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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14장 16-18
이분은 누구일까요?
저도 저를 모를 때가 있는데 이분은 저의 전부를 아십니다.
제가 범죄할 때 저보다 더 아파하십니다.
아마 저 때문에 이분 속이 다 문드러졌을 겁니다.
이분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 우리를 돕기 위한 영적 배필.
정답은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은 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우리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우리는 참 불안하고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는 죄악의 쓴뿌리가 남아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한순간 자존심만 상해도 그 아름답고 거룩한 기도와 찬송이 신경질과 짜증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립니다.
감정기복이 널뛰기 합니다. 여전히 죄악에 대하여 우리는 젬병입니다.
구원받았다는데 하나님의 자녀라는데 도무지 세상 사람보다 나은 게 없어 보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실상은 고아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는 18절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책임져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성령님을 이렇게 부르십니다.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는 보호하고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존재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 클레이토스’라고 합니다. 옆에서 돕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17번이나 '에제르'라 불렀습니다.
한 예로 시편 46편 1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오. 능력이십니다. 성령님은 연료와 같으십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힘있게 하는 기름이십니다.
힘있게 신앙생활하고 싶다면 이기는 신앙생활하고 싶다면
제대로 신앙생활하고 싶다면 성령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성령이 오실 때를 기다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혹시 자꾸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분이 있으십니까?
거룩하게 살고 싶고 자꾸 사랑하자 다짐하게 되는 분이 있으십니까?
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미 당신에게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이 아닌 누구도 이러한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17절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직 성령만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모든 경우에 옳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옳은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모두를 이기게 합니다.
모두를 살립니다. 그래서 진리는 죄인까지 구원합니다. 진리는 완전한 사랑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도 살려내시는 완전하게 사랑하시고 영원한 생명이 되신 분이 누구십니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수 없습니다.
또 성령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어쩌다 한번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번 오시면 아예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왜 충분히 알수 없을까요? 우리가 성령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미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기를 문밖에서 기다리십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온전해질 때 성령님이 임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오해입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품으십니다. 또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만 임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성령님이 정말 민첩하고 압도적으로 임재하시는 자리는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자리,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리, 우리가 고민하는 자리, 우리가 죄악의 유혹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는 자리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정확하게 소개합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뛰어 들어오십니다.
성령님 입장에서 이건 정말 못할 짓입니다. 우리를 이렇게나 사랑하시는데 성령님은 우리에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그걸 감수하십니다. 왜요?
성령님은 진심으로 우리와 사귀길 원하십니다.
성령과 사귐이 영적으로 훌륭한 사람만 가능한 게 아닙니다.
사귐은 좋은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이미 우리의 환난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같이 울고 웃고 아파하고 계십니다.
왜 영광스런 하나님이 이러고 계십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와 사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 하나님 같은 분은 없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모든 것을 나누며 사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진심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드립니다.
그때에 ‘우리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비로소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새롭게 바꾸십니다.
특히 인격을 바꾸십니다.
성령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실은 그분이 인격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니 억지로라도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려고요.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려고요.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온달 장군으로 거듭나게 하듯이 우리를 온전케 변화시키십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성령님과 우리가 혼인한 것과 같습니다.
진정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거십니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영원한 영혼의 배필이십니다.
또 혼인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혼수를 가지고 와 돕는 것처럼 성령님도 은사를 가지고 오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0절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은사는 선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랑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지혜의 은사는 상황속에서 진리를 적용하여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혜는 모든 상황속에서 가장 선하고 덕이 되는 판단을 합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은사를 주십니다. 지식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말씀을 더 깊이 해석하고 그 이치를 깨달아 압니다. 이렇게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룹니다. 이것이 매일 평생토록 쌓이면 믿음이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은사도 주십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진정한 은사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엔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이 흘러 넘칩니다. 은사는 나를 넘어 모두를 섬깁니다.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하는 은사도 주십니다. 더 나아가 예언의 은사도 주십니다.
장차 하나님이 행하실 바를 압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니 영 분별의 은사도 주십니다. 사탄은 우리를 자꾸 헷갈리게 하고 흔들어댑니다.
우리는 흔히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는데 성령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십니다.
방언의 은사, 또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다 그 일환입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귀기 위한 선물입니다.
이 은사를 잘 사용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갈라디아서 5장22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모두 우리의 인격을 거룩하게 하는 덕목들입니다.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합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기쁩니다. 도무지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이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필시 오래참습니다. 문제는 잘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사람까지 끝까지 참아내면 하나님이 자비의 열매를 주십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자비로운 마음을 진짜 실천하는 것이 양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양선을 한두번 하다 말지 않고 끝까지 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충성하면 사랑하면 성령께서 온유의 열매를 주십니다. 온유는 그 사람을 통째로 받아들인 마음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와 이어지고 통하고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열매는 절제입니다. 절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말합니다. 기꺼이 하나님께 다스림받는 일이 영적 사귐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과 이웃과 나 자신과 온전히 사귀게 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어떤 환상과 신비만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사귀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격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은 곧 성령님의 인격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닮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성령충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충만하면 먼저 성령님과 합력합니다. 합력이 곧 사랑입니다.
또 성령충만한 우리 서로가 합력합니다. 그렇게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들을 온전케 하고 살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 할 일은 하나입니다. 진실하십시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인정하십시오.
성령을 매순간 사모하십시오. 이미 오셨습니다. 지금 함께 계십니다.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자 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어드리십시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