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에 의한 면허관리로 의사의 전문직업성위협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의사면허다. 면허를 통해 환자의 몸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환자의 신체를 다루기에 의사면허는 다른 어느 면허보다도 높은 직업윤리가 필요하다. 만약 전문가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의무나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때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무거운 징계를 통해 직업윤리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전문 직업성(직업윤리, 전문지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정활동(self- regulation)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허의 부여는 나라에 따라서 정부가 주도하기도 하고 정부의 위임을 받은 전문가단체나 별도의 면허관리기구에서 관리한다. 그러나 G7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국가를 대신하여 입법 공공단체 즉 전문가단체가 주도가 되어 면허의 부여를 시행하고 있다. 면허에 관한 깊은 고민과 성격을 규명한 결과이고 전문직에 대한 신뢰의 상징이기도 하다. 면허를 통해 의료 인력에게 의료 활동을 허락할 때 반드시 구비되어야하는 두 축이 있다. 한 축은 의료인만이 갖추어야할 전문 의료 기술과 지식이고 다른 한 축은 의료인으로서 양심, 태도, 또는 인간적 소양이다. 이 두 축을 갖춘 이들에게 면허를 주기 위해서는 전문가에게 관리를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전문가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만들고 유지하도록 위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사회구조가 된다는 사실을 반영한 결과다. 국가주도로 처벌위주의 면허관리로는 전문가들을 다스릴 수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 타율에 의한 면허관리로 의사의 전문 직업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은 사건이 있었다. 2011년 12월 30일 통과된 민주당 최영희 의원 발의하여 대안반영, 국회 여성위원회의 안으로 통과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사건이다. 이 개정안의 제44조 (아동·청소년 관련 교육기관 등에의 취업제한 등)에서 ①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이하 "성범죄"라 한다)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는 그 형 또는 치료감호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 동안, 가정을 방문하여 아동·청소년에게 직접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으며 다음 각 호에 따른 시설 또는 기관(이하 “아동·청소년 관련 교육기관 등”이라 한다)을 운영하거나 아동·청소년 관련 교육기관 등에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할 수 없다. 다만, 제11호의 경우에는 경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제13호의 경우에는 「의료법」 제2조의 의료인에 한한다. <개정 2010.4.15, 2011.6.7, 2012.2.1.> 라고 정하였다. 진료실에서 발생 된 성범죄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성문제와 관련하여 벌금형을 받게 되면 10년간 면허가 정지되는 법안이다.
전문가 단체 스스로 해결하도록 맡기지 않고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시도에 자괴감마저 든다. 먼저 전문가단체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전문가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정활동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발생된 현상이다. 하지만 전문가 단체가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합리적인 해결방향을 찾기 위해 문제점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의사단체가 스스로 자율정화하려는 의지가 더 강력했어야
먼저 의사단체 내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일부 극소수의 진료실내 성범죄 동료와 비윤리적 동료들을 강력하게 징계하고 격리시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못 하는 것인가? 문제는 썩은 부위를 도려낼 칼(권한)과 결연한 자정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협회 정관과 윤리위원회 규정으로는 썩은 동료들을 조사하고 징계할 행정력(공권력)이 없다. 윤리위원회 위원들이 의사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윤리위원들의 임기도 집행부와 같아 독립적이지 못 한 구조이다. 구성원들도 처벌절차나 의사 직업윤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결연한 자정의지가 결여 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부로부터 왜 비리 동료들을 징계하지 않느냐고 공격을 받을 때마다 자율 징계할 칼(권한)도 없으면서 강력 징계하겠다는 말만 해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번 공수표만 날리고 있었다. 이런 사정도 모르는 외부에서는 의사협회가 제 식구 감싸기만 한다고 비난하며 모든 것을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의사협회의 부끄러운 현 주소다. 전문가의 생명과 같은 자율정화에 대한 무개념 내지는 무관심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다. 2011년 개정된 의료법에 각 중앙단체의 징계요청이 있을 때 1년 이하의 면허정지를 할 수 있게 해 놓았지만 이 정도의 법으로는 자율징계를 이루어 갈 수 없다. 생색만 낼 뿐이지 실효성이 없는 법 개정이다. 의사단체가 스스로 자율정화하려는 의지가 더 강력했어야 했다. 조금 더 일찍 준비하고 깨어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타율에 의해 면허관리를 당하는 수모를 격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 통렬한 반성과 개혁이 요구된다.
법안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
다음으로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대해 의사들이 거부감을 일으키게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개정안 발표 후 모든 의료인들이 나도 억울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과 공포감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공포조성법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들은 전철을 타고 다니기도 두렵다. 젊은 시절 함부로 연애를 해도 안 된다. 혹 상대방이 나를 지적하며 자신을 성추행하려했다고 누명을 씌우게 되면 의사들은 꼼짝없이 의사 직을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채선당 이라는 음식점에서 처음에 종업원이 임산부의 배를 찼다는 보도를 듣고 모든 여론이 종업원과 해당 음식점을 비난했다. 하지만 CCTV 분석결과 종업원이 임산부를 발로 찬 것이 아니라 임산부가 종업원을 폭행한 사실로 드러났다. 그런 일들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도 감정의 충돌이 일어 날 때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진료실에 함부로 CCTV를 설치할 수 도 없다.
둘째, 의사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했다. 의사들이 아동이나 청소년을 해치는 잠재적 성범죄자이고, 성도덕 불감증 집단인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픈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의사로서 심한 모멸감과 치욕감을 감출 수 없었다.
셋째, 법의 설계가 잘못되었다. 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환자나 의사가 다 같이 보호 받을 수 있는 법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실효성 있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법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예상하고 섬세하게 설계되어져야만 한다. 혹이라도 선의의 피해자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서 법정신에 위배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사들은 의료 특성상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억울한 상황이 발생되는 것이 두려워 신체검진이 위축될 가능성이 많아져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결국 환자나 의사나 모두 손해를 입게 되어 있다. 법이 시행될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입법이 아닐 수 없다. 시류에 영합하여 한건주의식으로 법을 만들어서 사회 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는 법적용에 있어서 처벌방식이 다분히 감정적이고 비전문적인 법률 적용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선 이 법에서 정한 '성범죄'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다. 이 법이 정한 성범죄에는 강간죄·강제추행죄·준강간·준강제추행죄·강간 등에 의한 치사상죄·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죄·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13세 미만인 자에 대한 간음·추행죄 등이 있다. 이외에도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나 카메라 등에 의한 촬영 등이 모두 이 법에서 정한 성범죄에 해당한다. 법에서 모든 범죄를 단일 형량에 맞추지 않고 양형기준을 두는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강간치상죄부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인터넷을 사용한 음란행위 송부)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자 모두에 대해 10년의 취업 또는 의료기관 운영을 제한하고 있다. 발상이 너무 단순하고 적용방식이 정의롭지 못하다.
이 법안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훼손한 점이다. 특히 면허가 볼모가 되어 국민들의 진료권이 위축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의사면허가 떨어졌다 붙었다하는 대한민국 면허관리 시스템이 너무나 불안하다.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자율면허관리원 설립해야
선진국들도 이런 문제들로 많은 고민을 했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노력들을 살펴보면 해결책이 보인다. 이들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을 만들어갔다. 하나는 면허관리기구를 통한 자율정화을 강화했고 다른 하나는 환자를 배려하는 구체적인 방법(샤프롱제도, 환자를 위한 진찰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범죄에 대한 처벌은 법으로 이루어지고 면허에 관한 사안은 철저하게 면허관리기구를 통해 자율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정하고 신중하게 면허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면허국(Board of state)이나 영국의 GMC(General Medical Council)같은 곳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들 기구는 정부 관리와 법률가, 성직자들로 1/3을 구성하고, 나머지는 의사(해당 과목 전문가, 의료윤리전문가, 개원의)로 구성되어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건의 조사와 청문 등을 투명하게 실시하여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벌칙도 행위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여 집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의사면허취소, 면허정지, 집행유예, 진료제한, 경고, 벌금, 비의료적인 사회봉사, 윤리교육이수, 성범죄방지교육이수, 정신감정등 다양하다. 영국의 경우도 크게 견책, 조건부등록, 등록정지, 등록취소의 징계를 정해 놓고 잘못한 행위에 따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또한 의회에서 행정력을 위임받아 정당한 절차에 의해 징계가 결정되면 강력한 징계조치가 이뤄진다. 이러한 기구의 결정에 반발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매우 공정하고 신중하게 징계절차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시스템의 도입과 정착이 요구된다. 공정하고 안정된 의사면허 관리는 의사나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의료인들이 스스로 자율규제 할 수 있도록 면허관리기관(가칭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자율면허관리원)을 설립하여 자율징계권한을 위임하는 법적조치가 필요하다.
의사들이 할일들
먼저 의료인들은 이에 부응하여 10만의사들과 학생, 교수들에게 대한 윤리교육을 조속히 실시해야한다. 특히나 교수들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 학생이나 전공의의 모델이 되는 교수들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교양있게 행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교수들의 말하는 태도나 억양, 매너 등을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대하는 에티켓, 세련된 매너와 응대법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의사들의 평생보수교육(CME Continous Medical Education)중에서 윤리에 관한 보수교육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의학수준은 세계적인데 드러내놓기 부끄러운 진실이다. 이제라도 의사단체는 회원들에게 윤리교육을 제공해야한다,
다음으로는 진료 중에 발생하는 성범죄를 가장 확실하게 방지하는 제도인 샤프롱제도를 도입하고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진료를 위해 “환자를 위한 진찰실 가이드라인” 제정해야 한다.
샤프롱(chaperone)이란 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여성 환자나 미성년환자, 정신지체 환자 등을 진료할 때 가족이나 보호자, 간호사 등이 동반하는 제도이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진료 중 발생 할 수 있는 성범죄 등의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제도이다. 샤프롱제도는 환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의료분쟁이 발생할 때 의사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환자를 위한 진찰실 가이드라인”을 빨리 만들어야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손상될만한 상황을 세세히 분석하여 가이드라인을 통해 의사회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GMC에서 online을 통해 good medical practice guideline라는 진찰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진료와 검사 전에 진찰과 검사의 필요성과 과정에 대해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환자와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한 신뢰를 쌓아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진찰부위를 제외한 부분은 시트나 가운으로 가려주고 생식기 등을 진찰할 때에는 반드시 장갑을 착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나 진료 중에 의사가 얻게 되는 환자의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비밀로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진찰실에서 의사가 갖추거나 알고 있어야할 에티켓이나 행동가이드라인에 대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고, 진료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자율적인 제도로 정착될 것이다.
이상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과 예상되는 부작용등에 대해 알아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더 이상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해 의사의 전문직업성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환자와 선량한 의료인을 보호하고, 안심하고 진료하고 진료받는 안정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각 의료인중앙단체의 긴밀한 협조와 반성을 통해 안정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첫댓글 의료정책포럼 제10권 1호 2012-05-23
법원 "10년 진료 제한하는 아청법, 위헌소지 있다"
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View.html?ID=110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