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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1일 유달산
1988년, 우리나라 국립공원중 18번째로 지정된, 그리고 국립공원중 가장 좁은 면적의 국립 월출산!! 산세는 수줍은 섬색씨 마냥 다소곳한 모습이지만, 남도의 '작은 설악산'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어떤 면에서 강한 남성의 기운을 느낄수도 있는 그런 양면성을 가진 산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1996년경, 등산이라고는 1년에 1-2번 정도 연례행사(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이....)치루듯이 다니곤 했던 시절....직장 사람들과 함께 가본적이 있던 산이다. 너무 오랜 일이라 그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리 힘들게 오르지는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이번 산행도 큰 부담감 없이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반을 하고나니 그 당시 올랐던 코스가 금강경포대 방향에서 올라 천황사로 내려왔던 듯 이번보다 코스가 짧아서 그런 느낌을 가졌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아무튼, 내가 작년 6월 강촌 검봉산 산행을 시작으로 경인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매주 산행하는 산들이 난생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이번 월출산은 유일하게 두번째 가보는 산이라 미지의 땅을 밟아본다는 기대감은 떨어지긴 하지만, 월출산이 워낙 아름다운 산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달을 맞이한다는 산일 정도로 주간산행도 좋으나 달과 연관된 산이므로 무박으로 달과 함께하는 새벽산행은 우리들에게 너무 큰 감동을 안겨주는 그런 산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월출산행은 날씨가 구물구물한 관계로 달빛 한 점없이 등반을 할 수 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다음 기회가 또 있겠지,,,, 위로해본다.
3월19일 토요일 저녁 11시 10분!
계양산 등너머로 별빛이 초롱초롱한 계산동의 약간은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용한 숙면에 들어갈 무렵 청송을 맞이하러 천년부페 앞으로 나가보니 저 멀리 물사랑님이 청송을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산주막님(최고문님)이 먼저 와 기다리셨던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신다. 주막님과는 이곳에서 오랜맛에 함께 승차한 듯하다. 항상 산과 합께하시는 산주막님의 건강과 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남다르시다. 항상 맏 형님 역할에 우리 경인을 이글어주시는 것에 대하여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멀다면 멀다 할 수 있는 영종도 신공항 도시에서 버스 및 자가용으로 이곳까지 오셔서 등산에 참여하기가 그리 쉬운일은 아닐지인데...말이다.
이번 산행은 약 80여명이 넘는 산우님들이 2대의 버스에 나누어 참석한다. 날씨도 풀려가고 아울러 월출산이라는 걸출한 산을 등반한 탓에 이렇게 성황을 이룬 것이라 생각해본다. 아니면 저번 석모도 창립1주년 산행때 잘생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잘 지낸 덕인가? 경인산악회의 번창을 다시한번 소원한다.
청송은 달리고 달려 월출산 도갑사앞에 우리를 내놓는다. 도착시간은 새벽 4시 45분! 우리 경인 말고도 1-2개의 타 산악회의 버스들도 시커먼 공간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매표소에서 이른 새벽임에도 공원관리인이 졸린 눈을 비비고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사찰(문화재)입장료 포함하여 1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설악산, 오대산 등 국립, 도립공원에 등반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입장료가 매우 과다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줄 우리의 천연자원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비용인 것은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렇게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은 일정부분 국가가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환경부 산하 기관으로 좀 더 정책적 배려를 하면 공원 관리 및 유지비용을 국고로 지원해주면 입장료가 다운되어 보다 많은 국민들이 부담없이 산을 찾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국민들이 산을 자주 찾음으로써 마음과 몸이 건강해 지면 이것은 결국 국가의 경쟁력 제고 이어지는 게 아닌가? 몸이 건강해지면 그만큼 건강보험료 등의 비용지출이 줄게되고 마음이 건강해지면 가정과 사회가 평온해지고 이는, 결국 사회유지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하나 의문은 입장료 속에 문화재 내지 사찰 입장료를 포함해서 징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사찰은 안가고 순전히 등산만 하는 대다수의 등산객들은 이중의 부담을 반강제적으로 당하는 결과가 아닌가?.... 너무나 행정편의적인 요금징수 시스템이라 본다. 이참에 이런 문제에 대한 당국의 국민들의 시각에서의 진지한 시스템의 재검토를 기대해 본다. 글을 쓰다보니 등산과 무관한 듯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장기적, 근본적으로 보면 등산과 그리 무관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런 회의를 여러 산우님들도 한번쯤은 품어 봄직하다. 산을 안 찾으면 내가 이런 말을 여기서 할 이유는 없다.
아무튼 이번 야간 산행은 도갑사를 출발해 발봉 억새밭, 미왕재 그리고 구정봉으로 해서, 천왕봉, 천황사로 내려오는 약 6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로 잡았다. 월출산이 그리 큰 산은 아니어서 힘든 산행은 되지 않을 듯하나 산 자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뤄지고 많은 급경사 탓에 수 많은 철계단을 오르 내리는 관계로 약간은 육체적 피로감은 느껴야 한다.
발봉을 향하여 새벽 4시 45분! 스님들이 새벽 불공을 드리는 모습이 적막한 산사의 새벽을 더욱 고아하게 만들고 있는 도갑사 대웅전을 기점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발봉까지는 약 1.6키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고 발끝에 전해오는 적당히 습기를 머금어 약간은 쿠션감을 주는 흙길로 생큼한 새벽공기와 함께 발검음은 매우 가볍다. 오르는 길 양옆에 조그만 키의, 혹은 자라다만 대나무가 지휘자를 사열하기 위해 늘어선 기마병들처럼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원래 대나무는 5미터 이상 크기 마련인데 이 곳의 대나무는 아소곳한게 색다르다. 색다른 감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런 저런 상념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억새풀이 춤을 추는 밭봉(미왕재)삼거리에 오른다. 시간은 새벽 5시40분,,, 출발한지 55분이 소요되었다. 소요예측 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였다. 아마도 새벽 등반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컴컴한 암흑속에 등반을 하다보면 랜턴 하나에 의지해 발을 놓는 앞만 보고 걷다보니 주위의 형세는 볼수가 없다.
따라서 현재 내가 처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실제로 경사진 길이라도 그리 큰 심리적 부담을 느기지 않아 피로도가 주간산행보다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 우리 인생사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마음먹기(심리적으로)달렸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듯하다.
다시 오늘의 산상부페(아침 식사)장소인 구정봉(705미터)를 향하여 발을 옮긴다. 약 1키로미터! 큰 경사도 없이 적당한 굴곡의 능선을 따라 약 30분 걷다보니 저 앞에 구정봉이 보인다. 월출산은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구정봉은 정상의 바위들이 너무 아름답고 또한 하늘의 용(dragon)들이 그 경치에 반하여 정상 바위위에 9개의 바위 구멍을 뚷고 자리 잡았다하여 구정봉(九井峰)이라한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 올라보니 정말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홉개의 구멍이 정상바위에 뚷어져 있다. 마치 선녀들이 선녀옷을 고이 접어두고 목욕을 함직한 크기의 마치 화장실의 욕조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는 모습이 흡사 인간들이 일부러 그렇게 만드어 놓은 것같다. 진짜로 비가 오고 물만 맑으면 옷 벗고 반좌욕을 해도 될만하다. 자연의 힘은 오묘하고 신비롭다.
이걸 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도 물흐르듯이(그렇다고 되는대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자연스럽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正道가 아닐까? 인위적인 것은 그때는 보기 좋고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본 모습이 드러난다. 신뢰가 허물어진다. 무리가 따른다. 남을 배려하면서 자연스럽게 무리없이 살아가는 게 결국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다. 도시생활에서... 생존경쟁의 장에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구정봉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25분! 출발한지 1시간 35분이 소요되었다. 오늘 산행의 중간 지점인데 시간은 2시간이 채 안걸렸다. 새벽인탓에 앞뒤 안가리고 오르기만 한 까닭에 시간이 많이 단축되엇다. 대신 산상부페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잔비님, 산주막님, 나누리님 등 7-8분과 각자가 가져온 짐을 풀어 놓으니 구정봉 정상은 어느덕 가칭 "경인부페"의 피로연장이 되어 버린다. 복분자술, 더덕주, 산사춘, 천국, 백세주 등등 졸지에 주류 도매점이 돼버린다. 소주는 감히 이곳에서 명함내밀기도 민망스럽다.
동도 트기전에 여러 산우님들과 한잔술에... 펄펄 끊는 라면에 쉰 김치!!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실이 영업을 안하여 식사를 못한 탓인지 평소보다 유난히 내 앞의 음식들이 별난 맛으로 나를 유혹한다. 몇잔의 술과 라면 등으로 아침을 푸근하게 해결한다.
특히 나누리님의 버너에 컵라면, 일반 봉지라면 등을 김치와 섞어 끊여대는 솜씨는 이제 入神(?)의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이제는 더 이상 득도할 게 없다. 하산해도 좋을 듯하다. 나누리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든든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천황봉(808미터)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한잔 술을 한 탓인지 천왕봉까지 향하는 길이 약간은 멀어 보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약간은 경사진 길과 까다로운 암벽들도 촘촘히 나타난다.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정상을 향한다.
정상에 오르는 양 옆으로 펼쳐진 광경이 천하제일이다. 저멀리 민가아래 주위의 나즈막한 야산에 마치 반지를 끼워 놓듯이 하얀 물안개가 야산과 민가들을 둥그렇게 안고서 "뭉게 뭉게" 떠오르거나 옆으로 흘러 다니고 있다. 흡사 아침을 짓기위해 아궁이에 불을 피우면 생겨나는 연기처럼, 혹은 정겨운 어머니 정성스러운 호흡처럼....
능선 옆으로는 적당한 크기의 갈대와 억새풀이 양옆에서 나를 반겨주고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짙붉은 황토길은 거친 호흡을 뿜어내는 나의 육체적 고통을 어루만지듯이 나를 정상으로 인도한다. 천항봉 정상이 그 자리를 인간에게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듯 정상 직전에 아찔한 느낌을 주는 암벽들이 나타나고 이 암벽을 마치 유격훈련 하듯 손으로 잡고 발로 쳐나가기를 몇번!
드디어 정상!1 시간은 아침 745분...등산 시작후 약 3시간이 걸렸다. 산 정산은 "천황봉"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넓다른 감사패 같은 입석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아쉽게도 우리 경인의 일행이 안보여 증명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야호"만을 한번 외치고 하산길에 나서기로 한다. 하산하려니 저 발아래로 보기에도 아찔한 구름다리가 보인다. 우리나라 명산에 유명한 구름다리가 몇개 있다고한다. 대둔산 등과 더불어 이 월출산의 구름다리도 그 풍광이 아름답기로 손 꼽힌다 한다. 진짜 그런것 같다.
멀리서 보아도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그런데 정상에서 천황사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은 매우 험하다. 경사가 급한 탓에 내려가는 곳곳이 매우 급한 경사의 철계단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까딱하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겠다. 특히 부페연으로 한 잔 한후라 취기가 약간 있는 상태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겠다. 심한 경사의 철계단을 조심스레히 내려오기를 약 40분! 빨간 색의 구름다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이다. 다리 길이는 52미터, 다리밑 고도는 120미터, 통과하중은 800키로그램으로 10명 이상이 동시에 이용하는 것을 삼가라는 경고표시가 있다. 약 10분정도,, 마주 건너오는 분들을 기다리고 건너가본다. 바람이 없는 데도 심하게 흔들린다. 발밑은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다. 야간 남은 취기가 "확" 깨버린다. 약간의 스릴도 느껴본다. 오늘 산행의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같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이 마치 투명한 유리를 깔아 놓은 듯,, 그야말로 100%천연수다. 한점 티끌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지나칠수 없다. 손으로 한모금 받아 마셔보니(이런 물은 컵으로 마시면 그 효용도가 떨어진다)그 시원한 천연수의 느낌이 식도와 위장을 거쳐 나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
이 맛이다! 등산의 색다른 맛! 어디서 이런 물맛을 볼수 있단 말인가!
일주일 묵은 심신의 묵은 때가 일순간에 해소된다. 나의 영혼까지도....
천황사를 지나 매표소에 도달하니 저멀리 청송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아침 9시50분!! 산행 시작후 총 5시간05분이 소요되었다.나의 체력에 비추어 보아 적당한 거리인 듯하다. 발끝에 느껴지는 약간의 묵직함도 상큼한 기운으로 다가올 정도이다.
먼저 주차장에 도착한 40여명의 산님들을 실고서 청송은 목포 북항으로 향한다. 이왕 월출산에 온 김에 영원한 우리 마음의 항구...목포에 가서 유달산도 보고 세발낙지와 한접시의 회 맛을 보지 않으면 후회하지 않겠나?
그런데 세발낙지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잡히는 관계로 오리지널 목포 세발낙지를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있어도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잔비님, 나누리님, 물사랑님, 산마루님 등 10여분과 어울려 약 1미터는 됨직한 농어(횟감으로는 한두 손가락에 처주는 놈이다) 를 골라 시식하기로 한다.
혀끝에 감도는 농어의 향기와 감칠 맛은 새벽잠을 설치고 운동으로 약간은 피로한 나의 육신을 어루만지듯 노근하게 풀어준다. 이와 함께 여러 산우님들과 나누는 산행 뒷풀이 이야기들로 횟집에서의 정겨움은 모락 모락 피어나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목포를 뒤로 한다. 오후 1시15분 향 인천 출발!
봄철 상춘객들의 차들로 약간 정체된 고속도로를 지나 계산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45분!!
벌써 인천의 하늘은 어두컴컴지고 저 앞에 보이는 계양산은 마치 까만 도포를 뒤집어 쓴 중세시대의 기사처럼......나를 반겨준다.
비록 다시 회색의 콘크리트로 돌아 왔지만 마음 한 켠은 밀려오는 밀물처럼 행복으로 가득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