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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이산 탑사 가는 길에 -은수사(銀水寺)-
4월 18일에 있은 이번 산행은 마이산 벚꽃 산행겸 탑사를 간다고 하여 동참하게 되었었습 니다. 서울에도 벚꽃이 화사하게 핀 까닭에 그 아래 전북은 벚꽃이 한창이거나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구름이 끼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에 우산도 준비해 갔는데 진안에 이르도록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7시 30분에 출발하여 진안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30분이었습니다. 마이산 탑사는 10여년 전에 가 본 터라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는데 기회가 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고 싶어서 공지를 올려 봤으나 모두 바쁘신지 반응이 없는 가운데 보화님 만이 동참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악회 일행들은 많아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이산으로 향했습니다.
멀리 마이산이 보입니다.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 매고...
위용을 자랑하는 마이산으로
후미에 연화심과 보화님 오릅니다.
마이산을 바라보며. 馬耳山 (지방기념물 제66호)
진안고원에 우뚝 솟은 마이산(馬耳山)은 세계유일의 부부봉(夫婦峰)으로 673m의 암마이봉과 667m의 숫마이봉 두 봉우리로, 흙 한 줌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축조물 같이 형성되어 있는데 재질은 수성암(水成岩)이라 합니다.
신라시대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는 용출산(湧出山)으로 부르다가 조선조 이태조께서 동금산(東金山)이라 명명했고, 태종께서 오늘날 부르는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명명했다고 합니다.
계단을 다 올라와서
마이산 두 봉우리를 부부봉이라 한 데는 내력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죠.
두 부부산신이 이 고원에서 아이를 낳아서 등천(登天)하게 되었는데, 남신(男神)은 "우리가 등천하는 것을 인간이 보면 안 되니 밤에 갑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신(女神)은 "밤은 무서우니 낮에 올라가요." 하고 졸랐다고 합니다.
결국 이른 새벽에 떠나기로 합의하고 등천을 시작했는데, 때마침 물 길러 나온 아낙네가 이 거대한 산이 떠 올라감을 보고 "악!"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에 두 산신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마이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가 난 남신은 아기마저 빼앗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숫마이봉에는 작은 봉우리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
화엄굴 설명
그러나 아쉽게도 접근금지입니다.
말석상을 한 식수대입니다.
돌고기 한 마리가 있네요. ㅎㅎㅎ
은수사 탑사쪽으로
제가 사진을 찍는 동안 보화님과 연화심은 탑사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부랴부랴 저도 서둘러 내려갔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일행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연화심 한테 전화를 했더니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밑으로 마구 내려갔는데 올라왔던 매표소가 보이는게 아닙니까? 이게 웬일인가 싶어 매표소 안내인한테 탑사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이리로 쭈욱 올라가면 된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ㅋㅋㅋ 제가 엉뚱하게 착각하여 도로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힘들게 올라갔던 곳을 내려와 다시 올라가야 하다니... 땀이 뻘뻘... 공연히 한 번 착각으로 힘은 두 배로 들고 귀한 30분을 소모했네요. ^^
은수사 무량광전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입니다.
이 절은 숫마이봉 아래에 있는 절로 이성계가 고려의 장군으로 운봉의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이산에 들렀을 때 이전의 꿈에 신인 (神人)으로부터 장차 나라를 측량할 금척(金尺)을 받았었는데 그곳이 마이산과 같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절은 조선 창업의 천명을 받은 곳이라 하여 중요시 되는 절입니다.
이 절은 조선초기에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조선 중기엔 정명암(正明庵)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명암은 퇴락하여 무너졌는데, 1920년 경 이 지방 인사인 이주부(李主簿)에 의해 중건되고 이름도 은수사(銀水寺)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태고종 사찰입니다.
은수사 앞에서
은수사약수터. 용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여기가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삼진강의 발원지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 위로 산신각이 보입니다.
단군을 모신 전각 태극전(太極殿)입니다.
은수사에서 25년간 지내다 입적하신 황혜수 스님이 산태극 물태극이라 말해지는 이곳에 태극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마이산은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두 강의 물줄기가 마이산을 중심으로 태극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안에는 우리나라 국조 단군이 모셔져 있습니다.
국조 단군(檀君)
여기에는 태조 이성계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장차 나라를 측량할 금척(金尺)을 받았 다는 천사금척도(天賜金尺圖)와 금척의 복제품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상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아쉽습니다. 후일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합니다.
태극전 뒷모습. 좀 허름합니다.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지. 천연기념물 제380호
설명을 옮겨 봅니다.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나는 뿌리가 나무나 바위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사시사철 잎이 푸르러 낙엽이 진 겨울철이면 삭막한 주위환경과
대조를 보이며 장관을 이룬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마이산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으며 다 자란 줄사철나무와 어린 줄사철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줄사철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되고,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
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각종 화초들이 꽃을 피우려 하고 있네요.
탑사로 가는 길에 쓰러질 듯 자란 소나무
은수사를 뒤로 하고
꽃을 감상하는가 봅니다.
숫마이봉에 자리 잡은 은수사(銀水寺)
기념사진
여기 있는 바위들은 희안하게 이렇게 시멘트를 자갈과 모래로 비벼 놓은 것 같습니다.
☞ 다음은 돌탑의 신비 탑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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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맨밑사진은 시멘트에 돌이 박힌 게 아니고 자연석인가요

신기합니다. 백우님이 길을 잃으시다니요

여기 일대는 대개 그렇습니다. 시멘트 비벼 놓은 거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아득한 옛날 바다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물고기 화석이 발견 되었다고 하네요. 정신줄을 놓았던 모양입니다. 마이산 산신이 정신 차리라고 뺑뺑이 돌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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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쓰러질듯 소나무가 멋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담은 것입니다.

은수사도 찬찬히 살필 것이 많은 곳인데 지나치듯 지나온 것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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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깨서 진안에살아서 가고싶었는대 아쉽내요
누님께서 진안에 사시는군요. 그러면 탑사에 많이 가 보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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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바위는 아무리 보아도 모래와 자갈과 시멘트를 섞어서 부어 놓은듯 합니다. ㅎㅎㅎ
그렇습니다. 이 특이한 바위산은 사질역암(砂質礫岩)으로 모래와 자갈이 섞어 굳은 바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다음 장면에 설명을 써 놓은 대목이 있습니다. 탑사 1번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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