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는 언젠가 무한에 대해 매우 불쾌한 느낌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바벨의 도서관>은 바로 무한이 주는 두려움=숭고함에 얽힌 모종의 (불)쾌감을 일으키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에는 숭고의 또 다른 면, 즉
미세한 것이 주는 불쾌감도 있습니다(무정형의 엄청나게 큰 대상으로부터
숭고를 이야기한 칸트의 시대에 현미경을 통해 미물의 세계에 접근가능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바로 '바벨의 도서관' 전체를 복사한 한 권의 책,
그 책을 읽은 사서=신이 그런 느낌을 주지요(이는 소설 <알렙>에서 세상만사를 비추어 모두 보게 하는 구슬, '알렙'에서 변주되지요(알렙, 17세기 현미경의 20세기 최첨단 상상적 버전). 존재하지도 않는 이 사물은 사실 호기심을 주는 사물이라기보다는 불쾌감을 더 많이 주는 대상입니다).
세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 아득한 곳에 이르면 그들이 상상하는 어떤 모습으로 낭하들과 층계들과 육각형 진열실들이
끝이 날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것은 이치에 어긋난
생각이다. 반대로 세계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책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도서관'은>..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가.
한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르헤스는 무한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던
직관주의자들에 대해 논박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수학시간으로 잠깐
되돌아가 봅시다. 3 곱하기 1/3은 1입니다. 이는 1/3+1/3+1/3과 그
값(=1)이 같습니다. 하지만 1/3은 나누면, 0.3333...입니다. 중학교
수학시간에 이를 세 개 더하면, 0.9999...로 값을 매겼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3 곱하기 1/3 즉 1과 같다고 했죠. 즉 1=0.9999...입니다. 직관주의자들은 0.999...가 계속되더라도 1이 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반대로 0.999...=1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보르헤스의 말을 빌면 이들은 세계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지요. 직관주의자들은 0.999...를 논박하려면 0.9999...이를
또 논박하려면 0.99999...라고 숫자를 늘려가면서 무한 증폭을 반복하는 사람이지요. 직관주의자들의 무한에 대한 인식은 스피노자를 빌면, 제일 저급한 인식의 단계, 즉 '표상=상상'에 불과합니다(스피노자에게 무한은 신적 직관(앞서의 직관주의자들의 직관과는 다른)=관념을 통해서만 사유 가능합니다). 무한은 세계가 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끝이 없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닫혀 있지만,
무한한 세계. 그리고 니체적인 영원회귀가 반복을 통해 일어나는 곳.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무질서가 질서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낙심에 가까운 해결책입니다. 그건 슬픔과 비애의 감정입니다. 18세기에 자연과학적 관찰의 도움 없이도 우주의 은하계가
여럿일 것이다, 라고 탁월하게 가정한 칸트는 무한에 대한 어떠한 지나친 생각을 금하고(그것은 순수이성의 월권이다), 대신 '숭고'를 깨닫는 이성의 능력을 칭찬했지만, 보르헤스가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엔
그러한 이성의 능력은 점점 더 회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젠 대상
혹은 사물들의 세계, 그 자체에 자신을 떠맡기고 마는 듯 보입니다.
'바벨의 도서관'은 언제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사서들은 도서관의 책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사람입니까? 소설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그는 자살하거나 미쳐버리고 맙니다. 한때는 사서였던("나도 한 때는
두루 여행을 다녔다") 주인공은 서술자이지만, 그는 최대한 몸을 숨기고 미로 한가운데로 물러나 있습니다(<바벨의 도서관>에서 전면에
나오는 주인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사물, 책입니다. 이건 대단히 기분나쁜 역전이지만, 보르헤스에게 죄를 물어선 곤란하겠죠). 그리고 그가 바라는 것은 수동적인 요행의 기다림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열역학 제 2 법칙, 엔트로피 법칙(="체계는 시계추처럼 평형상태를 왔다갔다 한다")과 니체의 영원회귀가 가르쳐주는 '차이의 반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벨의 도서관, 그
무수히 많은 책들, 혹은 그 모든 책을 포함한 단 한 권의 책인 신에게 말합니다 : 우리는 바벨의 도서관에 희망을 가져도 좋을까요? 도서관은 대답합니다 :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물음 : 바벨의 도서관에 절망하고 자살해야만 할까요? 똑같은 대답 :그래요,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도 도서관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그리고 슬픔과 비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