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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4:19-15:8
찬송가 394장 ‘이 세상의 친구들’
삼손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 한 여인과 결혼을 하기로 하고 잔치를 베풉니다. 그 와중에 잔치에 참여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내기를 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그녀와 아버지 집을 불태우겠다고 하며 삼손에게 정답을 알아내게 합니다. 삼손은 아내의 요청에 참지 못하고 정답을 알려주었고 삼손의 아내는 그 답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하여 결국 삼손은 내기에서 지게 됩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이용해서 정답을 맞춘 것을 깨달았고 매우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그 이후 삼손의 복수가 시작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내기에서 진 삼손(14:19-20절)
(19-20)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내기에서 진 대가로 베 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분노한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고, 삼손은 아스글론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스글론은 지중에 옆 해양도시로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멀리 이동한 이유는 옷을 받은 블레셋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취하였는지 알지 못하여 문제 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스글론에 내려간 삼손은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해서 그 옷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잔치를 마치지 않고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삼손이 심히 노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속인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입니다. 적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라면 그런 상황들을 의논하거나 알려주었어야 했음에도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정답을 블레셋에 알려준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아내를 협박해서 정답을 알아낸 블레셋 사람들의 야비함에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삼손은 내기에서 진 그 자체로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났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었든 내기에서 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삼손은 이 세가지 이유로 무척이나 분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삼손의 분노한 모습과 떠나버린 모습을 보고 여인의 아버지는 저렇게 분노하였으면 삼손이 자신의 딸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딸을 삼손의 친구 아마도 그 결혼식에 함께 있던 들러리 친구와 결혼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훗날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삼손의 복수(15:1-8절)
(1-2)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시간이 조금 지나 삼손의 분노가 사그라들고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보기 위해 다시 찾아가는데, 그냥 가자니 민망해서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고자 염소 새끼 하나를 가지고 딤나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염소 새끼를 가지고 간 것은 우리나라 정서로 볼 때는 마치 처가에 잘 보이기 위해 “한우선물세트”를 가지고 간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결혼 잔치 중간에 가버린 것에 대하여 아내의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찾던 삼손에게 장인은 삼손이 그녀를 미워하는 줄 알고 그녀를 삼손의 친구에게 주었으며 차라리 더 예쁜 동생을 줄테니 그녀와 결혼하라고 권유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손의 장인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라반이 야곱에게 딸들을 상품처럼 이윤의 도구로 사용한 모습과 비슷합니다. 삼손이 처음 아내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조금은 기다리거나 삼손의 의사를 물어보았어야 함에도 지참금을 이미 지불했을 삼손의 의사는 묻지 않고 삼손의 친구에게 딸을 넘겨 버립니다. 이러면서 장인어른은 삼손의 친구에게 또 지참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미 지참금을 지불했을 삼손이 아내를 찾으러 오자 난처한 상황에 빠졌고, 이번에는 동생을 삼손에게 주어 삼손을 달래려 할 뿐만 아니라 지참금에 대한 변상의 의무도 면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삼손에 대한 신의도 져버린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의 딸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로서도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삼손은 그런 장인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참았던 분노가 폭발해 버리고 맙니다.
(3-5)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삼손은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해를 가할지라도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이 일의 부당함에 대하여 항의할 것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 옵니다. 여기서 여우는 ‘슈알’이라는 단어인데 이 ‘슈알’이라는 단어는 ‘여우, 자칼’이라는 두 동물을 모두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여우라고 번역된 이 ‘슈알’이 여우일수도 있고 또한 떼를 지어 다니며 그 지역에 쉽게 발견되었던 ‘자칼’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꼬리와 꼬리를 매고 그 사이에 홰를 답니다. 여기서 ‘홰’란 ‘횃불’을 밝힐 때 사용하는 불이 잘 붙는 물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당황스러운 장면에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굳이 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사용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는 그 당시 삼손이 살던 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후에도 나오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삼손을 내어 달라 했을 때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블레셋에 맞서 싸우기보다 아군 삼손을 그들에게 내어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블레셋과 싸운 삼손에게 오히려 니가 블레셋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우리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질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삼손과 더불어 용감하게 블레셋과 싸울 장수 혹은 동료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손은 여우를 붙들어 자신의 동료로 삼았습니다. 삼손은 여우 둘을 한 팀을 만들어 150쌍으로 만들었고, 그 중간에 홰를 묶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한 마리 여우당 하나씩 횃불을 달지 않고 두 마리의 꼬리를 묶어 중간에 횃불을 단 것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여우 한 마리에게 한 횃불을 달면 일은 더욱 쉽지만 그 여우는 재빠르게 도망을 쳐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꼬리를 묶어 놓는 다면 그 여우들은 빙글 빙글 돌면서 서로가 가려는 방향이 부딪쳐서 그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불태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블레셋의 피해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삼손의 작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여우 떼는 곡식 단, 곡식, 포도원, 감람나무 곧 올리브 농원을 모조리 태워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분노했습니다.
(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겁도 없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불살라버린 범인이 누군지 조사를 했고, 사람들은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 범인이며, 그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에 이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 장인과 여자를 불살라 죽여버립니다. 자신들의 재산이 불탔기에 동일하게 불로 태운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잔인함을 보여줍니다. 동족이 자신과 아버지를 불로 태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해서 두려움에 삼손을 속였던 이 여인은 결국 자신의 민족에게 아버지와 함께 불로 태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을 들은 삼손은 더욱 분노하였습니다.
(7-8)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아무리 타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도 자신이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을 불로 태워죽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삼손은 원수를 갚겠다고 하며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에담 바위 틈에 머무르게 됩니다. ‘정강이와 넓적다리’는 힘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곧 상대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상대를 “묵사발을 만들었다”라는 표현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는 삼손의 모습속에 내심 한 편으로 이상한 생각도 듭니다. 기존에 사사들은 뭔가 백성을 대표하여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거나 혹은 명령에 순종하여 전투에 임한다거나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표와 지도자로 인정을 받는다거나 자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용기내어 적을 섬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삼손의 전투에는 개인적 원한 관계에 대한 복수같이 보이는 모습을 감출래야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삼손의 모습을 보며 블레셋을 무찌르기 위한 삼손의 깊은 뜻과 계획이 숨어 있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삼손의 여러 행동들이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 예상할 수 없었으며, 분노하여 집에 돌아왔던 것이나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염소 새끼를 가지고 찾아온 모습은 다른 어떤 계획이나 의도성이 보이지 않으며, 또한 장인어른이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줄것이라는 것도 계획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삼손은 정말 자신의 힘을 믿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그런 삼손을 통해 벌어진 이 저주받은 결혼식같은 사건은 ‘총체적 난국’입니다. 결혼 잔치의 하객이 신부를 불로 태워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결혼할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남편은 사람을 죽여 옷을 내기의 대가로 치루며 분노하여 집에 가버리고, 장인은 그런 사위를 대신해 사위의 친구에게 딸을 넘기고, 돌아온 사위에게 신부의 동생이 더 예쁘다고 결혼하라고 하고, 그 말을 들은 사위는 분노하여 여우 300마리에 횃불을 달아 온 동네를 불태우고, 그것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그 신부와 아버지를 불태워 죽이고, 또 그 사위는 분노하여 마을 사람들을 쳐서 죽인 신문 헤드라인에 나올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축복받아야 할 결혼잔치가 피로 물든 복수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아니,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자의 시체를 만져 꿀을 먹고 세상의 풍습대로 술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초대하여 먹고 마시며 흥에 겨워 수수께끼를 냈다가 낭패를 당한 삼손이 피해자입니까? 아니면 자신과 아버지의 집을 위해 삼손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남편을 속인 여인과 그런 딸을 사위의 친구에게 넘기고 더 예쁜 동생과 결혼하라고 하며 딸들을 물건처럼 다룬 아버지가 피해자입니까? 아니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고 결국 불로 여인과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블레셋 사람들이 피해자입니까? 아내에게 속임을 당하고, 아내를 빼앗긴 삼손, 민족에게 협박을 당하고 불태워 죽게 된 아내와 아버지, 삼손에 의해 재산이 불태워지고 맞아 죽은 블레셋 사람들 모두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모두가 각 자 인생에 왕이 되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죄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도 없이 개인의 욕망과 보이는 것과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살아가는 나실인 삼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그의 개인적 복수를 통해서 블레셋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어떠했습니까? 그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 편에 설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삼손이라는 개인에게 큰 힘을 주시어 블레셋을 공격하게 하셨고, 그런 삼손에게 아군이 없었기에 여우 300마리를 사용하게 하셔서 공격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뒤로 물러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 없이도 승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변질되고 믿음을 떠났고 연약해졌지만, 이방 민족은 더 포악하고 잔인해졌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의 기준이 아닌 더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갔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없었고, 그들 스스로의 얽히고 설키는 복수의 이야기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사사기처럼 하나님의 왕 되심이 없고, 각자가 왕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 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짓, 협박, 폭력, 인간의 수단화와 같은 여러 악한 모습들이 가득하고, 사자보다 강했지만 꿀의 유혹에 넘어진 삼손처럼 하나님이 주신 큰 힘에도 불구하고 세속화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그런 악이 가득한 시궁창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고 이스라엘의 곁에 머물러 기회를 주시는 것처럼, 지금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서기를, 자기 곁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공동체가 악으로 물들어 소망이 없다 느끼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럼에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 삼으며,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삶을 살아 가십시다. 그 삶 속에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더 악해져만 가는 것 같고, 교회는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그런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삼손처럼 하나님께 받은 것은 많지만 꿀의 유혹에 넘어져 부정한 것에 손을 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날마다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신 주님처럼 우리 또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 되게 지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자신의 딸들을 물건처럼 여기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에 사람을 수단화, 도구화 했던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2. 본문에 서로 속고 속이며, 복수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된 인간의 폭력성과 거짓된 모습을 묵상해 봅시다.
3. 아무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고 택하신 나실인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묵상해 봅시다.
4.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베푸시는 은혜와 기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죄 된 모습을 보며 오늘 내가 버리고 돌이켜야 할 죄와 세속적 가치관은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