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센터백들이여.. 나카자와를 넘어라..
[싸커월드]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센터백은 누구인가?
아쉽게도 정답은 나카자와 유지.. 바로 일본인이다.. 어쩔수 없다.. 이것이 정답일 확률을 나는 100%로 보고 있다.. 지금 까지 나는 대한민국이 역대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를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이 은퇴를 선언한 그 시점부터 이 선수는 아시아최고의 센터백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나카자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 나는 분명 욕을 먹을 것이다.. 분명 한국의 선수들에게는 나카자와보다 더 높은 이상향의 선수와 목표가 있다.. 그러나 나카자와는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첫번째 벽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수비수란 어려운 직종이다.. 상대방은 날이선 칼과 시퍼런 송곳니를 내민채 내 앞으로 달려온다.. 수비수는 먼저 카드를 뽑을 수가 없다.. 능동적으로 부딧혀 오는 상대를 수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불리한 자리이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계산과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이런것이다..
수비란 바로 혼이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면서 신체적으로 강인하게 부딧혀야 한다.. 빠르게 판단해야하고 무섭게 예측해야 한다.. 나를 다스리는데 실패하면 그것이 실점이다.. 하나의 실수로 모든게 달라진다.. 자신의 판단은 자신의 팀에게 정체성을 두는 수백수천 팬들의 판단력을 대변한다.. 그곳의 정점에서 다시 부딧혀 오는 적과 순간적인 수싸움을 한다.. 찰나의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나카자와는 주목받았다..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 수비수임에도 한국의 팬들은 그를 안다.. 이하라 이후에 마츠다, 미야모토, 모리오카, 아키타 등의 선수가 있었지만 한국팬에게도 이렇게 큰 죽목을 받는 선수는 없었다.. 그는 엄청난 노력파이고 나름의 가치를 가진 선수다.. 주목받은 이면의 그의 노력을 이 글로 다 표현할수 없다.. 한국의 센터백들은 나카자와를 넘어야 한다.. 그럼 일단 아시아 최고의 센터백 타이틀은 거머쥔 셈이다..
1. "힘을 내서 촌스럽게 해 나가고 싶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카자와는 거칠고 투박하고 촌스럽다.. 그는 풍기는 외모부터 단정함과 거리가 멀다.. 원시적이고 그만큼 인간답다..
나카자와는 데뷔부터가 이미 비상하다.. 미사토 공고졸업후 브라질 유학을 1년간 다녀온 후 메니저먼트사도 없이 스스로를 가와사키 베르디에 던져 넣었다.. 지급품 없다.. 당연히 연봉이나 주급같은건 일체 없다.. 완전 아무것도 아닌 연습생으로 시작했다.. 그것이 98년.. 그러나 다음해 99년 리그 주전으로 28게임을 소화했다.. 그해 J리그 신인왕과 리그 베스트 11을 석권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헤딩을 연습했다.. 이것이 훗날 자신을 내세울만한 카드중 하나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데뷔2년만인 2000년엔 싱가폴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다.. 그 기세로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나 02년 월드컵에는 미야모토에 밀려 나오지 못했다..
03년에는 리그 29경기 4골로 J리그 최초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에 일등공신이 되면서 그뒤로 꾸준히 대표에 승선하였다.. 04년 아시안컵때는 4골을 쏘아올림과 동시에 막강한 수비를 보여주었고.. 2004년 아시아 컵 베스트 11에 선출되었다.. 04년 그는 또 한번 요코하마를 리그2연패 시키고 J리그 최우스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누구나 그렇듯 주변에 우연히 축구클럽이 생겼기때문에 축구를 시작한 평범한 이중 하나였다..
2. BOMBER 22
그의 별명은 폭파범이다.. 폭파범 넘버 22.. 즉 봄버 22다..
그는 가와사키에서 연습생으로 있을때 단지 주목받기위해 머리를 폭탄머리로 바꾸었다.. 그렇게 그는 닉네임이 봄버가 되었다.. 엉뚱하다.. 그런데 왜 22번인가.. 그가 처음 정식계약을 할때 받은 번호이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5번이나 4번같은 번호에 욕심을 두지 않는다.. 일본 국가대표로서도 22번.. 요코하마 마리노스 센터백으로서도 22번이다.. 그래서 처음 요코하마로 이적할때 22번이 다른 선수의 번호여서 트러블이 있던 적도 있다..
연습생 시절 그는 클럽으로부터 1원도 받을수 없는 처지였기에 사이타마현에서 베르디의 연습장이 있는 도쿄까지 매일 왕복 1~2시간씩.. 교통비 1800엔의 자비를 들여 찾았다.. 결국 그는 정말 봄버가 되었다.. 승부사 기질이 있다.. 결국 지금은 일본에 내노라 하는 수비수들을 모두 밑에 두었다.. 투리왕이라 불리는 툴리오가 나카자와와 함께 중요한 선수로 부각되어지긴 하지만 한국선수처럼 강인한 파이터수비수를 갈망해왔던 일본축구계에 나카자와는 더욱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선수다..
3. 선비정신과 사무라이
나는 그를 선비의 정신을 가진 사무라이로 비교하고 싶다.. 그는 경기중 계속해서 아군을 다독이고 하나로 뭉쳐준다.. 어느팀에나 있는 캡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팀의 정신력을 통솔할 능력있는 선비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러나 칼을 뽑아들 때는 그는 과감히 칼을 뽑는다..
04년과 07년..아시안컵.. 그는 위기절정의 일본대표를 헤딩한방으로 살렸다.. 바레인전에서 일본은 바레인에게 호되게 혼이나고 있었다.. 일본의 수비는 사방에서 뚫리고 있었지만 나카자와는 자신이 도맡은 왼쪽에서 한번도 돌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즈 타임에 과감한 공격시도로 동점골을 뽑아 올렸다.. 일본은 연장에서 바레인을 꺾었고 결국 대회를 우승했다.. 당시 주력이 5~6명정도 빠진 일본의 전력은 요르단, 바레인과 승부해서 승리를 장담할수 없는 수준의 레벨이 아니었다 (오히려 패하지 않은 것이 다행인 경기였다).
그러나 일본은 우승했고.. 그 우승의 주역은 단연 나카자와다 (나카무라, 가와구치까지 3명의 플레이야 말로 일본우승의 원인 그자체이다)
그는 한일전에서도 통한의 결승골을 뽑았다.. 경기막판 나는 경기를 시청하면서 나카자와를 조심해야 됀다고 말했는데 결국 그가 넣었다.. 07년 아시안컵 준결승 사우디전 득점은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수 없다..
그는 골을 넣고 매우 인상깊은 포효를 한다.. 그의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쓰는 그 순간 일본인에게 엄청난 믿음을 안겨줄 것이다.. 그는 일본선수들이 우왕자왕 하는 그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한다.. 그도 미스를 범하지만 만회한다는 느낌으로 축구를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플레이를 유지한다..
2달전 있었던 동아시안컵에서 나는 다시금 일본의 전력에 상당한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일본팀은 강한팀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일본을 이기지는 못했다..
4."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대뜸 쌩뚱맞는 소리를 했다.. 그는 솔직하게 어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원래 나카자와는 얼마전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그러나 다시 오카다 사단에 들어왔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선수가 NBA에 진출하면서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NBA에 진출함으로서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만족합니다' .. 이 인터뷰를 들은 나카자와는 '나는 더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 왜 저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이러고 있나' 라고 생각되어 복귀를 결심했다고 한다.. 더 잼있는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수같은건 없단다..
다시 두달전 동아시아 대회로 가보자.. 중국과의 경기에서 스즈키선수는 중국의 리웨이펑과의 충돌로 인한 불화가 있었다.. 중국 선수들은 순식간에 스즈키선수를 잡아먹을듯 둘러 쌓았다.. 그곳은 중국의 홈이었다.. 관중들은 야유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중재하는 선수는 나카자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카다 감독은 일본선수들의 동료애에 대한 지적을 했다.. 스즈키를 구하러(?) 간 선수는 나카자와 한명 뿐이었던 것이다..
한일전이 끝나고 나카자와는 자신과 일본이 한국보다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하지 않은 힘을 보여주었다.. 그날의 그는 수원의 마토를 연상케 했다.. 솔직한 그라면 뭔가 일본다운 핑계를 댈수 있었을것.. 그러나 그는 패배를 인정하고 와신상담한다.. 툴리오 선수가 언론플레이로서 한국을 자극해왔던 것과는 다르다.. 더더욱이 매료될수 밖에 없는 선수가 나카자와다..
5.한국의 젊은 센터백들이여.. 나카자와를 넘어라..
목표를 두자.. 비디치나 존 테리처럼 될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하루아침에 비디치나 존테리로서 존재할수 없었음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수비수는 어느 포지션보다도 정신수양이 필요하다.. 정신을 수양하는데에 있어 바람잡이 역할을 도와줄수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 바람잡이의 역할로.. 가장 가까운 교재로서 나는 다시 나카자와 유지를 추천하고 싶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그에게서 과감히 장점을 수용하고 과감히 그에 단점을 질문하여 곤경에 빠뜨려라..
78년생인 그의 나이는 만 30세.. 앞으로 길면 5년.. 적으면 3년 정도의 기간내에 일본수비포맷의 중심포인트인 그의 비중은 점점 툴리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일본 축구 역사상 가장 강한 임팩트를 준 센터백인 그의 벽은 툴리오로서도 부담이 될것이다.. 한국의 센터백들이 툴리오와 같은 입장에서 나카자와를 넘어서려는 도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것 같다..
나카자와 유지
1978.02.25. 187cm. 78Kg
J리그
1999 베르디 카와사키 28경기 1골
2000 베르디 카와사키 29경기 4골
2001 도쿄 베르디1969 26경기 0골
2002 요코하마 F·마리노스 27경기 1골
2003 요코하마 F·마리노스 29경기 4골
2004 요코하마 F·마리노스 27경기 1골
2005 요코하마 F·마리노스 27경기 3골
2006 요코하마 F·마리노스 23경기 1골
2007 요코하마 F·마리노스 32경기 2골
2008 요코하마 F·마리노스 * *
A매치
1999 1경기 0골
2000 6경기 2골
2001 2경기 0골
2002 1경기 0골
2003 4경기 0골
2004 15경기 5골
2005 12경기 1골
2006 12경기 1골
2007 13경기 2골
2008 3경기 2골
통산 69경기 13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