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은 그렇게 물었다. 너무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세상의 규칙이란 지나치게 상상력을 억압하는 감옥처럼 보일지 모른다. 범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세계의 비밀스러운 영역을 한 꺼풀씩 드러내는 천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한 광기를 읽기도 한다. 그러나 천재들의 광기란, 질투어린 범인들의 시선에 불과하다. 세계는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을 살아가는 삶 역시 이미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비범한 천재들은 이미 익숙해진 세계의 관습을 뛰어넘어 독창적 상상력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간다. 그러나 피 흘리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 어떤 창조도 희생을 요구한다.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뷰티풀 마인드]는 실비아 네이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실화에 기초된 것이다. 원작자인 실비아 네이사가 현재 생존하고 있는 존 내쉬를 1천 번도 넘게 인터뷰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 낸 실제의 그의 모습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옮겼다. 아키바 골드만의 각본은 존 내쉬의 전기에 가까운 원작에 미스터리적 구성을 도입해 지금까지 흔히 접했던 예술가들의 광기어린 전기류 영화와는 조금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분노의 역류][아폴로 13][그린치] 등을 만든 바 있는 론 하워드 감독은, 일차적 자료인 텍스트를 해체하고 추리적 구조를 따라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화면을 역동적으로 끌고간다.
존 내쉬는, 수학자로서 그가 불과 30살이던 1949년, 그때까지 150년동안이나 지속되어 오던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을 뒤엎는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그가 발표한 [내쉬현상]은 경제학 이론에 응용되어 많은 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으며, 신경제학 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존 내쉬가 1994년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무려 50여년동안 그는 정신분열증의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뷰티풀 마인드]는 바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따라서 위인이나 천재 예술가들의 흔한 전기적 접근방법에서 일탈해 있다. [까미유 끌로델]이라든가 [아마데우스][폴락][토탈 이클립스] 등 화가나 음악가 시인 등의 삶을 다룬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광기의 흔적이다.
프린스턴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제 2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우면서 MIT 공대 교수로 연구활동을 하던 존 내쉬는, 자신의 강의를 듣던 물리학 전공의 알리샤와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부인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냉전이 지속되었던 이데올로기 대립체제 아래서 발을 들여놓게 된, 정부의 군사기밀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다. 그의 뛰어난 수학적 두뇌는 냉전시대 적국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다. 비밀 요원과의 은밀한 접촉, 그리고 부인 모르게 진행된 연구. 국가의 일급 기밀을 취급하는 그를, 때로는 소련 스파이가 미행하며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20대 때부터 시작된 정신분열증에 의한 환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환상의 실체를 인정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 투쟁한다. 조금씩 회복기에 들어가던 그는, 늘 약물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이지 못한 신체의 기능으로 부인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게 되자, 몰래 약을 버리지만 오히려 더 깊은 정신적 상처를 안게 된다.
[뷰티풀 마인드]는 아카데미상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기존 가치체계에 도전하지 않는 보수주의적 시각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난관을 뚫고 위대한 인간승리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꼭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존 내쉬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객석에 앉아 있는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며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무엇보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헐리우드의 영화정신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아마 이 대목에서 몰표를 던질 것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아카데미과학기술위원회 위원들도 [뷰티풀 마인드]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이 틀림없다. [뷰티풀 마인드]는 일반적인 헐리우드 제작방식과는 다르게, 마치 홍상수가 [오 수정]이나 [생활의 발견]에서 그랬던 것처럼, 배우의 연기 집중력과 몰입도를 높이고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영화의 시간적 순서로 촬영이 되었다. 이러한 연속촬영 방식을 먼저 제안한 사람은 러셀 크로우였다.
존 내쉬 역의 러셀 크로우는 원래 제작자가 원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제작진들은 그동안 [제리 맥과이어]나 [탑 건]으로 가장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톰 크루즈를 선호했다. 그러나 론 하워드 감독은 러셀 크로우를 낙점했고 러셀 크로우는 자신을 선택한 감독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20대의 프린스턴 대학원생에서 70대의 노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변화많은 세월의 폭을 그는 뛰어나게 묘사했다. 20대의 대학시절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감독은 빠른 장면 전환으로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30대 후반의 얼굴을 가진 러셀 크로우를 도와준다. 특히 정신장애를 극복해가는 노년의 연기는 풍부한 울림과 내면 깊이 침잠하는 시선으로 러셀 크로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수없이 그의 곁을 떠나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한 부인 알리샤 내쉬 역에는, 셀지오 레오네 감독의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비좁은 헛간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발레를 추던 그 어린 소녀, 그래서 브룩쿨린 다리 아래에서 성장하던 많은 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어린 발레리나 제니퍼 코넬리가 성숙한 모습으로 캐스팅되었다. 제니퍼 코넬리는 [악의 꽃]이나 [다크 시티]같은 영화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신비로운 자태를 잃고 있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물론 마지막 노벨상 수상 연설이지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직전 노벨상 위원회가 존 내쉬를 인터뷰하면서 최종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만년필 헌정씬이다. 이제는 노교수가 된 그의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프린스턴 대학의 다른 동료 교수들이 자신의 만년필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다른 교수들이 존경할만한 노교수에게 보내는 최대의 전통적 찬사는, 자신이 아끼고 있는 만년필을 헌정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 20대 후반의 존 내쉬가 지도교수를 뒤따라 들어가다가 우연히 목격했던 그 장면은 존 내쉬의 시선을 따라 관객들의 마음에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134분의 런닝타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론 하워드 감독은 정신분열증을 극복해가면서 자신의 천형인 수학과 싸우는 존 내쉬에게, 다른 교수들이 다가와 하나씩 만년필을 테이블에 올려 놓는 씬을 배치한다. 확실히 할리우드는 감정의 누선을 세련되게 자극할 줄 아는 기교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존 내쉬가 하얀 백묵을 들고 수학 공식을 빽빽하게 적어가는 유리창의 모습과, 존 내쉬가 비밀 첩보 임무를 부여 받았다고 믿고 분석한 각종 신문 스크랩, 도면들이 방 안 전체를 뒤덮고 있는 모습들은, 존 내쉬의 광기를 드러내는 뛰어난 이미지들이다. 어느 누구도 [뷰티풀 마인드]를 지나치게 아카데미에 야합하는 영화라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