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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노협>주간노동정세동향 89호(10/19)
□노동소식 : 1)전태일 40주기 행사위 공식 출범 2)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
□ 노동관련법 : 타임오프 위반 사업장 제재 논란 확대
□ 노동시론 : 주체를 세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특수고용노동자 도보행진
○ 붙임자료 - 전태일 평전을 읽고 (다섯번째) - 전태일 열사의 유산
□ 노동소식 :1)전태일 40주기 행사위 공식 출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출범식‘이 12일 오전 11시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다리 위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그동안 준비위원회로 운영되며 40주기를 준비해 오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고 우리 스스로가 전태일이 돼서 자신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행사위는 “겸허히 내가 전태일의 마음으로 전태일 앞에 서는 일이, 바로 오늘 우리가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를 출범시키는 일”이라면서 “돈 세상의 온갖 거짓과 더러운 것들을 불태우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함께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 평등과 자유가 넘치는 사람세상을 꿈꾸며, 바로소 우리 힘으로 그 세상 만들 때까지 힘차게 앞으로 나가자”고 밝혔다.
이소선 어머니는 “여러 어르신들부터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의 기억과 노력이 없었다면 누가 우리 태일을 이렇게 기념해 주겠느냐”면서 “전태일 엄마로서 ‘정말 지겹도록 고맙다’는 말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인사말을 했다.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는 지난 8월26일부터 오는 11월13일까지 청계천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이름짓기 위한 범국민캠페인 ‘808행동’을 펼치고 있다. 또 광장사업을 통해 오늘날의 전태일이 투쟁 현장이나 광장에서 어려운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사업을 펼쳐나간다. 기억주간 행사를 통해 당시의 전태일을 오늘에 살려 우리와 함께 함으로써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와 실천, 공연 등이 이어지는 중이다.
10월30일에는 이 모든 것들을 모아, 서울 시청광장에서 비정규직 등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하는 문화제가 마련된다. 이 행사는 만 명 이상의 시민이 함께 어우러져 전태일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되살리는 역사적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도 같은 장소에서 17시부터 열릴 예정이다.(노동과 세계)
한편, 일반노조협의회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에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권유하기로 했다. http://chuntaeil.org/40에서 가서 참여하면 된다.
2)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
프랑스 전역에 파업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외신보도 종합에 따르면 파리시민 34만여 명이 지난 16일 거리에 나선 것을 비롯해 보르도·렌느·리옹·마르세이유·툴루즈 등 전국 각지에서 300만 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프랑스를 상징하는 에펠탑도 파업으로 문을 닫았으며, 언론들은 연일 파업 규모가 사상 최대 규모라고 입을 모은다. 파리시 인구가 300만 명을 헤아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위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시민들이 이처럼 분노한 이유는 사르코지 정부의 퇴직연금 정책에서 기인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연금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당선 뒤 이를 위해 한 차례 시동을 걸었다가 최근 정년과 연금 받는 나이를 두 살 늦추는 법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입법안에 따르면 프랑스 노동자의 정년은 60세에서 62세로, 연금 수령 나이는 65세에서 67세로 미뤄진다. 그만큼 노동기간이 연장되는 셈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이를 개악이라고 맞받아친다. 입법안 자체가 사회보장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은 물론,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압박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경제 위기와 그에 따른 후폭풍을 왜 노동자들에게 책임 전가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단지 노동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부가 골고루 나눠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시민사회 호응은 높은 편이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이 '연대'를 호소한 뒤 지난달 7일 전국적 총파업이 성사됐으며 이후 철도, 지하철, 항만, 항공 운행이 차례로 중단됐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지난 12일 무기한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이에 대해 프랑스 시민 69%가 연금개혁안 반대 파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또 무기한 파업에도 66%가 지지의사를 표했다고 복수의 언론들은 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공무원·고등학생까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업 자체를 불온시하는 한국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난 12일 파리에서만 22개 고등학교가 휴교하는 등 이날 전체 300여 개 고등학교·대학교가 수업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이미 초등학교 교사들을 포함해 우체국, 병원 등지 노동자도 파업에 동참했으며 르몽드, 레제코 등 일부 언론들의 경우 일시적으로 발간이 중단되기도 했다.
언론들은 이번 주가 파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8일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오는 19일 최종투표를 남겨두고 있다.(미디어 오늘)
□ 노동관련법 : 타임오프 위반 사업장 제재 논란 확대
정부가 노동조합 일만 하는 전임자 수를 법정한도 내로 조정토록 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위반 사업장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금속노조는 '표적 제재'라고 반발하며 강력 투쟁방침을 밝혀 정부의 제재 집행과정에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은 타임오프제를 어긴 경주 및 포항지역 금속노조 사업장 18곳에 대해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달 8일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도 지난달 30일 같은 이유로 관내 사업장 1곳을 상대로 시정명령을 했다.
이에 따라 해당 사업장 노사는 시정명령서를 전달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단협을 새로 체결해야 하며, 시정을 하지 않으면 사업주가 부당노동행위로 사법처리된다. 현행 노조법은 타임오프제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은 지난 14일 타임오프제를 어긴 금속노조 사업장 9곳의 단협 시정명령을 의결하기 위한 심문회의를 열었다.심문회의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 천안지청에서 각각 관할 사업장 2곳과 7곳이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고 노조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타임오프제를 위반한 단협을 갱신했다며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충남지노위는 금주 중 판정회의를 열어 의결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도 타임오프제를 준수하지 않은 관내 사업장의 단협에 대한 시정명령 의결을 부산지방노동위에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민주노조를 죽이기 위한 표적 제재인 만큼 법적 대응을 비롯해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며 반발했다.
노조는 충남지노위가 시정명령 의결을 한다면 이를 거부하는 한편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노조는 지난달 28일 대구지방법원에 경북지노위의 단협 시정명령 의결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으며 조만간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연합뉴스)
□ 노동시론(時論) : 주체를 세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특수고용노동자 도보행진
"오늘은 도보행진 구간 중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코스입니다. 항상 아침마다 말씀드리지만 걸을 때 발걸음에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아스팔트 길이 원래 약간 기울어있고 조금씩 파인 구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과 서로 얘기하고 가기 마련이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십상입니다. 오늘도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과 산재보험 전면적용을 위해 힘차게 출발합시다"
10월15일 아침 7시 충북 황간면 입구 삼거리. 박대규 단장이 아침 인사를 마치자 10여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몸을 풀고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갓 퍼지기 시작한 햇살에 차가운 공기가 부딪혀 입김이 확연했다. 노동가를 튼 방송차를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하자 갑자기 조용했던 산골이 떠들썩했다. 지나가는 차들은 물론이고 일하러 밭에 나온 사람도 '무슨 일인가' 쳐다본다.
출발은 기세가 좋았는데 복병이 나타났다. 굽이굽이 휘어진 편도 1차선 도로. 행진대오 전체가 20여 미터에 이르니 차들이 교차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다. 건설노조 두 동지가 앞과 뒤에서 뛰어다니며 수신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도 많았으니 그 고생은 배가 되었다.
행진은 한 시간에 5킬로미터 정도 걷고 10분 쉬는 식으로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근리 사건' 현장을 지났다. 쌍으로 이뤄진 철도교량 옆 시멘트 축대에 총탄자국 수십 개가 하얀색 페인트로 동그랗게 표시되어 선명하였다. '작은 연못'이란 영화에서 본 미군의 민간인 학살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바로 근처에 기념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나 후손들에게 그나마 위안이라도 될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두 번 째 쉬는 지점에 도착하니 9시 30분. 여기저기서 '밥을 달라'는 소리가 커졌다. 10키로 이상을 걸었는데도 시골이라 식당이 없어 아침밥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동읍까지 5키로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도 식당이 없을 것 같았다. 옆의 감이라 따 먹거나 무라도 뽑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 누군가 말했다. "밥이 없으면 고기라도 먹자" 전날 저녁에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영동공장 동지들이 격려차 숙소에 족발을 가져왔는데 그 남은 것을 먹자는 얘기였다. 아침으로 족발을 먹으니 행복한 도보행진이라고 자위하며 몇 첨의 고기로 허기를 채웠다.
영동읍내에 도착하자 첫 식당에서 충북지역노조 영동지부장과 부지부장이 나와서 반겨주었다. 일반노조협의회 소속이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밥 먹기 전 간단한 인사와 즉석 간담회. 도보행진단은 가는 곳마다 투쟁사업장에서, 숙소에서, 식사 자리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화물 덤프 레미콘 차주 겸 기사, 학습지 교사, 퀵서비스와 대리운전 기사, 보험모집인과 골프장 경기도우미, 그리고 이외에도 여러 직군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노동자로 일은 다 시켜 먹는데 노동자 권리를 못 찾아먹게 만든 겁니다. 사업자등록을 내게 해서 사장이라는 라벨을 붙여놓고 착취하는 거죠. 한동안 싸워서 일부는 산재보험 가입을 쟁취했는데 자기가 전부 돈 내는 방식이고 강제조항도 아니라서 공사현장 다단계 하도급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재보험전면보장을 요구하는 겁니다. 또 일은 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노동조합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죠. 한마디로 우리는 특수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번 700키로 도보행진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상황과 요구를 알리고 이후 싸움을 준비하고 만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수십 번 같은 얘기를 하지만 박대규 단장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레미콘 지입차주와 기사로 일하면서 현장의 불합리한 점을 고쳐보려고 시작한 노동조합활동. 개인사업자란 인식이 깔려 있던 시절이라 기사들 단결조차 어려웠던 때에 노조를 만들어 합법성을 쟁취하고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부단히 싸운 사람. 덤프연대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지금은 전국건설노조 건설기계본부와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위를 맡고 있다. 밑바닥부터 경험하고 싸우면서 단련되어서 그런지 같은 얘기를 해도 듣는 사람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쉰 목소리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먹고 나자 '힘이 솟는다'고 이구동성. 도로도 편도 2차선이라 한결 여유로웠다. 속도를 냈다. 한 시간에 5키로가 넘는 속도.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9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 오늘 걷는 구간은 42키로라서 열심히 걷지 않으면 어두워지고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10여키로 정도 지나니 힘이 든다. 오전에는 옆 사람과 얘기도 많이 했지만 오후가 넘어서니 할 얘기도 별로 없다. 일정하게 걷는 것이 무료하다 보니 잠깐씩 졸리기도 하다.
갑자기 방송차 노동가 소리가 커졌다. 늘어지는 분위기를 깨고 힘을 내자는 신호였다. 박수를 치며 노동가를 따라 불렀다. 지나가는 기차에 괜히 손도 크게 흔들어주며 동작을 크게 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 산자락의 구절초, 가을빛이 부서지는 노오란 들판, 파아란 하늘을 담고 굽이쳐 흐르는 샛강.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차별받고 특수하게 취급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외쳤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하자!'
점심을 간단하게 칼국수로 때운 시간은 오후4시. 곳곳에 산 그림자가 진 구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나면 어두워진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하지만 일은 항상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법. 먹으면 나오는 것이라 들판 화장실에 간 동지와 너무 떨어져서 잠시 쉬었다. 그 동지는 꼭 걸어야 한다고 차 타는 것도 마다하고 함께하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옥천읍을 앞두고 제법 높은 고개를 넘자 멀리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가는 차들은 마지막 구간의 큰 힘이었다. 가게의 간판이 켜지고 자동차 불빛이 켜지기 시작할 쯤 옥천역에 도착했다. 낙오된 사람도 부상당한 사람도 없이 12명 전원이 함께한 행진이었다. 모두 한마디씩 소감을 얘기하는데 스스로도 모르게 자신감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는 과정은 걷는 것 보다 더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걷는 과정에서 나는 그 희망을 보았다. 건설기계를 중심으로 한 주체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갈수록 늘어나는 연대대오, 도보행진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경산에서 함께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들의 휠체어 대오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행진과정에서 신호가 바뀌어도 차들이 서고 주변의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내주었다. 걷는 것에서나 생활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약자라고 생각했지만 연대의 이름으로 함께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 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들은 우리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었고 이명박 정권의 복지정책 후퇴등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제안하였다. 약간 부끄럽기도 했지만 사회적연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였다.
이렇듯 도보행진은 현장에서 주체를 세우고 더 큰 연대를 만들내는 행군이었다. 전태일 40주기 행사와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있는 9월30일까지 계속되는 도보행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기대한다. (일반노협 최만정)
○ 붙임자료
전태일 평전을 읽고 (다섯번째) - 전태일 열사의 유산
전태일 열사는 정식 교육도 받지 못 하였고 거대한 조직 속의 투사도 아니었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 어쩔 수 없음에 응답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린 여공들의 처지, 3만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바보 선언’을 하였다.
17살이 되기까지 전태일 열사의 삶도 사회의 밑바닥에서 가난으로 허덕이는 비참하고 가여운 인생이었다. 그의 성장 과정과 가족사만 봐도 눈물이 나는 비극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차비를 여공들의 점심값으로, 자신의 휴식을 그들의 작업에 쏟아 부으며 그냥 마음 아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가하고 무던히 그 방법을 찾아갔다. 그가 접한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대로만 지켜진다면 아니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알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사는 노동자들을 위해 할 일을 찾았다고 보고 우린 지금까지 ‘바보’였다는 선언을 하고 ‘바보회’를 만들었다.
노래에도 있듯이 ‘노동운동 하다 신세 망친다.’, ‘그런 거 해봤자 너만 손해본다.’ 등등 이 사회에서 부조리를 폭로하고 개선하는 일체의 운동에 대해 실패와 두려움으로 그 때나 지금이나 겁을 준다. 이러한 사회에서 바보가 되고 ‘바보 선언’을 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진정 사람의 삶에서, 우리가 하는 노동에서 부조리한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긴다면 그것도 모자라 그러한 부조리에 편승해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07년 대선에서 국민의 많은 다수가 선거를 포기하기도 했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 한 것도 우리들이다. 다수의 국민이 경제 발전에 가려진 착취와 불공정을 외면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2008년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의 기억은 ‘바보선언’이 아니었을까? 전태일 열사의 ‘바보선언’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서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한 각성이다. 언제까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부조리가 남아있다면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양심 모두 전태일 열사의 깨달음처럼 바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처음에 자신의 힘으로 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재단사가 되기로 하였다. 하지만 결국 여공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바보회를 통해 노동부에 진정을 내고 근로감독관을 찾아가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모범 업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열사는 누구에게 기대어 아니면 각성된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 하는 노동자에게 먹을 것을 좀 주고 입을 것을 좀 준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한들 자본과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설 다수가 없다면 역시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마감한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는 사람의 존엄함을 믿고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모두 지난 날의 착취를 스스로 벗어나기 위한 ‘바보 선언’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투쟁하고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그러면서 결심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한 평생 그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40년이 지나도 이 땅의 모든 핍박받는 노동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다짐을 하고 산화하였다.
진정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위대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남기고 전태일 사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산화한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그 헛되이 하지 말라는 죽음은 자본과 권력이 사람의 목숨에 칼을 휘두르는 절망하고 외면하지 말고 싸워서 꼭 쟁취하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부천)지역일반노동조합 한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