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문화사, 음식 이야기
- 추천: 이탈리아가 그리운 분께,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아는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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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 바쁜 사람들을 위한 요깃거리, 부랑자들의 음식이었고 연기와 불꽃을 뿜어내는 화덕에서 꺼내자마자 뜨거운 상태에서 네 겹으로 접어 먹는 음식, 그런 식으로 거리의 모퉁이에 서서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먹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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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도래와 함께 식사와 식탁의 문화 역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대규모의 르네상스식 향연은 일종의 볼거리였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도 그것은 요리라기보다는 공연에 더 가깝다. 르네상스 사회는 중세 사회에 비해 덜 폭력적이었고, 따라서 칼도 좀 더 부드러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칼끝이 둥글게 변하기 시작한다. 포크의 등장으로 인해 음식을 칼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야 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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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고 1000번을 반복하면 진실로 변하는 법이다. "미국인들은 주저 없이 이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기세를 몰아 하나의 진실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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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에는 별 볼 일 없는 재료도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다. 맛있는 샐러드의 비밀은 재료의 차이, 상반된 재료의 공존과 조합에 있다. 이 요리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조합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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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죽어서야 착하게 굴었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착하게 구는 동물은 소다. 살아서는 착하게 굴고 죽어서 귀찮게 하는 동물은 개, 죽어서든 살아서든 나쁜 동물은 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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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냄비를 하나 가져다가 물을 담고 불 위에 올려놓아요. 물이 속삭이기 시작하면 다들 노란 밀가루라고 부르는 금처럼 멋진 가루를 천천히 물에 녹이면서 넣을게요. 당신은 그 주걱을 넣어 원도 그리고 직선도 그려보세요. 내용물이 걸쭉해지면 냄비를 불에서 꺼낸 뒤에 같이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냄비에서 접시로 옮겨 담는 거예요. 그 위에 신선하고 노란 버터를 손으로 잘라 듬뿍 얹고 또 기름지고 노랗게 잘 갈린 치즈도 마음껏 뿌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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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아주 오래전부터 도처에서 주식으로 활용되어왔고 어떤 위미에서는 "다른 어떤 생명체도 그 제조 비밀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위대하고 진정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빵은 절대로 자연식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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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검은색이었고 물도 검은색, 물소들의 가죽도 검은색, 초가집의 내부도 연기에 그을린 검은색이었다. 눈처럼 하얀 모짜렐라의 색깔은 그것을 만들던 환경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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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커피 애호가였던 발자크는 커피를 두고 동기부여가 확실한 병사들의 군대에 비유한 바 있다. "커피가 위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쟁터에서 대규모의 병력이 일제히 전진하는 것처럼 아이디어가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명사수처럼 즉흥적이고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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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커피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사가 아닌 금지령이었다. 금지령보다 효과가 더 뛰어난 광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커피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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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비알레티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1만 개의 모카포트를 만들어 직접 시장과 박람회장을 돌아다니며 판매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지극히 아끼는 장인이었다. 전하는 바로는 저녁이 되면 공장에서 어렵게 만들어낸 제품 하나를 품에 안은 채 침대에 누워 시가를 피우며 잠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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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금색이고, 가볍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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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믹 식초를 만드는 과정은 상단히 길고 복잡하다. 먼저 포도즙을 끓이고 나무통에 담아 묵힌다. 주기적으로 커다란 통에서 크기가 좀 더 작은 통으로 내용물을 옮겨 담는데, 이 공정은 처음 40리터가 고작 몇 리터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식초는 한여름의 지붕 밑에서 끓는 열기를 받아 증발하고 농축되지만 훌륭한 식초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한겨울의 추위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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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롤로는 무엇보다도 눈을 즐겁게 한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건 나이가 지긋한 와인이다. 13년이란 세월이 담긴 와인. 뜨거운 느낌을 전달하는 벽돌색을 통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 질 무렵 폭풍우가 몰아친 뒤 갑자기 갠 하늘을 뚫고 훨훨 타오르는 볼로냐의 탑들이다. 그 뒤에 등장하는 맛은 혀를 힘차게 휘감으며 입맛을 강탈하는 듯하다. 그 맛이 전달하는 것은 충만함과 왕성함이다. 바롤로는 정직하기 짝이 없는 와인이다. 다리 힘을 빼앗는 법도 없고 머리를 아프게 하지도 않으면서, 꿈이 없는 잔잔하고 평온한 잠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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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요한 몰아세우기는 결국 사과의 신성한 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말았다. 사과는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일로 남아 있지만 기독교 문화에서 켈트족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졌고 미사에서 주인공 역할은 포도주가 맡게 되었다. 사과주는 공개적으로 금지되었다. 13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베네딕트회의 교부 성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성체성사에서는 포도주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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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에 발표된 한 법안은 포도나무에 피해를 입히거나 포도를 훔치는 자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엄하게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포도밭에서 포도를 쪼다가 들킨 닭과 병아리는 처음으로 법을 위반했을 경우 주인이 벌금을 내는 것으로 끝나지만, 재차 위반했을 때는 목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처벌의 강도가 결코 약했다고 볼 수 없다. 최소한 채찍질에서 시작해 손을 자르는 단계로 넘어갔고, 최악의 경우에는 닭처럼 목을 매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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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빨리 걷는 거예요. 정신을 가다듬고 나 자신과의 조화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산책을 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고랑 사이를 걷다가 민트 향기를 맡은 적이 있어요. 걸음을 멈추고 보니 그곳에서 민트가 자라고 있더군요. 포도나무들이 예쁘게 봐준 건지,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던 거죠. 몇 달이 지난 뒤 그곳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맛보다가 똑같은 향기를 맡았지 뭐예요. 얼마나 큰 감동이 밀려오던지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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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빵에 발라 먹는 크림을 만드는 페레로에게 중국은 보통 심각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중국은 빵이 없는 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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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기억의 산물이라고 한다.
경험이 풍부할 수록 많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시식을 할 수 있는 곳을 가면
여러 나라의 공통점이 자신의 경험을 맛에서 읽어낼 수 있는지를 꼭 물어본다.
꼭 맛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냄새, 질감, 시각으로 잡아 둔 것 등
그 모든 것이 종합이 되어 맛이라는 하나의 줄거리로 잡힌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래서 즐겁다.
각각의 음식마다에서 글자로뿐만 아니라
온 감각이 반응을 한다.
그러면서 음식을 통해서 다시 어떤 공간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맛과 향과 색과 질감으로 기억되는 세계.
나는 대체로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음식을 하는 데 드는 시간부터 음식을 나누고 즐기는 시간까지를 모두 사랑하는 편이었다.
요즘 자꾸만 이른바 사료 운운하는 신조어처럼 음식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음식이 가지는 경이로움을 잊지 않고 있고
다시 그 시간들을 언젠가 보내게 되리라 생각이 든다.
먹어야만 하는 음식이 아니라
즐기고, 음미하고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음식의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