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고전의 아마존 정글, 황제내경
정보가 넘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습니다. 직접 하려면 너무 어렵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북드라망에서는 이러한 벽을 조금씩 낮추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 몸을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고,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는 '자기 몸의 연구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알고 싶다는 열정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
그런 의미에서 몸과 우주에 관해 연구했던 거인들을 따라가며 함께 공부하는 코너, '한의학의 고전들'을 마련했습니다. 『동의보감』이 나오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던 『황제내경』을 비롯한 무수한 고전 의학서와 의학서를 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의학 이론의 형성 - 『황제내경』에서 『상한론』까지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중국역사는 분열되면 합치고, 합치면 분열되는 역사를 반복해왔습니다. 한의학도 그 와중에 다양한 유파를 형성하며 발전했지요. 하, 은, 주로 요약되는 상고 시대 이후 최초의 분열시기가 도래합니다.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무림의 문파 마냥 다양한 이론으로 무장된 제자백가가 등장해 용쟁호투를 벌이지요. 지금 들어도 익숙한 유가, 도가, 묵가, 음양가 등등… 그들은 문파의 마스터인 ‘자(子)’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합니다.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은 아마 이 시기에 대부분의 내용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말하자면, 『황제내경』은 상고 시대와 춘추전국시대를 총망라한 종합 백과전서라 할까요? 그래서인지 『황제내경』(黃帝內經)을 살펴 보면,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는 다양함으로 가득합니다.
『황제내경』의 본문
내경으로 대표되는 한의학 이론의 실제 내용을 분석해 보면, 도가, 유가, 음양가, 참위학 등의 여러 학설을 포괄하고 당시에 이미 존재하였던 장부, 경락, 침구 등의 의학 지식을 널리 받아들여 저자의 독특한 생각을 통해 나름대로 체계를 이룬 것이다.
─임은 지음,『한의학과 유교문화의 만남』, 예문서원, 1999
한 사람이 지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문장들이 서로 어울려 낯선 텍스트를 창조한 것이지요. 야마다 게이지는 ‘그 속에는 개설, 평론, 전론, 강의용 텍스트, 주석, 해설’이 있으며 중국 의학 형성기의 혼돈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마디로 황제내경은 단숨에 포착되지 않는다! 백가쟁명의 시대에서 황제내경은 당시 이름을 날리던 의학가들이 치열하게 벌인 학술 토론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감이당에서 학인들이 발표한 에세이를 묶은 것처럼 말이지요. 쿨럭;;
내경 속에도 동일한 명사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 종종 있고, 같은 명칭이라도 가리키는 것이 한결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내경이 한 사람 손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의학가들이 벌인 학술 토론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임은 지음,『한의학과 유교문화의 만남』, 예문서원, 1999
그런데 왜 제목이 『황제내경』일까요? 황제는 황제폐하의 그 ‘황제’(皇帝)가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화적 존재인 복희 씨, 신농 씨, 헌원 씨 중 헌원 씨가 황제(黃帝)였습니다. 신화적 존재이니만큼 그 ‘네임밸류’가 대단했던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유명 브랜드’에 기대는 심리는 같았나 봅니다. 중국의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내경』과 『본초』 등은 황제와 신농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론 이름 모를 숱한 의사들의 공동 작품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이론에 위대한 황제나 신농의 이름을 붙이면 더 쉽게 퍼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마케팅엔 브랜드 네이밍을 무시 못합니다 그려…….
전국시대나 한나라의 학자들은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이들은 언제나 자기의 생각을 과거의 학자들의 이름이나 주장 아래 기술했다. 이러한 경향에는 그럼으로써 자기 생각과 기술을 더욱 용이하게 전파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 Pierr Huard 지음, 허정 옮김, 『동양의학사』, 신광출판사, 1999
본명은 진월인(秦越人), 편작이라는 이름은 당시에 뛰어난 의사를 부를 때 별명처럼 불렀던 호칭이었는데, 이것이 후대로 이어지면서 진월인을 지칭하는 고유호칭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의학자들이 거대 브랜드 뒤에 소리 없이 있을 때,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편작(扁鵲)이었습니다. 편작의 일화는 신비로운 게 참 많습니다. 사람의 몸 속을 훤하게 들여다본다거나, 심지어 벽 너머의 사물도 볼 수 있다는 초능력의 소유자라는 기담도 있지요. 히.. 히어로즈..? 편작은 평생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의술을 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당시의 의학조류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작의 투시술은 정말 몸 속을 꿰뚫어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의학의 4진(망진, 문진, 문진, 절진)은 환자에게 칼을 대어, 배를 가르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으로 병세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외과적 수술만이 병을 고치는 유일 방법은 아니지요. 편작은 아마도 이런 외과 수술에서, 4진을 통한 치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의사는 각 왕궁에 소속된 궁정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편작은 천하를 주유하며 가는 곳마다 다양한 질병을 치료합니다. 이를테면 ‘편력의’의 시작이었지요. 조나라에 가면 부인과 의사, 주나라에선 노인과 의사, 진나라에선 소아과 의사로 업종(!)을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이건 뭘 의미할까요? 세상은 넓고 질병은 많다! 왕궁에서 엎드려 있으면 특정 질병에만 익숙할 게 뻔합니다. 당연히 새로운 질병에는 속수무책이겠지요. 그래서 편작의 등장은 각 지역에 흩어져있던 치료법이 하나로 통합되는 이른바 '의학혁명'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작을 개인이라기보다, 이러한 의학조류에 따라 나타난 의료 전문인 집단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야시 하지메의 다음과 같은 지적처럼 말이지요.
의학사를 무명의사들의 활동이 아니라 대표인물을 잡아서 시작하더라도 그것은 의학발전의 어떤 단계를 상징하며, 그 시대 의료활동에서 어떤 측면의 대표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전해진 자료의 질, 또는 남은 저작의 많고 적음은 그 놓인 환경조건과 의학이 어떠한 문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었는지, 의사가 어떠한 사회 속에서 의료를 행하였는지 등등의 사항을 반영한다.
─ 하야시 하지메 지음, 『동양의학은 서양과학을 뒤엎을 것인가』, 문사철, 2008
막간을 이용해 한의학의 치료법 중 침과 뜸을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침의 기원은 뭐라고 그럴까… 원시인들이 돌도끼나 뾰족한 것으로 상대방 등허리를 쿡쿡 찌를 때, 마침 시원하다~는 느낌이 그 시초(!)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원시시대의 안마기라고 할까? 뭉툭하면 느낌(?)이 잘 안 오니, 더 뾰족하게 갈고 가는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날씬한 침으로 진화된 게 아닐까요? 실제로 침은 춘추전국시대에 급속도로 발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금속야금업의 발달로 철기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때문이지요. 뜸이요? 뜸은 뭐 불이죠. 불로 통증 부위를 지졌을(!) 때.. 오마이갓! 고통과 함께 유발되는 쾌락.. 으..응?? 암튼 『황제내경』과 편작을 이야기하니 침뜸도 한번 거론해봤습니다.
동양의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기(氣)인데, 이 기가 운행하는 통로가 바로 경락이다. 경락의 기혈이 신체의 표면에 모여 통과하는 부위를 경혈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곳에 침을 놓거나 뜸을 떠서 내부 장기의 이상을 치료하는 것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180쪽
『황제내경』은 아마존 정글입니다. 다종다양한 생명체가 살아 숨쉬는 정글! 풍부한 만큼 복잡해 어디서부터 들어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내경』을 배우는 옛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졌나 봅니다. 그렇게 등장한 책이 바로 『난경』(難經)이었습니다. 『난경』은 편작의 저작이라 하는데, 그 또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난경은 의학의 체계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지요. 한마디로 황제내경의 Summary라 할까요? 무엇에 대한 핵심정리인가 하면, 바로 진맥이었습니다.
"저에게 손목을 맡기시겠어요?"
"엄허나… 좋아요."
남녀가 꼬시는 장면이 아닙니다. 감이당의 흔한 진맥을 봐주는 풍경. --; 뭐 당연하긴 합니다만, 정말 감이 안 오는 게 진맥인데요. 손목의 촌관척(寸關尺) 부위에 손가락을 지긋이 얹고 맥을 살핍니다. 활시위처럼 팽팽하다거나, 홍수가 터진 것마냥 콸콸 쏟아지거나, 착 가라앉는다거나 뭐 그렇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허허;; 아무튼 촌관척만으로도 너무 복잡한데, 세상에 이게 엄청 간결히 정리된 거라고 하네요. 가만 생각해 보면 박동이 뛰는 곳이 손목 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머리, 목, 팔다리… 잘 살펴보면 콩닥콩닥 뛰는 게 온 몸이렷다! 허걱! 이렇게 난감할 수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저술한 책이 바로 『난경』이었고, 『난경』의 목표는 이 수많은 박동 장소를 한 군데로 통폐합해 버리는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했느냐? 천만의 말씀! 정밀한 관찰을 통해 손목 부위의 진맥 만으로도 전신에 있는 맥의 이상을 알아내고 말지요. 요컨대 오늘날 진맥의 표준인 촌, 관, 척의 완성. 그러니 촌관척 진맥하는 거 어렵다고 투덜대지 맙시다. 아니면 온몸 여기저기 주물러보고 난리 부르스를 쳤을지도. --;
기원후 2세기에는 전염병이 창궐하였는데, 당시의 의학가들은 임상경험과 이론을 결합시킨 서적들을 간행하였다. 이중 하나가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이다.
상고시대와 춘추전국시대, 진시황과 한고조의 통일시대를 거쳐 또다시 중국대륙은 분열의 조짐이 꿈틀거립니다. 때는 바야흐로 후한 말, 『삼국지』의 시대였습니다. 『삼국지』하면 오직 유비, 관우, 장비만 떠오르겠으나, 의학사상 ‘의성’이라 불리는 인물이 홀연히 출현합니다. 아, 저~ 저 알아요! 관우의 독화살을 치료한 화타요! 아, 네… 화타(華陀)도 동시대 인물입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이는 그 이름조차 낯선 장중경(張仲景)입니다. 일본 에도 시대의 학자는 말합니다. ‘의학에 『상한론』이 있는 것은 유교에 『논어』가 있는 것과 같다’고. 그만큼 장중경이 저술한 『상한론』(傷寒論)은 의학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왜? 개인의 이름을 내건 1인 저술로 이행되었으며, 최초의 체계적인 임상 의학서였기 때문입니다.
후한 말, 『삼국지』는 여러분도 잘 아는 황건적의 봉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정에는 환관과 외척의 권력다툼이 그칠 날 없고, 이로 인해 백성 살림살이는 거덜나지요. 당연히 자연재해와 질병도 더 심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보니, 전염병도 급속도로 확산되었겠지요. 이때 ‘상한’이라 불리는 전염성 질환이 천하를 휩씁니다. 이때 장중경의 일족 중 2/3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황제내경』이 인간과 자연의 상관관계를 해명하고, 음양오행에 따른 양생을 강조했다면, 『상한론』은 이론과 실천을 연계한 임상의학서였습니다. 요컨대 『황제내경』에 있는 이론적 측면을 임상 현장에서 적용한 셈이지요. 전란의 소용돌이에서 탄생한 불후의 의서! 『삼국지』의 시대에는 조조, 제갈공명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뒤에는 백성들의 생명을 위해 노력한 일세의 인물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