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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진미령에 대한 추억(1) _ _ 유승엽
제가 가수들 하고는 식사도 안하는 성격인 데 유일하게 술을 몇 번 먹어 본적이 있는 가수가 진미령 씨 입니다. 1979년 봄 즈음에 소녀와 가로등을 부른 가수 진미령씨 한 테 전화가 왔습니다. 한번 도 본적이 없었는데 만나보니 얼굴이 조그마하고 성격은 활달한 것 같았는데 MBC 일일 드라마 주제가를 부르기로 했는데 작곡을 부탁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드라마 주제곡을 가요로 만들어 히트 시키겠다는 생각을 못할 때였는데 한번 시도 해 보기로 결정하고 방송국에 갔습니다. 제목은 “하얀 민들레” 라는 일일드라마로 극본은 그 당시 사극 드라마에서는 독보적인 신봉승 선생님이 처음으로 쓰는 현대물 드라마 였습니다. 시놉시스 하고 주제곡 가사를 받아보니 역시 신봉승 선생님의 가사가 마음에 금방 와 닫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혼자서 가사를 써서 곡을 만들었던 관계로 남의 글에 곡을 만든 것은 처음 이였는데 한번 해 보기로 하고 방송관계자에게 언제까지 만들어 오겠다는 약속 을 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화곡동 에 작은 집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방 두개짜리였습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 처에게 내가 지금부터 작업을 하니 나를 부르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오선지와 볼펜 그리고 방금 방송국에서 받아온 가사를 펼쳐놓고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원래 작곡 작업에 들어가면 내 나름대로의 명상의 시간을 갖고 몇 분은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들어오는 차 안에서 가사를 다 외웠기 때문에 곧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가수를 머릿속에 떠 올리며 기타를 들고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에 첫 소절부터 음을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 어릴 때 철부지로 자랐지만... ” 우선 천하의 신봉승 선생의 가사이기에 글 자체에 음률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듯이 그냥 곡이 흘러나와 끝마치고 나서 시간을 보니 대강 10분 정도 걸린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믿거나 말거나 10분만 에 “하얀 민들레” 라는 곡이 태어난 것이지요. 제 처가 들어가서 몇 번 기타를 치더니 금방 나오는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금방 나오느냐? 라는 표정으로 요.. 그래서 저는 말했지요.. 응! 금방 끝났어.. 그래서 한번 들어보라고 들려주었더니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하긴 가난한 작곡가 생활을 하려니 항상 쪼들리는 생활비가 항상 걱정 인 마누라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빨리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은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니 참 여러 가지로 미안 하였지요. 그래도 작곡을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었으니 그저 남편이 방에 들어가서 금방 한곡 써서 나오니 돈이 좀 생기려나하고 좋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저작권이 많이 보장이 되어서 한곡만 히트를 치면 많은 수입이 들어와 풍족한 생활을 보 장 받지만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어서 방송에 아무리 자기 곡이 나와도 한 푼도 받지 못할 때였습니다. 만약에 그때 “밤차” “제비처럼” 처 럼 방송에 많이 방송 되였다면 큰 돈 을 벌었을 테지만... 그때는 꿈도 못 꿀 때였고 그냥 음악이 좋아서 할 수밖에 없던 때였지요.
저는 이곡을 음반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녹음실을 예약했습니다. 마장동에 있는 그 당시에는 유일한 대중가요 녹음실 이였는데 한 프로 가 한 세시간정도 쓰고 지금 돈으로 한 50만 원정도 내는 그런 녹음실 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녹음실 을 한 프로 빌려 대강 12곡정도 녹음에 들어갈 때였는데 연주인들 한명 당 지금 돈 으로 30만원에서 40만 원정도 개런티를 주고 녹음을 할 때었습니다.
거기에 편곡료 로 한 백 만 원 정도 주어야 했으니 대강계산하면 연주곡만 들어가는 한 프로 에 연주자 10 명을 계산하면 녹음실, 편곡료, 연주료, 등 대강 합쳐 지금 돈으로 오백만원 정도가 들어갔지요. 대충 연주곡 12곡에 한 곡당 40만 원정도가 들어가는 셈이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12곡을 3시간 안에 들어갈려니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였지요. 그래도 그 당시 에 히트를 친 많은 곡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태여 났지요.
나훈아, 남진 등 그 시절 히트를 친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이런 녹음 과정을 거쳐 태여 났습니다. 물론 음반사에서 그 비용을 들여 취입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신인 가수들은 자신이 비용을 들여야 했던 시절 이었지요. 많은 신인가수들이 시골에서 부모님이 땅 팔아 보낸 돈 으로 무지개를 찾아 모여들 때였지요. 지금은 기획사들이 많이 생겨 거의 기업 이 돼있지만 그때는 호랑이가 담배 먹던 그런 시절 이였습니다. 그래서 신인 가수들이 부모님이 어렵게 만들어준 돈으로 취입하고 음반 사진을 촌스럽게 만들어 음반을 만들면 음반 사 사장이 홍보해준다며 그 귀한 돈을 거의 갈취 하다 시피 하여 자기 회사의 대표 가수를 키웠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도 유명가수가 되어있는 T. S. 등 홍보 부분에는 거의 귀재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이였는데 지금도 그들은 건재 한 것을 보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악화 와 양화 같은 그레샴의 법칙과 비슷하지요. 지금도 그 두 사람들이 같이 나오는 광고를 보면 참 징그럽습니다. 저는 그 광고만 나오면 다른 채널 로 돌립니다. 방송 관계자들 도 반성 할 점이 많습니다. 그저 안일하게 방송 프로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지만은... 모두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우리나라의 문화를 책임지는 사람들이지만 몇 년 음악 프로 연출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풍토에 물들어 말도 않되 는 음악들을 마구잡이로 틀어 대중들을 혼란시킵니다. 물론 음악 이라는 것이 어떤 기록경기 도 아니고 계체량을 하여 출전시키는 시합도 아니니.. 자기의 재량으로 또 주변 분위기로 선곡을 하게 되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몇 십 년을 방송에서 버젓이 활동 하는 불가사의한 현실 앞에 두 사람 을 보면 그것은 공중파 연출자들의 직무 유기입니다. 그 귀한 공중파의 위력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을 보면 그거야 말로 공해입니다. 캐나다 에서 골프를 칠 때였는데 어떤 분이 운동 뒤에 술 한 잔을 하면서 저에게 청탁을 하 는 거였습니다. “저기 유승엽 씨 하나 부탁합시다. 네, 뭡니까 ? 저기 혹시 작곡가 이 시니까 방송 관계자를 잘 아시 나요? 네.. 잘은 모르지만 몇몇 분은 압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내가 부탁하나 드리겠습니다.
T. 라는 가수와 S 라는 가수 가 있지요. 그 두 사람들 제발 방송에 그만 나오게 할 수 없겠습니까? 왜 그러시는 데요? 저.. 우리 교포 들은 고국에 있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향수를 달래는데 제 가 듣기에는 노래도 별로인 이 두가수가 너무 방송에 자주 나와 미치겠습니다. 다른 프로를 볼 수 없는 비디오 로 보아야 하는데 채널을 돌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이 두 사람의 노래를 계속 들어 야 하니 견딜 수 가없습니다. “ 저 는 이 분의 말씀을 듣고 참 부끄럽기 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그 막강한 방송을 장악하고 막 무가네로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오죽 하면 저 에게 이런 부탁을 했겠습니까?
- 하얀민들레 -
신봉승. 사 / 유승엽. 곡 / 진미령. 노래
1. 나 어릴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오~오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2. 나 옛날에 사랑을 믿었지만 지금은 알아요 믿지 않아요
눈물이 아무릴 쏟아져와도 이제는 알아요 떠나는 마음
조용히 나만 혼자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오~오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