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7일 토요일 06시 제주시청 부근 탑동광장에서 울트라맨들이 일제히 출발한다.
어제 금요일 퇴근후 부산에서 밤9시 비행기로 경주의 일행3명과 함께 이곳 오리엔탈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밤12시에 취침을 하여, 새벽0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이곳에 함께 모였다.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한라산148키로 트레일런 코스는 처음 출발하여 2키로 정도 가면 그때 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시작되는 힘든 경기이다.
나는 한라산 코스를 인터넷 위성지도를 복사하고, 코스를 복사하여 입시공부하듯이 모두 형광펜을 칠하여 가며 일주일간 자세히 외웠다.
코스를 모르고 대회에 임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준비물도 1개월 전부터 계속 하나씩 준비하여 나갔는데, 특히 아이젠까지 배낭에 넣으니 배낭 무게만도 13키로를 넘었다.
제일 문제가 신발을 무엇으로 할까였는데...이번 대회 준비를 위하여 신발을 무려 4켤레나 샀다.
결국, 대회전날 금요일 낮에 K2에 들러 목없는 등산화를 사고 타샤제펜과 K-SWISS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산에서는 등산화를 신고 아스팔트에는 타샤제펜을 신으며, 95키로 바꿈터에서는 K-SWISS로 갈아신고 마무리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등산화를 신고가도 무방할듯 하여 탑동에서 성판악까지 19키로 아스팔트길을 등산화를 신고 달리자니 배낭무게도 만만치 않고 터벅터벅 오르막을 달리니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막상 성판악에서 한라산을 오르니 그때부터는 등산화가 발을 보호해 주는 느낌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신발이 너무 무거웠다.
제주대학을 지나고 제주CC를 지나니 먼동이 터 밝아 오고 우측에 멀리 한라산이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버티고 있다.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 오늘 제가 정복해 드리겠나이다.
수많은 등산객들을 헤치고 백록담 1950미터고지를 향하여 달려 간다.
등산객들의 스틱에 발목이 걸릴까 제일 겁나고, 1400정도 올라가니 얼음과 눈이 미끄러워 달리지를 못한다.
마침내 도착한 백록담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날씨가 나를 맞아 준 것은 실로 행운이었다.
함께 간 미국의 트레일런 선수 ‘마크’ 일행과 백록담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세명이 공동3위로 이곳에 도착했다.
구상나무에 얼음과 눈이 맺힌 아름다운 모습에 카메라 셧트를 누르고 달려 내려간다.
멀리 제주시가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들이 세상사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이 맛에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인지 모른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한방에 다 날아가는 듯 하다.
천천히 올라와 휴식을 취하며 음식을 나눠 먹고 있는 일반등산객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아름답게 눈덮힌 백록담의 모습을 뒤로 하고, 관음사입구 주차장까지 약10키로를 달려 내려 가는데 길이 녹녹치 않다. 온통 나무계단에 바위투성이다.
급내리막을 만나면 밧줄을 잡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울퉁불퉁 돌 투성이의 길을 달려 내려오니, 제3CP관음사 주차장이다.
컵라면을 받았지만 먹을수 없다. 넘어가지를 않는다.
다시 일반운동화(타샤제펜)로 갈아신고 어리목입구로 향한다.
도로에 노견이 없어 차량을 마주보고 달리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밤중에 이곳으로 다시 달려 올 생각을 하니 아찔해진다.
등산용 배낭이 털썩이며 등허리를 계속 쓰친다. 따가움이 점점 심해진다.
배낭 선택을 잘못했다.
이번 제주대회를 위하여 새로 구입한 마무트베낭인데 이것은 일반등산용이고, 울트라달림용이 아님을 실지로 메고 달려 보니 알겠다.
신발과 배낭과 보급 및 복장의 선택은 대회에 참가할 때 마다 고민이지만, 울트라는 특히 신중하게 선택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단, 오늘 나는 모두 선택을 잘못했다. 이제 후회해도 어쩔수 없고 이데로 끝까지 가야한다.
50여키로 지점, 어리목까지 오르막을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며 진행하였다.
정말 힘든 코스였다.
어리목입구4키로 푯말을 보았다.
도저히 뛸수 없는 오르막이었다. 걷기도 힘든 오르막이 4키로 계속된다.
어리목입구 CP에서 레몬한개를 챙기고 다시 등산화로 갈아 싣고 윗세오름을 향한다.
윗세오름까지 4.7키로, 윗세오름에서 영실까지 3.8키로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늘 완주에는 자신이 있었다.
수많은 돌길을 헤집고 걷는데 해발1400이상을 올라가니 숨이 엄청 많이 가빠온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린다. 기가 다하고 맥이 다한 氣盡脈盡 상태였다.
내 체력이 이렇게 약했던가.
이상하다. 배낭을 벗고 잠시 앉았다. 쉬고 있는데도 숨이 엄청 차고 가쁘게 몰아 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수십마리 까마귀떼가 순식간에 주위를 둘러싼다.
해발1700미터의 윗세오름을 향하는데 토하기 시작한다. 현기증과 어지름증이 심해져 온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웠다.
천천히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니 5위였다.
뒤에 많은 선수들이 오고 있다.
윗세오름에서 영실기암으로 내려오는데 길이 상당히 위험하다.
살아100년 죽어100년이라는 구상나무를 붙들고 그 숲속에 눈얼음위에 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고통속에 흐느끼는 소리.
까마귀떼들의 흠흉한 울음소리들...
이곳만 내려가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한라산이
신들의 방이라 불리우는 영실
그 슬픈 전설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은 어머니의 사랑이 끝내 펄펄 끊어 오르는 죽 솥에
던져 버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자식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한없이 어머니를 부르다가 바위가 되어 제주를 지키는 오백장군이 되고
해마다 오뉴월에는 그들이 흘린 피눈물이
한라산 곳곳에 털진달래와 산철쭉꽃으로 피어나
한라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는 전설
지금은
오로지 추위와 얼음과 대면하여
하늘을 향해 힘껏 솓아 장군바위라 불리는 기암절벽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좌측에 경외롭게 펼쳐져 있다
왼쪽에 영실 기암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 레이스를 진행하는데 차가운 바람이 볼기를 때린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하나씩 내려 디디며 나는 오늘 이곳 영실까지만 달려야한다고 자꾸 결론내리려 한다.
더 이상 레이스를 펼친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고 또 다른 내가 또 다른 나에게 자꾸 자꾸 속삭이고 있었다.
또 다른 나는 나에게 말한다.
영실까지 내려가서 보급을 하고 뭐라도 먹을 수 있다면 레이스를 계속 펼치자, 지금 부상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라고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영실 63.3키로 푯말앞에 섰다.
cp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떡국과 비빔밥이 있었는데, 나는 떡국을 시켰으나 겨우 국물 몇숱갈만 떠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먹어 지지 않는다. 이 고통~~
결국, 레이스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가게 의자에 누웠다.
20여분을 누워 있어도 춥기만 더 추울뿐 음식은 먹히지 않았고, 뒤에 선수가 한,두명씩 들어온다.
이대로 오늘 레이스를 포기할까말까...결론을 내리기 힘든다.
휴대전화를 꺼내 옆지기에게 전화를 한다.
‘나 오늘 시합은 포기해야 겠다’하니, ‘건강이 우선이니 절대 무리하지 말고 포기하세요, 시합은 다음에 또 나가면 되지뭐, 마음이 바뀌더라도 절대 달리지 말아요’한다.
갑자기 따뜻한 침대가 그리워 졌다.
이미 해발1700미터에서 토한 속은 허할대로 허해져 아무것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힘을 잃은 나의 두 다리는 오늘은 그만 레이스를 접자고 편하게 살자고 이제는 더욱 강하게 적극적으로 몰아 붙인다.
지금부터 뛰어도 충분히 완주는 가능한 시간대였다.
남은 거리 약80키로, 남은 시간 19시간, 내리막은 뛰고 오르막은 걸어도 충분히 완주는 할 수 있는 시간이고, 지금부터는 아스팔트만 나오는 도로주행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과감히 레이스를 멈추기로 한다.
지금부터는 내리막이 계속되다가 우리 철인대회가 열리는 낙타봉 돈네코 방향 제2산록도로를 타고 돈네코에서 우회전하여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앞을 지나, 철인대회때 런코스로 달려 다시 이곳 1100고지를 향하여 돌아오면 되는 것인데, 밤중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 생각과 무엇보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레이스를 펼친다는 것은 건강을 혹사시키는 일임이 자명하다. 지금부터 내 몸에 어떤일이 일어날지, 어떤 일이 내 앞에 펼쳐 질지 경험상 잘 알고 있는 나로서 계속 레이스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라 결론내린다. 나는 그런 스포츠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3일이 지난 지금 왜 그리도 미련이 많이 남고 자꾸만 포기했던 그 순간이 떠 오르는 것인지...아마도 이 후유증은 오래오래 갈듯 싶고, 자존심과 마음의 상처는 예상외로 크고 가슴이 아프고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이 대회를 위하여 시간적, 물질적 경제적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제주도까지 가서 대회를 포기한 것이 너무 아깝고 스스로 용서하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년에 아마도 다시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내 성격상 반드시 정복해야만 하는 코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이 대회의 코스
탑동광장(해발0미터)-성판악(해발700미터)-백록담(해발1950미터)-관음사(해발600미터)-어리목(해발970미터)-윗세오름(해발1700미터)-영실(해발1000미터)-돈네코(해발500미터)-서귀포-중문(해발0미터)-탐라대사거리-1100고지(해발1100미터)-관음사-탑동광장
첫댓글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럽시다.
작년 울진대회끝나고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포기할때 과감히포기하는사람이 진정한철인이라고..
내년에는 성공후기를 읽겠습니다 홧팅
감사합니다.
기진맥진...수고하셨습니다...회장님의 도전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