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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10:38
http://blog.naver.com/kjy615651/80066166050
-40만원으로 16일간 일본 노숙 여행하기-
아래 지도는 참조하기 위해 추가한 것임(글내용과 일치하지 않음)
두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한다. 우리 부부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이 홈스쿨을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아이들 생활 위주로 짜여 있었다. 삼년 동안 거의 동거 동락하면서 살던 4명의 가족은 이제 각자 삶의 항해를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은 대학생활로 새로운 환경과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우리 부부도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자전거를 타고 일본 큐슈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부산 페리선 예약을 해버렸다. 아직 딸아이가 대학 입학식도 안 치뤘지만 우리 부부는 거침없이 통보해버렸다.
“엄마 아빠는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갈 거다. 돌아올 때까지 둘이서 잘 지내야 한다”
아이들은 눈을 껌벅이면서 약간 눈동자를 굴리다가 “ 걱정 마세요!” 한다.
우리 부부의 여행 스타일은 늘 이랬다. 이 년전 내가 영국에 갈 때도 비슷했다. 유럽에 가보고 싶었던 나는, 일주일만에 공항버스에 올라타면서 남편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한 번 가 볼까하고 싼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것으로 모든 결정은 끝인 거다. 남편도 그런 식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나 역시 준비된 여행자금이 거의 없어 계획된 일정이나 정해진 숙박지 없이 떠났었다.
우리 부부는 이 년전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뚜렷한 직업없이 좋게 말해 자유롭게(?) 산다. 덕분에 사표를 쓸 일도 없다. 비행기표를 구하고 약간의 돈만 있으면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나머지는 현지에 가서 버틸 만큼 해결한다.
새벽에 떠나야하는 남편이 술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만취가 된 상태에서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잠들었다. 나는 다섯 시에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이제 떠나야지?”
“ ...으응? 어딜 가? 나 더 자야하는데...”
“얼릉 일어나!! 일본 가야지!”
술냄새 펄펄 나는 남편을 일으켜 깨우고 작은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컴컴한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거의 타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지하철을 향해 달리는 남편을 쫒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조건 가는 거다 .무조건... 그냥 가다보면 그게 삶이고 인생이지 뭐...
지하철에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건 역도 선수가 되는 거랑 비슷하다. 장애물이 있으면 자전거를 번쩍 들고 움직여야하니까.
별다른 불편 없이 자전거를 고속버스에 싣는다. 부산으로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코를 골고 자는 남편을 몇 번이고 툭툭쳐야 했지만 가슴이 팔딱팔딱 뛰면서 기분이 좋았다. 수학여행 가는 기분이 이랬던가?
돈을 아껴야 하므로 아침겸 점심을 부산 자갈치 시장통에서 늦게 먹었다. 3500원짜리 고등어백반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가 밥을 더 얹어 주신다. 우리의 옷차림이 겸손해 보여 안스러웠나 보다.
드디어 배에 오른다.
선내 객실에서 짐을 푸는데 같은 방을 이용하는 일본 관광객이 묻는다.
일본여행 가세요?
예. 자전거 여행이요. 한국에 자주 오세요?
하이, 요즘 한국 물가가 싸요.
한국말도 잘한다. 난 일본말 거의 못하는데...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먹으면서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본다.
일주일 동안 못 닦을 거라며 발을 씻고 오는 남편에게 선내 공짜 목욕탕을 알려줬더니 남편 왈, 발을 두 번씩 닦는 건 약간 억울한데....라니 나원 참. 밤새 밤 바다를 건넌 배는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를 일본에 데려다 줄 거라 생각하면서 온갖 설레임으로 잠을 설쳤다.
일본도착 첫째날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받았다. 밖으로 나와서 자전거를 찾으려는데 자전거가 안 보인다. 사무실에 가서 자전거 짐표를 보여주니 친절하게 다시 입국통로 쪽으로 들어가서 자전거를 찾아줬다. 들고 나오려는데 검역하는 사람이 자전거 바퀴를 소독기로 소독해준다. 자전거 바퀴가 처음으로 세차를 받고 반짝거렸다. 부산 후쿠오카행 표시 딱지도 붙여줬다. 세차에 이름표까지 받고서야 동반 자전거와 함께 일본 땅에 발을 딛고 선다.
이거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길 따라 가보자고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안 하천을 따라 도로가 나 있었는데 아침 출근시간이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도도 없이 도시를 헤메다 보니 공항쪽으로 왔다. 그런데 멀리 산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이런 우리는 산으로 가면 안된다. 어떻게 산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닌단 말인가. 사람들을 만나면 피해가지도 못한다. 브레이크 조절도 못해 벽이나 간판에 부딪힌다. 평지에서도 이러한데 산으로 간다고? 다시 중심도시 쪽으로 되돌아 와서 가스연료를 사려고 돌아 다닌다. 몇군데 백엔샾을 돌아다녀도 가스통이 없다. 우리는 등산용 둥근 연료통이 필요한데 그걸 구할 수가 없다니.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손짓발짓 한국말 영어를 섞어서 물어도 스미마셍 스미마셍한다.
지나가던 대학생과 켐핑가스 와카리마셍? 아이워나 켐핑버너..
대학생이 자기를 따라오면 대학 등산동아리에 그게 있단다. 자전거에 실은 짐을 보고 대충 판단하건데, 이사람들이 밥을 해 먹고 싶은데 불이 없다는 걸로 들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 나는 가스통을 사고 싶다고!!!
대학생은 그제서야 등산용품점을 가는 길을 가르쳐 주면서 자기도 배타고 한국을 여행하고 왔다면서 악수하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를 지지한다는 듯 걸어가며 웃으면서 뒤를 돌아본다. 대학교에 가서 일단 급한대로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가스통도 구하는 것도 괜찮을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등산용품점으로 향했다. 너무 비싸다. 제일 싼거로 3통을 사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어딘가에 집을 짓고 밥을 해먹어야 한다.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슈퍼에서 싼 생선도 한 마리 샀다. 맥주도 두 병 사고.
재팬 돔 앞에 있는 바닷가에 텐트를 치니 컴컴해진다. 버너를 꺼내서 가스통을 끼웠다. 앗. 가스불을 조정하는 레버가 없다. 하루종일 가스버너통을 구하려고 종일 굶으며 고생했는데 보람도 없이 정작 버너가 고장이라니. 술 마시러 나가지 말고 점검좀 잘하지 그랬어? 입을 삐쭉 내밀며 투덜 거렸다. 결국우리는 하나 남은 햇반에 고추장을 비벼서 먹고 잠을 청했다. 아, 배도 고프고 춥다. 이쪽 어깨가 시려우면 저쪽 어깨를, 등이 시려우면 돌아 눕고..우리의 일본에서 첫날 밤은 차가운 텐트바닥을 온 몸으로 데우려는 노력과 텐트를 덮쳐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보냈다.
둘째날.
동이 터 오는시간에 일어났다. 해변가를 걷다보니 밤새 파도에 밀려온 바지락조개가 지천에 널려 있다. 이게 웬 횡재냐... 배꼽시계 울림에 맞춰 한국라면을 부수어 먹었다. 어제 산 가스버너통을 환불받고, 커다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샀다. 한국보다 2배이상 비쌌다. 지갑이 가벼워 진 만큼 자전거에 매단 짐의 무게가 듬직(?) 해졌다. 여행준비의 꼼꼼한 정도와 짐의 무게는 반비례하는 것 같다.
남쪽으로 향하는 3번국도를 달린다. 길이 완만한 남서쪽 해변도로를 찾아서..
콘테이너 트럭들과 내가 나란히 달렸다. 대형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한번씩 휘청거린다 .자전거 도로가 잘되어 있는 일본이지만 갓길로 가야 할 때도 있었다.
“ 아줌마! 똑바로 못다녀? 어딜 자전거를 타고 다녀!!!”라는 소리가 뒷통수쪽으로 들리는 듯 했다. 그런데 여행기간 내내 자동차 크락션 소리와 대형트럭의 위협은 한 번도 받지 않았으니 단순한 나의 자전거타기 실력 증대만은 아닌 듯 싶다..
오후 3시경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가랑비가 되어 내렸다. 초보 자전거운전수는 더 달릴 수가 없었다. 아직 30킬로도 못갔는데 비 피하며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옹관묘 발굴지 공원을 갔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작은 언덕 위에 서기4-5백년대의 옹관묘를 발굴한 터에 건물을 지어서 만든 박물관인데 공짜다. 빗방울이 그칠 것같지 않아 화장실 처마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지내볼까 했지만 한 시간 만에 포기했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업무 중에 잠시 쉬기 위해 차들이 서너대는 주차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텐트를 옮겨줄 순 없었으니까.
다시 빗속을 헤메다 작은 공원의 벤취 앞에 짐을 풀었다. 드디어 코펠 하나 가득 첫 밥을 지어 어제 산 고등어를 구워 몽땅 먹었다. 배가 부르니 두려움과 걱정이 다 사라져 버린다. 동네에 가서 싸구려 정종 한통을 사고 슈퍼에서 주워 온 작은 스티로폴 6개를 텐트바닥에 깔았다. 비 내리는 밤에 호젓한 공원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니 하루의 긴장이 풀려왔다. 바닥이 여의치 않아 소라모양으로 텐트를 쳤지만 밤새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소라 알갱이마냥 따뜻하고 안락하게 쉬었다.
셋째날.
지방도로 지도는 구하지 못했다. 과연 남쪽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찾을수가 있을까...숙련된 운전수가 아니니 길가 간판에 부딪히기도 하고 좁은길에서 뒤뚱거리기도 한다. 무사히 찾아갈 수 있을까...
기찻길 옆에 정오의 쉼터를 차렸다. 쉬지않고는 갈 수 없다. 온통 도로가, 갓길 실 선이 나를 덮쳐온다... 어제 주운 바지락에 라면과 두부를 넣어 끓여먹었다. 맛이 기가 막히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 수단인 수렵,어로, 채취...
어로로 구한 조개 맛은 봤는데 수렵은 어려워 도중에 닭다리를 샀다. 헤헤 오늘 저녁은 닭다리찜이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 약간의 경사라도 나오면 기아변속을 해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미 다리근육은 탱탱하게 뭉쳐 있어 살짝만 건드려도 으아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정말 연습되지 않은 좌충우돌 자전거여행이다.
지방지도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도시(구루메)로 들어섰다.
여긴 전차가 있을까?. 일본 도시에 전차가 있다던데.. 유럽의 트랩이 생각났다. 서울에도 전차가 다시 복원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스모그현상이 좀 줄어들테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여긴 없는 것 같다.
또 다시 식어가는 태양. 오늘은 어디에 집을 지을까나.
공원을 찾는데 도시를 거의 한바퀴 돌았다. 골목처럼 작은 도로가 많아 달리다보면 대각선 방향으로 가곤 했다. 지도엔 일직선인데 실제론 원방형 사선이다. 에구에구. 지친몸 뉘울 땅찾기가 더 고단하다. 도시의 공원답게 노숙자들이 보였다. 이런 그들도 자전거에 고단한 살림살이를 싣고 있어서 우릴 경계한다. 공원은 크고 넓다. 여기저기를 수색하다가 마땅한 장소를 발견했다.
중앙공원 신사앞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가까운 곳에 화장실도 있다.
명당자리다!!!
닭찜을 만들어 신사를 등지고 앉아 와인 한잔을 했다. 얘들아 엄만 닭찜 먹는데 니들은 밥 잘 해먹고 있냐?
잠결에 누군가 내 귀에 대고 훅 훅 콧숨을 쉬는 것 같아 흠칫 놀랐다. 텐트천을 사이에 두고 커다란 짐승 그림자가 비췄다. 닭찜 냄새맡고 왔나보다.. 오싹오싹 공포체험... 아침에 일어나서야 그 녀석의 정체가 커다란 고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넷째날
새소리가 들린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조금있으면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테니까.. 새의 노랫소리로 시간을 가늠한다
여행객의 필수품인 지도. 그것은 일부 구했다. 시계, 그건 없다. 랜턴, 그것도 없다. 그래도 어려움은 없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있으니까...
일찍 출발하려는데 내 자전거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다. 바람을 넣고 가는데 한 시간도 안돼 또 바람이 빠진다.. 틀림없는 실빵꾸다. 점점 심해져 길가 주차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자전거를 고쳤다.
앞집에서 할아버지가 개 한 마리와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나와 우리 앞을 여러번 왔다 갔다 했다.
침낭 말리는 것을 보고 노숙자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동안 잠자리를 찾으면서 몇 명의 일본 노숙자를 보았다. 그들도 자전거가 있었고 텐트도 있었다. 겉모습도 우리와 비슷했는데 단지 한 곳에 오래 거주하는 것 같았다.
오,노!! 우린 한국인이예요. 자전거 여행중이라구요!!!
할아버지를 빨리 안심시키기 위해 부리나케 자리를 떳다.
구루메부터 209번 도로를 달린다. 몇 개의 낮은 고개는 넘었지만 거의 평지인 셈이다. 바지가 계속 신경쓰였다. 자전거타기엔 발목이 좁고 활동이 편한 쫄바지가 제격일 터인데 내겐 마땅한 바지가 없었다. 최근에 더 보태진 몸무게 때문에 몸에 맞는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 후쿠오카는 날이 따뜻하다니까 여름바지라도 맞으면 입고가자... 망설일 필요 없이 선택했다. 여벌없이 말이다. 엉덩이가 커져서 삼 일내내 바지는 엉덩이 가운데로 밀려 모였고, 너무 얇아서 추웠고, 뱃살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드디어 지퍼까지 고장이 났다. 오 마이 갇!!! 어디서 바질 구한담. 더구나 여긴 지방국도라 변변한 상점하나 없는데... 엉거추춤 자전거를 타며 두리번거리며 달렸다... 하늘은 날 버리시는가? 아니다... 다행히 도중에 중고의류 대형 할인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맞춤형같은, 키 작고 뚱뚱한 나를 위해 미리 준비된 듯한 쫄 청바지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수 있었다. 편안한 자세로 달릴수 있게 되었다!!!!
저녁에 오무타 시에 도착했다. 역 앞의 시장에 갔는데 일요일이라서 문을 닫았다. 지방 재래시장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후둘거리는 다리로 자전거를 타며, 끌며 숙소자리를 찾았다. 점점 밤은 깊어 갔다..
석탄 박물관옆 취방공원을 갔다. 비도 피할 수 있고 평상과 벤취를 식탁으로 사용할수 있는 또 다른 명당자리. 전원주택을 세웠다... 배고팠지만 너무 피곤해 침낭 속에서 꿈나라로 직행했다.
다섯째날
눈이 떠지지 않는다. 뱃속 시계는 계속 꼬르륵 울린다. 어제 많이 달렸나보다. 아니,보금자리가 따뜻하고 안락해서 몸이 퍼지나보다. 며칠 한 여행에 익숙해져 가나보다. 누가 가까이 오건, 지나다 보건 상관없이 텐트속에서 뒹굴거린다. 어제 산 브로콜리, 두부, 통조림을 넣어 길거리표 샤브샤브를 해서 먹었다 .눅눅해진 침낭과 수건도 따스한 아침햇살에 말렸다. 아침 산책을 하던 사람이 우리를 보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어서 좋겠다며 농을 건내고 지나간다. 사실 행복했다. 공원이었든, 철로 옆이든 흙은 마음을 여유롭게한다. 대도시의 콘크리트 벽에 갇혀사는 우리는 개천가만 잠시 걸어도 마음이 평화로와지지 않던가..
사실 이번여행도 대도시의 혼잡함을 피하고 싶었고, 준비된 짜여진 일정도 계획하지 않았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자는 거였다. 지구에 태어났으니 이 지구가 엄마요, 우리 집이 아니던가...
아침이 되면 공원에는 줄지어 노인들이 와서 공원 청소를 한다. 60세가 넘어 보이는 분들인데 노인 일자리 창출인지 모르겠지만 별로 주울 쓰레기없이 깔끔한 공원임에도 수십명씩 봉투하나 들고서 다닌다.
바닷가를 향해 떠난다. 지도를 보며 약간의 구릉을 지나 달렸다. 아침에 삶은 찐 계란을 간식 대용으로 먹으려 묵은 밭 앞에 멈추었다. 그런데 눈앞에 마구 자라난 푸른 풀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달래였다..! 여행 중에 계속 봤는데 일본엔 달래가 길가 곳곳에 무방비로 방치된 채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호호 채취다.. 달래를 무지 많이 캤다. 큰 것만 골라 캐어도 봉지 가득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듯했다. 역시 공짜가... 하늘에 감사하며 길을 계속 달려 작은 철 이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한 일본인이 우리 뒤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왔다.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우린 손짓 발짓, 두단어의 영어를 써가며 우리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보고 대단하다고 칭찬하셨는데 그분이 더 대단했다. 78세의 할아버지가 싸이클 자전거 여행중이었고 우리 사진까지 찍어 가셨다. 언어소통이 안돼 더 많은 시간과 대화를 하지 못해 좀 아쉬웠다.
이 곳은 상업시설 하나없고 매점 하나가 유일했다 . 구조 전망대 옆에 자리를 틀고 쉬었다. 캐 온 달래를 다듬어 고추장, 설탕 약간, 소금을 넣고 버무려 달래김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남편이 손에 가득 뭔가를 가져왔다.
와, 무지 많아.. 가서 더 주워와야겠어..하더니 비닐봉지를 들고 휭 간다. 어머머, 세상에! 꼬막조개였다!! 한국에서 한주먹에 이천원 넘는 꼬막이 썰물 바닷가에 그냥 숨지도 않고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행복을 깨서 미안하다. 우리와 한몸이 되자꾸나...황금같은 보물을 줍듯이 정신없이 주웠다. 빠듯한 노숙살림에 보탬이 되어 고마웠다.
밤이 깊어지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컴컴한 시각, 우린 말랑말랑한 꼬막과 하나가 되었다...
여섯째날
밤부터 비가 계속와서 텐트가 젖었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비가 사선으로 들이 쳤다. 그래..오늘은 못떠나겠다.
텐트 바닥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어제 주워 깔았던 종이 박스도 젖어 버렸다. 전망대 아래로 텐트를 옮겼다. 배낭과 침낭이 젖어 축축하다.
각오하고 왔지 않던가. 젊은 시절,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아랑곳 없이 눈비를 맞으며 했던 자신감있고 행복했던 여행을 지금도 하자고... 젊은 시절을 되돌아 보자고..
젖은 둥지 안에서 젖은 노트를 펴서 말린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하고 지도를 살핀다. 우리의 온기로 텐트 안이 따뜻해 진다. 추워 웅크렸던 몸이 풀려 솔솔 잠이 온다.
오후에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보슬비를 맞으며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 인근 마을의 식료품 가게를 찾아 나선 것이다. 남편은 비를 맞으며 자전거 가득 우동, 계란,당근,닭고기, 일본 정종1.5리터짜리와 부탄가스연료를 사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 지고 있었지만 닭국을 끓여 우동사리와 야채 넣고 먹으며 청주 한잔으로 몸을 데웠다. 근데 닭국이 기름기가 좀 많은 것 같다???
텅빈 바닷가 구조 전망대 아래에서 우린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당한 탐험가처럼 보였겠지만, 비오는 일본 바닷가를 당당하게 구조하고 있었다...
비 땜에 아무도 안 와서 외로왔지? 우리가 함께 놀아줄게..부어라, 마셔라.
앗싸 노래 한곡 부를까나..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일곱째날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른다. 텐트바닥이 너무 차갑고 냉기가 올라와 밤새 뒤척였다. 밖은 아직도 어두운 것 같았다. 지금쯤 해뜰시간이 아닌가 싶어 살짝 텐트 밖을 내다 본다. 해가 뜨지 않는다. 빗님이 계속 내리고 있다.. 50살 다 되어 일본 노숙여행하는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 보려고 줄줄이 내려오는 모양이다. 그래, 이왕 보고 싶다면 확실히 나를 보여주마...텐트 밖으로 나왔다. 아침먹고 비가 내려도 출발하자...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들린다. 어제 아침에도 이 소릴 들은 듯하다. 아침 바다조업을 알리는 소리인가? 짙은 구름에 어두워서 그렇지 아침 7시쯤 되었겠구나.
어제 먹다 남은 닭국을 데우려했다 .코펠에 기름이 잔득 껴 있었다. 아니 뭔 기름이 이렇게 많이?? 쓰레기봉투에서 포장비닐을 찾는다. 이게 뭐라고 쓰인 이름이냐. 닭 아냐? 도리는 도리라고 쓰였는데 뭔 도리라고 써 있는거야?? 아아아 ~ 오리 고기였던 모양이네. 닭이 아니고.. 일본에서는 조류를 모두 잘라 부위별로 판다. 제일 싼 뼈있는 부위를 사서 국물울 낸 것인데 오리기름을 먹게 되어 노숙하느라 부족해진 뱃지방을 보충 받은 셈이다. 계란에 당근, 달래를 잘게 설고 찬밥을 넣고 물을 부어 휘휘 저어 계란찜을 만들어 먹었다.
자, 출발하자. 한곳에 오래 머물렀다.. 비옷을 입고 짐들도 비닐을 덮어 자전거에 단단히 묶얶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따뜻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바닷가는 비도 자주 올 것 같고 바람도 불고 추우니까 비가 안오는 내륙으로 가자... 후쿠오카 현에서 쿠마모토 현으로 가자. 활화산인 아소산으로 가자...
길가 우체국에 들러 안내하는 아저씨한테 쿠마모토까지 표시된 지방도로 정밀지도를 얻었다. 쿠마모토시까지는 약 60킬로미터란다. 209번 국도를 찾았다. 쭈욱 계속 달렸다.
어제 하루를 푹 쉬어서인지, 오리기름을 잘 먹은 탓인지 기운이 펄펄 넘쳤다. 비오는 지역을 벗어났다. 햇빛을 받으니 따뜻했다.. 아 저기 전차가 지나간다. 쿠마모토다. 일본 3대 성중 하나라는 쿠마모토 성을 멀리서 바라보며 시내 개천가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시내를 관통해 지나가 57번 국도를 달린다.
57번 도로는 서쪽 쿠마모토에서 아소산을 지나 동쪽 해안 벳부 옆에있는 오이타시까지 연결되어 있다. 산으로 가는 건 정말 자신없는데. 아직도 넓적다리는 얼얼하고 아픈데. 엉덩이 꽁지뼈도 슬슬 아파 오는데...아소산은 얼마나 높을까... 높을 테니 설마 비는 안오겠지...
시내를 벗어나서 두 세시간을 더 달렸다. 자전거에 매단 짐들이 옆으로 자꾸 흘러 내린다. 고쳐 묶고 가도 덜컹덜컹 달리다 보면 또 옆으로 기울어진다.각자의 자전거에 배낭 한 개, 침낭하나. 그 외에 텐트, 깔판, 주운 깔개 스치로폴과 종이박스, 일본서 산 가스레인지와 가스통, 식료품, 게다가 채취한 달래로 만든 김치와 어로한 꼬막, 또 남은 정종까지 엄청난 부피다. 정말 일본와서 굶지않고 살아보겠다고 엄청 챙겨다닌다. 자전거 뺀 짐의 무게가 15킬로그램은 넘겠다!!!
또 다시 집터를 찾는다. 언덕위에서 살펴보니 저기 숲이 보인다. 공원인가 보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공원 이었는데 야외 음악당도 있고 체육시설도 있었다. 야외 음악당 뒤에 낙엽을 깔고 터를 잡는다. 별장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3kg가량의 꼬막을 삶아 남은 정종을 마신다. 짐을 줄이자. 먹을수 있는 건 다 먹자.
여드레날.
일찍 여명이 밝아 온다. 부지런한 노인들의 산책하는 발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청명하고 상쾌한 아침이다.
어제 먹은 꼬막의 힘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빠르게 짐을 정리해 아소산을 향해 출발했다. 달리다가 주유소 시계를 힐끔 본다. 8시다. 달려라 달려 지텐샤야, 날아라 날아 태권 중년...점점 오르막 길이 시작되고 있다. 첨으로 일본에서 조리된 튀김과 빵을 사 먹었다. 싱싱한 전어도 4마리 100엔에 샀다.
경사는 낮지만 오르막 길이 계속 되어서 더 자전거를 탈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밀고 올라간다. 도로 옆은 기찻길이다. 한 칸 짜리 빨간 기차가 지나간다. 손을 흔들어 본다. 방가 방가..
반대편에서 내리막길을 타고 싸이클 자전거 부대가 내려왔다. 약 2 ~30명은 되는 듯 싶다. 산을 넘으면 나도 내리막 길을 저렇게 달리겠지... 그런데 저사람들 비옷을 입었네?
쉼터가 마땅치 않아 점심도 먹지 않고 간다. 계속 자전거를 밀고 간다. 점점 높은 산이 가까워 진다. 대관령 목장같은 목장들이 보인다. 지친 몸으로 고갯마루를 넘는다. 20분쯤 내리막을 달려와 기차역에서 택시기사에게 길을 물으니 옆의 높은 산이 아소산이란다.. 아이고, 다시 고갯마루로 되돌아 올라가야 겠네.. 자전거를 끌까...아니야 다시 힘내서 저속기아로 타고 올라 가보자...
고갯마루 편의점에서 200ml 싸구려 양주를 한 병 사서 나오는데 구름이 모여 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 비다. 비를 맞으며 아소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올라갔다. 아소산 정상까지 17km란다. 자전거를 밀고 한 시간쯤 가니 팜랜드가 있다. 여행온 사람들이 둥글게 지은 팬션 건물로 들어간다. 잠시 정문에서 비를 피하고 화장실에서 비데기를 사용하는 호강도 누렸다.
빗속을 계속간다. 하지만 끝없이 오르는 산길에 비 피해 머물 곳은 나오지 않고 비바람은 거세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랜턴도, 자전거 라이트도 없어 어두운데, 빗물이 얼굴에 흘러 내려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갈 때까지 가보자. 정상 휴게실이라도 나오겠지..
자전거가 점점 무거워지고 끌고 올라갈 힘도 다 떨어져 길 바닥에 눕고 싶은 마음이 여러 차례 반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폐허가 된 옛 휴게소 주차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불은 없지만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있었다. 깔끔해 보인다. 비도 피할 수 있다!!! 그래!! 오늘 나의 거할 처소는 여기 화장실 앞이다...
어둠 속에서 낮에 산 전어를 다듬어 썰어, 담근 달래김치에 얹어 술을 한 잔 마셨다. 맛이 꿀맛이었다. 높은 산 속에서 먹는 바다회의 맛은 쓸쓸히 오는 비마저도 운치있고 정감있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의 우리만의 축제여!!!
비가 그치고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수 많은 구름이 나를 감싸며 지나갔다. 자정은 된 듯 싶다. 아소산의 살아있는 정기를 받으며 이제 자자..
(아소산 오르는 우리의 하루 보금자리 화장실)
아홉째날.
밤새 바람이 휘몰아 쳤다. 간간이 세찬 비소리도 들렸다. 타오르는 아소산의 불타는 젊음의 열기를 받아서 인지, 등이 따뜻하게 푹 잘 잤다.
새벽구름이 몰려왔다가 사라진다. 나는 지금 지나가는 구름 속에 있는 거다.
오랜만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머리도 감고 발도 닦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우릴 보고 신기한 듯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서둘러 분화구를 향해 출발했다.
30분도 채 안되어 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분화구 정상은 눈 앞에 보이는데 가도 가도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은 길게 느껴지고 거리는 멀어만 보였다.
고지가 저기인데 예서 멈출 수는 없다. 아이고...
노면표지엔 아소산 정상 7km라고 적혀 있었다. 구름비는 잔뜩 우리 길을 막아 시야가 10미터도 안되었다. 간혹 올라가는 자동차가 우릴 발견하고 놀란 듯 속도를 줄인다.. 걸어 가는 이가 없어 솔직히 겁도 나고 어디쯤 왔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사위는 조용하고 비와 안개와 구름으로 감싸여 앞은 보이지 않는다. 노래를 불러보자.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산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 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사안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한줄기 바람 처러엄~.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포기하고픈 마음을 달랜다. 드디어 정상 첫 휴게소 화산박물관에 도착했다.
비옷을 입었어도 눅눅해져 부들 부들 떨리는 몸을 녹이려 안으로 들어갔다.
정오다. 2시간을 머물며 몸을 녹이고 옷도 입은 채로 말렸다.
다시 출발해서 케이블카가 있는 아소산 정상 마지막 휴게소에 갔다.
아소산아, 내가왔다!!! 한국에서 ~ 자전거 끌고 왔다!!!..
산은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려고 비구름으로 길을 막았나 보다. 비구름에 자태를 감추고 있던 아소산이 웅장하고 장엄한 자신의 화산구를 내보이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해발 1500미터.
분화구 통행이 금지되었다. 정말 너무 아쉬웠다. 여기까지 눈물나게 왔는데..열심히 살다가도, 얻고자 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놔야 할 때가 있는 거다. 아소산아, 너를 정복해 무엇하리.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받아들이마...
해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 가야 한다. 이곳은 머물 곳이 없다. 다른 이들은 관광버스나 자가용, 가끔 운행되는 노선버스를 타고 온다. 걸어오는 이도, 자전거를 타고 온 이도 없다.
출발후 이백미터쯤 가는데 우편배달 차가 빠르게 뒤따라 와 우리 앞에 서더니 익숙한 물건을 건네 준다.. 앗! 남편 잠바다!! 젖은 옷을 말린다고 짐옆에 끼워 넣었는데 달리는 중에 빠져 떨어진거다...오마나,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여러번 큰 인사를 했다. 여권과 돌아오는 배표와 우리의 전 재산 돈을 잃어 버릴 뻔 했다.
옷만 건네주고 휭하고 달려가는 차를 보자 갑자기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하느님,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겠습니다. 춥다고 짜증내며 다투지 않겠습니다. 회개합니다. 사이좋게 여행하겠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한 폭의 그림보다 더 아름다웠다. 검게 태운 초원, 얼기설기 만든 낮은 목장의 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들... 바람처럼 신나게 페달 한 번 안 밟고 저절로 달린다. 올라갈 때는 열시간, 내려올 때는 한시간 걸렸다.
아소시를 지나면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시내를 빙빙 돌아도 머물만한 데가 없다. 캠핑장을 가려면 다시 산쪽으로 5km이상 올라가야 한단다. 산으론 안가.. 그냥 57번 국도를 따라 가자..
어두워졌는데 산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이 산을 넘어야 한다. 오르막길 길 옆 아스팔트 자동차 쉼터에 텐트를 쳤다. 가로등 밑이다. 가끔 데이트 족들이 텐트 근처에 차를 주차 했지만 우린 아무런 불편없이 밥을 해먹으며 쉬었다. 그들이 불편했을지는 알게 뭐야..크크크 . 이차선 국도, 산 언덕을 내려오는 트럭이 지나가면 텐트바닥이 우르르 흔들린다. 그래도 우리는 쿨쿨 잘도 잤다.
열흘째
날씨가 맑고 청명해 일어나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이틀 동안 아소산 빗속에 있었으니 날씨좋은 날엔 열심히 가보자.. 게다가 캠핑장이 아닌 곳의 텐트생활로 지나가는 이들의 시야를 어색하게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경사가 심한 산을 넘었다. 갓길에 붙어 자전거를 끌고 갔다. 항상 있는 일이지만 크고 긴 트럭들이 쉴새없이 옆을 지나간다. 그래도 누구하나 우릴 놀래키지 않는다. 크락션도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가라고 뒤에서 공기압브레이크를 쉭 쉭하며 밟는다. 고맙고 감사하다.
배가 고파 내려가는 길에 슈퍼에서 회를 사고 결국 지도도 샀다. 국도에서 빠져나와 농로에 앉았다.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뭉쳐 생선을 올리고 달래김치를 얹어 스시밥을 먹었다.
먹어봤~나!! 산중 스시밥, 들어봤~나, 달래 스시밥!!!
창조적이고 환상적인 그 맛은 종일 입안에 맴돌았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달리기가 편했다. 하지만 오이타까지 가는 다른길을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442번 도로가 10km정도 빠를 것 같았다. 너를 선택하마. 442번 도로를 달린다. 대형차들도 없고 비교적 한적한 시골길이다..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산맥사이에 있는가 보다. 아니 우리가 선택한 길이 산길인가 보다. 쉬엄쉬엄 자전거를 끌고 간다. 이젠 타는 것보다 끌고 걷는 것도 익숙하다. 길가엔 쑥과 민들레가 가득했다. 이름모를 꽃들도 피어 있었다. 곰취도 있었다. 자, 곰취를 채취하자,이번엔. 계곡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그득하다. 이런 맑은 물가에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지도상으로 근처에 약 800미터의 산이 두어개 표기되어 있어서 인지 오후 3시경까지 산을 오른 것 같다. (이젠 해의 모습만 봐도 대충 시간을 감 잡을 수 있다) 온천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자 간혹 지나던 자동차도 아예 보이지 않는다. 고개위에서 잠깐 쉬고 다시 하산길.
왕복 일차선만 있는 오솔길이 계속 펼쳐진다. 이 도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도로인 모양이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호젓하고 운치있는 조용한 도로다. 고지대 산간마을이 보인다. 군데 군데 가옥들이 모여 있다. 산 하늘 아래 첫동네 같다. 동네 개들이 우릴 보고 계속 짖어대었다. 가끔 풀려 있는 개들 때문에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페달을 밟았다.
날은 어두워 지는데 몇 시간을 내려가도 산맥자락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뒤에 오는 차로부터 보호한다고 내 뒤에 오던 남편이 앞서서 쉴 곳을 물색하며 달린다. 보호뿐이겠는가. 내가 잘 달리지 못하니까 몰고 가기도 하는 거지...
길가 계곡물이 흐르는 다리옆 공터에서 머물기로 했다. 국도 옆이지만 갈대가 가려줘서 편안하다. 듬성듬성 길게 나무처럼 자란 잡초 사이에 텐트를 쳤다... 산상 꽁치샤브샤브를 만들어 먹었다.
먼저 꽁치 통조림에 고추장을 풀어 물을 붓고 끓인다. 꽁치를 건져먹고 그 국물에 사온 숙주나물, 버섯, 당근, 집에서 가져온 마른 미역과 멸치와 다시마, 일본 사리우동이나 라면을 넣어 데쳐 먹는다. 해가 져서 컴컴해도 먹을 것은 잘 보인다. 저녁을 먹는 시간은 항상 어두운 밤이었지만 먹거리 앞에서 불편함은 없었다. 삼 일동안 산악여행을 하니 몸이 많이 지쳤다. 푹 자기위해 맛있는 샤브샤브에 술 여러 잔 마셨다.
열하룻날.
애들 걱정이 된다.
애들도 학교 입학식도 했을 거고 지금쯤 수업도 받을텐데 냉장고에 붙여 놓은 메모를 참고하며 밥과 반찬은 제대로 만들어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도에서 자전거 타기에 몰입하고 노숙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연락조차 제대로 못했다. 연락없으면 잘 있는 줄 알어. 일본에 pc방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메일을 보내니? 너희들이나 학교 잘 다니고 있어!!
참으로 무심한 엄마다 나는. 대학생이 되니 용돈도 벌고 생활비도 보태라고 애들을 식당 서빙 알바에, 양말 공장 포장 알바까지 시켰었다. 아들 딸아! 부디 자유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기를...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득 끼여 있다. 또 비가 오려나...얼릉 출발해야겠다하고 짐을 정리하다 보니 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또 빠져 있다. 어제 내리막길에 바퀴가 땅에 극 극 하며 닿는 느낌을 주더니 역시나였다.
라면 끓여 먹자. 완전히 다시 손 봐야겠다. 남편은 바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바퀴 휠도 휘었다며 바퀴살도 조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애? 응, 금방 될거야..
금방이란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아예 눕자. 뒹굴대며 가계부도 쓰고, 여기가 어디쯤일까 지도도 여러번 보고 자전거도 붙잡아 주고 텐트도 걷고 짐을 꾸려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쯤 끝나? 하며 집중하는 남편 성질을 돋구지 말자. 머물다 밤이 되면 어떠리. 예약해 놓은 곳도 없는데. 자전거 고치며 하루를 보내면 어떠리. 이것이 바로 지구의 한 공간에 머무는 여행자의 삶이 아닌가?? 구름에 가린 해가 중천을 지나서야 양 손과 얼굴 군데군데 검은 기름을 묻힌 남편은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지도에 요금이 100엔인 삼 백년 된 온천지역의 광고가 나와 있어 위치를 살펴 보았다. 탕평 온천...그런데 싼 게 이유가 있다 .벳부 서쪽 산간 내륙에 있었다. 김샜다. 온천 하고 가려고 했는데 쩝. 벳부에 가면 싼 대중온천이 있을 거야. 화산지대에 왔는데 우리도 온천 한번 가 보자. 그래 그래 호호..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자전거, 페달을 밟고 오오오 ~
출발후 얼마가지 않아 442번 국도가 끝이났다. 이젠 10번 도로를 지나 210번 도로를 달려야 오이타 해변으로 갈 수 있다. 오이타 옆이 바로 벳부다. 오늘 벳부까지 갈 수 있을까? 오이타까지 10km라고 이정표에 써 있다.
210번 도로로 들어 섰다. 비가 간간히 온다. 정말 질기도록 자주 온다. 조금씩 경사진 길을 오르 내린다. 가도 가도 도시가, 해변이 나오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시골 읍내 같은 작은 도시 대형 슈퍼 앞에서 남편이 저녁 먹거리를 사는 동안 지도를 살펴 보았다. 도시이름이 유포시다. 유포시가 어디에 있는거냐?
으아아... 210번 도로를 약 12km 정도 왔다. 오이타 반대 방향으로.
이 길은 전에 머물렀던 구루메부터 오이타까지 이어진 산간 내륙 국도 였다. 누군가가 우리를 이 길로 이끈 것일까? 아까 아쉬워 했던 그 산간 내륙 온천이, 탕평온천이라는 이름의 온천이, 100엔짜리 온천이 이 국도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약 20km 거리앞에. 산과의 인연 또한 끈질기다. 그래, 이 인연을 즐기자. 계획하진 않았지만 마치 준비된 여정 같지 않은가...탕평으로 가자...
날이 저물어 가던 길을 멈추고 유포시 체육공원으로 올라갔다. 테니스장 옆에 집을 지었다. 저녁거리로 산 연어 대가리로 매운탕을 끓였다. 야채도 듬뿍 넣었다. 매번 만들어 먹는 저녁음식은 항상 색 다르고 맛있었다. 잠 잘 터도 매일 새로웠다.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일상에 매몰되지 말고, 습관처럼 기계처럼 살아가지 말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조금은 긴장하고 변화를 가지면서 살아가야겠다.
열 이틀째날
운동하러 온 사람들과 함께 공원의 아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를 궁금해하던 아저씨가 다가와 자전거 두 대를 보며 여행에 대해 묻는다. 우리 얼굴을 보아하니 자신과 비슷한 연령 같았던 모양이다. 후쿠오카부터 쿠마모토, 아소산, 오이타 주변, 그리고 여기까지라고 했더니 대단하다며 어깨를 들어 으쓱한다. 용기가 대단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동을 먹고 어제 날 위해 산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마시고 온천을 향해 출발했다. 점점 산이 높아지고 길의 경사가 심해져도 이젠 두렵지가 않다. 다만 엊그제 내리막길을 내려 올 때 단시간에 먼 길을 온 덕분인지 아니면 자전거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엉덩이 꽁지뼈가 많이 아플 뿐이다. 안장에 엉덩이를 한쪽씩 바꿔 앉으며 자전거를 탄다.
맞은편에서 온통 가방으로 중무장한 싸이클을 타고 내려오는 일본 바이크족을 만났다. 서로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노정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동병상련을 느꼈다. 일본에서 바이크 노숙 여행자보다 오토바이 여행객을 더 많이 보았다. 여행 배낭을 달고 혼자 혹은 여러명이 다녔다. 여행 패턴이 바뀌었나보다. 좀더 빠르고, 덜 힘든 걸로.
자전거를 끌다 지쳐 길가에서 쉬었다. 쑥이 지천이다. 잠시 쑥이라도 뜯어야 겠다. 쑥국을 끓여 먹어야지..지나는 길에 작은 사당이 보여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오늘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 곳을 잘 인도해 주십시오..
탕평온천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산꼭대기 작은 계곡에 있었다. 공터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만약을 대비해 비옷으로 짐을 싸놓고 온천에 갔다. 200엔 무인 입장요금 통이 있었다. 입장료가 올랐군.
300년 된 온천 마을은 소박하고 상업적이지가 않았다. 언덕으로 줄지어 집이 있었는데 조용하고 거리는 깔끔했다. 금광맥이 흐른다는 금@탕은 역시 마을의 모습처럼 작고 소박했다. 십여일만에 따뜻한 아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군다. 그것도 온천 물에... 몸이 노곤해지며 잠이 온다. 일본 아주머니는 너무 뜨거워 들어오지도 못한다. 존경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며 탕 밖에만 있다... 나는 두 시간동안 온천을 했는데 이 곳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인지 20분만에 나간다. 아무도 없을 때 때밀이 수건을 마구 사용했다. 몸처럼 마음까지 시원했다. 얼굴과 손발이 매끈거리고 윤이 났다. 역시 온천물이 좋긴 좋구나!!!나는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에서 온천욕 했다~아!!!
밖을 나오니 비가 보슬보슬 오고 있었다.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온천지역이라 숙박지도 많으니 아무데서나 자리를 펴면 미안할 것 같다.
산고개를 올라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국화밭 공원이 있었다. 공원이라기 보다 꽃없는 키작은 나무만 있는 밭이었다. 기적처럼 옆에 사당이 있었다. 비를 피할수 있는 루핑으로 만든 지붕이 있었다. 사당으로 갈까하고 살펴보는데 경찰차가 지나갔다. 인적도 없고 집도 없는 좁은 길에 올 일이 없을텐데 곧 다시 되돌아 오더니 자전거 옆에서 짐을 살피더니 간다.
사당은 수업대사를 모신 곳으로 수 십개가 넘는 불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좀 스산했지만 비도 오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용감하게 자리를 폈다. 우선 점심겸 저녁부터 먹자. 마을에서 가스통을 구하지 못해 가스연료가 반 통밖에 없어서 그냥 라면만 끓였다. 경찰차가 다시 또 왔다. 혹시 가스통 구하는 우릴 누가 신고한 건가?. 아니면 옷 한 벌의 여행으로 꾀죄죄한 우리 모습이 수상쩍었나? 온천욕해서 매끈해 지고 얼굴에서 윤기도 흐르는데? 경찰차를 빤히 보며 라면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그들은 말없이 되돌아 갔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비는 계속 오고 산꼭대기라 그런지 바람도 몹시 분다. 수업대사상 앞에 텐트를 친다. 오늘 하루 신세를 지고 가겠습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 왔던가. 늘 남과 비교하며 불만스러워 하고, 남의 허물만 탓하고 복권 당첨을 꿈꾸고...
이번 여행을 통해 수많은 감사함을 아뢴다. 화장실 일본 수돗물을 마구 마셔도 아프지 않아 감사하고, 사고없이 무사해서 감사하고, 매일 잠자리를 찾을 수 있어 감사하고, 노정에서 자연산 먹거리를 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옷을 찾아주신 분과 조용히 우릴 비켜가는 운전자들과 길 안내 및 지도를 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지금 여기 머물도록 받아준 사당의 대사님께 감사하고... 또 무지무지 많지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새긴다...
어둑어둑해져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비바람 소리가 요란했지만 신기하게도 대사님 앞 텐트자리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역시 명당자리다...잠결에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들었다, 자정인지 새벽인지 가늠 할 수가 없다. 뒤척이며 기다려도 여명이 밝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새벽은 아닌 듯
열사흘째날
온천탕이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꾸렸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는다. 하늘이 맑다.
한번 더 가자. 어제와는 다른 온천으로... 아무도 없는 온천탕엔 밤새 깔린 수증기로 바닥이 축축했다. 물속에 들어 갔다 나왔다를 예닐곱번 반복했다. 온천이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지 이 마을 온천은 꾸밈없고 작은 탕만 하나씩 있다. 특별히 꾸미지도 않았고 입장료도 저렴하고 무인통만 덩그마니 벽에 달려 있어 마치 부업으로 하는양 했다. 남탕과 여탕은 출입구는 달라도 탕 안은 가운데 천정부근이 뚫려 있어서 보이진 않아도 서로 말을 주고 받을 수가 있었다.
9시경에 탕평온천마을을 출발했다. 안녕 , 내 살아 생전 언제 다시 와 볼까나...예쁜 마을이여, 내 맘에 쏙 들었던 소박한 온천이여!!!
내리막길을 30여분 달리며 소풍가는 산골학교 초등학생들을 본다. 우릴보며 일제히 오하이오 고자이마스하며 손을 흔든다. 인사성이 밝다. 그래 니들도 안녕? 반가워.
다시 오르막길이다. 아침을 못 먹었으니 기운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내려서 끙끙대며 끌고 간다. 길이 평평한 곳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휙 휙 지나가며 내게 곤나찌와 하고 인사를 한다. 젊은이 5명이 자전거 트래킹을 하고 있었다. 대학생처럼 어려 보였다. 얘들도 인사성이 밝구나. 그들은 갓길을 빠른 속도로 잘 달렸다. 짐도 거의 없고 자전거 뒤 양옆으로 매다는 작은 가방만 있었다. 에구, 나도 짐이 없다면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을텐데.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
대학분교 운동장에서 가스통에 남은 마지막 불꽃으로 라면을 끓여 아침겸 점심으로 먹었다. 어제 비로 눅눅해진 침낭과 사용한 수건도 말렸다.
라면힘으로 기운을 내서 오르막길을 간다. 군데군데 도로 공사를 하는데 일하는 아저씨들이 너무나 친절하다. 오늘 만난 초등학생과 젊은이들처럼. 말 한마디 안하는 내가 외국 여행객임을 알 리가 없을텐데 공사 주변을 지나가면 자전거도 들어다 날라 주고 우리가 지날 때까지 맞은 편에서 오는 차들도 세워 안전하게 길을 내어 준다. 본 받을만 하다.
고개 정상에 가니 커다란 휴게소가 있었다. 국도 교차로에 있는 휴게소인데
관광차도 많고 자동차도 많았다. 동쪽 산 아래가 벳부라서 인지 이 주변에 온천이 많은 모양이다. 지도를 살피며 관광지를 피해 북쪽 후쿠오카를 향해 가기로 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갓길 달리기는 이제 자신이 있다. 갓길선을 따라 흔들림없이 곧게 간다. 엄청난 속도로 자전거가 저절로 달린다. 이야호!
올라가는 것은 무척 힘들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인내하며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고통을 견디며 시간이 지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오래 쉬어도 가기 힘들다. 포기하고 싶어 지니까. 꾸준히 가야 한다. 힘이 약해 천천히 가더라도 나를 믿고 가는거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것은 너무나 속도가 빠르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너무 빨리 내려와 버려 허무해진다. 영차 영차하고 격려해 주는 이도 없다.
내려올 때는 산에서건, 사회적 지위에서건 지혜로와야 한다. 꼭 마음을 다잡아 하강 속도준비를 하고 브레이크의 속도도 잘 조절해야 하고, 달려 내려가는 짧은 그 시간을 신나고 맘껏 즐기는게 좋다. 그래야 아름답다.
구루메 방향 내리막길도 온통 온천이다. 지도상으로는 동쪽 뱃부에 온천이 굉장히 많은데 서쪽 구루메 방향에도 많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온천마을이다...그래도 호화 찬란하지 않다. 식당도, 요란한 광고판도 별로 없다.
대형마트에서 가스통을 사고, 돼지고기와 시금치, 숙주나물, 두부, 통조림 그리고 싼 위스키도 샀다. 배고파서 빵도 사서 먹었다. 쉬고 싶어 지도상의 폭포 공원을 찾아 정신없이 달렸다. 찾아간 공원은 오르막 경사가 너무 높아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오를 수 없어 보였다. 다시 달렸다. 아니, 내리막 길이라 자전거에 몸을 맡기면 알아서 달려 주었다.
어두워 지기전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생존의 후천적 달인인 남편을 따라 간다. 그동안 남편은 쉴 명당자리를 기막히게 찾아냈다. 시골 마을옆 농로로 접어든다. 닭 키우는 농장을 지나 계속 가니 철로가 나온다. 철로 아래 논두렁 옆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가까이에 논에 물을 대는 수로가 있어 물도 졸졸 흐른다. 우리가 여기 있는지 아무도 모를거다. 천천히 농가주택을 짓는다. 멀리 국도를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오늘 라면 한 끼만 먹어 몹시 배가 고팠다. 밥을 푸짐하게 하고 돼지고기 찌개를 하니 벌서 어둡다. 저녁을 먹으며 위스키도 곁들여 마셨다.
이젠 노숙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밤중에 잘 보이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술도 거의 매일 마신다. 이런 익숙함에 우려를 표한다. 이젠 익숙해진 노숙 생활을 끝내고 애들에게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저 밝은 별 하나는 틀림없이 인공위성일 게다. 우주로 지배의 영역을 넓히는 인간의 놀라운 힘. 인간은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
열 나흘날.
오늘은 약 100km를 달렸다. 신들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올 것처럼 날이 흐려 있었다. 아직 산중이라 그런지 이놈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라면에 밥 말아 먹고 잽싸게 출발했다.
내리막길을 가면서 조금만 덜컹거려도 꽁지뼈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어제보다 더 심해졌다. 자전거 도로가 나와도 도로 갓길로 달렸다. 길바닥의 굴곡이 없으니까...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간다. 좌우를 바꿔가며 안장에 앉는다.
이 국도에서 386국도로 바꿔 달리면 후쿠오카가 65km앞에 있단다.
보통 때는 이틀동안 갈 길을 하루로 단축시키기로 했다.
386도로에 들어서자 내리막길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 되었다. 평지는 맞바람이 심해서 달리기가 불편했다. 확실히 나의 다리 힘이 강해졌다. 바람과의 힘겨루기에서 강한 바람을 밀어내었다. 웬만한 언덕은 쉽게 넘었다. 달리는 속도도 빨라졌고 좁은 갓길도 흔들림없이 잘 달렸다. 뒤에 오는 트럭이나 버스들이 날 위협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인지 자신있고 담대하게 달렸다. 엉덩이 꽁지뼈 때문에 자세는 좀 엉성하고 한쪽으로 기울었지만 다리 힘을 믿는다. 약해지는 것이 있으면 강해지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일 테니까..
도중에 마을 어귀의 밀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집 담 밑에서 꽁치 통조림과 아침에 다 못 먹은 밥을 마저 먹었다. 논두렁에 가득한 달래를 보고 멈출 수 없는 욕망으로 채취를 했다.
다시 달린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고 눈 앞엔 온통 갓길 선만 아른거렸다. 100엔 샾 앞에서 잠시 쉬면서 아이들 선물을 샀다. 샤프와 머리끈.
386국도가 끝나고 3번 도로가 시작 되었다. 처음 출발한 도로라 익숙했다.
아, 이제 거의 다왔다.. 대야성(다자이후)이다. 둘째날 머물렀던 도시다.
산길을 다니다가 대도시를 보니 반가웠다. 여유롭게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도시를 구경하며 달렸다. 인도 위의 많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피하고 넘어지지도 않고 자전거에서 내릴 일이 없도록 브레이크 조절도 잘하게 되었다. 와우, 이건 내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야!
대야성 시과 후쿠오카시는 경계가 없는 모양이다. 지하철역 앞을 지나면서 그제야 우린 후쿠오카 시내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너무 반갑다. 후쿠오카여...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샹들리에가 하나씩 켜지고 도시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천옆 노점엔 관광객들로 가득해 자전거를 가지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첫 날 머물렀던 곳으로 가자... 그 바닷가 그 자리에 일본 노숙 여행의 마지막 집을 세웠다... 첫날은 깔판없이 덜덜 떨며 추웠지만, 오늘은 우리를, 땅바닥을 모두 함께 데울 스티로폴과 종이박스가 있어 따뜻할 것이다... 내일 아침용 라면 하나만 남기고 모든 재료로 최후의 만찬을 즐긴다. 오늘 저녁의 요리! 참치 샤브샤브!!
첫날의 긴장감이나 불안감은 사라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와는 달리 이 자리는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감회를 충분히 느낀후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가 있는 줄 전혀 모르는 두 청년이 보드 연습을 하느라 소란스럽게 굴었다. 밤이 늦도록(아마 자정이 넘었을 것이다) 연습하는 그들의 열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열 다샛날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잘 잤다. 깊이 잠들지는 못했지만 편안했다.
새벽에 어로한 바지락에 라면을 끓여 먹고 국제터미널로 향한다. 가다가 슈퍼에 들러 아이들 줄 과자와 선상에서 먹을 컵라면을 샀다. 등교시간인지 거리엔 자전거를 탄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나란히 줄지어 달렸다.
도착하니 터미널 시계가 오전 9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10시가 넘어 발권이 시작되었고 자전거도 화물칸에 부쳤다.. 노숙과 어로 채취의 기억, 자주오는 비와 비구름속의 아소산 산행, 산간도로와 탕평온천의 추억을 뒤로하며 배에 오른다.
안녕 큐슈여.. 나 이제 떠난다...
선내 목욕탕에 간다. 아무도 없다. 탕 속에 들어가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진 텅빈 바다를 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벌거벗은 내가 좋아 눈물이 나오려 한다. 돌아가면 이 무욕의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을까.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나를 버릴 수 있을까...
저녁 6시가 되어 부산항이 보인다. 회벽색 건물들이 가득하다. 하늘도 회색이다. 서둘러 입국한다. 세관원이 날보고 이 자전거를 가지고 갔어요? 묻는다. 네.. 자전거 여행했어요? 네...나와 자전거를 번갈아 쳐다본다. 정갈해 진 마음만큼 무거운 자전거와 때묻은 옷과 짐들과 검게 탄 얼굴과 눈가에 깊이 패인 주름은 나의 상징이고 동반자였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고속버스를 기다린다. 운전기사는 자전거 넣을 화물칸을 제일 작은 쪽을 귀찮다는 듯이 열어주더니 가버린다. 자전거를 반을 접으니 하나만 간신히 들어 간다. 야간버스라 승객도 적을 거고 실을 짐들도 적을 텐테 넓은 칸을 열어 주면 좋으련만... 귀찮아도 좀 친절하면 좋으련만...허락없이 옆 칸을 사용했다.
고속도로 중간에서 버스가 멈췄다.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운전석 와이퍼가 고장이란다. 휴게소에서 다른 이들은 다음 차편으로 옮겼는데 비속에 우리 짐은 많아서 옮길 수가 없다고 차를 수리한 후 같이 가잔다. 아직도 여행은 진행중이구나. 어차피 서울 도착이 새벽 1시 반 예정이라 집에 갈 길이 심난 했는데 잘되었다. 버스에서 숙박하자. 지하철 첫 차 시간까지만 가면 된다.
서울서 정비기사가 왔다. 어수선한 말소리를 들으니 운전 조수석 와이퍼만 가져왔나보다. 짜증섞인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휴게실 주차장에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한참후 버스는 와이프가 고장인 채 그냥 출발했다. 조수석 와이퍼만 외롭게 혼자 일을 하고 있었고 운전기사는 빗물이 흐르는 앞 유리만 응시하며 저속으로 서울을 향했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가 다 되었다. 운전기사의 눈동자는 충혈되어 있었다. 눈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쯧쯧, 태어나서 운행중인 버스의 와이퍼 불량은 처음 듣는다. 지금이 60년대도 아니고.. 부산서 뉴스를 들어보니 밤에 많은 비가 올거라고 예보하던데 점검을 안하다니... 불친절해 벌 받은거다.
지하철엔 자전거를 실지 못하는 게 규칙이다.
앞 칸 장애인석에 자전거를 실는다. 내릴 때까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릴 의식하지 않고 못 본체 해 주는 승객들이 감사하다. 허락받지 않은 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첫 차라 승객이 별로 없으니 눈 감아 주세요~
우리나라는 자전거 도로도 별로 없는데, 보행자나 라이더가 우선이고 잘 보호받는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까? 게다가 비도 오고 아직 날도 컴컴한데 자전거 타고 집까지 가기엔 목숨을 건 도전이리라..
지하철 하차후 여행의 마지막 남은 거리를 달린다. 일본처럼 비옷입고 또 비를 맞으며 달린다. 출발 때보다 확실히 다른 능숙한 자전거 타기 실력으로.
애들은 잠자고 있다. 강아지 레이디만 숨이 넘어 갈 듯이 우릴 반긴다.
작지만 포근한 나의 집...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 !!! 그래도 가끔 그 고생이 좋다.
[출처] 일본 자전거 여행기|작성자 파란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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