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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8코스
섬진교-월길제방-돈탁마을-섬진강끝들마을-진월정공원-진월초등학교
20220126
1.아침 빛 광양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
전날 47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섬진교 동쪽 입구에 다시 왔다. 아침 6시 50분이 넘었지만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듯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쫓아내고 있다. 준비를 마치고 주변과 하동송림공원을 내려본 뒤 47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섬진교 앞에서 48코스를 출발한다. 섬진교 동쪽 입구에는 47코스 안내도만이 세워져 있고 48코스 안내도는 없다. 섬진교를 건너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신원회전교차로 앞으로 넘어왔다. 회전교차로 뒤 산에는 광양을 홍보하는 조형물에 '젊은 교육도시 광양, 아이 양육하기 좋은 광양'이라는 표어가 불빛에 반짝이며 길손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신원회전교차로 앞에 48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안내도에는 48코스에 포함되지 않는, 북쪽 3km 지점의 광양매화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48코스에 포함되는 장소를 안내하면 더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품으며 48코스 안내도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며 오른쪽 섬진강둔치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섬진강 서쪽 광양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하동공원의 섬호정과 어제 걸었던 하동송림공원이 동터오는 여명 속에서 모습을 보여준다. 섬진강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경전선의 폐선된 섬진철교와 그 바로 남쪽에 새로이 건설된 경전선 복선 전철 섬진철교가 불빛을 반짝이며 길손을 부른다. 그 맨 뒤로는 어제 힘겹게 47코스를 걸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금오산이 붉은 아침노을이 번지는 속에서 솟아 있다.
빛 光, 볕 陽, "빛(光)은 만물을 낳게 하는 기운을 가졌고, 볕(陽)은 만물을 성장하게 하는 기운을 가졌다." 그 빛과 볕의 고장 전라도 광양(光陽) 땅으로 들어왔다.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는 광양에 와서 광양을 예찬하는 시를 이렇게 남겼다고 한다. "복숭아꽃 떨어져 물 위로 흐르는 계절 쏘가리는 살찌고/ 한식(寒食) 지나 봄바람 불어오니 고기가 모래 위에 뛰노네./ 백성들이 살기 좋은 으뜸으로는 조선에서 전라도 땅이요/ 전라도에서 광양(光陽) 땅이요 광양에서는 성황(城隍)이라네."
빛과 볕이 지상에 잔치를 준비하는 겨울 이른 아침, 매화꽃잎 섬진강 물 위에 떠흐르는 봄날의 풍경을 상상하며 섬진강을 따라 걷는다. 남파랑길 48코스는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는 길, 그 길은 진월면(津月面) 선소리(船所里)까지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하동포구 80리길이 이어지고 섬진강은 동쪽으로 동그랗게 넓은 모래밭을 만들고 낮은 언덕으로 이어진다. 섬진강 서쪽 광양의 강변은 비교적 직선으로 이어지면서 모래밭이 좁고 강변의 언덕이 높아 마을은 강과 멀리 떨어져 있다. 모래밭이 넓고 둔치가 형성된 월길리 강변에서도 마을은 강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여러 부두가 형성되지 않았고, 중도마을 둔치에는 초원을 자연 상태로 두었다. 오사리 돈탁마을이 섬진강과 비교적 가까이 형성되었지만 둔치에는 체육공원을 조성하였을 뿐이고, 체육공원 끝자락에 사평나루가 옛 추억을 되살리며 초라하게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섬진강 서쪽 광양에서는 섬진강과 관련한 어업활동이 돈탁마을어촌계와 오추마을어촌계만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인지 섬진강 부두는 하동 섬진강변에 발달해 있고, 국가중요어업유산 7호인 하동·광양 재첩잡이 손틀어업도 광양 쪽보다는 하동 쪽에서 더 성행하는 듯이 보였다. 대신 광양 섬진강변 마을은 광대한 비닐하우스 농사가 번성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아래를 지나서 진월면 신아리 신답마을 앞을 거쳐 선소리 선소마을로 넘어왔다. 섬진강 하류 진월정공원 앞 남파랑길 49코스 안내도가 있는 곳이 48코스 끝지점인 줄 알았으나 49코스 시작점 표지물은 진월초등학교 정문 앞 전봇대에 붙어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을 모른 채 진월정에서 섬진강 하류 망덕포구를 굽어보며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강바람인 듯 갯바람인 듯 바람은 포구에서 불어오고, 오전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었다. 남해 바다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나루 津, 달 月, 진월정에 둥근 달이 떠올랐다. 밤하늘에 둥근 달이 떠있는 모습을 보는 환상에 젖는다. 하늘에 달이 뜨고 강물에 달 그림자 비치는 그림이 그려진다.
前波齎去後波撞(전파재거후파당)/ 앞 파도가 지나가면 다른 파도가 철썩이고
萬斛眞珠倒瀉缸(만곡진주도사항)/ 수만 개의 진주가 항아리에 쏟아진다.
方丈仙人知不遠(방장선인지불원)/ 지리산의 신선이 가까이 있기에
月明笙鶴下空江(월명생학하공강)/ 신선이 피리 불며 학을 타고 빈 강으로 내려오는구나.
-완재(緩齋) 박현모(朴賢模)(1880~1963)의 <희양 10경(曦陽十景)> 중 '蟾江秋月(섬강추월, 섬진강의 가을달)'
2.걸은 과정
경남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전남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를 이어주는, 섬진강의 다리
섬진강 동쪽 하동읍 광평리의 '뫼비우스의 계단'이라고도 불리는 '약속의 계단', 뒤 왼쪽 붉은 사각 액자는 옛 섬진교 교명주(橋名柱)에 설치한 '기억의 벽' 유리에칭 조형물이다.
신원회전교차로 뒤쪽 산에 광양을 홍보하는 조형물 '젊은 교육도시 광양, 아이 양육하기 좋은 광양' 표어가 설치되어 있다.
유명한 광양 매화마을은 북쪽으로 3km 지점에 있고, 남파랑길은 오른쪽 섬진강둔치 방향으로 돌아나간다.
신원회전교차로에서 섬진강둔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와서 뒤돌아본 모습. 조형물의 '젊은 교육도시 광양, 아이 양육하기 좋은 광양' 표어가 아침의 활력처럼 빛난다.
뒤쪽에 경전선 폐선된 섬진철교, 그 뒤에 무지개 모양의 경전선 복선 섬진철교, 그 뒤쪽 중앙에 금오산이 보인다.
붉은 아침노을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른쪽 끝에 하동의 금오산이 보인다. 왼쪽 섬진강변에 '하동송림'이 어둠에 묻혀 있다.
다압면(多鴨面)의 '다압(多鴨)'고을 이름 유래는 1789년경 당시 제일 큰 마을이었던 다사촌(多士村)과 압척촌(鴨尺村)의 첫글자를 따서 '다압면(多鴨面)'이라 명명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따라서 '다압(多鴨)'이란 지명이 뜻하는 바는 다사(多士)의 '선비가 많이 나는 고을'이란 의미와 압척(鴨尺)의 '오리가 많은 고을'이란 의미가 합쳐 '선비가 많이 배출되고 오리가 많은 고을'이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 다압면사무소에서
남파랑길 48코스는 섬진강 자전거길 광양 구간을 따라 남진한다.
"무등암은 1959년에 이곳에 살던 홍사육씨가 암자를 건립하여 유지해 오다가 1962년부터는 쌍계사의 말사로 소속되었으며, 이후 점차로 건물을 중건하여 현재의 관음전, 삼신전, 석굴전, 종각, 그리고 요사채 2동과 최근에 세운 석탑이 들어서 있다. 현재 종파는 조계종에 속해 있으며 주지는 최병호 스님이 맡고, 신도는 인근 다압과 하동 등 800명 정도이다."
무등암은 무동산 오른쪽 위의 불암산 이름을 가져와 현재는 불암사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저곳에서 섬진강을 조망하는 풍경이 멋지다고 하지만 올려만 보고 지나친다.
2016년 7월 14일 경전선 폐선된 섬진철교를 하동군에서 관광랜드마크로 개발하여 2019년 7월 26일 '알프스 하모니철교'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종합안내판과 '맹고불고불길'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수령 240년의 팽나무가 오른쪽에 자라고 있다.
진월제방-오사제방 구간을 직접 디자인하고 사업비를 지원한 맹형규 前 행정안전부장관의 뜻을 기려서 명명했다는 내용이다.
종합안내판, '맹고불고불길' 설명안내판, 수령 240년의 팽나무
매팃재 남쪽에 있는 마을로 '갈기리', '갈거리'로도 불린다. 약 300년 전에 원주 이씨가 처음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왼쪽은 자동차도로 '섬진강매화로', 오른쪽은 섬진강 자전거길이다.
무엇을 재배하는지 알 수 없다. 이 비닐하우스는 진월면 오사리 섬진강끝들마을까지 이어진다.
중도(中島)마을은 월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섬진강 가운데 있었으나 지금은 육지로 이어졌다. 전에는 월중도라 불렸는데 이는 섬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보름달이 강물에 비칠 때면 섬이 마치 달 속에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뒤에 '月'자를 떼고 중도라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성주 도씨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남파랑길 표지와 방향 표지가 붙은 대리석 의자가 놓여 있다.
진월면(津月面)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 기존에 있던 행정구역 지명인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첫글자를 따서 진월면(津月面)이라 하였다고 한다. - 진월면사무소
금동(琴洞)마을은 약 300년 전에 이천 서씨가 처음으로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걸망개', '거을망포'로도 불린다. 마을 앞에 개(浦)가 있는데, 이 개(浦)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거을망포(巨乙亡浦)'라고 한다. 금동 남쪽에는 왼고개로 가는 쪽에 몰(말馬)처럼 생긴 '몰고개'가 있는데 금동마을은 이 말 안장의 '걸개'를 한자로 '巨乙亡浦'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이 '걸망개' 혹은 '거울망포'가 왜 금동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설에는 300년 전 거문고를 잘 타던 이 마을 이천 서씨의 거문고 가락에서 거문고 '琴'자를 따왔다고도 한다.
하동읍 목도리와 광양시 진월면 송금리를 이어주는 국도2번 다리
강 건너는 하동읍 목도리 하동포구공원
대나무숲 왼쪽 횡천강이 섬진강에 합수하고 있다.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 북쪽에 위치한 바위 등성이는 거북이 등과 흡사한 형상이다. 이 거북등에는 재미 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옛적 어느 비오는 여름날 큰 거북이가 섬진강변으로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흡사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아 마을 처녀가 놀라 “산이 움직인다.”고 소리치자 순간 거북이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우뚝 산이 솟아 버렸다고 한다. 거북이가 목을 쭉 빼고 섬진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의 산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거북등이라 했는데 그 뒤 일제시대에 '돈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마을 앞에 '구인정(龜仁亭)' 정자가 있다.
섬진강변 해발 10~15미터 언덕 위에 있는 오사리 돈탁마을에서 1983년 신석기시대 조개더미가 발견되었다. 2011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결과 갓굴, 참굴, 꼬막, 백합 등의 조개류가 수없이 출토되었으며 가끔은 피뿔고둥이 확인되었다. 이중 갓굴은 광양에서는 벚꽃이 피는 시절에 많이 잡힌다고 해서 벚굴로 불리는 굴이다. 돈탁패총(조개더미)은 지금부터 4~5천년 전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이른 봄철에 섬진강변에서, 갓굴(벚굴)을 까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된 돈탁마을 숲은 수령 약 250년 소나무 수십여 그루가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의 방풍림과 비보(裨補, 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 중종 23년(1528년) 광양현감인 박세후가 우거진 송림을 보고 광양 8경의 하나로 지정할 만큼 아름답고 마을의 규모만큼 아담한 숲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그에 걸맞게 지난 2007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마을 숲 부문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했고, 2008년 '잘 가꾼 자연유산'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돈탁(敦卓)마을은 둔덕형태의 ‘돔테기’, ‘돕테기’에서 변하여 ‘돈테기’로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전탁(錢卓)’으로 쓰다가 ‘돈탁(敦卓)’으로 바꾸었는데, 마을 노인들은 지금도 '돈테기'라 부른다고 한다. 비 오는 여름날 거북이가 물을 마시러 섬진강변을 향하여 나가는데 한 처녀가 놀라 '산이 움직인다.'라고 소리치자 거북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산이 솟아났다는 마을 북쪽의 '거북등' 전설에서 '영구(靈龜)등이', '거북등'으로 부른 내력이 있다고도 한다.
장승 한 쌍 돈탁대장군과 돈탁여장군, 솟대의 오리 세 마리는 마을의 화재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수호신이다.
<숲속의 전남> 만들기를 위해 진월면이장단협의회에서 조성하여 2017년 6월 29일 완공했다고 한다.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사평나루는 예전에 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방촌으로 왕래했다. 전남과 경남을 경계한 섬진강 하류 관문격인 이곳에 있었던 도선장은 충적지로 평평한 평원이었고, 서남북으로 4통 5달한 곳이므로 옛날 주민들이 물물교환과 생필품 매매처로 이곳에 시장을 개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진월면사무소
섬진강 끝들마을 중 사평마을은 섬진강변과 맞닿아 있어서 소금생산지인 노을도소(奴乙道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918~1392년) 또는 그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당시 이 지역에 염전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사평마을은 옛날 마을에 모래톱이 있었고 지형이 평평하므로 사평(沙坪)이라고 이름했다고 전한다. 현재 폐교된 진월중앙초등학교 앞에 사평장(沙坪場)이 섰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역으로 장의 규모도 대단히 컸다. - 진월면사무소
우체통 화장실 벽에 '섬진강 자전거길 하늘의 강',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섬진강,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곳'이 적혀 있다.
섬진강 끝들마을은 진월면 오사리 일원의 오사마을, 추동마을, 사평마을 등을 이른다고 한다.
건너편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 사평나루를 통하여 신방마을과 왕래하였다고 한다.
무슨 나무일까? 알아 보니 '먼나무'였다. 섬진강 자전거길 가로수 먼나무들 붉은 열매들이 겨울에도 빛나고 있다.
건너편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조개섬과 주교천, 오른쪽은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건너편은 하동군 고전면 신방마을에서 선소마을로 이어지는 강변마을
중앙 뒤쪽으로 하동의 명산 금오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개섬이 왼쪽에 보이고 주교천이 섬진강에 합수한다. 주교천교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가 있다.
왼쪽은 섬진강자전거길, 오른쪽은 섬진강매화로
맨 끝에 토사붕괴를 방지하는 돌벽이 설치된 곳 앞이 망덕포구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앞에서 이어지고 있다.
550리 섬진강이 휘돌아 흘러 마침내 남해와 만나는 곳, 영봉 백운(靈峰白雲)이 동으로 힘차게 줄기를 뻗어 망덕산을 솟게 한 자리, 옛부터 이름 있는 선소(船所) 한 자락 언덕배기에 진월정(津月亭)을 세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거나 이곳을 찾아온 이거나 이곳에서 사는 모두에게 있어 이 터는 영원히 기억되고 가슴에 살아남는 명지(名地)일 터이다. 맑은 바람과 푸른 물결은 이곳에 머무는 이에게 안식(安息)이 되고 낮에 쏟아지는 햇살과 밤하늘의 별빛은 이곳에서 쉬는 이에게 기쁨이 되고, 남해고속도로가 힘차게 뻗어 있고 한려수도와 소담한 망덕포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정경(情景)은 이곳을 지나는 이에게 새로운 삶에의 복돋움이 될 것이다. 영원할진저, 진월정이여!
2000년 1월 광양시장 김옥현
이정목에는 남파랑길 49코스 시점을 49코스안내도가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남파랑길 49코스 시작지점은 시작점 표지물이 있는 진월초등학교 정문 앞이다. 이곳에 직진하면 선소마을민속공원을 거쳐 윤동주유고보존가옥으로 이어진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진월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이어져 남파랑길 48코스를 끝내고 49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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