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장 속에는 수많은 세균이 존재한다. 장내 세균은 유산균과 같은 유용균과 대장균, 포도상구균과 같은 유해균으로 나뉘는데, 건강을 지키려면 유용균의 양이 유해균보다 많아야 한다. 장내 유산균을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생활에 유의해야 한다.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하고 유산균이 많이 함유된 우유와 치즈 등의 유제품과 김치, 된장 등의 발효식품을 매일 섭취하는 것. 그것이 장내 유산균을 증식시키는 방법이다. 글·최춘언(전 한국식품과학회 회장|에디터·조소영|사진·김장곤|디자인·김윤아
지구상에는 수많은 세균이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은 평생 세균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기가 모체 내에 있을 때에는 무균 상태이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1차적으로 모체로부터 세균에 감염된다. 그 후에는 환경에 의해 여러 가지 세균에 노출되게 되고, 아기의 소화관 내에는 곧 여러 가지 세균이 존재하게 된다.
생물체의 장관 속에 기생하는 세균을 ‘장내 세균(Enterobacteria)’이라고 한다. 장내 세균은 종류별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이것을 ‘장내 세균총’ 또는 ‘장내 플로라(Flora)’라고 한다. 장내 세균은 대략 300종류가 있는데, 그 수는 100조를 웃돈다. 인체 내 총 세포수가 대략 60조임을 감안한다면 장내 세균의 양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세균들은 항상 소화관 벽에 상주하면서 소화기 분비물이나 음식물을 영양원으로 얻어 생육하고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낸다. 장내 세균은 끊임없는 분열과 증식, 사멸을 거듭하지만, 장내에 정착하고 있는 세균의 총 수는 항상 일정 양을 유지한다. 참고로 사람 대변 양의 3분의 1 정도는 사멸되었거나 혹은 살아 있는 장내 세균이라고 한다.
장을 산성으로 유지하는 유산균은 유해균의 발육을 억제한다 장내 세균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유용균과 해를 끼치는 유해균, 그리고 평상시에는 우리 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지만 유용균과 유해균의 어느 한쪽의 세력이 강하게 될 경우 강한 쪽으로 가세하는 중간균으로 크게 나뉜다. 인체에 유익하다고 알려진 비피더스균은 비피도박테리움(Bifidobacterium spp.)에 속하는 장내 유산균의 하나로 유용균을 대표한다. 이 밖에도 락토바실루스 속(Lactobacillus spp.)의 아시도필루스균(L.acidophilus), 엔테로코쿠스 속(Enterococcus spp.)의 장구균 등도 유용균이다. 유산균은 젖산균이라고도 하는데 이름 그대로 젖산을 만들어 장내의 환경을 산성으로 유지한다. 장내 환경이 산성이 되면 불필요한 세균이나 유해균의 발육이 저지되므로 장내 젖산균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발암물질과 독성물질 생산에 관여하는 장내 유해균 유해균으로는 대장균(Escherichia coli), 웰슈균(Clostridium perfringens),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spp.) 등이 있다. 대장균 중에는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하여 소화를 돕고 장내에서 비타민을 합성하는 등 유익한 작용을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해균은 장내 환경을 부패시키고 발암물질이나 여러 독성물질을 생성하여 우리 몸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변비와 설사를 유발하고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체에 해를 끼치는 유해균이라 하더라도 유용균과 유해균의 양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인체에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다. 병원성을 가지고 있는 특정 유해균이 장내에 증식하게 되면 질병이 생기지만, 이와 함께 적절한 양의 유용균이 상주하고 있으면 유해균의 해로운 작용이 억제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대변 1g에 존재하는 젖산균의 수는 수천만 개에서 수십억 개에 이른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수천 개에서 수십만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젖산균의 숫자가 많게는 1만 배 정도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젖산균이 장내에 많은 양이 존재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식습관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유산균, 알고 보니 건강 지킴이 유용균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가 섭취한 음식의 소화 흡수력을 높여주고 대사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섬유질은 장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 데 반해 장내 세균은 섬유질을 분해하여 소화를 촉진시킨다. 둘째,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비타민 B1, B6, B12, 엽산, 비타민 K 등의 합성에 관여한다. 셋째, 장내 흡수가 어려운 철과 칼슘 등 무기질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어준다. 넷째, 면역력을 강화시켜 우리 몸의 저항력을 높여준다. 다섯째, 유해물질이나 발암물질을 분해한 뒤 대변을 통해 체외로 배설시킨다. 여섯째, 장내 pH를 산성 쪽으로 조절하고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변비를 예방한다. 동시에 장 벽 선모에 있는 영양 흡수 세포의 영양소 흡수작용을 활성화시킨다. 일곱째, 병원균이나 유해균의 감염을 방지한다. 장내 세균이 소화관 벽에 정착하게 되면 병원균이나 유해균이 장 벽에 자리하지 못하므로 유해균의 증식이 방해된다. 여덟째, 식사를 통해 섭취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소화 흡수를 조절하고 혈관 내벽에 붙어 있는 과잉의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의 배설을 촉진한다. 아홉째, 소화관과 간장, 신장, 뇌 등에서 작용하는 효소를 인체에 이로운 방향으로 활성화시켜 이들 장기의 기능을 보전하는 데 관여한다.
부적절한 식생활과 스트레스가 장내 세균의 균형을 깨뜨려 이렇듯 장내 세균은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건강한 사람은 항상 유산균과 같은 유용균이 유해균보다 우세하다. 그러나 부적절한 식생활, 스트레스, 항생물질의 남용과 과용, 피로와 수면부족, 고령화 등 여러 요인이 장내 세균의 균형을 붕괴시키고 있다. 이 균형이 깨지면 유산균이 감소하게 되어 물질대사에 이상이 생긴다. 예를 들어 유해균이 많아지면 지방질 대사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는 곧 고지혈증,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유발시킨다. 또한 병원성 대장균은 대장암의 원인이 되는 ‘니트로소아민(Nitrosoamine)’을 합성하는 효소를 만들고 비타민 B₁을 분해해 영양장애를 일으킨다. 유해균 중에는 피부암 유발인자인 ‘페놀(Phenol)’, 혈압을 높이는 작용을 하는 ‘타이라민(Tyramine)’을 합성하는 균도 있다. 유산균이 우세한 장내 환경에서는 체내에 침입한 병원균이 장내 정착을 하지 못하고 모두 배설되지만, 장내 세균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병원균들이 쉽게 장내에 정착하여 증식을 하게 되므로 결국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유산균이 풍부한 유제품과 발효식품을 매일 섭취하자 장내 유산균이 우세한 상태가 되려면 식생활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영양소의 균형이 잡힌 식사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유산균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식품을 먹어야 한다. 요구르트나 치즈, 우유와 같은 유제품 외에 김치, 된장, 간장 등의 발효식품에도 유산균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셋째, 장내 유산균이 먹이로 좋아할 만한 성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유산균은 단백질이나 지방보다 탄수화물을 좋아한다. 특히 식이섬유나 올리고당은 유산균을 증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요구르트나 치즈 등 유제품에 들어 있는 유산균은 ‘락토바실루스 불가리아균(Lactobacillus Bulgaricus)’인데, 이 유산균은 소의 유산균이기 때문에 사람의 장내 정착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유산균이 사람의 소화관에 들어오면 먼저 위산 등의 소화액에 의해 사멸되거나 또는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후면 배설된다. 따라서 유제품은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비피더스균은 신생아의 경우 장내 세균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유아기의 경우 10%, 그리고 60세가 지나면 1% 정도로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장에 유산균이 많을수록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유해균으로부터 안전하다. 유제품과 발효식품을 매일 적당량 섭취하여 장내 세균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자. 건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아주 사소한 것들이 건강을 지키는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