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1:10)
오늘은 교회들이 부활절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인지 아니면 아담 안에서
죽었던 우리가 주의 죽으심에 합하여 죽고 주의 다시 사심에 합하여
내가 그 부활과 생명에 연합이 되는 현재부활의 날일지는 개인의 믿음입니다.
예수부활 내 부활 예수승천 내 승천 예수천국 내 천국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셔서 자신 안에 계시는 복음을 들었을 겁니다.
고난 주간 동안 늘 생각하는 말씀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았기에
난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대하여 살아서 하나님을 향해
산 자가 되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나 되게 하신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고백하고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하고 부르는 노래가 입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심한 고난을 당해 더 이상 살 소망이 없고
사형선고를 내릴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한 이유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간증합니다(고후1:9)
지금도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이 강해 자신의 존재와 소유를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그런가 하고 남의 이야기처럼 듣고 맙니다.
그건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있으나 그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물세례만 있어 죄 사함과 장차
부활만 있을 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에 잠기는 세례(침례)가 없어
부활과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하지 못한 종말론으로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만 있을 뿐
지금 이 시간 그들 안에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건 세상 신(세상이 말하는 하나님)에 의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4:4)
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임하지 않는 쭉정이 신자들만 우글거리게
하는 모습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아담 안에 있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사망의 종이었던 내가 그 큰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믿게 됩니다.
선교지에서 설교하다보면 우리말로 건지다 하는 말을 영어로는
죄에서 의로 delivered 하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delivered하셨다 하므로
주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역이 뚜렷하게 부각이 되고 그 경계가 명확해 집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주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고 그의 다시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delivered가 되어 의롭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그 말씀(호 로고스)이며 현재적인 우리의 부활이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죽었기 때문에 지금 부활이 필요하고 영은 살았으나
여전히 죽은 몸을 껴입고 있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delivery 되는 회개로 현재 생명의 구원이 필요한 겁니다.
만약 아니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제론 죽은 겁니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과 맞바꿀 만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체질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나는 죽었다고 복창하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자만과
게으름과 불신과 위선과 자기집착과 싸워야 하는지 아마 지금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나는 주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내게 계시는 겁니다 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몸의 흔적을 지닌 사람은 절실하게 깨닫고 알 겁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만 있고 장차 그와 같이 나도 부활할 거라는
소망만 가지고 가진 사람들은 생명이란 자신의 타고난 목숨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자신의 목숨에 집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러워집니다. 우선 말이 많습니다. 자기변명, 자기방어. 자기 방화벽이
견고하여 말이 구질구질합니다. 얼굴에는 죽어가는 변화뿐이어서
주름살이 갈래갈래 온 얼굴에 퍼져 흉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나를 다시 살리셨고 주께서 영원한 생명이 되시므로 나는 날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므로 영과 생명이 풍성해 지고 점점 더 부요해 집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변화의 기운이 온 몸에 흐릅니다. 간결하고 깔끔합니다.
그 이유는 타고난 권선징악과 신상필벌의 의식으로 성경을 율법의 조문과
같이 지켜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듣고 믿는 누룩이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성령세례를 모르는 자들의 설교로 인해 죄 사함의
물세례만 알므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없어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속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 부활을 2000년 전의 무덤에서만 찾아야 하고 왜 자신의
부활을 위해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만 할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은 항상 현재의 생명이시며 빛이십니다.
나사로에게 현재적인 부활과 생명으로 나타나셨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아담 안에서
큰 사망의 종이 되었던 우리를 그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이미 delivered 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 부활과 생명이 내 안에 역사하는 현재 증거가 있으면 장차에도
사망에서 건져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그곳에서 주와 더불어 영원 복락을 누리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지금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약속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만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아주 나쁜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현대판 유대종교입니다.
성경을 문자로만 보고 성령 안에서 영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확신하건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하여 죄와 사망에 대해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 부활이신 주님과 연합이 되게 하셨고 그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므로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delivered) 또 앞으로도
그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생명의 왕 노릇하면서 주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계신 주를 찬양하면서 그 영광을 보고 기뻐 뛰도록 하실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확신하건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하여 죄와 사망에 대해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 부활이신 주님과 연합이 되게 하셨고 그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므로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delivered) 또 앞으로도
그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생명의 왕 노릇하면서 주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계신 주를 찬양하면서 그 영광을 보고 기뻐 뛰도록 하실 겁니다.
아멘아멘~~
현재 사는 각 자의 삶속에 부활은 실제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부활생명으로 살고 있는것이 주와 합한자의 삶입니다.~~
"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