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의 비밀" 사이트에서 퍼온글입니다.
우리역사는 의문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아야 합니다
이미 기 언급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만은 다시 질의하신분이 있어 다시한번 자세히 정리해봅니다
이번에는 근세부터 역방향으로 의문점을 제시해 봅니다
일부 부족한 내용은 주말 업데이트 합니다
< 나당연합군이 과연 반도에서 활동하였는가 ? >
< 삼국사기 기록 >
대전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다음기록입니다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 660년 3월, 나당연합군 18만의 병력이 백제 침공(당군 13만, 신라군 5만)
- 소정방, 의자왕과 왕족, 신하 등 93인과 백제인 1만 2천인을 포로로 하여 당으로 돌아감
"백제의 부흥운동"시
- 당군 40만 증파
- 당시 부흥군이 회복한 성 200여성
< 임진왜란, 부산포 해전 >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은 양국 전함 동원수가 가장 많았던 전투였음

- 시기 : 1592. 9. 1
- 세력 : 아군 173척, 적군 470 여척
- 전과 : 적선 128척 격침, 아군 피해 무
☞ 자료 해군사관학교
< 주요전함 >
1. 판옥선(板屋船) :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함
- 지휘관 탑승용 판옥선 : 갑판장 86~70척, 탑승인원 160명, 노 18자루
- 일반 판옥선 : 갑판장 50~55척, 탑승인원 125명, 노 12~14자루
2. 거북선
- 선체길이 70자, 저판 길이 50자, 선체 너비 24자, 상장 너비 30자
- 승선 인원 125명, 노의 수 14자루
< 승선인원 비교 : 8~9세기 바이킹선 >
서양비교의 8~9세기 바이킹선과 비교해보면
- 일반적인 크기 : 전장 25~30m, 노수 20~25쌍
- 승선인원 : 승원 80~120명 정도
☞ 자료 인터넷 자료검색
< 신안선 규모 >
1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1975년 전남앞바다에서 인양된 "신안선"의 제원
- 길이 : 최대 28.4m ~ 34m 추정
- 폭 : 최대 6.6m ~ 11m 추정

- 출처 : http://www.seamuse.go.kr/index.htm
☞ 고려나 삼국시대 전함(목선)의 최대승선 가능 인원 자료 있으신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조선시대 병선규모 >
- 조선초 : 428척
- 세조때 : 739척
☞ 평균수명 5년
선조 25년(1592) 4월 13일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칠백여척의 대선단으로 침공, 임진왜란이 시작됨
< 참고 : 인천상륙작전시 병선규모 >
1950. 9.15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시 제10군단을 주축으로
연합군 7만 5천명이 인천을 통해 상륙하는데
- 2만 5천명씩 3번에 걸쳐 상륙
- 동원된 함선 261척, 비행기 약 1천대
< 과연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인가 ? >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 660년 3월, 나당연합군 18만의 병력이 백제 침공(당군 13만, 신라군 5만)
- 소정방, 의자왕과 왕족, 신하 등 93인과 백제인 1만 2천인을 포로로 하여 당으로 돌아감
"백제의 부흥운동"시
- 당군 40만 증파
- 당시 부흥군이 회복한 성 200여성
< 의문점 제시 >
배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고려시대 60여명 정도 승선이 가능한 것으로 소개되어있음
1. 고려시대 전함의 최대승선 가능인원(추정)을 조선시대대비 최대 약100명으로 추정시
- 당군 13만 / 100명 = 1,300척
- 당군 40만 / 100명 = 4,000척
2. 고려시대 전함의 최대승선 가능인원(추정)을 약 60명(배의 역사자료)으로 추정시
- 당군 13만 / 60명 = 2,166척
- 당군 40만 / 60명 = 6,666척
이정도 규모의 배(무동력선)가 산둥반도에서 금강하구로 온다는 것이 되는데
가능한 일인가 ?
☞ 현재 산둥반도에서 한반도 서해까지 도달시간 : 현재 여객선으로 17시간 정도 소요
☞ 원시적인 뗏목 탐사시 : 16일 소요 (조선일보 기사)
3. 복귀시 1만 2천명을 포로로 잡아간다. - 포로 규모가 너무 크다
- 뱃길로 돌아 갔을 것 아닌가
4. 군량미 등 보급선을 별도 감안할 경우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 대규모 군사가 당시 몇번에 걸쳐 올수 있는 거리 였을까 ?
< 맺음말 >
조선시대 보유 병선규모가 400 ~ 700척에 불과하였다
최대 승선인원 130명
그것보다 800년전에 40만 군사가 산둥반도에서 금강하구로 왔다
기록을 부인할 수 없으니 이것을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조선때 이율곡이 10만 양병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1593년 정월 임진란때 명나라에 통보한 의병 총수는 관군의 1/4인 2만2,600명이었고
백제 패망후 730여년이 지난후 지방별 인구 (태조 및 태종실록)를 보면
- 경기, 충청, 전라도 : 56,003호
- 경상도 48,993호 였으며
신라의 경우 수도에 약 17만9천호가 있었는데 신라가 패망한지 500여년이 지난후 조선 때 경상도의 총호수가 10만에도 미달했다
이의문점을 풀기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당, 백제 전쟁지명>
정사, 중국고지도(우적도), 현재지도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위로부터 전쟁지명을 차례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석문
2. 대방
3. 석성
4. 평원
5. 황산
6. 대산(태산)
7. 제성
8. 동명
9. 백마강(백마하)
10. 주류성
11. 항성
12. 동성
13. 잠산
14. 독산
15. 덕안
※ 참 고
제가 자주 통화드리는 선생님은 수나라때 900여명이 승선할 수 있는 전함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을 못하였습니다
중국내부의 황하나 양자강을 도강하기위한 전함이라면 모르겠으나
600년대 황해를 건너기 위한 그러한 크기의 전함이 있었는지는 더 확인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