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프 왕국의 대머리 공주
글쓴이: 도라 옛 란창
그린이: 이현주
아주 오래전 코이프 왕국에서는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는 걸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어요. 머리 모양이 튀면 튈수록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요. 화려한 북극광 모양의 머리가 여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기였고, 해일처럼 요란스럽게 구불거리는 머리를 하고 다니는 남자들은 남들보다 월급도 많이 받았어요. 스테고사우르스의 등에 있는 골판처럼 머리카락을 뾰족뾰족 세우고 다니는 아이들은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갖가지 빗과 머리 장식을 손에 넣으려거나 손재주가 좋은 미용사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싸움을 벌였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코델리아 공주는 그깟 머리 모양 때문에 아웅다웅 싸우는 사람들이 정말 어리석게 보였어요. 물론 몇 시간씩 미용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정말 싫었죠. 하지만 왕국 사람들은 코델리아 공주를 가장 부러워했어요. 그건 코델리아 공주가 북극광처럼 푸르고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탐스럽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코델리아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공주의 탐스러운 머리카락 개수만큼 많았어요.
“공주님, 제 꽃다발을 받아주세요!”
“아니, 내 반지를 받아주오!”
하지만 코델리아 공주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요. 보다 못한 왕은 공주를 불러 말했어요.
“얘야, 제발 부탁이니 파티에 참석해 실랑감을 골라 보렴. 아비의 소원이다. 네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보고 싶구나.”
“어휴, 알겠어요. 대신 제 머리 모양만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코델리아 공주는 왕실 미용사 아치를 불렀어요.
“사람들이 놀라 도망칠 정도로 끔찍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줘.”
“걱정 마시고 저만 믿으십시오, 공주님!”
아치는 가위로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어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도 폭포수처럼 쭉쭉 폈죠. 하지만 공주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싫어. 누에 왕자가 폭포수처럼 늘어진 머리 모양을 보고 좋아하면 어떡해.”
“그렇군요. 걱정 말고 저만 믿으십시오!”
아치는 공주의 머리카락을 흉측한 녹갈색으로 염색했어요. 그리고 머리카락을 이리 비틀고 저리 꼬아서 두 가닥으로 길게 땋아 내렸죠.
“뚱보 왕자가 돼지 꼬리처럼 땋은 머리 모양을 좋아하는 거 잊었어?”
“아이쿠, 깜빡했네. 걱정 마시고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치는 공주의 앞머리를 댕강 잘라 내고 양옆을 짧게 정리했죠. 그리고 뒷머리를 70가닥으로 나누어서 기둥처럼 튼튼하고 촘촘하게 땋았어요.
“이집트의 여왕이 따로 없네! 이런, 피라미드 왕자도 파티에 올 건가 봐.”
“염려 마세요!”
아치는 황금색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라푼젤 크림을 치덕치덕 발라서 머리카락을 누런 똥 덩어리처럼 쌓아 올렸어요. 머리카락이 워낙 길어서 그 높이는 1미터가 넘고, 넓이도 한 뼘을 훌쩍 넘었죠.
“안 돼! 갈색곰 왕자가 벌통처럼 생긴 머리카락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오, 공주님. 걱정 마세요.”
아치의 콧수염 아래로 송골송골 땀방울이 흘러내렸어요. 아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면도기를 꺼냈죠. 그리고 커다란 벌통처럼 부풀어 오른 머리카락 양쪽을 매끈하게 밀어 버렸어요. 그리고는 닭 볏처럼 한가운데 머리만 삐죽하게 남겨 두었죠.
“아이 참, 꼬꼬댁 왕자가 있다는 걸 잊은 거야?”
머리끝까지 화가 난 코델리아 공주는 면도기를 낚아채며 소리쳤어요.
“안 돼요, 공주님!”
아치가 외쳤지만 한발 늦었어요. 코델리아 공주는 그나마 남아 있던 한가운데 머리카락마저 면도기로 밀어 버리고 말았죠. 아치는 너무나 겁이 났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 공주님 머리카락을 망쳤다고 분명 벌을 받을 거야!’
그날 저녁, 활화산 모양과 회오리바람 모양으로 머리를 한 손님들이 하나둘 파티장에 도착했어요. 불사조처럼 새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사람도 있었고, 고래처럼 시퍼렇게 머리를 물들인 사람도 있었죠. 베르사유 궁전만큼 우아하게 꾸미고 나타난 사람들도 눈에 띄었어요.
“코델리아 공주님 납시오!”
하인이 큰 소리로 외쳤어요.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양탄자 위로 쏠렸어요. 딱 한 사람, 아치만 빼놓고 말이죠. 아치는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어요. 드디어 코델리아 공주가 양탄자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어요. 물론 반짝거리는 대머리를 한껏 치켜들고 말이죠.
“어머나, 세상에!”
“머리가 저게 뭐지?”
모두들 놀라서 숨을 멈췄어요. 빡빡이 왕자만 빼놓고요. 빡빡이 왕자는 코델리아 공주에게 다가와 자신의 구불거리는 가발을 벗었어요. 그러자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대머리가 드러났지요.
“공주, 나는 대머리로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평생 가발을 쓰고 살았습니다. 한데 그대를 보니 이제는 내 모습을 당당하게 뽑낼 용기가 생기는군요. 빡빡이 왕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진짜 내 모습 말입니다.”
왕자의 말에 공주는 두 뺨을 붉히며 대답했어요.
“제 눈에는 멋지기만 한걸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요. 왕은 왕좌에서 벌떡 일어나, 파티장 가운데로 걸어갔어요. 그리고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며 금빛 왕관 모양으로 만든 가발을 벗어 공중으로 집어 던졌어요. 왕의 머리에는 회색빛으로 바래버린 솜털 몇 가닥만 남아 있었어요.
“머리카락이 없으면 뭐 어떤가! 무겁고 답답한 가발을 치우니 몸이 날아갈 듯 가볍구만!”
잔뜩 얼어붙었던 파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머리에 있던 무거운 머리핀과 빗을 바닥에 던졌어요. 어떤 사람들은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가발을 하늘 높이 집어 던지며 환호성을 질렀지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진정한 자유를 얻은 거-예요. 그제야 한시름을 덜어 낸 아치가 키득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게 제가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첫댓글 북극광- 오로라.
하나 배우고 갑니다.
원작 보다 겁나 길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