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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신의 미래가 되는곳~ 미래스타 원문보기 글쓴이: ☆미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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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유정의 원룸 – 밤
Angle on: 화장대, 깨진 거울 – 스카치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깨진 거울 속으로,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각을 잡고 조그만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성준의 모습; 그 뒤로 유정이 냉장고와 싱크대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성준은 손에 쥔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마치 대단한 조각상을 보는 듯 넋을 잃고 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성준 (V.O.)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구? ... 아마도...천국?...
cut to:
흑백 스틸 사진: 원룸 복도 – 성준의 회상
빠르게 편집되는 성준과 유정의 흑백사진 위로 그들의 대화가 흐른다.
1. 유정: “안 그래도 망치 드리려고...”
2. 성준: “천천히 주셔도...”
3. 유정: “라면...좋아하세요?”
4. 황당하고 어색한 표정의 성준
5. 유정: “저녁...라면 먹을 건데, 안 드셨으면”,“혼자 사는 첫날인데”,
“혼자 먹는 밥”,”아직은 좀... 그래서요”
6. 성준: “아...네...좋죠. 저 라면 되게 좋아해요.”
cut back to:
유정이 흘끔 성준을 본다. 성준은 얼른 안그런척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딴청을 부린다.
성준
저...그럼, 짐 정리 뭐...도와드릴 것도 없어요?
유정
아뇨. 괜찮아요 혼자해도. 참, 그냥 기다리기 그러시면 저, 혹시 컴퓨터 많이 아세요?
성준
네? 아니, 그냥 보통 정도는...
유정
인터넷 셋팅 한번만 봐주시겠어요? 아까 제가 하다 잘 안돼서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디카로 찍은 거 친구들한테 빨리 보내줘야는데...
성준은 주섬주섬 책상으로 간다.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직여보는 성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성준 (V.O.)
대부분의 여자들이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솔직히 하느님께 무척 감사해야할 일이다. 원빈같은 외모나 김재동같은 말발, 그 어느 것 하나 가지지못한 나같은 사람에게 이 천금같은 기회를 날려버리지않을 희망을 주기 때문에...
성준은 금세 성공적으로 인터넷 창을 띄운다. 만족한 표정이다.
조그만 식탁에 김치며 수저 등을 놓는 유정.
성준이 자기의 홈피 사진앨범 창을 연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올려진 사진들을 검색한다; 사진 하나를 띄운다: 한 남자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 그 밑에 선명한 이름: 김.성.준.
유정은 빙그레 웃으며 컴퓨터 앞에서 열심인 성준의 뒷모습을 본다.
성준은 초등학교 자기 사진을 유정의 모니터에 띄워놓고 곰곰히 무언가 생각에 열중이다.
성준 (V.O.)
하지만 때로 하느님은 조금은 가학적인 면 역시 즐기시는 것 같기도 하다.
유정
만두 넣는 거 좋아하세요?
깜짝 놀란 듯 유정을 보는 성준. 동그랗게 커진 그의 두 눈.
Smash cut to:
실내. 어린 성준의 집, 마루 – 낮 – 성준의 회상
느와르 영화같은 강한 명암대비의 흑백화면:
ANGLE ON: 밥상 – 밥상 위에는 오직 봉지 안 내용물만 담백하게 끓여낸 라면 두사발과 김치, 그리고 나무젓가락.
성준 (V.O.)
나는 사실, “순수라면 신봉주의자”다.
어린 성준(10), 무릎을 꿇고 밥상 앞에 앉아있다. 그 맞은 편에는 알이 굵은 교수님형 네모안경을 쓴 성준 아버지(43)가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를 하고 있다:
성준 아버지
(경상도 사투리로)
성준아. 무릇 라면은 이렇게, 어떤 것도 느치않은 상태에서 그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기다.
(성준이 잘 알아듣는지 확인한 후)
이 아부지 같은 연구원들이 최고의 라면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 을마나 밤낮으로 노력하는지 아나? 그러니까 여기 머를 넣는다는 거는 그 연구원들의 노고를 배신하는 행윈기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어린 성준
(신중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네. 아버지.
성준 아버지
(만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 그럼 묵자.
마치 정갈한 정찬을 맛보기 전처럼 경건한 표정의 두 사람. 나뭇젓가락을 둘로 쪼갠다.
성준의 회상 끝
CUT TO:
실내. 유정의 원룸 – 밤
유정은 대답을 기다리며 뚫어져라 성준을 바라본다. 입만 달싹일뿐인 성준. 그리고,
몽타쥬
빠른 화면전개로 보여지는 질문하는 유정의 모습.
1. 유정: “김치는 어때요?”
2. 유정: “파랑 양파는 물론 넣으시죠?”
3. 유정: “혹시 버섯 넣는 것도 좋아하세요?”
몽타쥬 끝
유정은 성준을 빤히 쳐다본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두 개의 계란이 들린채 막 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성준 (V.O.)
난 아버지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버지도 날 이해해주실 것이다. 내 10년의 이상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성준
(활짝 웃으며)
물론 넣어야죠. 라면에 계란이 빠지면 안되죠.
성준을 향해 입가 한가득 미소를 짓는 유정. 손에 쥐어져있던 계란 두개가 한꺼번에 가스렌지 모퉁이에 부딪쳐 탁 깨진다. 말랑한 계란 속 알들이 펄펄 끓는 라면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터미네이터처럼...
Time cut:
Angle on: 식탁 위 라면 – 갖가지 재료들로 푸짐하게 끓여진 수퍼스페셜 라면
성준은 젓가락을 갖다대려다 멈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유정은 그런 성준을 보며 잔뜩 기대에 찬 눈이다.
유정
왜요? 뭐, 안드시는 거 들어갔어요?
성준
아, 아뇨. 이렇게 푸짐한 라면은 광고에서만 봐서... 그럼, 잘 먹겠습니다.
빠른 몽타쥬 화면:
1. 후루룩후루룩 정말 맛있게 면발을 넘기는 성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다.
2. 유정은 한두가닥씩 먹는둥 마는둥 하며 곁눈질로 성준을 살핀다.
3. 성준은 라면사발에 코를 박을 듯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먹는다. 뜨거운 김에 숨이 막히는지 한번씩 짧은 헛기침을 컥컥 해대기도 한다.
몽타쥬 끝
유정, 입가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물끄러미 성준을 바라본다.
유정
맛있어요?
성준
네.
유정
정말이요?
성준
그럼요. 이런 라면 첨 먹어봐요.
유정은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성준은 마지막 남은 라면 건데기를 끝내느라 바쁘다. 계속 성준을 보며 깊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정. 무언가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숨을 짧게 한번 들이쉰다. 그리고,
유정
근데...그땐 왜 안 먹었어요?
성준
(갸우뚱 하며)
네?
이때 성준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성준은 그게 자기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인지 깨닫지 못한다; 유정의 대답만 기다린다. 유정이 성준을 보며 눈짓을 한다. 벨소리가 계속 울린다. 성준은 ‘왜요?’라는 듯, 하지만 곧 ‘아~’, 핸드폰을 꺼내든다. 플립을 획 제치며:
성준
어. 나중에 전화한다 그랬잖아.
성준 (V.O.)
예상을 전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확실히 아니었다.
헤어진 유정 (V.O.)
성준아... 나야.
성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유정은 성준의 눈치를 본다. 성준은 그런 유정의 눈치를 본다.
성준
(최대한 자연스러우려 애쓰며)
어 엉...아니 왠일이야?... 아직 안 갔네.
헤어진 유정 (V.O.)
응. 그냥 잘 모르겠어. 생각중이야.
(잠시 주저하다가)
너 전화할 줄 알았는데 안 하더라. 오늘 우리 오백일이잖아.
초조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한 성준, 유정에게서 슬그머니 몸을 돌린다. 유정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자기 앞에 놓인 라면을 휘젓는다. 성준은 숨을 가다듬고 괜히 밝은 음성으로,
성준
아는데...상관없대매. 아무튼 잘 갔다와. 건강하고... 그럼 오빠, 끊는다. 안녕.
헤어진 유정 (V.O.)
뭐? 오빠? 야, 너 지금 누구랑 (있어?!)
탁! 헤어진 유정이 다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준은 플립을 닫아버린다.
성준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해요. 어학연수 가는 후배 땜에...
유정
그럼 통화 더 하시지 그러셨어요.
성준
아뇨. 뭐. 이따 해도 돼요.
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어눌한 침묵.
성준
(잠시 생각하다가)
사실은 헤어진 여자친구예요.
유정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준을 본다.
성준 (계속)
제가 채였죠. 일주일 전에.
다시 성준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성준이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굳은 표정이다. 유정은 난처한 얼굴로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유정
저...돌아가서 받으세요. 저 때문에 할 말, 다 못하시죠?
성준
그런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
네. 갖다와서...설겆이는 제가 할게요.
유정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엄마 보채는 아기처럼 계속 울어대는 성준의 핸드폰. 성준은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간다. 유정은 떠나는 성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Cut to:
실내. 성준의 원룸 – 밤, 잠시 후
베터리가 빠진 핸드폰; 뽑아진 전화선.
성준이 묵묵히 천정을 쳐다본다. 답답한 표정으로 길고 낮은 한숨을 푹푹 내쉰다.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간다. 컴퓨터를 켠다. 홈페이지를 열고 조금 더 마우스를 움직여보는 성준. 얼굴이 갑자기 얼어붙는다.
Close on: 성준의 홈페이지 화면 –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밑에 리플이 달려있다:
“기억안나? 평촌 초등학교 6학년 여름캠프. 오늘 끓였던 거랑 틀린게 하나도 없었는데... 들어간 것도 똑같구... 그땐 왜 안 먹었어? - 유정”
성준, 최면 걸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유정이 쓴 글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린다.
Cut to:
원룸 복도 – 계속
현관문을 휙 열어제치며 맨발의 성준이 달려나온다. 유정의 초인종을 누른다. 반응이 없다.
성준은 다시 초인종을 몇차례 더 눌러본다. 하지만 역시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성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저기, 문 좀 열어봐요. 안에 없어요? 나, 성준인데.
계속 문을 두드린다. 유정의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성준은 문에서 몇발짝 물러선다. 유정의 현관문을 노려본다. 답답함에 어쩔줄 몰라하는 성준.
이때, 유정의 현관문이 열린다. 유정이 모습을 보인다. 성준을 향해 피식 입가에 미소를 짓는 유정.
성준은 숨을 머금는다.
유정
헤어진 여자친구는?
대답을 못하는 성준. 그러다가,
성준
저, 사실은... 사실은...
유정
나, 그때 우리 같은 조 돼서 정말 좋았거든. 마지막 점심, 맛있는 라면 끓여줄려구 내가 얼마나 연습 많이 했는데...
성준은 망치로 머리를 제법 크게 한방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말이 없다.
유정 (계속)
나, 캠프 파이어 때 많이 울던 거... 혹시 기억나니? 친구들 땜에 그랬던 거 아니었어. 내가 만든 라면 손도 안대고... 누구 때문에 그렇게 애썼는데...
유정은 평생의 비밀을 고백한 사람처럼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서 배시시 웃음짓는다.
성준은 그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차마 장난으로라도 ‘그땐 미안했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성준의 입가에도 어색한 미소가 걸린다.
Cut to black.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