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근거>
고려시대를 기록한 사서중 고려사절요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을묘 42년 1255년 (388페이지)
" 몽골병이 철령에 주둔했는데, 등주별초가 양쪽에서 협공하여 섬멸시켰다."
정사 44년 1257년 (400페이지)
"동진군사 3천여기가 등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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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 고려때에는 삼별초가 몽골군대에 항전하여 진도로 갔다가 최종적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항복했다고 전에 학교에서 배웠다.
2. 그런데 고려사절요에는 삼별초대신 등주별초로 나온다. 등주란 지명도 우리에게 익숙치 않다. 등주란 대륙의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김종윤님이 쓴 인물로 본 한반도 조선사의 허구를 보면 제주도가 섬이 아니라 산동성에 제수근처의 지명으로 나오고, 그곳 근처에는 한라산도 있다고 한다.
3. 등주별초란 그 산동성에 있는 제주인근의 등주에서 활동한 삼별초가 아닌가 한다.
4. 철령이 어디인가? 몽고병들은 원래 몽골고원에 있었고, 고려를 치러 내몽골을 지나 산서성으로 내려온다. 바로 산의 서쪽지방을 뜻하는 산서성의 그 산에 있는 고개가 바로 철령일 것이다. 그래서 몽골병이 산서성 철령까지 내려와 주둔해 있는 것을 산동성의 고려의 독립군인 격인 삼별초, 등주별초가 습격하여 섬멸한 것으로 보인다.
5. 몽골과 삼별초의 싸움은 거의 보면 고려의 동북부에서의 전투였다. 남쪽으로 간 흔적이 없고 몽골도 고려을 침략했지만, 그들의 점령은 산서성이남을 넘지 못했다고 본다.
6. 동진이란 나라도 있어서 고려의 산동성 등주에 왔다고 나온다. 동진은 분명 고려의 제후국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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