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이전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 중국, 북조선, 쿠바, 베트남 등의 국가들은 보통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린다. 이것에 대해 반대하여 이들 국가들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소련 국가자본주의, 토니 클리프>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크리스 하먼>
<천안문으로 가는 길, 찰리 호어>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김하영>
이 글은 위의 책들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단 위의 책 모두는 구소련, 구동유럽, 중국, 북조선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즉 일종의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이들 국가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계급사회라는 것에는 위의 저자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자본주의인지 아니면 막스 샤흐트만의 말대로 관료집산제 사회인지 아니면 또다른 식으로 개념 규정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란 마르크스와 레닌이 생각했던 사회주의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이들 국가가 사회주의의 이상에 미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회주의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마치 남한이나 미국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처럼.
첫째, 이들 국가에는 정치, 사상, 표현의 자유가 거의 없었다. 단지 그런 자유가 없는 것이 나쁘기 때문에 계급사회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왜 자유가 없는가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억압의 근원은 착취다. 지배 계급이 자신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즉 착취를 계속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 등을 억압하는 것이다.
둘째, 이들 국가는 마르크스나 레닌이 말한 국가 기구가 남아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강력하다. 마르크스가 국가라고 할 때에는 주로 군대, 경찰, 사법 기구, 감옥 등등의 억압적 기구를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가의 탄생을 계급의 탄생과 연결시켜 생각했다. 지배 계급이 자신의 이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억압적 기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레닌은(특히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보라) 계급이 폐지되면 국가가 고사할(스스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들 국가가 사회주의라면 마르크스와 레닌의 국가 고사론(사멸론)이 틀린 것이다. 반 세기가 지났는데도 국가는 죽을 생각을 안하고 있으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비대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셋째, 생산 수단을 소수의 사람들이 통제한다. 마르크스는 계급 사회의 특징을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서 찾았다. 하지만 문제는 법에 어떻게 쓰여 있는가가 아니다. 소련 헌법에 "생산 수단은 전 인민이 소유한다"는 문구가 수백개 있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만약 민중이 생산 수단을 실제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문구는 허울에 불과하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 국가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세의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있었다. 중세 시기 유럽의 땅은 영주와 왕이 소유한 땅과 교황청이 소유한 땅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교황청 소속 땅은 사적으로 소유된 것이 아니라 교황청에 소속된 것이었다. 만약 사적 소유가 폐지되었다는 이유로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영주가 소유한 땅은 봉건제고 교황청이 소유한 땅은 사회주의라고 해야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넷째, 특히 소련과 중국은 다른 나라를 제국주의적으로 침략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자본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무계급 사회가 제국주의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다섯째, 소련을 제외하고는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이다. 노동자 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라는 말이다. 만약 중국이나 동유럽 등이 사회주의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소련은 문제가 좀 다르다. 나는 소련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약 10 년 후에 반혁명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여섯째, 이들 국가의 관료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도 않고, 소환되지도 않고,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받지도 않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파리 꼬뮨을 보고 정리한 노동자 국가의 특성이다.
일곱째, 이들 국가의 빈부격차는 엄청나다. 지배 계급이 생산수단을 통제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온갖 사치를 누리기 위해서다. 이들 국가의 빈부격차는 노동의 숙련도에 따른 임금 격차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리고 당 관료는 뛰어난 기술자이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번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치는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에 바탕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의 핵심이다.
여덟째, 이들 국가에서는 계급 투쟁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1956년 헝가리 혁명, 1968 프라하의 봄, 1980년 연대 노조, 1989년 천안문 항쟁 등등. 마르크스는 당연히 계급 투쟁을 계급 사회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그는 사회주의에서도 대규모로 계급 투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홉째, 이들 국가에서는 민족주의, 여성 차별, 동성애 차별, 엘리뜨 우상화 등등 온갖 계급 사회의 병폐가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이들 병폐를 항상 계급과 연관지어 설명하려 했다.
열째, 이들 국가에서는 소비를 위한 축적이 아니라 축적을 위한 축적이 일어난다. 이것은 다른 나라와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나라는 이런 축적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사상, 표현, 정치의 자유를 억압해야만 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권리조차도 인정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서의 온갖 억압은 단지 자본가의 인간성이 더럽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를 억압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