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호계동 삼신6차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실로 사용되던 컨테이너에 불이나 최용현 조합장과 조합원 노 아무개씨, 경리직원 이 아무개씨 등 모두 3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발생 경위
세 사람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화재는 지난 11일 오전 11시 10분경 발생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조합원 노 아무개씨가 조합사무실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난 것으로 알려진다. 가동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 노 아무개씨가 들어간 후 조합사무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사고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불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10여분만에 꺼졌지만, 순식간에 10평 남짓한 컨테이너를 태우고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직 구체적인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성이 오갔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일단 최 조합장과 노 아무개 조합원이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추위가 시작되지 않았고, 또 겨우 10여분 정도 지속된 화재에 안에 있던 세 사람 중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는 점에서 난방기기나 누전 등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휘발유와 같은 촉매제가 뿌려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더구나 사무실 문이 안으로 잠겨있었다는 점에서 ‘고의성’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경찰은 이 같은 정황을 근거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호계 삼신6차는 지난 2003년 6월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일신건영을 시공회사로 선정해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죽음을 부른 규제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삼신6차 조합사무실 화재가 우발적인지 고의적인 방화에 의한 것인지 아직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그 그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강남일대의 집값을 잡는다는 목적 아래 지난 수년간 재건축 규제가 지속적으로 취해졌다. 하지만 강남일대의 집값이 요지부동인 반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강북 및 수도권 일대의 재건축사업장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 게 현실.
삼신6차아파트 역시 조합원들의 대지지분 자체가 작아 재건축을 위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많았던 데다가 용적률 규제, 임대주택 제공 등 정부의 규제가 더해지면서 분담금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재건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등 조합과 일부 조합원 사이에 빈번한 마찰이 있었다.
화재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여기 이 컨테이너 앞은 그동안에도 조합측과 반대하는 주민 사이에 다툼이 많이 발생했던 곳이지만, 그래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재건련) 최병규 부회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 규제정책들 때문에 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일선 조합과 추진위들만 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규제정책을 만들기만 했지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누가 피해를 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현장파악을 했다면 이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서민을 위한다면서 거꾸로 서민을 죽이는 정책을 펼쳐온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재건련, 사태파악 착수
참사 소식을 접한 재건련과 회원 조합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허탈해했다. 김진수 재건련 회장은 “재건축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재건축·재개발이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개선하기보다는 더욱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도록 개악을 일삼은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번 참사는 개인간의 잘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책만 쏟아낸 국가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회가, 마땅히 관리감독하고 행정지도해야 함에도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행정관청이, 자신의 의무는 다 하지 않은 채 남 탓만 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건련은 특히 고인이 된 최 조합장이 갖가지 재건축 규제로 인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높아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수차례 재건련을 방문해 자문을 받는 등 분담금 경감을 위해 노력해왔었는데, 그 모든 노력도 헛되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사건 발생 이튿날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한 재건련은 일단 이번 참사가 우발적인 사고인지 고의에 의한 방화인지 정확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번 참사가 비단 삼신6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의 재건축사업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고 판단, 회원 조합 및 추진위원회 등에 주의공문을 보내는 한편 차후에라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에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강력하게 요청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추진위나 사업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조합들 가운데는 비용부족으로 인해 컨테이너 등 가설건물에 사무실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이번 삼신6차의 사고처럼 화재 등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방범체제가 없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조합의 서류 등을 강탈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재건련은 주거환경연합과 함께 회원 조합 및 추진위는 물론 전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근무여건 및 분쟁발생의 유형별 조사 등을 실시, 자체적으로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분쟁중재위원회 설립 시급하다
삼신6차의 이번 참사는 제도가 조금만 더 정비되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망한 최용현 조합장은 각종 규제로 인해 분담금이 상승하면서 조합과 조합원, 조합원과 조합원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자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건련에 수차례 상담을 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재건련 역시 조합과 반대하는 주민들 양측의 주장을 수렴한 후 중재하기 위해 힘썼지만, 강제성이 없는 시민단체의 중재인만큼 어느 일방이 협의내용을 파기할 경우 손쓸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정비사업 추진과정에서 조합과 조합원, 조합원과 조합원, 조합과 시공사 등 협력업체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중재기관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시민단체인 재건련이 자체적으로 실태파악 및 분쟁조정에 나서 일정부분 효과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직권중재와 같은 ‘권한’이 없어 중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
따라서 재건련은 그동안 정부에 권한이 있는 중재기구 설립을 요청해왔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진수 회장은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인데도 행정관청의 적극적인 지도도 없었고,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공공의 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이에 상설 분쟁중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립할 것을 요청했지만 민간사업에 관여할 수 없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건련은 삼신6차의 참사 이후 다시 한번 분쟁중재위원회의 구성을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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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보내는 자리 눈물로 가득해 … 14일 고(故) 최용현 조합장 영결식 열려
14일 오전 9시 삼신6차아파트 입구에서는 지난 11일 화재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최용현 조합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지역주민,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 회원 조합장, 각계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유가족들은 참사현장인 컨테이너 박스 재건축조합 사무실을 둘러보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유가족은 “이런 사무실 같지도 않은 열악한 곳에서 일하다 억울하게 간 동생이 너무 불쌍하다”며 주민들에게 진상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영결식은 아파트단지 놀이터 앞에서 진행됐으며 분향재배 후 조사 낭독으로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절을 하다 엎드려 오열하며 일어날 줄을 몰랐고, 이를 지켜보던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의 딸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며 울먹이다 “조합장을 맡으신 뒤로 항상 바쁘셔서 불평만 늘어놓았던 게 너무나 후회된다”며 “부디 싸움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라”며 애틋한 애통한 심정을 밝히자 사람들은 연신 손수건을 훔쳤다.
재건련 김진수 회장은 조사(弔詞)에서 “열악한 삼신6차의 재건축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조합장님의 모습이 떠올라 애통함이 한층 커지고 있다”고 애도하고 “조합장님의 죽음엔 규제만을 일삼는 정부와 분쟁에 대해 방관한 관청, 사회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슬픔을 딛고 재건축사업을 완수해서 고인이 되신 조합장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최용현 조합장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 직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주민은 “조합 사무실에 나오기 시작한지 이제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너무 불쌍하게 됐다”며 “남겨진 가족들이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 최용현 조합장은 8남매 중 7째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둔 가장으로 차분하고 근면한 성품이었다고 전해졌다.
영결식을 마친 조합 관계자와 유가족, 재건련 회원들은 사건의 전후사정에 대한 의견 교환을 통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확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특히 유가족들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단지 내에 나붙었던 재산지킴이 측의 전단지 내용을 보며 “‘천길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조합장의 처절한 말로를 보여드리겠습니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며 “재건련이 나서서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시경 운구행렬은 장지로 떠나고, 애통함과 허탈함만 남긴 채 영결식이 끝났다.
하재광 · 우혜경 기자 2006-09-18 11:4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