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모든 것을 준비해준 것은 보성군
요즘 명량해전이 날마다 기록을 갱신해가고 있다. 진정 나라를 위한 영웅과 실망만을 안겨준 정권에 대한 불만이 겹친 결과라는 신문들의 관점은 더욱 우리들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
그 까닭은 그렇게 훌륭한 조상을 지닌 우리에게 현세를 바로잡을 영웅은 과연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정치인들에게 거는 기대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만이 아니라, 점점 국민의 시각에서 멀어지고 떨어져 가고만 있다는 것이 더 크고 암담할 뿐이다.
어쨌든 이충무공의 명량 해전을 도운 아니 명량해전의 모든 인적, 물적 재원을 제공하고 승전의 기틀을 마련해준 곳이 바로 보성군이라는 것에 대해 보성군 향토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보성군 향토사는 지금까지 3번 발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서 두번째인 1974년판 보성군향토사를 발간할 당시에 나는 이 향토사의 문장을 다듬고 젊은이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한자식의 표현을 현대적인 말로 바꾸는 일을 맡아서 했었다. 그 당시에 보성남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거의 두 달 동안 이 일에 매달려서 밤을 지샜던 기억이 있다. 요즘처럼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수기로 하는 작업이라서 여간 힘이 들었던 것이다.
이 1974년판 보성군 향토사의 115쪽에는 [제 10절 충무공 재기와 보성] 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2단으로 인쇄된 책에서 한 쪽 반(1.5페이지: 보통 책의 3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상당히 긴 내용이 수록 되어 있다.
[정유재란 선조30년(1597년) 이 고장 보성에서 수군의 4대 요건인 전선과 수군 귈고 병기와 군량을 얻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재기하게 되었으니, 정란 후평에 <국가없는 호남이 없고 호남이 없었드라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듯이 [보성이 아니었으면 충무공이 재기를 할 수 없었고, 충무공이 재기 못하였으면, 멸적구국을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적고 그러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정유년 8월 3일에 진주 운곡리에서 3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는 임금님의 교서를 숙배하였으나, <병사도 없고, 전선도 없는 폐허에서 무엇을 통제할 것인가?> 하고 한탄을 하시면서 군력을 모으려고즉일로 길을 떠나 무인지경인 호남을 찾아 헤매다가 8월9일에 이곳 보성에 이르러 조양창<현 조상면>에서 군량을, 보성읍성의 군기고에서 병기를 얻었고, 회천면에서 마ᅟᅵᆭ은 수군을 얻었으며, 천우신조로 8월 17일회령포성의 구미영<현 회천면 전일리 구미부락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싸움에서 도망하면서 타고 와서 이곳에 정박시켰던 전선 12척을 얻어 비로소 군용을 정비하여 민족의 태양 주국의 수호신인 성웅 이순신장군께서 재기의 위용으로 멸적구국의 길을 출발하여 9월 16일 명량(울돌목) 앞바다에서 우리의 전선 12척으로 적선 330척을 맞아싸워 대승을 하였으니 실로 장군의 재기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적고 있다.
<3도수군통제사 임명을 받고 싸움을 하려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찌 할 길이 없어서 전라도로 오신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조양창의 식량이었다. 조양창은 당시 보성지역에서 나오는 곡식을 모아 저장하고 있다가 수로로 한양을 실어 나르던 곳이었으니 식량을 구한 것이며, 보상읍성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글이고 회쳔면에서 배를 저을 수 있는 어부들을 모으니 수군이 되었고, 전일리에서 전선을 얻었으니 수군에게 필요한 준비는 다 된 셈이었다. 바로 이렇게 보성에서 준비한 수군으로 명량 해전을 치렀고, 명량대첩이라는 큰 공을 세우시게 된 것이다.>
이 기사를 쓸 때에 전일리 출신이신 당시 보성남교 김양중 교장 선생님은 직접 전일리 마을 어르신들에게서 전해오는 가문 선조들의 이야기들을 수집하셨고, 기록들을 직접 챙기시기도 해주셨었다. 참고로 여기 구미영이란 전일이 구미마을에 위치하였던 수군의 주둔지로 수군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지금도 이곳에는 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구미영이 진해 다음가는 좋은 항구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며, 성의 크기와 구조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보성은 이순신장군께 잊지 못할 고장인 인연이 또 하나 있으니, 장군의 부인 방씨가 어린시절 보상원님이신 아버지를 따라와 있을 적에 많은 산적들이 원을 습격하려고 사람을 사서 활의 명수인 방군수의 화살을 모두 감추게 한 날밤 원을 습격하였다. 그 때 지혜가 뛰어난 따님은 방안에 길쌈을 하면서 쓰는 뱁대<베를 매면서 도투마리에 날을 감을 때 풀이 붙지 않게 날의 사이사이에 넣는 대 막대> 한 아름 안고 와서 방바닥에 쫘르르 쏟으면서 큰 소리로 “아버님 화살이 여기 있사옵니다.” 하고 소리를 치자 이 소리를 듣고 산적들이 기절을 하고 도망을 치게 만들었다. 바로 이분이 나중에 이순신장군의 부인이 되신 방씨 부인이다.
** 이 이야기는 한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야기 이다
명량이란 영화가 크게 히트를 하면서 지난날 내 손으로 쓰고 다듬었던 보성군 향토사를 다시 펼쳐 놓고 보게 만들어 준 셈이다.
2014.08.10. 20:52‘<1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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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랑스런 보성군의 조상님들 이야기를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한번 보성의 역사을 돠 집어 봅니다
감사 합니다
오랜만에 들른 너희들 소식 반갑구나. 종환이도 자주 들러서 소식 전해주렴
금수 소식은 며칠 전에 자ㅣㄹ 들었고.......
선생님 덕분에 우리 보성에관한 좋은 자료 잘보고갑니다
잘 있는가? 엊그제 동묘역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단독 행동이 어려워서 연락를 못했네.
@노블하우스 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