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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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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높이는 106m이다. 백마강(白馬江:錦江) 기슭에 있다. 이 산은 평지에 두드러진 잔구(殘丘)로, 예로부터 고도(古都) 부여의 진산(鎭山)이 되어 왔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고 할 만큼 낮은 산이다.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부소산성터·군창지(軍倉址)·영일대(迎日臺) 터·송월대(送月臺) 터 등 백제 때의 유적이 남아 있고,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비루(泗 樓)·영일루(迎日樓)·반월루(半月樓)·백화정(百花亭) 등이 있다. 백화정 바로 밑에 삼천 궁녀가 푸른 강물에 몸을 날린 낙화암(落花岩)이 있고, 강기슭 가까이에 고란초로 이름난 고란사(皐蘭寺)가 있다. 그 밖에 부소산 남록 입구에 성충(成忠)·흥수(興首)·계백(階伯)의 3충신을 모시는 삼충사(三忠祠), 땟쨌골에 삼천 궁녀의 원혼을 위로하는 궁녀사(宮女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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