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의 우랄행 열차/엄창석
겨울, 눈, 기차, 여행 - 우리는 자주 이런 매혹적인 단어들의 결합이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꿈꾼다.
겉멋으로 부푼 육체는 차가운 날씨에 오므라들고, 세상의 상처투성이들이 함박눈에 지워지며, 바퀴의 미미한 진동에 몸을 떨면서 어디론가 스르르 움직이는, 이러한 몽환적인 감각들의 결합을 바라곤 한다.
이런 매혹적인 동경의 한 자락에 '닥터 지바고'가 있다. 구소련의 작가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 이탈리아에서 간행한 '닥터 지바고'는 정작 조국에서는 '반혁명소설'로 출판이 금지된, 삶의 숨결이 생생히 묻어 있는 장편소설이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닥터 지바고'는 '사랑소설'은 아니다. 지바고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소련의 혁명기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은 조망한다. 혁명의 격렬한 풍랑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 고독과 비탄, 그리고 절망과 죽음을 고스란히 목격하면서도 그 틈바구니에 끼인 작은 생명들의 노래와 북받치는 뜨거운 사랑과 새롭게 잉태되는 것들의 축복을 작가는 시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닥터 지바고'를 읽고 나면 혁명기의 참담한 현장보다 인간의 멋진 본능과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 가슴에 남게 된다.
삶은 슬프고 희망은 잿빛이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의 노래가 끊임없다. 이러한 노래는 현실의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현실에 불어넣는 생기(生氣)고 입김이다.
'지바고' 가족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우랄행 열차를 타고 가는 장면은 고난중에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 같다. '지바고'의 가족은 풍랑 속에 있는 모스크바를 견디지 못해 우랄산맥에 있는 소읍으로 피난길을 떠난다. 스물 두 칸이나 연결한 기차는 동쪽 전투에 배치될 군인들과 민간 승객들, 그리고 노동 징용자들을 가득 태우고 끝없이 동쪽으로 달린다. 혼란한 시기에 기차가 움직이는 것은 기적과 같다. 기차는 가다 서다하고, 사람들은 뒤섞여 친구가 되거나 서로 원수가 된다. 징용자들은 도망치고 감시병들이 추격한다.
기차는 하나의 세계이다. 세계는 레일 위에서도 자못 불안하다. 기차는 험한 철로에서 탈선하지 않으려고 달팽이처럼 기어간다. 산을 오를 때는 힘이 떨어져 늙은 산지기처럼 삐걱댄다. 정거장들은 늘 혁명군이나 소요가 휩쓸고 갔으므로 폐허와 다름없다. 한번 정차하면 언제 떠날 지 모르는 대신 도둑떼와 갑작스런 전투의 공포에 휩싸인다.
아마 우랄행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눈이 산처럼 쌓여 철길이 막힌 장면일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지바고'는 삶의 영탄을 느끼며 심미적 감각으로 충일하다. 기차는 고립된 지 사흘 만에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타고 가던 승객들이 나와 제설작업을 하는 이 대목은, 우리에게 고통과 탄식도 하나의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철도에 쌓인 눈을 치우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지바고는 그때가 여행도중 가장 좋았다. (…) 밝은 태양이 순수한 흰 빛깔 위에서 반짝였다. 매끄러운 표면을 삽이 정말로 산뜻하게 자르고 들어갔다. 삽질할 때마다 파삭파삭하고 찬란한 다이아몬드처럼 눈이 담겨 나왔다. 그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누빈 고깔모자를 쓰고 곱슬곱슬한 양털로 눈가를 가리고, 눈부신 눈을 잘라 육면체와 혈거인들의 도시를 만들던 시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먼 옛날에 삶은 풍취가 있었고 모든 것은 축제와 같았다. 지금의 이 사흘도 축제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 드디어 철도들 사이의 마지막 눈더미들이 정돈이 된 다음, 철도 전체가 화살처럼 먼 곳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양쪽에는 숲의 시커먼 벽들이 끝까지 경계선을 이루고 삽으로 퍼낸 눈의 하얀 산들이 뻗어나갔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지바고의 낭만적 감정이 단순히 현실의 회피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근과 추위와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연인과 생명있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가슴을 울리게 하고 양심과 지성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힘의 근원이다.
*엄창석(소설가) |
첫댓글 그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또 보고 싶어져요. 첫 눈오는날 선생님께서 번개팅 하신다고 하시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