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인이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원진이의 취직, 환이의 눈에 얽힌 헤프닝과 더불어
또 하나의 상큼한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터져나왔던 입시 부정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아들,딸들의 부모로서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입시부정이 어디 하루,이틀 사이의 일이겠냐마는
디지틀 시대인 요즘 들어서는 더욱 더 교묘해지는 것 같아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씁씁한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20여년 전 고등학교 시절의 실화 한 토막,
오인이 학교에 재직 중인 선생님과 직접 연관이 있는 관계로
당사자는 영문 이니셜로 표기함을 이해하시길...
항상 영어 수학이 문제였다.
그래도 수학은 잠시만 보면 어느 정도 따라 잡을 수 있었는데,
영어는 영 젬병이었다.
그래도 사회 관련 과목 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거의 모든 사회 과목은 항상 상위 클라스를 유지했고,
특히 국사 과목은 '국사도사'란 별명을 들을 만큼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아마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였을 것이다.
당시 시험은 번호대로 책상을 재배치한 후
한 줄로 쭈욱 앉아서 시험을 치뤘었다.
나는 28번이었는데
30번인 K가 내게 국사시험을 쳐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K가 내게 수학 시험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했다.
책장을 넘기며 예상 문제를 뽑아주는데
대충 보아넘기고 시험을 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마디로 말해 나는 보물을 놓쳤다.
K가 내게 알려준 예상문제가 자구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출제된 것이다.
이과 반 수학을 가르치는 S 선생에게
수학 과외를 받는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험에 나올 문제를
자구 하나 틀리지 않고 가르쳐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국사 시험 시간이 됐다.
마침 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문제의 S 선생이었다.
K가 가르쳐 준 수학 문제를 내가 어떻게 처리했던 간에
괜시리 K에 대한 의무감이 생기는 까닭에
K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K의 시험을 대신 쳐주기로 했다.
부정행위는 시험 답안지를 통째로 바꿔치기 하는 수법이 동원됐다.
시험지와 답지를 뒤로 넘기는 과정에
K의 답지를 아예 넘겨주지 않고 내가 K의 답지를 작성,
시험이 종료됨과 동시에 두 장의 답지를 제출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답지를 전부 똑 같이 쓸 수는 없었다.
두 개 쯤은 틀리게 작성, 다소의 차별화를 시도하였고,
이름이나 번호도 내 글씨와는 다르게 쓰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뭔가가 찜찜했다.
시험 감독인 S 선생은 나와 K를 번갈아 보면서
조용히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너 교무실로 좀 와"라는 말을 남기고
수거한 답지와 함께 총총걸음으로 교무실로 갔다.
불현듯 '들켰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고 교무실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온갖 상념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래 그 수 밖에 없다'
교무실로 S 선생을 찾아갔다.
자리에 앉으란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는 시침을 뚝 떼고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왜 저를 부르신 거죠?"
'허! 이 놈 봐라'라는 표정으로 S 선생이 나를 째려보더니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 K의 답안지 대신 작성해 줬지? 학생이 그래도 되나!!!"
참 웃기는 선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외받는 학생에게
자구 하나 틀리지 않는 문제를 유출시킨 당사자가
과연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래 한 번 당해봐라'라는 심정으로 모두 들으라는 듯이 얘기했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지만
충분히 협박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톤을 조금 높힐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쯤에서 쐐기를 박아둘 필요가 있었다.
"예, K가 제게 수학 시험 예상문제를 가르쳐주며 도움을 줘서
K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순간 S 선생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꼬리를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되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이만 가 봐"
싱거운 한 판 승이었다.
교무실에서 돌아오니 K가 궁금한 듯 물었다.
"S 선생이 뭐래?"
"아니, 별 것 아냐, 그냥 가래"
아마 그 이후 K는 S 선생에게 엄청 혼났을 게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다시는 시험을 대신 쳐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지금 K는 오인이가 졸업한 고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세상이랄 수밖에...
첫댓글 다 읽자니 눈이 아푸단다, 안경을 써도 그러네 다음 부터는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해서
전 누구인지 잘 알죠...ㅋㅋㅋ
수복이 졸업식 때는 내려오남? 하기사 내려와도 식장에 들어갈 것도 아닐테니 언제 졸업장 찾는 날 식사나 한번 같이 하면 그것도 괜찮겠지.
큭~ 그가 그 선생님이구낭...앨범 보니 3학년 담임 맡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