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최훈 / 손병관 기자, 사진 = 권우성 기자
| '아모르 가구' 정문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신 : 24일 오후 2시50분 아모르가구 노사분규 타결>
경기도 포천군에 소재한 ㈜아모르가구 공장 외국인 노동자들의 파업 사태가 25일 타결될 전망이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jcmk.jinbo.net, 이하 외노협)'의 이란주 간사는 오마이뉴스에 "24일 오후 2시경 노사간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알려왔다.
외국인 노동자대표 6명과 회사대표 손모 씨의 공동 명의로 작성된 합의서에 따르면, 손 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밀린 두달치 임금 전액을 25일까지 지급하고, 파업 기간동안의 발생한 일에 대한 일체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손 씨는 또한 "향후 발생하는 임금에 대해서도 매월 15일에 반드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합의서에 명시했다.
회사측은 "은행 융자를 받는 대로 체불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밝혔지만, 23일까지만 해도 "경영난 때문에 당장 노동자들에게 줄 돈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손 씨는 또한 한국인 관리자들의 폭언, 폭행 등 비인격적인 대우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직접 가져와라.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는 구두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입장 번복은 언론 보도 이후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사태 파악을 위해 공장을 방문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들도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자 "더 이상 이번 사태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외국인들의 체류자격을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파업 4일만에 대부분의 요구 조건을 쟁취한 아모르가구 외국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노무 관리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해온 일부 사용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릴 전망이다.
<1신>'추방' 각오하고 파업나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분노'
"다른 사람 여권 가지고 있는 거 위법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주민등록증 맡기고 일하지 않잖아요? 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습니다."(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이란주 간사)
"찾아드릴 테니 밖에서 기다리세요. 그리고, 사진 좀 찍지 말아요. 내가 언제 TV 나오고 싶다고 했어요? 당신들, 내가 원해서 온 거 아니잖아?"('아모르 가구'의 정모 상무)
| 러시아 노동자 알렉세이의 파업기록 / 구선희 기자 |
1월 23일 오후 경기도 포천 소재 가구제조업체 ㈜아모르가구의 관리 사무실. 21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이 회사 외국인 노동자들의 요청을 받고 달려온 노동단체 회원들과 관리직 사원들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 ▲최준기 신부(가운데)가 회사측에서 불법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여권을 되찾아 원 주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최준기 신부 등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jcmk.jinbo.net, 이하 외노협)' 회원들의 거듭되는 요구에 회사측은 결국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여권들중 일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외노협의 관계자는 "그동안 체불임금 문제로 산업연수생들이 집단행동을 벌인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국외 추방을 각오하고 파업을 벌인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외국인 노동자 1백여 명이 3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관리직 사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였다. 이 회사의 노무책임자 정모(38) 상무와 노동단체 회원들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한 직원은 "얘들이 이럴 형편이 아닌데..."라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곧 말문을 닫았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안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에 대한 불만이 설마하니 파업으로까지 폭발할 지 몰랐다는 표정인 것 같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령'하고, 취재진과 노동단체 회원들이 찾아오는 새로운 환경 속에 10여명의 한국인 직원들 대부분이 입을 다물었지만, 일부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익명의 한국인 직원은 "한국사람들도 12월부터 임금을 못 받는 실정이지만, 타국에서 고생하는 외국인들에게 임금을 안 주는 것은 몹쓸 일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예전에 중동이나 미국에서 임금을 못 받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편들었다. 공장 인근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지역주민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리켜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동정했다.
| ▲장기전에 대비, 북과 라면을 준비한 노동자.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공장 정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린 월급 빨리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 노동자는 어디서 구했는지 북을 두드려 파업 열기를 북돋웠다. 참가자들의 검고 흰 피부색을 빼고는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쟁의 현장의 풍경과 마찬가지였다.
파업 참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출신국적은 러시아(30명), 우즈베키스탄(30명), 이란(13명), 나이지리아(9명), 루마니아(6명), 필리핀(6명), 타지키스탄, 몽골, 태국(이상 각 1명) 등으로 구소련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파업 대열에는 한국 생활 3년째라는 '고참' 노동자 리오(나이지리아)도 끼어있었다.
"나이지리아에는 한국 사람 많아요. 다들 열심히 일한다고 평판 좋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두 좋다는 생각 이제 안해요."
그는 2000년 9월 수색의 공병 제조공장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는 석 달 일하는 동안 두 달치 월급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리오가 한국에 오는 데 들인 돈은 그의 고국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5천달러. 2천달러는 비행기표를 사는 데 썼고, 3천달러는 비상금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리오는 가족들의 기대 속에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지금까지 겪은 5개의 작업장마다 임금 체불과 반복되는 구타를 피할 수 없었다.
| 나이지리아 노동자 리오(오른쪽)와 오케이.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 공장에선 작년 5월부터 일했는데, 8월에도 돈을 안 줘서 우리들이 이틀동안 파업했어요. 때리고 어르고 그러다가 안 통하니 사장님이 임금을 주겠다고 해서 다시 일 시작했는데, 11월부터 또 다시 임금을 안 주는 거예요. 돈 안 주니 생활비도 부족하지만 당장 고향에 보낼 돈이 없어요."
곁에서 얘기를 듣던 나이지리아인 동료 오케이도 거들고 나섰다.
"한 달에 한번 월급날만 놀았어요. 월급이 나오건 안 나오건 평일에는 아침 8시 반부터 밤10시, 늦으면 다음날 새벽1시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오후6시까지 일을 시켰어요. 8월에 약속한 것도 있어서 참고 일하려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죠."
한국에 온지 2년 됐다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히크마트도 "잔업수당까지 합쳐서 월급은 120-140만원 정도 받았다. 임금이 밀려서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도 했지만 다른 데도 외국인들에게 임금 제대로 안 준다. 사정이 비슷한 또 다른 회사에서 적응할 생각을 하니 차마 옮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 ▲한 외국인 노동자의 2001년 11월 출퇴근 기록카드. 외출란에 찍혀있는 시간이 실은 퇴근시간이다. 평일은 대부분 저녁 10시와 새벽 1시, 주말에는 오후 6시경 퇴근한 것으로 되어있다. 회사측 관계자는 "자기들이 원해서 하는 거지, 회사에서 강제로 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두 달치 임금 약 3억원(노동자 추산)이 밀려있는 가운데 회사측이 싯가 1억3천만원 어치의 기계를 새로 사들이고 공장 건물을 증축한 것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아모르가구의 정 상무는 "그거 다 은행에서 대준 운영자금으로 들여온 거다. 이번 달에 막아야 할 어음이 7억 원이고, 생산부문에서 1억5천만원을 막아줘야 하기에 설비투자를 한 거다. 그런데, 생산이 중단되면 앞으로 은행이 약속한 돈도 없던 일이 돼버린다"고 변명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공장에 한달 전에 들어선 불상에 대해서도 정 상무는 "이 공장 처음 만든 N종합건설 사장의 은행 융자금으로 지은 것이다. 그런 걸 그냥 짓는 바보가 어디 있나? 은행에서 돈 끌어다 하지. 우리 사장이 불교신자여서 건설회사 사장이 서비스로 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상무는 "어제도 그제도 걔들에게 회사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설명을 들은 듯하다. 이란인 노동자들의 리더 알리는 새해 들어 사장이 자신들에게 내뱉은 외마디 답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두 달치 임금이 밀리자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이란 노동자들의 대표가 사장을 찾아갔다. 밀린 임금 달라는데 사장은 '니들 따뜻하라고 기숙사 지어주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우리가 '기숙사는 기숙사고, 임금은 임금 아니냐'고 되묻자 사장이 '××놈아, 가!'라고 소리질렀다"
| ▲공장 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결국 노동자 대표들은 21일 오후부터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고, 파업 3일째에는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예전에 공장을 떠났던 이란 노동자 10여명이 소식을 듣고 공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회사측은 "임금만 해결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그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이 느껴온 비인간적인 대우가 일사불란한 집단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외노협의 분석이다. 최 신부는 "노동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 관리직 직원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을 일상적으로 행해왔다. 어떤 노동자는 출근시간에서 조금만 늦게 작업장에 도착해도 기숙사까지 찾아온 관리직 직원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구타로 인해 귀가 멍멍해지고 두통을 호소한 노동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8월 파업 때는 한 고위 간부가 여성 노동자의 다리를 돌로 내리찍은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 ▲근심이 가득한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관리직 직원들의 구타 의혹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걔들이 그렇게 얘기하던가요?"라고 딴청을 피우던 한 직원은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가장 빈번히 구타를 자행한 인물'로 지목됐다. 이 직원은 여권을 돌려 받으러 사무실을 찾은 러시아 노동자들을 '××놈'이라고 부르다가 이를 지적하는 기자에게 "제가 언제 욕을 했나요?"라고 반문해 뿌리깊은 도덕 불감증을 드러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처리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치료를 장기간 방기한 사례도 있었다. 나이지리아 노동자 소코트는 "작년 12월14일 저녁 7시경 작업중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만 4일간 방치됐다가 18일에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고 호소했다. 아직도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는 손가락이 부어 올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두 달 전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일부가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던 이란 노동자 그로쉬도 "작업중 다쳐도 일을 안 하면 봉급을 안 주기 때문에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작업장에 복귀해야 했다"고 말했다.
물과 전기, 화장실 사용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건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회사의 갈등은 계속됐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달 전에 고장이 났는데도 회사에서 고쳐줄 생각을 하지 않아 논두렁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 상무는 "지들이 잘못해서 막힌 걸 무슨 수로 관리하냐"고 답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파업 이틀째 되는 날 전기업자들이 기숙사 전기를 끊으러 왔다가 우리들이 반발하자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회사측은 "그런 일없다"고 전혀 상반된 답변을 했다.
| ▲타다 남은 채 발견된 '거래명세서'와 '일일매출내역' 등 회사 업무 서류들.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서류들을 빼돌리거나 소각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3일 오후에는 관리직 직원들이 차량을 동원, 출퇴근 기록 카드 등 업무 관련 서류를 나르려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제지를 받았고, 타다 남은 '거래명세서'와 '일일매출내역' 등의 서류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회사측이 이 같이 '서류 정리 작업'에 나선 것은 예상되는 노동부의 근로감독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외노협의 진정을 받은 의정부지방노동사무소 공무원들이 22일 공장을 찾아와 노사간의 중재를 시도했지만 팽팽한 시각 차를 확인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 신부는 "직원 수가 얼마 안 되는 조그만 회사에서 임금이 밀리는 것은 회사사정상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인 직원을 포함, 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부리는 회사에서 임금을 체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전형적인 악덕기업주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국외 추방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부는 임금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에서 '불법 체류' 등의 지위를 문제삼지 않길 바라고 있다. 비록 '이방인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나라'에서 설움을 톡톡히 맛보았지만, 한때나마 꿈을 안겨준 나라에 대한 추억을 '국외 추방'으로 끝맺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 ▲대책회의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취재진이 공장을 떠날 무렵, 기숙사에서는 외노협과 노동자들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외노협 간사는 경과 보고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해결될 지는 모르지만, 사장님이 2월9일까지는 체불 임금을 해결하겠다는 언질을 줬다"고 말했다. 이를 듣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마디가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선생님, 사장님은 거짓말 많아! 해결이 안돼...."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순간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작업 도중 손가락의 일부가 잘리거나 뼈가 부러진 노동자들. 이들은 한결같이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치료를 못 받아 상태가 악화됐고, 충분한 회복기간도 없이 치료 직후 작업에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