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축구팬들이 2019년 러시아 FIFA월드컵 조별리그 B조 모로코와 이란 경기가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이란 여성을 그들의 스타디움에 들어가게 하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남자로 변장해 축구 경기장에 입장하려다 들켰던 이란 여성이 재판 과정에 오랜 감옥 살이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법원 밖에서 분신했던 이란 여성이 일주일 만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하르 코다야리란 본명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인 테헤란 에스테그랄의 팀 컬러에 착안해 ‘블루 걸’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여성은 2019년 9월 테헤란 법원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이란 국내보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이란인들 사이에 그녀의 얘기는 더욱 널리 퍼져 해시태그 블루 걸을 붙여 시대착오적인 여성의 축구 관람 금지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다야리는 2019년 3월 에스테그랄의 홈 경기를 관전하려고 남자로 변장한 채 경기장 입장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사흘 구류를 살고 보석으로 풀려난 그녀는 6개월 동안 자신의 재판이 열리길 기다려왔다. 하지만 막상 법정에 나가자 판사가 가족에 위급한 일이 생겼다며 재판을 연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정에 다시 나온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나와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6개월에서 2년까지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것 같다고 녹음해 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법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결국 일주일 뒤 싸늘한 주검이 됐다.
이란에서는 남자 스포츠 경기에 여성 관람이 1981년 이란 혁명 이후 금지돼왔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B조 이란-포르투갈 경기를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전광판으로 중계했을 때 일시적으로 여성 입장을 허용했지만 그 뒤 여전히 여성의 축구 경기장 관람은 금지되고 있다.
▲ 이란 여성 축구 팬이 2018 러시아 FIFA월드컵 때 포르투갈과 이란의 조별리그 B조 경기를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전광판 중계로 응원하며 환호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19년 8월 시한으로 정하고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을 허용하라고 압박했지만 이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FIFA는 코다야리의 죽음에 성명을 내고 “이 비극을 알고 있으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고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이란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막는 이 합당한 싸움에 참여하는 모든 여성의 자유와 안전을 이란 당국이 보장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를 반복한다”고 밝혔다.
국제 앰네스티의 필립 루터는 “가슴 아픈 일”이라며 “그녀의 죽음이 헛되이 되선 안된다. 장차 더한 비극을 피할 수 있도록 이란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란 축구대표팀의 주장 마수드 쇼자에이는 인스타그램에 “미래 세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낡고 비루한 가치관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많은 소셜미디어 유저들이 FIFA가 이란축구협회를 징계하라고 요구하는 등 국제 스포츠연맹들이 이란의 국제대회 참여를 막는 등 제재해달라고 촉구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2019년 초부터 벌이기 시작했다.
축구장 ‘금녀의 벽’ 허문 이란 여성들
1979년 혁명 이후 전면 출입금지
여성 축구팬 분신 사망 계기로
월드컵 예선전에 3,000여명 입장

▲이란의 한 여성 팬이 2019년 10월 10일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FIFA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응원을 하고 있다.
축구장에 가서 부부젤라를 신나게 불고, 국기를 흔들고, 함성을 지르고, 펄쩍펄쩍 뛰면서 응원하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딱 한 곳, 이란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란에선 1979년 이란 혁명 후, 2년 뒤인 1981년부터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전면 금지됐다. 축구장은 남성들만의 놀이터였다. 그동안 이란 여성들의 입장을 막았던 축구장 금녀의 벽이 2019년 10월 10일 마침내 무너졌다.
이날 이란과 캄보디아의 FIFA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이란 14-0 승)이 열린 이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는 약 3,500~4,000여명의 이란 여성팬들이 입장해 38년 만에 여성에게 허용된 ‘축구장의 가을’을 즐겼다. 이란에서는 몇몇 경기에서 소수의 엄선된 여성들이 관전한 적은 있지만, 일반 여성들이 직접 표를 사서 축구장에 입장하는 게 허용된 것은 2022 카타르 FIFA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이 처음이다.
이는 2019년 9월 사하라 호다야리라는 여성 축구팬이 분신 사망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녀가 응원했던 에스테그랄의 구단 상징색을 따서 ‘블루 걸’로 불리는 호다야리는 2019년 3월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다가 적발됐다. 6개월 이상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는 전망에 절망한 호다야리는 테헤란 법원 앞에서 분신을 했고, 2019년 10월 9일 끝내 사망했다.
호다야리의 사망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과 인권단체들은 여성들의 경기장 관람을 허용하라고 이란을 압박했고, 결국 양보를 이끌어냈다. 첫걸음을 떼긴 했지만 남성들과 동등하게 티켓을 구매하고, 대표팀 경기뿐만 아니라 일반 경기에도 자유롭게 여성팬들이 입장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7만8000명 수용의 아자디 스타디움의 5%도 안되는 좌석만 여성팬들에게 배정됐고, 그 나마도 2m 높이의 임시 분리벽으로 차단됐다.
상당수의 남성 좌석들은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정부가 남성들에게 표를 팔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안전요원들이 ‘블루 걸’을 추모하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압수하려고 해 여성팬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판테아 바세크라는 이란 여성은 트위터에 “오늘 난 이란 역사의 일부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에게 절대 ‘노’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는 어쨌든 그걸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