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善意)는 착한 마음, 좋은 뜻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선의와 대립 관계에 있는 말이 악의(惡意)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악의는 뭔가 다분히 나쁜 의도를 숨긴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상대방을 일부러 골탕을 먹이겠다는 의도가 악의라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런 <악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아예 소설의 제목을 『악의』로 달아놓았으므로 다만 나는 그 ‘악의’의 행위자만 가려내면 될 듯싶었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리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빈틈이 없다.
아울러 그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제일 끝 무렵에 이르러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러니 읽는 재미가 쏠쏠할 수밖에. 아마도 그런 연유로 그가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추리소설 작가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 코로나로 무기력해진 일상 속의 이런 흥미 있는 이야기는 동굴 탐험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야기는 유명 소설가 히다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히다카는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당분간 캐나다에서 지낼 요량으로 이미 집을 정리하고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위해 텅 빈 집에서 혼자 집필을 하기로 했다.
이 집에 그의 학창시절 친구인 노노구치가 찾아온다. 노노구치는 원래 교사였지만 두해 전 사표를 내고 전문적으로 아동문학을 쓰는 전업 작가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히다카다.
노노구치가 히다카의 집에서 나와 저녁 6시경 집에서 출판사 사람을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하던 중 히다카의 전화를 받았다. 히다카는 노노구치와 상의할 문제가 있다며 집에 들러줄 것을 요청한다.
약속한 시간에 히다카의 집에 이르자 누군가에 의해 둔기로 머리를 치고 전화기 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 노노구치는 히다카의 부인과 최초의 목격자가 된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자기의 체험을 글로 적어두기로 했다. 그도 아동문학작가이므로 글을 꾸미는 솜씨는 일가견이 있었을 것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 가가 형사가 투입된다. 가가 형사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주변은 물론 노노구치를 찾으면서 하나씩 탐색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살인자는 너무 쉽게 드러난다. 다름 아닌 노노구치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이로써 사건은 싱겁게 막을 내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가가 형사는 살인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왜 죽였을까. 노노구치의 기록이나 말은 어딘가 허점이 드러난다. 가가 형사는 진짜 의도, 즉 순은 동기를 찾아 나선다. 결국 이야기는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중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탐문 수사를 하면서 하나씩 퍼즐을 맞추어 간다. 따라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옮겨 다닌다.
그 과정에서 노노구치의 기록과 가가 형사의 기록과 독백이 서로 교차되면서 하나씩 실마리가 풀려간다. 가가 형사의 논리적으로 치밀한 기록과 노노구치의 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글 양쪽을 작가는 거침없이 이어진다.
동기를 숨기려는 자와 이를 밝히려는 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 소설의 뼈대가 되고 있다. 노노구치의 기록이나 대면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그와 히다카 부인의 불륜, 그리고 그 사실은 히다카가 알았다는 것이 살해 동기라고 했다.
살인은 처음에 미수에 그쳤는데 그일로 인해 자기는 히다카의 덫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의 고스트라이터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니 그의 발표작들은 사실 모두 자기가 쓴 것이라는 것 등이 중첩되어 히다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살해를 한 것이라고 했다.
살인 미수에 그쳤을 때 사용했던 나이프도 발견되었고, 살인을 했을 때 그 정황을 분명히 알려줄 CCTV도 확보되었다. 그러나 가가 형사가 보기에 여전히 그의 진술이나 기록은 범행의 동기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는 그 동기를 확인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계속한다. 히다카의 부인인 리에와 출판사에서는 모두 고스트라이터라는 말에 부정적이다. 증언을 한 옛 중학교 친구들은 히다카는 제법 정의감이 있는 친구인 반면, 노노구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그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지오 마사야의 성폭행에 관련된 사진의 실체도 확인했다. 결국 가가 형사가 밝혀낸 살인사건의 진실은 노노구치의 선의를 가장한 <악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래전 중학교 시절 있었던 치욕스런 일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 치욕스런 과거가 자칫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 발행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히다카의 명성에 대한 시샘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상당한 그의 소설이 몽땅 실은 자기가 쓴 것으로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살인미수 사건으로 히다카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으며 그 때문에 고스트라이터 노릇을 했다는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을 위해 그는 대학노트에 자필로 습작한 것 같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치밀한 가가 형사는 노노구치의 기록이나 진술을 하나씩 반박해 나갔다. 책을 덮으면서 노노구치의 <악의>와 그 전개과정이 전율케 한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 덕분일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시공을 넘나들며 사건의 흔적과 장치들을 마련해 숨겨놓았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 겪었을 학교폭력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읽으면서 그저 간과했던 사실들이 뒤에서 중요한 논리의 고리 역할을 하는 바람에 책을 다시 뒤로 돌려보는 번거로움을 수차례나 했다. 어떻든 그 바람에 코로나로 인한 무력감을 한동안 잊을 수 있었다. 그게 아마도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