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치 일기! 50년 외길 이발사! 서점 44년! 부산진구는 역사가 빈약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말 가운데 하나다. 심하게는 이런 말도 들린다. 부산진구에 역사가 어디 있냐고. 그러나 웬걸. 부산진구 역사가 보기보단 야물고 딴딴하다. 그게 지난 연말 입증되었다. 사람들 의표를 찌르고선 부산진구가 우뚝 서고 서면이 우뚝 섰다.
지난 해 가을 부산시는 부산 기네스를 공모했다. 직할시 승격 50주년 올해를 앞두고 펼친 기념사업 하나다. 부산에서 역사가 오래 된 것, 짚고 넘어갈 만한 것, 부산다운 가치를 내보이는 것 등등을 대상으로 시민 추천을 받은 것. 시민들 호응이 좋아서 모두 2백87건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100건이 부산 기네스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100건 가운데 1위를 부산진구가 차지했다. 4위와 7위도 부산진구에서 나왔다. 10위권 안에 무려 3건이나 차지하면서 부산진구 위상을 한껏 높인 것. 부산시 16개 자치구군 가운데 10위 안에 들지 못한 구군이 여럿일 텐데 3건이나 나왔으니 큰소리쳐도 꼬투리 잡을 사람이 없게 됐다. 부산진구 역사가 이러니저러니 호사꾼들 입이 쏙 들어가게 됐다.
`소 한 마리 12,900원!' 기네스 베스트 원은 개금3동 권정학(71) 선생. 1957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 분이다. 55년 일기장 분량이 대학노트 42권 분량이다. 연도와 사건 별로 목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만 해도 A4용지 6장이다. 부인 석점분(73) 여사 말로는 몸져누워 있으면서도 일기 쓰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일기장에 1963년 소 값이 적혀 있다. 요즘 시세로 한우 한 근 값이다.
4위는 영광도서(대표 김윤환). 단일 독서토론회로는 최다 개최 실적을 보유한 영광독서토론회가 선정됐다. 1993년 처음 연 이래 작년 9월까지 158회를 개최했으니 뚝심이 대단하고 문화 사랑이 대단하다. 1968년 1.5평 가게에서 시작해 이젠 1천 평 어엿한 대형서점이다. 국내 대형서점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서점이란 타이틀도 달고 있다. 부산진구를 빛내고 부산을 빛내는 영광도서에 박수를 보낸다.
강봉원 선생 외골수 인생도 10위 안에 들었다. 7위! 전포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한 지 작년부로 50년이니 들 만하다. 강 선생이 이용사 면허를 딴 건 만 스무 살인 1962년. 당시는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이라 면허는 경남도지사 명의다. 이것만 봐도 직할시 승격은 부산시민에게 기념할 일이다. 불우이웃돕기에 힘써 내무부장관상과 부산시장상을 70년대 받았다. 지금도 매달 경로 무료이발 봉사를 한다.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도시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어요." 기네스 면면은 다양하다. 유명인사 사인이 1만 장이 넘는 `최다 사인맨', 1년간 마라톤 풀코스 106회 완주자, 100년 된 풍금, 나무 나이 1천3백년 느티 등등. 참, 민원서류 발급 건수와 액수가 부산 최다인 부전1동 주민센터도 기네스다. 시청 담당공무원인 평가담당관실 안청자 씨 평가대로 시민이 곧 도시고 시민의 삶이 곧 도시의 역사인 것을 확인한 기네스 공모였다.
선정된 100건은 현재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체계적으로 집필 중이다. 집필이 끝나면 부산은 물론 부산진구 과거와 역사가 도드라지게 돋보일 듯. 선정되진 않았지만 어느 누구든 살아온 이력이 있을 터. 자기의 이력에서 기네스를 선정해 보는 건 어떨까. 내 개인적으론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 마신 것. 그건 2위고 1위는 따로 있다. 1위는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 안 마신 것!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