타쥬

빠른 화면전개로 보여지는 질문하는 유정의 모습.

1.       유정: 김치는 어때요?

2.       유정: 파랑 양파는 물론 넣으시죠?

3.    유정: 혹시 버섯 넣는 것도 좋아하세요?

몽타쥬 끝

유정은 성준을 빤히 쳐다본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두 개의 계란이 들린채 막 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성준 (V.O.)

난 아버지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버지도 날 이해해주실 것이다.  10년의 이상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성준

(활짝 웃으며)

물론 넣어야죠.  라면에 계란이 빠지면 안되죠.

성준을 향해 입가 한가득 미소를 짓는 유정.  손에 쥐어져있던 계란 두개가 한꺼번에 가스렌지 모퉁이에 부딪쳐 탁 깨진다.  말랑한 계란 속 알들이 펄펄 끓는 라면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터미네이터처럼...

Time cut:

Angle on: 식탁 위 라면 갖가지 재료들로 푸짐하게 끓여진 수퍼스페셜 라면

성준은 젓가락을 갖다대려다 멈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유정은 그런 성준을 보며 잔뜩 기대에 찬 눈이다.

유정

왜요?  , 안드시는 거 들어갔어요?

성준

, 아뇨.  이렇게 푸짐한 라면은 광고에서만 봐서...  그럼, 잘 먹겠습니다.

빠른 몽타쥬 화면:  

1.       후루룩후루룩 정말 맛있게 면발을 넘기는 성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다.

2.       유정은 한두가닥씩 먹는둥 마는둥 하며 곁눈질로 성준을 살핀다.

3.       성준은 라면사발에 코를 박을 듯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먹는다.  뜨거운 김에 숨이 막히는지 한번씩 짧은 헛기침을 컥컥 해대기도 한다. 

몽타쥬

유정, 입가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물끄러미 성준을 바라본다.

유정

맛있어요?

성준

. 

유정

정말이요?

성준

그럼요.  이런 라면 첨 먹어봐요.

유정은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성준은 마지막 남은 라면 건데기를 끝내느라 바쁘다.  계속 성준을 보며 깊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정.  무언가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숨을 짧게 한번 들이쉰다.  그리고, 

유정

근데...그땐 왜 안 먹었어요?

성준

(갸우뚱 하며)

?

이때 성준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성준은 그게 자기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인지 깨닫지 못한다; 유정의 대답만 기다린다.  유정이 성준을 보며 눈짓을 한다.  벨소리가 계속 울린다.  성준은 왜요?라는 듯, 하지만 곧 ~, 핸드폰을 꺼내든다.  플립을 획 제치며: 

성준

.  나중에 전화한다 그랬잖아.

성준 (V.O.)

예상을 전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확실히 아니었다.

헤어진 유정 (V.O.)

성준아... 나야.

성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유정은 성준의 눈치를 본다.  성준은 그런 유정의 눈치를 본다. 

성준

(최대한 자연스러우려 애쓰며)

어 엉...아니 왠일이야?...  아직 안 갔네.

헤어진 유정 (V.O.)

.  그냥 잘 모르겠어.  생각중이야.

(잠시 주저하다가)

너 전화할 줄 알았는데 안 하더라.  오늘 우리 오백일이잖아. 

초조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한 성준, 유정에게서 슬그머니 몸을 돌린다.  유정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자기 앞에 놓인 라면을 휘젓는다.  성준은 숨을 가다듬고 괜히 밝은 음성으로,

성준

아는데...상관없대매.  아무튼 잘 갔다와.  건강하고...  그럼 오빠, 끊는다.  안녕. 

헤어진 유정 (V.O.)

?  오빠?  , 너 지금 누구랑 (있어?!)

!  헤어진 유정이 다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준은 플립을 닫아버린다. 

성준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해요.  어학연수 가는 후배 땜에...

유정

그럼 통화 더 하시지 그러셨어요.

성준

아뇨.  .  이따 해도 돼요.

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어눌한 침묵.

성준

(잠시 생각하다가)

사실은 헤어진 여자친구예요. 

유정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준을 본다.

성준 (계속)

제가 채였죠.  일주일 전에.

다시 성준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성준이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굳은 표정이다.  유정은 난처한 얼굴로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유정

...돌아가서 받으세요.  저 때문에 할 말, 다 못하시죠?

성준

그런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

.  갖다와서...설겆이는 제가 할게요.

유정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엄마 보채는 아기처럼 계속 울어대는 성준의 핸드폰.  성준은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간다.  유정은 떠나는 성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Cut to:

실내. 성준의 원룸 , 잠시

베터리가 빠진 핸드폰; 뽑아진 전화선. 

성준이 묵묵히 천정을 쳐다본다.  답답한 표정으로 길고 낮은 한숨을 푹푹 내쉰다.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간다.  컴퓨터를 켠다.  홈페이지를 열고 조금 더 마우스를 움직여보는 성준.  얼굴이 갑자기 얼어붙는다.

Close on: 성준의 홈페이지 화면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밑에 리플이 달려있다:

기억안나?  평촌 초등학교 6학년 여름캠프.  오늘 끓였던 거랑 틀린게 하나도 없었는데...  들어간 것도 똑같구...  그땐 왜 안 먹었어?   - 유정

성준, 최면 걸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유정이 쓴 글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린다. 

Cut to:

원룸 복도 계속

현관문을 휙 열어제치며 맨발의 성준이 달려나온다.  유정의 초인종을 누른다.  반응이 없다.

성준은 다시 초인종을 몇차례 더 눌러본다.  하지만 역시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성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저기, 문 좀 열어봐요.  안에 없어요?  , 성준인데.  김성준.  6학년 5...

계속 문을 두드린다.  유정의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성준은 문에서 몇발짝 물러선다.  유정의 현관문을 노려본다.  답답함에 어쩔줄 몰라하는 성준.

이때, 유정의 현관문이 열린다.  유정이 모습을 보인다.  성준을 향해 피식 입가에 미소를 짓는 유정. 

성준은 숨을 머금는다.

유정

헤어진 여자친구는?

대답을 못하는 성준.  그러다가,

성준

, 사실은...  사실은...

유정

, 그때 우리 같은 조 돼서 정말 좋았거든.  마지막 점심, 맛있는 라면 끓여줄려구 내가 얼마나 연습 많이 했는데...

성준은 망치로 머리를 제법 크게 한방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말이 없다.

유정 (계속)

, 캠프 파이어 때 많이 울던 거... 혹시 기억나니?  친구들 땜에 그랬던 거 아니었어.  내가 만든 라면 손도 안대고...  누구 때문에 그렇게 애썼는데...

유정은 평생의 비밀을 고백한 사람처럼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서 배시시 웃음짓는다. 

성준은 그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차마 장난으로라도 그땐 미안했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성준의 입가에도 어색한 미소가 걸린다.

Cut to black.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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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리포트] 스크랩 김성준, 이유정을 만나다 | 대본 및 영화보기
TOMMY 추천 0 조회 49 05.03.28 00: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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