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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사찰,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은 조계산
1. 일자 : 2010. 10. 9 (토)
2. 장소 : 조계산(884m)
3. 행로 및 시간
[송광사 주차장(12:17) -> (매표소) -> 송광사(12:30) -> (사찰탐방 10분) -> (대숲길) -> 다리(12:52) -> 토다리(12:59) -> 정자대피소(13:22, 간식) -> 송광굴목재(13:42, 송광사 2.5km, 장군봉 4.4km) -> 연산봉(14:07, 851m) -> 연산봉사거리(14:22) -> 장밭골삼거리(14:42) -> (조릿대길) -> 장밭골몬당(15:01) -> 장군봉(15:19, 884m, 선암사 2.7km) -> 샘터(15:37, 향로암터) -> 대각암(16:15) -> 선암사(16:21) -> (사찰탐방 10분) -> 강선루/승선교(16:39) -> 주차장(16:50)]
4. 동행: 홀로, 동강산악회
< 조계산 산행을 준비하여 >
등산을 다니다 보면 산과 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주 다녀온 오대산도 산 자체로만 보면 그저그런 덩치 큰 펑퍼짐한 육산이었지만, 월정사와 상원사, 적멸보궁이 있어, 100대 명산을 넘어 국립공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산이 있어 절이 기대될 수 있는 등이 되어 주고, 절이 있어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휴식과 볼 거리를 더해 주고 있으니, 서로는 상생협력과 시너지의 좋은 본보기라 생각된다.
오늘 산행 코스로 잡은 조계산은 산 자체보다도 송광사와 선암사로 더 유명한 곳이다.
산행 기점인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통토사, 해인사, 송광사) 중
하나인 "승보사찰" 로 단일 사찰로는 국가지정
문화재가 제일 많다 한다. 선암사는
산행 준비를 하다
오늘 산행 코스는 송광사에서 출발하여 연산봉을 지나 장군봉에 오른 후 선암사로 하산하는 것으로 잡았다. 오르내리는 중간에 샛길이 많아 경관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길에 다양한 변화를 주어 볼 요량이다. 조계산 제2봉인 연산봉에 올라서면 조망이 일품이라 한다. 정상 장군봉까지 초원을 연상케 할 만큼 펑퍼짐한 능선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처럼 넓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한다. 전체적으로 걷기에 부담이 없는 산일 듯하다.
< 희망사항 >
오늘 찾을 송광사는 조계산의 대표적인 사찰인데, ‘조계(曹溪)’라는 말은 본디 선종의 육조 중 한 분인 혜능(慧能)선사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어떤 기록에는 스님의 별호라 하고 또 다른 책에는 선사가 절을 지어준 이를 위하여 이름을 지어준 것에서 유례 한 것이라 한다. 반면, 선암사는 불교의 다른 계파인 태고종의 대표 사찰이다.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두 절이 인접해 있어 각자가 누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는 듯 해 보이나, 내게는 혼자일 때 보다 둘이 있어 더 빛나는 사찰인 냥 느껴진다. 조계산에서 불교 각 종파의 같음과 다름을 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산행 지도에는 수 많은 길의 갈림이 있다. 그 중 배바위에서의 전경과 연산봉에서의 경치가 특히 뛰어나다 하니 산을 넘으며 가을날 남녘의 산과 불교 사찰의 정취에 흠뻑 취해 보고 싶다.
출발 전 일기예보는 이번 주도 ‘비’다. 등산 다니는 나도 힘들지만, 주말 장사가 큰 수입원인 산 부근의 소상인들을 위해서도 주말에는 비가 그쳐 주기를 바래 본다.
< 송광사 가는 버스 안에서 >
이번 조계산 산행은 동강산악회를 통해 신청을 했다. 복정에서 탑승하니 좌석이 만석이다. 맨 뒷자리를 배정받는다. 신청 순서상으로 배정했다면 맨 뒷자리는 아닐 텐데 아마도 신참자에 대한 텃새려니 생각한다. 판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니 길이 막힌다. 갈 길이 먼데 언제 송광사에 도착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송광사는 전라도 순천 땅에 있다. 그보다 더 먼 월출산, 두륜산, 팔영산 등을 다녀 온 경험이 있는지라 도로는 막혀도 심적인 거리는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망향휴게소에 도착하니 아침을 준다. 철제 식판에 담긴 미역국과 두부조림 등의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안전산악회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벌써 하산 후의 식사가 기대된다. 11월말 영남알프스 산행은 안전산악회로 잠정 결정했는데 오늘 동강산악회의 안내 팜플렛을 보니 좀더 생각해 본 후에 결정해야겠다.
정읍, 내장산, 광주를 지나고도 한참을 더 가 주암IC를 나와 송광사에 도착하니 12시가 훨씬 지났다. 일단 4시 40분까지 선암사 주차장에 집결하라는 명을 받고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귀경 시 낙안읍성도 들린다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 송광사서 연산봉 >
당초 주말에 비 예보가 있어, 산행 신청을 망설였는데 순천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참 좋다. 이놈의 기상청은 도대체 자신들의 무성의한 예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산행대장 말로는 청와대에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지난 몇 주 내가 사는 안양에서는 가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순천에 와 보니 이곳은 여전히 늦여름의 기분이다. 초록이 한창인, 냇물이 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신 송광사 계곡을 끼고 길을 나선다. 곧이어 나타나는 매표소, 입장료는 회비에 포함되어 있단다. 지난 주 오대산에서 예고도 없이 입장료는 개별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산정산악회와는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사못 다르다. 등산연합회 소속의 산악회가 퇴조 기미를 보이고 개별 안내산악회가 더 각광 받는 이유는 ‘고객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오랜 등산 안내경험이, 그래서 때로는 고객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태도는 경쟁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연세가 많은 몇 몇 산악회 대장들은 모르는 것 같다.
절 초입에 놓인 정자와 누각을 지나 멋지게 꾸며진 두 곳의 부도밭(개인적으로 내게 절에서 가장 멋진 곳은 고색창연한 부도밭이다.)을 지나자, 지붕이 기둥보다 비대칭적으로 커서 인상적인 문이 나온다. 오다가 일주문을 보지 못했으니 이 문이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현판에는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라 쓰여있다. 그 밑으론 ‘승보종찰조계총림’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유명한 스님을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승보사찰의 이미지를 자랑하는 것일 것이다. 시간에 쫓겨 여유는 없지만 등산로를 모른 체 하고 송광사 경내로 들어선다.
< 일주문 / 대웅전과 승보전 사이 전경 >
경험상 사찰탐방은 가람 배치를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불쑥 대웅전 경내로 들어선다. 일단 인증샷을 한 장을 찍고 주위를 둘러 본다. 대웅전 앞 마당의 개방감이 좋다. (오후에 본 선암사 대웅전 앞이 탑과 연등으로 어수선한 것에 비하면 훨씬 정갈한 느낌이다.) 대웅전 좌측으로 돌아드니 ‘승보전’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대웅전과 승보전 사이에 조밀하게 절집들이 모여 있다. 건너편 절집 지붕의 이어지는 선들이 곱고, 돌로 쌓아올린 삼단 외벽의 구조가 아름답다. 의식적으로 크게 멋을 내지 않아도, 벽돌 틈으로 자란 잡초의 색깔마저도 주변과 잘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웅전과 승보전 보다도 이 모습이 송광사 최고의 전경이라 여겨진다. 승보전 뒤편 ‘관음전’을 관람하고 아쉬운 발 길을 뒤로하고 등산로로 접어든다. 돌아보는 마지막 절집의 빛바랜 목재 ‘발’과 창호의 기하학적 무늬가 또다시 내 발 길을 잡고 한참을 더 머무르게 하였다.
< 관음전 앞에서 / 등산로 초입 대밭 >
송광사 뒤편 우측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초입 대나무 밭의 정취가 아름답다(12:42). 대밭이 조금 더 길었으면 했는데 거리가 짧아 아쉽다. 이어지는 길은 토다리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널찍한 길을 따라 계속된다. 기대한 것처럼 걷기에 좋은 길이다. 10여분 후 나무로 만든 다리가 나오고(12:52), 잠시 후 토다리라는 특이한 이름의 갈림이 나왔다. 좌측으로 가면 산악회가 안내할 피아골로 2km를 걸어 연산봉사거리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조국순례자연보도를 따라 송광굴목재로 가는 길이다. 출발전 인도어클라이밍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측 홍골을 따라 굴목재에 오른 후 연산봉으로 바로 가는 코스가 연산봉사거리에서 연산봉을 오른 후 되돌아오는 것 보다 나아 보여 그리로 길을 잡았다. 우측길로 들어서자 머지 않아 다시 다리가 나온다. 그리고 길은 제법 가파르게 송광굴목재까지 한치의 쉼 없이 이어진다. 누가 이 길이 편한 산책로 길이라 했는가? 송광사의 고도가 200m 수준, 굴목재가 720m이니 고도차 500m,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힘겹게 치고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길이다.
송광사까지는 붐비던 인파가 토다리를 지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악회 일행들도 피아골로 들어갔다. 홀로 길을 걷는다. 음영이 짙어 음침한 오솔길을 홀로 걷는다. 아침에 먹은 밥 힘이 거의 떨어져 갈 즈음 대피소가 나온다(13:22). 남도의 멋이 묻어나는 조형미를 뽐내는 구조물 안에 젊은 남녀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아, 나도 멀찌감치 떨어진 길가에 앉아 사과 하나를 베어 먹는다. 과즙의 달콤한 맛이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며, 문뜩 등산의 매력 중 하나는 불확실함의 연속인 삶에 있어 작지만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고 노력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온갖 변수들은 늘어만 가는 복잡한 삶 속에서, 작은 일이라도 완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내 주말 등산은 내게 늘 작은 성취감을 선물해 주고 있다. 대피소 출발 20분만에 송광굴목재에 도착했다(13:42). 작은 공터다. 송광사에서 2.5km를 걸어 왔고, 장군봉까지는 4.4km가 남았다 한다. 이곳 고도가 720m이니 851m 연산봉까지는 고도로 인한 힘겨움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돈다.
< 송광굴목재 가는 길의 다리 / 연산봉의 구름과 억새 >
연산봉으로 향하는 길의 초입은 산죽이 도열해 있다. 남도의 정취가 느껴진다. 20여분을 걷자 하늘이 열린다. 햇살이 뜨겁다. 능선 멀리까지 송전탑이 이어지고 그 좌우로 산들이 파노라마 치고 있다. 머지 않아 오름은 끝이 나고 연산봉 나온다(14:07). 동강산악회 일행들이 먼저 와 있었다. 대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선두 그룹인가 보다. 길은 내가 더 멀리를 돌아왔는데 시간은 내가 더 빨랐다. 내 판단이 옳았다.
< 연산봉에서의 풍경 >
연산봉은 기대했던 것처럼 훌륭한 조망을 선물해 주고 있다. 북동쪽으로 가야 할 장군봉이 우뚝 솟아 있고, 선암사 방향으로 상사호의 모습도 보인다. 멀리 구름이 흘러 가고 억새는 바람에 나부낀다. 억새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 아쉬웠지만 가을로 변해 가는 계절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 연산봉에서 장군봉 >
산 넘어 저 편에 보이는 조계산의 주봉 장군봉을 향해 걷는다. 장호 선생은 조계산은 결코 드세거나 뻗치거나 치받치는 형상이 아니라, 우람은 하되 의젓하고 중후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아줄 여인 같다고 했다. 연산봉에서 올려다 보는 산세는 전체적으로 육산의 풍모를 지녔다.
연산봉 사거리를 향해 내려오다, 손에 스틱이 없는 것을 알고 다시 올라간다. 건망증은 이제 산에서나 일상에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 남한산성 산행 때는 버스에 두고 내려 찾으러 간 적도 있고, 잊고 내려 잃어버린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래서 스틱은 절대 비싼 것을 사지 않는다. 시간을 만회하고자 연산봉 사거리는 스치듯 지났다(14:22). 이제부터 긴 능선을 타게 될 것이다. 장밭골이라는 곳으로 오른다. 한참 오르막을 치고 올라 본 능선에 서니 동남방향으로 산세가 우람하다. 아마도 백운산 어름이 아닌가 한다. 한동안 편한 길을 걷는데 이정표가 나온다(14:42). 처음에는 이곳이 장밭골 정상 인가했는데 돌아와 자세히 살피니 장밭골 삼거리이다. 이정표 부근 길가에 웬 단체산악회에서 불을 피우고 찌개를 끓이고 술잔을 돌리며, 가는 길을 막고 판을 벌리고 있다. 자기들 편하자고 사람 다니는 길에 판을 벌이다니 벌 받을 짓들이다. 그들이 이정표에 옷까지 걸어 놓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3시가 가까워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순천의 들녘 풍경이 펼쳐진다.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길은 조릿대 길로 이어진다. 그 길이 끝날 어름 장밭골몬당이라고 곳이 나온다. 조계산은 주요 포인트의 이름이 생소하다. ‘토다리’,’굴목재’, ‘몬당’등 도무지 알아 먹지 못하겠다. 남도에서 통용되는 순 우리말 표기일 것 같아 굳이 알아보려 하지는 않는다.
< 장군봉 가는 길의 조릿대 길 / 장군봉에서 >
장밭골몬당을 지나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마지막 긴 오름을 오르자 장군봉이 모습을 드려냈다(15:20). 결코 과하지 않은 소박한 정상 풍경이다. 연산봉만은 못해도 조망이 시원하다. 오전 송광사에서 시간에 쫓겨 사찰 구경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쉬워 쉼 없이 선암사를 향해 내리막을 내려선다. 거리는 2.7km 시간은 한 시간을 예상한다.
< 장군봉에서 선암사 >
하산 길은 무척 가파르다. 육산에도 정상 어름은 이름값을 하니 별 놀라운 것은 아니다. 특색 없는 길을 15분 가량 내려서자 길가에 샘터가 보인다. 목이 마르지 않고 주변의 형편이 무턱대고 물을 마셔도 좋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지나고 보고 이곳이 향로암터였다.) 능선길로 내려 온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전망이 전혀 없다. 분명 정상에서 하산길은 하나였는데, 아마도 차밭을 지나 선암사 뒤편으로 떨어지는 코스는 폐쇄되었나 보다. 길의 변화가 없다. 고도계 시계도 없으니 걷고 있는 길의 어름을 가름할 수가 없다. 핸드폰 GPS는 잘 잡히지 않는다. 4시 15분쯤 작은 계곡이 보이더니 절집의 지붕이 보인다. 대각암이다(16:15). 이제 조금만 가면 선암사가 나올 것이다.
길이 이럴 줄 알았으면, 경치가 좋다는 배바위를 지나 비로암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 초보자의 변이다.
눈 아래 선암사가 보인다. 수행자들이 길게 늘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절 중간을 치고 들어가기 싫어 위쪽으로 한참을 걷는다. 선암사는 위에서 밑으로 탐방해 보아야겠다.
< 조계산에서 본 남녁의 산하 / 선암사 위쪽 풍경 >
< 선암사에서 >
긴 담장 끝에 난 작은 문을 통해 선암사 경내에 들어섰다. 삼신당 앞으로 응진당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오래된 고목이 세월의 흔적을 알리며 꿋꿋이 서 있다. 작은 문을 통해 내려오니 원통전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에 맞물린 건물들의 지붕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조화가 멋지다. 절집 안 부처님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지만 정면으로 살피지는 못하겠다. 여러 가지 이유다.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죄스러움 등등) 주변 건물을 구분 짓는 벽체는 인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을 쌓아 올린듯한데 불균형 속에 묘한 조형미를 이룬다. 한국인만이 부릴 수 있는 자연과의 조화의 멋이라 판단된다. 조금 더 밑으로 내려와 팔상전 앞에서 포즈를 취해본다. 담소를 나누는 여자분에게 부탁을 했는데 가슴빡에 젓은 물기까지 잘 나왔다. 어느덧 대웅전 앞이다. 전체를 모르고 부분을 탐색하니 정보가 조각난다. 대웅전 앞은 두 기의 석탑이 서 있고 연등행사를 준비 중이어서 그런지 좁아 보인다. 오전 송광사의 대웅전 앞의 개방감과는 비교된다.
< 팔상전 앞에서 / 대웅전 앞 전경 >
대웅전 부근에 사람들이 많아진다. 주변에 절 부속 건물들이 수 없이 많은데 모두 살피기는 벅차다. 어느덧 일주문 앞에 와 버렸다. 일주문 밑에서 대웅전 방향으로 전경을 살핀다. 근사한 구도가 나오는데, 여기저기 걸린 연등이 오히려 절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방해가 된다.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시절에 흔히 보는 풍경이다. 여러 산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 삼인당 앞 고목을 배경으로 / 승선교를 배경으로 / 부도밭 >
경내를 빠져나오니 삼인당이라는 작은 연못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며 올려다 보니 성보박물관의 길다란 모습이 보인다. 이것으로 선암사와는 멀어진다. 널찍한 포장도로를 따라 하산을 서두른다. 계곡의 물소리가 커진다. 눈 앞에 커다란 누각이 보인다. 강선루다.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가 하강한 전설이 서려 있을 듯하다. 그 옆으로 선암사 최고의 미 ‘승선교’가 조용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생각보다 작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 다리의 가치를 모르나 보다. 대분분 그냥 지나친다. 한참을 기다려 지나는 행락객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계곡과 누각과 참 잘 어울리는 구조물의 은은한 미를 한참이나 감상한다.
< 낙양읍성 전경 >
선암사의 또다른 아이콘 ‘뒤깐’을 찾았으나 감감이다. 대신 길가에 늘어선 부도밭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며 짧지만 의미 깊었던 선암사와의 인연을 이것으로 접는다.
< 에필로그 >
동강 대장님이(밥 먹을 때만 대장님이란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먹을 것 주는 이가 주인이다. 바로 ‘님’자가 붙는다.) 먼저 내려와 된장국으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시다. 점심을 걸러 그런지 배가 고파 평소보다 많은 양을 맛나게 먹었다.
어둠이 내린다. 5시 40분, 출발인데 서울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낙안읍성을 들린다 한다. 그냥 갔으면 했는데 약속이 되어 있나 보다.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렸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읍성에서 성곽을 따라 걸으며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오늘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시간은 7시를 향해 달려 간다. 에고 언제 집에 가려나…
귀경길에 지난번 보던 영화 ‘K2’를 마저 감상한다. 독일 영화 특유의 정제되고 사실적 영상미가 돋보였다. 그러고도 시간이 무료해 오락 방송 2편을 더 보았다. 오늘은 하루가 참 길다.
전주 부근이다. 무심코 차창을
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간간이 빛이 스며든다. 버스 차창으로
바라보는 어둠 속에 빛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어둠이 깊어서 그런지 쓸쓸한
모습이 그려진다. 이상하게도 빛과 오버랩 되어 집과 가족들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그들이 보고파진다. 버스는 빠르게 달리고 불 빛은 멀어진다.
트위터 ‘세종대왕’에 많은 새 글들이 올라와 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 창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 중 인상 깊은 내용을 요약해 본다. “소리를
바로 잡는 것이 인간 행동을 바로잡는 것의 첩경이다. 나는(세종) 우리의 소리를 바르게 할 문자를 만들 것이다. … 한글은 담아 내지
못하는 말이 없고 그 전환이 무궁무진하다”. 훈민정음 창제의 참뜻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세종은 즉위 25년에 한글을 창제했지만, 그로부터 3년후에 반포한다. 왜
그랬을까? 트위터 저자는 그 3년간 세종은 용비어천가, 훈민정음해례, 동국정운 등의 한글 이론서를 준비하고 최만리, 정창손 등 과의 논쟁을 통해 반대 논리를 극복해 나가며 새로운 창조물의 실제 생활에서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을
것이라 한다. 참으로 한 나라의 진정한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인내의 아름다움과 철저함의 미학을 느낀다. 세종은 참으로 위대한 임금이시다.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운 하루였다. 덕분에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