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실의 김준연 수석연구원(제1저자)과 김예림 전임연구원(제2저자)이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 <이백 시에 보이는 공간 구조와 그 특징>이 소정의 심사를 통과해 6월 30일자로 발행된 <중국어문논총> 99집에 게재되었다.
<결론>
杜甫는 이백의 시를 평하여 “淸新함은 庾信이요, 俊逸함은 鮑照”라 했다. 이백의 시는 확실히 진부하지 않은 ‘청신함’과 기상이 빼어난 ‘준일함’에서 뛰어나다. 그러나 그의 시를 두루 살펴보면 ‘詩仙’이라는 초탈의 이미지 한켠에 강한 ‘悲哀 의식’이 숨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본고는 이러한 哀傷感의 근원을 밝혀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백이 일생 동안 행적을 남기거나 지향점으로 삼은 공간에 주목하였다. 그가 설계한 공간 구조가 唐代의 다른 시인들과는 구별되는 점이 뚜렷하고, 이로부터 그의 심리적 갈등과 모순이 배태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본고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먼저 여러 연구자들이 제시한 공간 이론을 토대로 이백 시에 보이는 공간 구조의 특징을 살폈다. 이백이 설계한 공간 이동은 고향인 촉 땅을 떠나 長安에서 공을 세운 뒤 고향 대신 은자의 거처로 돌아가는 ‘직선형’의 형태를 띠었다. 翰林供奉으로 장안에 입성한 것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주변의 讒言으로 인해 만족할 만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여기에서 이백의 심리적 갈등이 시작되는데, 그는 장안의 궁궐을 出仕地, 신선세계, 고향의 의미가 중첩된 장소로 여기고 그곳에서 임금을 군주이자 옥황상제로 모시며 出仕와 隱逸이라는 모순된 꿈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안은 현실 공간이라기보다 추상 공간에 가까웠기에 그의 꿈은 실현되기 어려웠다. 여기에 스스로 ‘謫仙’, 즉 ‘내쳐진 신선’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며 일종의 ‘디아스포라’ 의식도 가지게 되었던 것 또한 그의 심리적 갈등을 배가시켰다.
이와 같이 다소 허황한 공간 구조는 필연적으로 몇 가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소화된 구체 공간이 부족한 탓에 이백은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도 나그네 또는 노숙자로 떠도는 듯한 인상을 한껏 풍기며 그로부터 심한 ‘客寓 意識’에 시달렸다. 또한 두보의 ‘成都草堂’과 같은 구체 공간을 외면하고 ‘別天地’ 등의 추상 공간에 집착한 나머지 현존재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이율배반적 모순에 노출되어 실존적 소외(existential isolation)로 인한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향이든 아니든 안식처로 삼을 마땅한 귀소 공간을 마련하는 데도 실패하면서 늘그막에는 친족인 李陽冰에 얹혀 지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상에서와 같은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백의 비애 의식이 일종의 ‘이중 구속(double bind)’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갖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쳐진 신선’이라고 간주하고 신선세계와 같은 추상 공간을 한껏 갈망하는 듯 하면서도, 구체 공간에서 세속적 공을 이뤄야 신선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시인 이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詩仙’이라는 낭만적 칭호는 구체 공간 속에서 추상 공간을 찾아 헤맸던 이에게 붙여진, 얼마간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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