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엄사란?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하였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가 임박하였을 때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계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뜻한다.
이에 비하여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행위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락사 중에서도 환자의 요청에 따라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안락사나 존엄사는 윤리적·종교적·법적·의학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모두 합법화하여 가장 진보적 입장이고, 미국은 오레건주와 워싱턴주에서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40개 주에서는 인공호흡기 제거 등의 소극적 형태로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하여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고, 영국도 대체로 폭넓게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에 대하여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로 제한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존엄사(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첫 판례이다.
2. 존엄사의 찬반입장
#존엄사 찬성 입장
- 치료비에 대한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 환자들의 계속되는 고통, 환자들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
-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 이미 존엄사를 법제화한 나라들도 여럿 있다.
# 존엄사 반대 입장
-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 자살 또는 살인과 구분이 힘들어 사회적 악용이 있을 수 있다.
- 헌법에 나온 ‘어느 누구도 목숨을 결정할 수 없다’는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 신의 섭리, 생명은 신께서 주신 것이다.
3. 존엄사법, 논의 18년 만에 입법화된다.
오는 7월부터 호스피스(완화 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데 이어 존엄사 절차도 법제화된다. 논란이 많았던 연명치료 중단 결정에 대한 기준이 정해졌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막아 ‘웰다잉(well-dying)’ 문화를 자리 잡게 하자는 취지다.
◆대리결정권 인정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환자의 뜻을 알 수 없을 때는 가족 전원의 동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연명치료 결정법(존엄사법) 틀이 나왔다”며 “이달 국회에 제출한 뒤 올해 통과시켜 이른 시일 안에 시행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한 환자가 부인의 요구로 퇴원해 사망한 뒤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 존엄사가 사회 이슈화한 뒤 18년 만의 제도화다. 존엄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 항암제 투여 등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존엄사법을 만든다는 것은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존엄사 대상을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로 한정했다.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존엄사가 인정된다. 의식불명 등으로 환자의 뜻을 직접 묻기 어려울 때는 미리 작성해놓은 사전의료의향서나 편지, 유언장, 일기장,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의사 추정의 근거가 된다.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평소 의견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뭐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이 같은 추정 자료가 없더라도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부모와 자식) 등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까다로워진 기준
존엄사법이 오히려 의사들의 연명치료 중단 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의 뜻을 추정하는 기준이 전문가 권고안보다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13년 국가생명윤리정책위원회가 낸 권고안에서는 가족 중 2명이 “환자가 평소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면 존엄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가 준비 중인 안에선 유언장이나 SNS 자료 등 증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료도 없고, 가족 간 합의도 안 될 경우 결정권은 병원윤리위원회로 넘어간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유산을 노린 가족의 거짓말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기준을 까다롭게 하면 오히려 안 만드니만 못한 법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우선 법부터 만든 뒤 부족한 부분은 나중에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은 어떤 병원에서는 쉽게 존엄사를 허용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연명치료만 이어나가고 있다”며 “법제화가 되면 이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계가 요구하고 있는 호스피스 제도화와 존엄사법을 조율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존엄사 문화를 안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환자들이 사전 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메커니즘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 시기는 2017년이다. 호스피스 기반 확충과 병원윤리위원회 신설 등을 위해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