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원고 편집의 하루
2014년 3월 27일(목)
* 상경(上京)
서울에 있는 종회 회관에 가려고 집을 나서기 전에 오미자를 우려낸 물을 마셨다. 기관지 확장증으로 가래가 생기고 호흡에 장애를 느껴 약을 먹고 있는데, 마누라가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 오미자를 사왔다.
공덕행 경의선 전철을 타기 전 능곡역에서 미리 소변을 보지 못했다. 전철 안에서 소변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도중에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역에서 하차하였다. 허겁지겁 2층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 소변을 보았다. 6호선 전철을 환승하고, 6호선 청구역에서 하차하여 화장실을 찾아 소변을 보고, 5호선으로 환승하여 장한평역에서 하차하자마자 또 소변을 보았다.
70이 넘은 나이에 오는 증상이려니 하고 무심하게 지냈다. 족보 편집에 과민한 탓은 아닌가?
* 16번 한형(漢亨) 후손 수단 유사 동준(東俊)과 생면 인사
10시 반에 장한평역 2번 출구 안에서 기다렸다. 종친으로 처음 생면하는 천안시에서 오는 동준(東俊)을 만났다. 매우 반가웠다. 안양시에 사무소가 있는 동명(東明) 법무사 형님이 족보 편찬 총책을 맡아 고생한다며 300매를 제작해준 내 명함을 건네주고, 명함 뒤에 있는 우리 선조 내용을 설명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단국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했고, 현재 천안시 체육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단다.
아직 초봄이건만 평년 보다 기온이 높아 초여름 같은 날씨이었다. 둘이서 장한로(長漢路)의 인도를 가다가 장안현대벤처빌오피스텔에서 좌회전하여 한천로(漢川路) 24길을 걸어갔다. 분철한 족보와 동준에게 줄 책자를 넣은 손가방을 들었다. 반곡 빌딩 종회 회관 5층에 있는 종회 사무실까지 약 15분 간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절절한 염원을 가지고 한형(漢亨) 자손을 찾느라 애먹은 사연을 말했다. 어려서 아버지 휘 태제(泰濟)를 모시고 반곡리로 세일사(시제)를 지내러 간 적이 있었단다. 의제(義濟) 아저씨를 잘 안다고 하기에, 그 분은 돌아가셨고, 내가 의제의 가운데 조카인데, 선친이 작은아버님을 중매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반곡리가 수용되었을 때, 총회를 여러 번 했었는데도 몰랐었느냐고 물었다. 연락을 못 받았단다. 많은 종친들이 연락하지 않았어도 전국에서 어떻게 알고 보상에 관하여 협의하는 총회에 왔었던 사실을 말했다. 보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그 때 상황이 벌써 만 8년 세월이 흘렀건만 뚜렷하게 머리를 스쳐갔다.
종중에 관한 얘기를 하며 지루한 줄 모르게 11시에 사무실에 닿았다. 사무실에 있는 성환(星煥) 총무와 지환(知煥) 8번 한붕(漢鵬) 수단 유사에게 동준을 소개했다.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2011년과 2012년에 제작한 세일사 봉행 자료를 펼치면서 종중 역사와 선조 계보를 설명했다. 한형(漢亨) 후손의 수단 유사를 맡아 명단을 작성하게 되는 노고를 부탁하고, 작성 방법을 설명했다. 장조카 명환(明煥)이 서울 사당동에 산다기에 서울 종친계 모임에 참석을 권하라고 말했다. 동건(東建)의 대전광역시 교육감 출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동건(東建) 명함을 몇 장을 주면서 대전시에 있는 친지들에게 홍보하라고 부탁했다.
동준, 성환, 지환과 함께 12시 조금 전에 1층 다복 식당으로 가서 황태 전골로 점심 식사를 했다. 족보 편찬 운영비에서 점심값을 지불했다.
점심 후 직장에서 바쁜데 시간을 내어 왔다는 동준은 갔다.
이렇게 참판 공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 앞에 쓰는 말) 해인(海仁)의 후손을 모두 찾아 족보 편집을 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
* 8번 한붕(漢鵬) 후손 신청서 검토
점심 후에 동준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5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지환(知煥) 수단 유사가 작성한 8번 한붕 후손 신청서 내용을 검토했다. 수단 유사를 맡아 추진하느라 고생했다는 여러 이야기와 여러 사연을 듣고, 자손이 많아 수고 많았다는 감사의 말로 응답하여 위로했다.
족보를 안 하겠다는 종친이 있는데, 00이란다. 옛 족보를 보니 아버지 휘 00가 6·25 동란 중 전사한 후에 어머니는 개가한다고 어린 자식을 떼놓고 뒷재 고개를 넘어 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이 아팠다. 부모 없이 자란 그는 성장하여 결혼하고 아들 삼형제를 두었고, 반곡리(盤谷里)가 수용되기 전에 이장(里長)을 맡아 봉사했었다. 사연을 이해하고, 시간이 걸려도 어려워도 최종 내가 설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손이 많아 다른 계파 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지만, 창성한 자손들을 보니 흐뭇했다. 검토하면서 말을 계속하여 갈증이 생겨 냉수를 마셨더니, 소변을 자주 보러 다녔다. 선환(善煥) 위원장은 비뇨기과에 가서 진찰 받고 전립선 약을 먹으라고 권했다. 3시 반 경에 끝난 후 미비 내용을 보충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지환은 먼저 갔다.
이어서 선환(善煥)이 작성한 휘 한붕의 후손 중 춘제(春濟) 자손 명단을 점검했다.
점검이 끝난 후, 선환 위원장과 성환 총무와 함께 현재까지 일어난 족보 편집의 문제점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족보 주문자 수를 대략 조사하니 약 70질(帙·세트)로 예상되었다. 부회장 인환(寅煥)이 사무실에 갖다 놓은 경주 김씨 전서공 세보(1983년 편찬 간행)를 펼쳤다. 셋이 함께 청주 감사공파의 한(漢) 자(字) 항렬 자손 수를 세어 보니 93위(位)이었다. 참판공의 한(漢) 자(字) 항렬 자손 수는 23위(位)이니, 우리의 4배이다. 청주 감사공파에서 이미 대전광역시에 있는 회상사(回想社)에 족보 인쇄를 주문해서 초안을 인쇄했다. 최소 기본 주문량이 500질에 5천만 원이란다. 그 500질 중에서 우리 종회에 100질이 배당된다고 하면, 우리 종친들이 주문하는 예상은 터무니없이 적을 테니 걱정했다.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고 했다. 성환 총무는 치상(致祥) 소 종회에서 50질을 구입하는 것으로 구상하자고 제안하였다.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종중의 역사적 사업에서 이렇게 닥치는 난관을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 귀가(歸嫁)
4시 반에 선환이 직장에 출근하려는 승용차를 타고, 5호선 전철 장한평역 가까이에서 하차하여, 전철을 승차하고, 공덕역에서 17:30 발 문산행 경의선 전철을 가까스로 환승했다.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 경로석 좌석에 앉아 일에 지쳐 피곤한 몸으로 눈을 감고 동공(瞳孔) 운동과 괄약근(括約筋) 운동을 했다.
집에 오니 6시가 지났다. 2월 23일에 성남시 정자동에서 큰딸 태선이 이사하는 날에 갔다가 잘못 걷다가 넘어져, 오른쪽 발의 골절로 통 깁스를 해서 아파트 옥내에서도 주방 의자를 기대어 밀고 다녀 고생하는 마누라를 보니, 남편을 기다렸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신라 왕조 때 세웠다는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전설이 생각났다. 석가탑(釋迦塔)은 일명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엔 아사달과 아사녀라는 백제 왕조의 석공(石工)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얽혀 있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다.
전화로 만리장성 식당에 짬뽕을 주문해서 저녁을 때우고, 8시 반 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앞으로 30년 후, 아니 영원히, 후손들이 열어 볼 족보를 편집하는 하루가 이렇게 바쁘고 피곤했지만 보람 있게 지났다. 성경 시편 126편 5절과 6절을 되새겼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者)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者)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穀食)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5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6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
첫댓글 종친님, 안녕하십니까?
꽃 피는 사월이 가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입니다.
참판공파(반곡) 족보 편찬 총책 동윤(東潤)입니다.
족보 편집의 원고를 작성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왕래가 없어 소식을 모르던 종친을 찾아내고,
족보 편찬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종친을 설득하고,
잘 몰랐던 선조의 인적 사항을 정확하게 조사하여 전화나 메일로 말해 주자니,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족보 편찬의 의의(意義)는
1차적으로 조사 기록이지만,
2차적으로 종친 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족보 편찬에 현로하심에 경의를 표하옵고 감사드립니다. 이런 일 저런 일 어려움도 많고 힘 드셔도 보람 있고 후세에 길이 빛나는 일을 하시니 끝머리에 올리신 성경구절대로 추후 반듯이 기쁨으로 그 곡식의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외람되게도 확신하고 싶습니다. 허나 신외 무물이고 건강이 유지되셔야 일도 계속 하십니다. 반듯이 바로 좋은 비뇨기과에 가셔서 진찰받으시고 먼저 치료를 하시면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먼저 치료하시기를 권하면서.....여는 전화 위계입니다.
容郁 謹記.
용욱 고문님, 감사합니다.
소생의 건강을 염려하시어 조언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곧 비뇨기과 의원의 진료를 받고 건강을 유지하며 종사에 힘쓰겠습니다.
특히 전화로 정성 어린 말씀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