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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 후 5년 넘게 끌어오고 있는 격변의 큰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내년 세계경기에는 하락 위험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절벽과 세계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장기화가 큰 변수입니다.”
세계 3대 전략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최고경영자(CEO)인 밥 베첵(Bob Bechek) 글로벌 총괄대표는 단호한 표정으로 경제 전망을 풀어갔다. 만 25년 경력의 베테랑답게 핵심을 찌르는 일목요연한 말투였다.
미국 보스턴에서 1973년 출범한 베인앤컴퍼니는 2000년 이후 매년 매출 성장률이 두 자릿수이다. 스티브 엘리스(Ellis) 전 대표를 이어 올 3월 CEO에 취임한 그는 미국 MIT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훈련받은 전략·리더십 전문가로 글로벌 IT(정보기술) 분야에도 일가견이 있다. 세계 경제가 내년에도 왜 계속 하향할 가능성이 큰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먼저 오바마 2기 정부가 재정절벽을 해결하더라도 미국 경제에 대한 전체적 해법을 마련해 잘 실천할지 미지수입니다. 유로존도 위기 이전 수준의 성장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이 내수 주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며, 브라질은 성장의 큰 축인 자원 개발 동력이 꺾였어요.”
그는 “이런 측면에서 2013년은 각국마다 위기를 극복해 가는 방향과 실행 능력에 따라 향후 경제·정치적 순항 가능성과 속도가 크게 달라지는 원년(元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베첵 CEO는 AKR로보틱스라는 회사를 세워 연구·개발(R&D) 담당과 부사장 등으로 일하며 실전(實戰) 비즈니스를 하다가 1987년 컨설턴트로 직업을 바꾸었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고충을 훨씬 깊이 이해하는 편이다. 그는 “기업들도 내년을 어떻게 꾸려내느냐에 따라 동시 다발적인 역풍에서 벗어나 큰 성장 기회를 맞을 수도, 반대로 더 큰 악재에 뒤덮일 수 있다”고 했다. 2020년까지 전 세계에 27조달러(약 2경 8890조원) 규모의 방대한 새 시장 원천이 열린다는 전망에서다.
그렇다면 이 불확실하고 힘든 시기의 비책(秘策)은 뭘까? 베첵 CEO는 “‘영감(靈感)을 주는 리더’(inspirational leader)로의 변신이 첫번째 황금 열쇠”라고 했다.
‘영감을 주는 리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구성원들과 함께 성공하는’ 리더를 뜻한다”고 했다.
“이들은 통찰력 있는 지혜와 전략 마인드, 열린 소통으로 일선 직원들과 한마음을 이루며 신속한 의사 결정력과 유기체처럼 빠른 적응력을 가진 조직을 이끕니다.”
‘영감을 주는 리더’가 갖춰야 할 4개의 필수 자질도 꼽았다. ▲객관적인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 에너지,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 ▲타인과 공감하고 경청하는 능력 ▲고객·직원의 니즈(needs)를 단기 경영 실적보다 우선시하는 자세 ▲조직의 중심을 잡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도록 이끄는 능력 등이다.
다른 하나는 시류를 꿰뚫는 ‘눈’과 ‘결단력’이다. 특히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최신 경영 방식을 무조건 추종했다가는 백전백패하기 십상인 만큼 진정한 기회를 포착해내는 주체적인 혜안(慧眼)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e-커머스라는 변화의 바람을 지나왔고 유가 상승과 에너지산업 호황, 최근에는 이머징 마켓과 SNS 등을 둘러싼 광분에 가까운 열기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단기 고성장 시장만을 좇는 기업은 대부분 화를 자초하고 있는 사실도 모른 채 침몰했습니다.”
베첵 CEO는 따라서 “성공 기회가 있는 시장을 정확하게 포착해 남들과 달리 결단하고 실행하며 이를 바탕으로 ‘반복가능한 성공 공식’을 구축하는 게 요체”라고 했다. 하루 자문 수수료만 수만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CEO 조언가’로부터 Weekly BIZ가 직접 컨설팅을 받았다.
Weekly BIZ는 지난달 초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빌딩 10층에 있는 베인앤컴퍼니 코리아 회의실에서 밥 베첵 CEO와 마주 앉았다. 베인앤컴퍼니는 1993년부터 현직에 있는 오릿 가디쉬(Gadiesh) 회장과 밥 베첵 CEO의 양두(兩頭) 체제 형태지만, 실질적인 업무와 중요 결정은 베첵 CEO가 총괄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 CEO들이 당신 앞에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조언해달라"고 하자, 베첵 CEO는 "모든 기업은 역량과 시장 입지, 당면 과제 등이 서로 다르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가 이내 "한번 잘해봅시다"며 활짝 웃었다.
◇"기업의 수익성·재무상태 개선은 세계경제의 긍정적인 신호"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 2013년 경제는 어떻게 보나?
"어느 때보다도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높고, 주기 예측이 힘들며 영향의 범위도 큰 사상 최대 격변기이다. 글로벌 CEO들 가운데 69%가 지금 불황이 사상 최대라고 평가한다. 최근 상황은 대공황 이후 50년 동안 진행된 수차례의 불황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동시 파산하고, 금융의 위기가 산업의 위기로 전이되고, 그 여파가 단일 지역이 아닌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전 세계 20위권 은행 가운데 2012년 현재 남아있는 기업은 7개뿐이며 13개는 신흥국의 은행으로 바뀐 게 증거"라고 했다.
-내년 세계 경제의 리스크 요인은?
"공통적으로 경계해야 할 리스크만 7개가 상존한다. 보호주의와 무역장벽 부활, 우수 노동력의 글로벌 이동 제약, 원자재 부족, 자원확보 경쟁 격화, 군사적 분쟁 증가, 종교·사회적 계층 충돌, 환경오염 등이다.특히 보호주의· 무역장벽은 최근 20년간 진행돼온 자유무역 흐름과 배치되면서 자국 경제 이익 보호에 몰두하는 선진국들에 큰 유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2013년 세계경제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없나?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 상태가 매우 건전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앞으로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창의적 혁신이 정부와 가계부문을 대신해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징조로도 볼 수 있다. 내년 상반기 침체 후에 하반기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이다. 잘만하면 2020년에는 세계 경제가 동시다발적인 역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침체기라도 경기는 언젠가 상승할 텐데, 어떻게 대비하면 좋은가?
"침체기에 대반전을 준비하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where to bet)'에 대한 스마트한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는 자금이 넘치는데 이런 흐름은 2020년까지 지속할 터이다. CEO들은 수익성 있는 새 성장 원천을 발굴해야 한다. 베인은 '2020년까지 핵심 성장 8대 트렌드'를 꼽았는데 10억명의 신흥 중산층 부상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노후 인프라 신규 투자기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 8대 트렌드에서 창출되는 GDP 성장가치만 2020년까지 약 27조달러(약 2경 8890조원)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60%가 신흥경제권에서, 40%는 선진국에서 발생한다."
-인력·조직 감축 같은 다운사이징 전략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고 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미래성장 기회라는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고수익을 기대하는 상장 기업이 단기적으로 실시하는 다운사이징은 핵심 인력 이탈, 고객 서비스 하락, 기술·정보 유출 같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확장을 일방적으로 많이 했거나 업종 자체가 사양산업인 경우, 다운사이징을 통해 비즈니스 집중력 강화와 미래성장을 위한 재원 확보 같은 새 원천을 얻을 수 있다."
◇"삼성전자·시스코·안호이저처럼 '반복 가능한 성공 공식' 구축하라"
-성장 원천 발굴 외에 다른 성공 전략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how to win)'라는 측면에서 반복 가능한 성공 공식(repeatability)을 구축해야 한다. 이 성공 공식은 경영역량, 운영역량, 독점적 자산 등 세 개로 구성된다. 경영역량은 전략적 의사결정, M&A(인수합병) 역량, 조직·인사 관리 역량을 포함한다. 운영역량은 공급망관리, 고객·영업관리, 시장개척 역량처럼 모든 기능(cross-function)을 관통하는 기능적 효율성이다. 독점적 자산은 기술특허, 브랜드자산, 스케일 등 장기간의 투자에 의해 축적된 유무형의 자산을 포함한다. 이 세 요소를 잘 활용해 각자 상황에 맞는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훌륭한 CEO와 경영진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반복 가능한 성공공식'을 구축해 성공한 기업이 있는가?
"삼성전자와 시스코(Cisco)이다. 삼성전자는 포트폴리오 전략에서 명확한 우선순위화, 연구·개발과 공급 운영의 탁월함, 경쟁사를 압도하는 과감한 대규모 투자가 그것이다. 시스코는 다수의 M&A와 고객·제품·기술을 신속하게 내재화시킬 수 있는 PMI 역량이 성공공식이다. 이런 공식이 반복되면, 조직 역량이자 DNA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까지의 성공 공식을 이해하고 이를 확장 또는 보강하는 노력은 시장 상황이나 지리적 여건을 초월한 전제 조건이다."
베첵 CEO는 지난해 총매출 390억달러로 세계 최대 양조회사가 된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고 했다.
"안호이저는 고객, 공장 생산성, 예산과 관련한 3가지 반복 가능한 시스템을 갖고 이를 전 세계 지사에 적용합니다. 최고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이해하고 일상 업무도 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안호이저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2000~2010년 연 40% 가까이 성장했다는 게 이를 입증합니다."
-전형적인 '영감을 주는 리더'를 꼽는다면?
"온라인 의류 판매회사인 재포스(zappos.com)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니 셰이(Hsieh)다. 이 회사가 출범한 지 1년 후 합류한 그의 리더십으로 재포스는 2000년 매출액 160만달러 기업에서 2009년 12억달러 매출을 내는 회사로 컸고 그해 아마존에 인수됐다. 토니는 'CEO가 해야 할 일은 직원과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걸 잘하면 비즈니스는 절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트위터로 직원·고객들과 소통하는 데 그의 팔로워만 250만명에 달한다."
베첵 CEO는 "토니 셰이는 직원들을 위해 '일하기 즐거운 회사'를, 고객들을 위해서는 '평생 고객'을 각각 목표로 영감을 발산한다"고 했다.
"토니는 직원들에 대한 동기 부여는 인센티브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내적인 영감에서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재포스란 기업에 행복감을 느끼고 CEO의 영감에 고취된 직원들만 일하도록 합니다. 재포스의 고객 서비스와 업무가 차별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요."
-요즘 시기 한국 기업과 CEO들에게 조언한다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성공하려면 '현명한 지배 구조' 마련이 기본이다. 그다음은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진이다. 가격 경쟁력이나 월등한 리서치 역량, 혁신과 제조 역량 등도 중요하다. '반복 가능한 성공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이종(異種) 분야로 진출이나 M&A는 위험하다. 한국 CEO들에게는 주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열린, 정직한 자세와 기회 포착을 위해 대담하게 투자하는 의지를 발휘하라고 말하고 싶다."
☞ 밥 베첵(Bob Bechek) CEO는
학력 :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MIT(기계공학 학사)
경력 : AKR로보틱스 부사장, 베인앤컴 퍼니 입사(1987년) 후 글로벌 텔레콤·IT부문 책임, 북미 지역 대표
저서 :‘젱가 현상(The Jenga Phenomenon·2001년₩공저)’
BY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