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이에반하여 철쭉은 한국,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며 자생하는 꽃이다. 다른 이름으로 개꽃나무라 부르기도 하지만 철쭉은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척촉(擲燭)이 변해서 된 이름이다. 그리고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올봄을 지나치면서 나는 까맣게 잊고 산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쭉이다. 화사하게 새봄, 강렬한 눈길을 끌며 곧바로 다가 오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보편적 수수한 자태로 산에 피는 꽃이다. 변이되기 전 이름처럼 쉽게 다가 가기에 머뭇거리게 만드는 꽃이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아 평소 즐겨 찾던 꽃이다. 되바라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든실한 관목으로서 잿빛이 감도는 여유로움이 좋다. 이런 연유로 해마다 즐겨 찾는 철쭉마중을 올해는 그만 까맣게 잊고 산 것이다. 노을이란 근사한 이름을 달고 북상중인 태풍 영향으로 온 천지는 강한 바람이 가득했었다. 요즈음 낮의 길이가 길어져 늦은 시간까지 산책이 가능하여 모처럼 바람이 강한날 오랜 친구랑 가까운 산을 찾았다. 서로 궁금해하며 지낸던 차 소통이되어 약 두시간 정도 산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숲속에는 부러진 나무가지와 나뭇잎들이 너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바람이 전지(剪枝)를 해주었네
하며 새삼 바람에게 고마움을 느껴다. 거의 광풍처럼 부는 바람은 온 산 비탈에 서 있는 나뭇잎들을 진저리나게 흔들고 있었다. 5월은 창조적 질서 안에서 돋아 난 새생명을 원숙의 기틀로 만드는 달이다. 6월부터는 성숙의 단계로 접어 든다. 새의 혀처럼 돋아난 새순들은 연두빛 여린 시기를 지나면서 녹빛으로 바뀌고 잎사귀도 점점 커진다. 이는 빛의 영향을 더 받아 광합성작용을 원할히 하려는 목적이다. 잎이 커지면 나무는 많은 부담을 갖게 된다. 이럴 때 적절한 가지치기가 필요한데 그 일을 바람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6월이후부터는 비바람이 모질어 진다. 장마와 태풍이 연이어 숲을 다듬어 주는 것이다. 이런 시련기를 넘겨야 숲은 건강해지면서 가을의 결실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부러져 너브러진 잎과 가지에서 비릿한 초목의 향기가 숲에 가득하였다.
이런 향기를 난 참 좋아한다. 긍정의 향기라 표현하기도 하는 숲의 향기다. 바람이 마구 휘젓는 숲의 향기는 비탈의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나의 몸에도 달라 붙었다. 활엽수들이 벌이는 바람, 숲 향기의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7부 능선 계곡 안부에 흐르는 질 좋은 약수를 찾아 벌컥 마셨다. 숲 자체를 마시는 것처럼 물에는 숲이 완전히 녹아 있었다. 어떤 물이 이런 향기와 청량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단언하건데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은 고작 수돗물! 각종 화학약품을 이용하고 침전시켜 만드는 인위적인 물과 전혀 다른 물이 바로 숲속에 있는 옹달샘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산에선 그런 물을 만날 수 없다.
인적이 뜸한 극상림 숲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물에 취한 마음을 달랜 후 강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 서려고 마지막 용을 장단지에 모았다. 그 때 철쭉 특유의 향을 맡은 것이다. 그때 잊고 지냈던 철쭉이 보인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철쭉은 이미 끝물에 와 있었다. 너무 아쉬웠다. 서울근교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았는데 때를 놓친 것이다. 이제 철쭉의 군락을 보려면 소백과 태백을 찾아야 한다. 5월중순에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이 보이는 언덕에 섰다. 강은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가파른 길을 택하여 내려섰다. 미끄러웠다. 긴장하며 나무기둥을 잡고 잡으며 이동하면서 간신히 숲 언저리로 빠져 나왔다. 숨을 진정시키려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침엽수이면서 낙엽이 지는 나무 전나무처럼 쭉쭉뻗으며 자라는 낙엽송 가운데 앉았다. 색다른 나무향이 느껴졌다. 또 바람이 낙엽송 사이를 매끄럽게 달음질 친다. 노을이 만든 바람이 있는 한 숲은 잠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습기에 젖은 바지단을 털고 일어 섰다. 황토빛 침엽수 묵은 낙엽 몇개가 바지에 박혀 있었다. 나는 그대로 나둔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철쭉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걸음을 너무 머뭇거려 미안하구나, 내년에는 단박에 너에게 달려가마, 약속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