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Rule
2005년 5월 31일,제주 중문C.C. 5번홀 티잉 그라운드에는 '맞바람이 강할 땐 자존심을 버리고 과감하게 긴 클럽을 선택하세요'라는 안내문이 걸리고,이 5번 홀(파3)은 엄청 센 바닷바람으로 정상적인 샷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또 한 번의 티샷 기회를 주고 플레이어가 두 개의 볼 중 하나를 선택하여 칠 수 있게 했는데,이것이 세계 최초의 윈드 멀리건(Wind Mulligan)이라 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를 좋아하다 보니 별것이 다 등장하여 한국인의 비상한 머리를 내외에 선전하게 된 것까지는 좋으나,어쩐지 찜찜한 구석이 있군요. 바닷 바람이 우리보다 심한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나 오전 오후 바람이 불 때와 안 불 때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미국의 페블 비치나 오거스타 내셔날에 윈드 멀리건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골프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 지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상태 그대로 대결해야 마땅합니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비가 오면 오는 그대로의 환경에서 즐겨야 하지 않을 가요? 골프 룰에는 영국 왕립골프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과 미국 골프 협회(USGA)에서 공인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과 골프장의 특수사정에 따라 해당 골프장에서 정하여 적용하는 것이 있습니다.뒤의 것을 Local Rule이라고 하므로 개념상으로는 International Rule과 Local Rule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는데,제주 C.C.의 윈드 멀리건은 로컬 룰에 해당합니다. 골프장의 특수 사정을 고려해서 로컬 룰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코미디언의 대화에서나 나올 법한 코리언 윈드 멀리건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아주 한국의 토속 냄새가 물씬 풍기는 코리언 룰이 또 하나 탄생한 것 같습니다. 골퍼라면 다 아시겠지만 한국의 아마 골퍼들에게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룰이 있지요.첫 홀에서의 "올 보기"와 멀리건,스트로크 플레이에서의 "Gimme퍼트"가 그것입니다. 초기에는 "올 보기"와 첫 티샷 멀리건에서 머무르는 듯 하더니 요즘에는 이왕 기분 좋게 할 바에는 한 사람이 파를 하면 나머지 모두 파로 하자는 소위 "일파 만파" 주장도 나오고,라운드 중 플레이어의 스코어를 봐 가면서 멀리건을 간혹 더 주고 받는 미덕(?)을 보이기도 합니다.물론 Gimme퍼트는 피아(彼我)간에 공평하게 게임이 끝날 때까지 주고 받습니다.묵시적(默示的)합의사항인양 말입니다. 멀리건과 홀 매치에서의 OK퍼트는 외국에서도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애용(?)되고 있는 것이지만,"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 두 가지 있다.하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멀리건을 받는 것이다(Harvey Penick,美 티칭프로)"라거나,"Gimme 는 퍼팅할 줄 모르는 두 패배자간의 합의(짐 비숍)"라고 하는 신랄(辛辣)한 비난이 있습니다. '올 보기'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통용되는 OK 퍼트는 우리 나라 아마추어 골퍼들 에게만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made in Korea 여서 International Rule,Local Rule 구분해서 'National Rule'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골프는 인간이 만든 에덴동산 같은 공원에서 펼치는 경기다.오감(五感)을 회복할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며진 공원이므로 골프장을 밟는 순간,우리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고 디팩 초프라(미,심신상관학 전문가)말했듯이 비기너 시절에는 플레이의 재미에 빠져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얼마나 많이 플레이하느냐 하는 라운드의 양(量)에만 관심이 있지,규칙이나 용어나 매너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지요.아니,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골프장 가는 연륜이 쌓이고 핸디캡이 낮아지면서 용어에도 신경을 쓰고 규칙과 매너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골프의 질(質)에 눈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린 밖에서 칩샷한 것이 홀인되는 것을 '넌 쓰루'했다고 감탄하면서도 도대체 원어 표기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지내다가,일본 골퍼들이 노 팬티 여성과의 섹스를 빗대어서 옷 벗길 필요없이 바로 홀인했다는 뜻으로 '노 즈로즈(no drawers)'했던 일본식 발음이 굴러 굴러 오다가 '넌 쓰루'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던 것이나,귀동냥으로 알아차린 대로 "모르간!"하면서 남 따라 인 심을 쓰다가 궁금증이 나서 사전을 찾아 보니 {Morgan:①남자 이름②말(馬)의 일종}이라고 밖에 다른 뜻이 없어 원어 알기를 포기하고 지내다가 어느 날 책을 읽다가,캐나다의 골퍼 친구들이 골프장에 갈 때 늘 Mulligan이라는 친구가 운전을 했는데 첫 티샷을 미스하는 경우가 많아 운전으로 인한 피로 탓이라고 여겨 그에게만 한 번 더 칠 수있는 기회를 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멋도 모르고 '모르간!'을 외치던 것이 쑥스러워 졌던 기억이 살아 있습니다. 멀리건이라면 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가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지요. 멀리건을 자주 쓰기로 유명해서 캐나다의 쟝 크리티엥 수상은 벌타 없이 다시 치는 볼을 "멀리건!"할 것이 아니라 "클린턴!"해야 된다고 했고,미국 역대 대통령의 골프 이야기 "First Off the Tee"의 저자 돈 반 나타 주니어는 빌(Bill)의 특허이니 "빌리건(Billigan)"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디서나 더블 보기까지만 플레이를 하지!"란 말을 남겨 트리플 보기 이상은 클린턴의 스코어 카드에 오를 수 없는 타수(打數)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인데,1994년 9월 보스턴 헤럴드의 칼럼니스트인 제리 캘러핸의 기사를 보면 어느 정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열흘 동안 계속된 선별된 공 위치들,그리고 무제한의 멀리건이 난무한 후, 드디어 월요일 TV 카메라에 나무와 그린 사이로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주특기를 행사하는 현장이 포착됐다.사기치기....저기 미국의 대통령이자 이 나라의 도덕적 지도자인 그가 3피트 짜리 퍼팅을 하고 있다. 방금 놓친 퍼팅과 똑같은 퍼팅. 두 번째 실패다.세 번째 시도에서 마침내 공은 홀 컵에 떨어지고, 기록표에는 클린턴이 다시 한 번 파를 한 것으로 기록된다. 우리의 위대한 대통령이여!" 클린턴은 퍼팅에서도 멀리건을 애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절제 하게 쓰는 멀리건은 예외로 하고 아마추어들이 첫 티에서 애용하는 멀리건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보고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규칙에 위반되지만,아마추어 경기자들에게 첫 티 멀리건은 더 즐거운 상황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일이다.정말 중요한 승부경기가 아닌 다음에야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멀리건에 동의한다면 경기에 해가 되지는 않는 요소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명 프로 게리 플레이어의 말입니다. 아마추어들의 친선 게임에서는 팀 메이트가 동의한다면 무방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주중에 업무에 시달리다가 주말에 쉬려고 골프장에 왔는 데 골프 코스를 어렵게 해서 주말 골퍼들에게 스트레스를 줘서야 되겠느냐? 플레이하기 쉽게 코스를 만들어라"라고 했다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철학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외국에서도 36홀 골프장인 경우는 프로 시합용과 아마 라운드용으로 난이도(難易度)를 구별해서 코스를 조성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첫 홀에서의 "올 보기"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의 "OK퍼트"도 아마 골퍼들의 더 즐거운 하루를 위해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뜻도 될 듯 싶은 데, 게리 플레이어의 견해(見解)는 어떨지 물어보고 싶군요. 홀 컵 지름을 지금의 4.25 인치에서 8 인치로 하자는 진 사라젠(프로)의 1930년대 '홀 컵 확대론'이 되 살아 날지도 모르겠고 프로 룰과 아마 룰로 구분하자는 새로운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첫 홀 올 보기","멀리건 주고 받기","스트로크 플레이에서의 OK퍼트"등 한국에서 통용되는 우리들만의 이러한 룰이 "National Rule"로 정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게리 플레이어 효과(Gary Player's effect)'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규칙이 무너지고 질서가 없어지면 게임은 재미를 상실한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우리들의 독특한 관행이 상품이 걸린 시합에까지 스며들어 질서가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2003년에 전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경력이 있는 어느 챔피언이 앞으로는 절대로 아마추어 챔피언 전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털어 놓은 사유는 이러했습니다. 어느 운동경기보다도 매너와 룰을 강조하는 것이 골프인데 언제부터인가 이를 무시하고 점수와 순위만을 우선(優先)하는 경향이 있어 아마추어리즘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그에 의하면 아마추어대회 전문 사냥꾼도 있다고 합니다.이들 사냥꾼은 한 팀이 되어 라이 개선과 스코어 조작을 서로 눈감아 주고멀리건 까지도 양해하면서 우승 상품과 트로피를 챙긴다는 것입니다. "스코어를 속이고 룰을 어기는 이런 타락한 아마대회 풍토 속에서 입상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탄식(歎息)입니다. 비록 동문(同門)이나 동료(同僚)들의 모임에서 하는 경기일지라도 상품이 걸리고 순위가 매겨지는 시합에서는 규칙이 엄격히 지켜지고 공정해야 재미가 있고 불평이 없습니다.규칙과 질서가 흐려지면 혼란이 오고 이것은 규칙과 질서를 지키면 손해 라는 생각을 모든 사람이 갖게 되어 더 큰 혼란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일으킵니다. "골프 규칙에 관하여 정확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스포츠맨쉽이 없는 사나이라는 평을 듣기 쉽다(패트릭 캠벨)"는 말이 골프 선진국에도 있는 것을 보면 규칙을적당히 어기면서 골프를 즐기자는 풍토는 서구(西歐)에도 없지는 않는 것 같은 데규칙과 질서를 어기는데 관대한 것이 사나이 다운 좋은 매너라고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순위를 다투는 시합에서는 그것은 무례(無禮)이며 그렇게 하는 본인은 넓은 아량(雅量)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 받는다고 착각할지 모르나 그런 행위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평가 절하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개 그 날의 스코어가 나쁜 사람이 OK,Mulligan에 더 관대한 척 하는데 이것을 뒤집어 보면 자기에게도 관대한 처분을 내려 달라는 뜻이겠지요.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 한 홀 최다타 기록은 161타입니다.그것은 1912년 미국 펜실바니아에서 있었던 여자 초청 골프대회 예선전에서 존 F. 미란이라는 골퍼가 세운 기록입니다.그녀는 126야드 파3 홀에서 티샷한 볼이 코스를 가로 질러 흐르는 시냇물에 떠내려가자 선수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편에 이끌려 보트를 타고 따라가서 2.4Km 지점에 멈춰 선 볼을 간신해 해저드 밖으로 처내고 숲을 가로 질러 치면서 원 위치로 돌아 오느라 161타를 소비했던 것입니다. 이 기막힌 사연은 원칙에 충실 하려는 갸륵한 마음에서 나오긴 했어도 해저드 처리하면 되는 룰이 있는 데도 고집스럽게 하느라고 다른 플레이어에게 폐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결코 칭찬 받을 만한 골퍼의 자세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원칙에 충실함이 너무 넘쳐도 곤란하지만,골프가 인기 있는 레포츠가 되고 이렇게 번창한 것은 규칙과 예절을 지키려는 매너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판이 없는 운동 경기는 골프 뿐입니다.심판이 없이 플레이어 스스로가 심판을 해야 되는 골프 게임에서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공정성이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면 과연 골프가 매력있는 스포츠가 되겠습니까? 게리 플레이어는 중요한 승부 경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동의 아래 기분 좋게 골프를 하기 위해서 한 번쯤 규칙을 어기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고 했지만,규칙과 원칙을 지키는 데에는 '적당히'란 있을 수 없습니다.산처럼 튼튼한 댐의 제방(堤防)도 조그만 쥐구멍으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기술한 어느 아마추어 챔피언의 탄식이 어쩌면 한국 아마추어 골프의 위기 (危機)를 알리는 경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때 Korean Time이 한국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일이 있었는데,골프장에서 굳어 져 가는 이런 현상이 'Korean Rule'로 또 다시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로 살아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PGA와 LPGA에서 우리 나라 선수들이 돌풍을 일으켜 세계의 주목을 받고 회원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영국 Royal and Ancient Golf Club의 한국인 회원도 탄생한 터에 명예롭지 못한 레벨이 한국 골퍼에 붙어서 야 되겠습니까? 적어도 시합에서 만이라도 규칙을 지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月刊 Import 2005년 11월호 揭載) ☞쉬어가는 19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