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겐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 제격이다. 그래서 '교훈'보다는 '재미'를 앞세운 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책시장'은..특히, '어린이책시장'은 오직 재미만을 추구한 책이 많이 없다. 거의 대부분이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편견이 가득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길'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물론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비교육적인 요소들'은 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건전'해야 하고 '도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외국의 '어린이책' 가운데에는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위험천만한 장난질을 저지르기도 하고, 귀신과 괴물 등 상상력의 '도'를 넘어서기도 하며, 어린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을 다룬 내용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런 것들은 애초에 '가져오질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책이 사라진 날>은 재미보다는 '교훈'적인 내용에 치중하여서 좀 안타까운 어린이책이다. 그래도 '비교육적인 요소'는 쏙 빼놓았기에 비교적 '건전한 도서'라고 볼 수 있다. 줄거리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저학년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책을 읽고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저학년을 대상으로 삼았더래도 '너무 뻔한 내용'인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격이 될테니, 조금쯤은 심오한 철학이야기를 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줄거리는 느닷없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시작하지만, 그 때문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빼앗겨 버린다는 '설정'은 탁월했다. 그래서 온세계의 아이들은 외계인 덕분에 하루종일 놀기만 하면 된다. 학교를 갈 필요도 없고,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외계인의 명령을 어기고 '책'을 읽다가 들키는 날엔 외계인 광선총에 맞아 '미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그저 놀기만 하면 된다.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놀기'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두 명의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들은 세종대왕처럼 책을 다 빼앗긴 뒤에 병풍 뒤에 남았던 '책 한 권'을 몹시 바랐다. 그래서 외계인들이 책을 뺏아다가 쌓아둔 '책산'을 향해 몰래 잠입해 갔다. 그리고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서 '책 한 권씩' 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마다 몰래몰래 책을 읽다가 '책산'의 내부를 마치 피라미드 속의 미로처럼 파고 들어가 손전등에 의지해 책을 무지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엔 외계인들에게 발각이 되고 두 명의 어린이는 '미생물'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두 어린이는 책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외계인들도 책속의 '지식' 덕분에 고향별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면서 끝을 맺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책속에 무슨 비밀이 담겨 있었길래 지구인과 외계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된 걸까?
아이들은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던 시절이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좀 더 어려운 책', '좀 더 글밥이 많은 책'으로 확장해가며 읽으려 들지 않는다. 왜냐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머리가 커지게 되면 '책 읽으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결국엔 '만화책'과 '게임'에 푹 빠지고 만다. 무언가 '징검다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림책과 동화책은 정말 재밌다. 하지만 10살(초등3학년쯤)이 넘어가면 점점 '글밥'이 많은 책을 읽으라는 강요가 시작되는데, 이때 그 많은 글밥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책읽기'는 엄청난 스트레스 유발 원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책읽기를 할 때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렇게 초등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독서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선생님도 책을 읽어야 하고, 학부모님들도 부지런히 책을 읽어줘야 한다. 그래야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기도 하고, 토론(이야기)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절대로 '교훈'을 억지로 주입하려 들거나, '정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딴에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들의 표현에 '맞장구'를 쳐주기 바란다. 어른들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어쩌구~", "현실적으로 저쩌구~"라는 토씨는 절대로 하지 말길 바란다. 그저 아이들의 상상력에 함께 뛰어들고, 흠뻑 젖어들며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길 바란다.
물론 '시간'을 정해놓는 것은 좋다. 10분, 30분 동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면 '일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이 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상'보다는 '현실'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고, 그 경계에 '문'을 만들어서 언제든 스스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놀이'를 할 때나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 정하기'는 그래서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