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회 산행일지 : 강은 산을 넘지 않고..
(강원도 정선군 백운산)
일시 : 2009년 7월 4(토)
날씨 : 흐림, 소낙비
6월을 건너뛰었다. 주말마다 각자의 사정들이 있었고 평일에는 보직을 맡고 있는 내 사정이 허락칠 않아 부득이 7월에 접어들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7월 중에 한 번 더 산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가장 빠른 날을 정하여 통문을 돌렸다.
서대구에서 8시 30분 모였다. 청죽의 차로 55번 고속국도에 올려 단양휴게소에서 오란다 과자 한 봉을 샀다. 나이가 오르니 즐기는 과자도 다들 비슷한가 보다.
제천 IC에서 나와 5번, 38번 국도로 영월방향 4차선의 잘 닦인 국도를 따르니 금방 영월을 지나고 태백방향이다.
오늘은 길이 멀어 도착하기까지 4시간 이상이 소요되며 밤 12시가 가까워야 대구에 올 수 있다는 교매의 말을 너무 믿은 탓인지 차안에서 토론이 격해지자 네비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라는데도 시간상 아직 멀었다며 직진을 주장했는데 아뿔사 지나치고 말았다.
7-8년 전 다녀갔다는 매송과 교매는 이렇게 빨리 도착할 리가 없다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장된 고속도같은 국도가 실감나는 모양이었다.
11시 30분, 점재에 이르는 낮은 잠수교 닮은 다리를 건너 먼저 온 두어 대의 차량 뒤에 줄지어 주차하였다.
몇 년 전 매송과 교매가 묵었다는 하얀 집이 우측에 있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기에 백운산 등산로를 물었더니 “아래로 가라”고 하시지만 집을 지나 곧장 난 젖은 풀섶이 우거진 농로로 들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 산딸기를 따먹느라 뒤로 잠시 처진 일행을 기다렸다. 교매가 산딸기 몇 알을 건네준다.
이 길이 맞는 것 같다며 오르지만 곧 길은 보이지 않고 습기 가득찬 골짜기 같은 곳이 길게 이어진다.
젖은 낙엽 속으로 발이 빠지거나 낙엽아래 숨은 진흙에 여러 번 미끄러지기를 20여분 지나니 능선길을 만난다.
청죽이 준비해 온 토마토를 먹고 힘을 차려 참나무 우거진 숲길을 오른다. 경사가 숫제 거칠다. 한참을 지나니 이제 길다운 길을 만난다.
시작 무렵 할머니가 저 아래쪽에서 시작하란 말이 이 길을 뜻하는가보다 여겨졌다. 아직 정상이 남았지만 13시 20분경 길 위에서 점심을 준비한다.
2시 30분, 이제 정상이다. 화강암에 백운산 해발 882.4m라고 적고 있는 정상석 뒤로 주변의 돌로 쌓은 2m 남짓한 세 개의 돌탑이 섰다.
이제 동강이 보인다. 한 때 동강댐 건설발표가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느끼려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던 곳인데 강은 여전하다.
세상 뉴스와 사람들의 북새통 속에서도 그저 말없이 흐를 뿐이다. 수 천년을 그래왔던 것 처럼...
많은 시그널이 늘어선 방향으로 하산길이 시작된다.
아득히 멀어 보이는 하산길은 동강을 따라 둘러싼 능선과 봉우리들을 따르는 것이어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물이 돌아가는 곳은 아득한 절벽을 이루기도 하고 산비탈이나 낮은 모래톱 같은 곳에서는 물의 폭이 넓어지면서 한결 여유롭다.
절벽의 높은 곳이던, 낮은 비탈에서던 강은 산을 넘지 않고 산도 강을 침범치 않는다.
물과 산의 同行, 相生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혼돈과 바쁨의 세상속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야할 삶의 방식과 관계에 대한 모범답안을 친히 보여주고 있다.
소설 고산자(2009, 문학동네)를 쓴 박범신은 김정호의 생각에 기대 ‘산과 물은 서로 기대 토막나는 법이 없다’고 적고 있다.
‘길이 길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처럼,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이어져 끝이 없다’는 표현은 아마도 고산자 혹은 박범신 작가가 백암산과 동강 바로 이곳에서 얻은 영감의 구절이 아닐까?
동강을 두른 백운산의 오르내림이 다소 있으나 그리 힘이 부치지는 않는다.
고개를 넘어 구비를 돌때마다 나타나는 동강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구름과 함께 습기가 바람에 밀려오고 간간이 천둥소리도 구름사이를 비집고 묻어온다.
구름은 백운산의 골짝들과 지척의 동강마저 묻어버린다.
후두국 하더니 곧 소낙비다. 비옷을 배낭에 두었지만 오늘은 비를 맞기로 한다.
30여분이나 계속된 소낙비에 모두들 흠뻑 젖었다. 등산화에도 물이 차오를 때쯤이 되어서야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하산을 마칠 무렵 비가 멎고 제장 마을을 만난다.
철제 지주에 붙어있는 키작은 어린 사과나무들이 밭을 이루고 있고 신축중인 펜션도 여름 손님맞이를 위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송판 지붕, 황토로 두른 몸통, 그리고 연록색 잔디가 예쁜 동화같은 집 마당 입구에는 ‘들어오지 마세요 제발’을 새긴 합판이 세워져 있다.
흐드러진 개망초 군락 뒤로 동강을 에워싼 백운의 봉우리들이 울룰불룩 근육처럼 솟아 멋있다.
신을 신은 채, 옷을 입은 채로 강물에 들어 씻어내고 대충 정비를 끝마친 후 진주에서 왔다는 한마음산악회 버스를 얻어탔다.
버스는 내가 본 것들 중에 가장 최신의 화려한 것이었다.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삼거리에서 하차하였다.
우리가 추차한 점재를 향하다가 교매가 히치하이킹 하여 차를 가져왔다.
영월의 솔잎가든에서 맛있는 저녁을 들고 동강과 백운산을 가슴에 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