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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대흥사 주지 법상 스님
기도가피 충만한 한국 최고 ‘다라니 성지’ 조성할 터
‘정전백수자’ 증진 없자 북미륵암서 ‘다리니 정진’ 망념·업장 타파 원동력
혜명 잇는 사명의 중함 인도 여행길서 ‘체득’ 관자재 자비정신 전파
북대 국보 마애여래불, 불자 품에 되돌려 주고, 신앙·수행력 고양 선도
십시일반 마음 모아, 사중 스님 복지 위한, ‘다라니 공덕회’ 운영
쌀 한 톨에 정진력, 일으켰던 옛 선지식, 오늘날의 ‘스님 표상’
법상 스님은 “원효, 의상, 휴정 스님 등 고승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명예와 이익에 따라 감정을 움직이거나 걸음하지 않으셨다”며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을 엄히 다스리며 정진했던
옛 스님들의 가르침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나모라다나 다라야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 알야바로기제 새바라 다바…(삼보님께 머리 숙여 절을 올립니다…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시는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면
성스러운 관자재의 위신력이 나타납니다….)”
한여름 오후, 천년고찰에 70여 대중이 지송하는 범어(梵語)가 흐르는 건
‘천수대다라니 108독 성취기도’
원력을 세운 대흥사 신임 주지 성해 법상(性海 法祥) 스님에서 비롯됐다.
교구본사 주지 당선 소감을 피력하는 자리에서는
사찰의 중장기 청사진을 내놓는 게 상례인데 ‘승가의 본질’을 자문했던 법상 스님이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대흥사 경내에 들어찼다.
“오늘 날 우리는 현 시대가 요구하는 스님의 삶은 어떤 것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제 스스로 스님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교구 대중들과 함께 대흥사를 이끌어나가겠습니다.”
주지 취임 직후 문을 연 ‘천수대다라니 108독 성취기도’와
‘승가의 본질’을 관통하는 ‘법상 원력’이 궁금했다.
대흥사 대중이 세납 46년의 스님을 교구본사 주지로 택한 것도
그 원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을 터다.
대구 안일사 주지직을 맡았을 당시에도 ‘천수대다라니 108독 성취기도’를 진행한 바 있다.
천수대다라니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것일까?
법상 스님은 대흥사 원주소임을 내려놓고 잠시 방황했던 때를 떠올렸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을 찾아가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를 받은 법상 스님은 동국·대승·금당선원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나 소식은 없었고 객기(客氣)만 늘었다.
한때 최인호의 ‘길 없는 길’에 매료돼 “틀을 깨야 한다.”며 상식 밖의 일을 자주 감행했고,
‘일주일이면 깨칠 수 있다’며 방문을 틀어 잠그기도 했다.
“7일은커녕 3일도 못 앉고 나왔습니다.
경허 스님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입니다.”
강원 졸업 후 강백의 길로 들어서려면
학림이나 중앙승가대· 동국대에 진학했어야 했지만 그 길을 걷지 않았다.
대신 제방선원에 방부를 들였는데 증진은 더디고 더뎠다.
이렇게 살다간 아무것도 못 이룰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내 업장이 너무 두터운 건가?’라는 사념과 함께 두륜산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덧 발길은 두륜산 최고봉인 가련봉(700m) 북서능선에 자리한 북대 미륵암에 닿았다.
높이 6m의 마애여래좌상 앞에 섰다.
장대한 규모에 조각 수준이 빼어난 대흥사 마애여래좌상(국보 308호)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광배 밖 상하좌우에 각각 네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한국의 마애불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도상이다.
아래 좌우 보살은 연봉오리와 병향로(柄香爐)를 들고 있는 공양보살이다.
위쪽 좌우의 마애불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 위 천인상을 세심히 살펴보면
둥글게 말린 줄 ‘삭(索)’을 쥐고 있다. 학계에서는 금강계 만다라에서 보이는
금강삭(金剛索) 보살의 지물이 표현된 것이라 보고 있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에서 밀교의 흔적을 읽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은사인 은성 스님이 북미륵암에 주석하고 있어
법상 스님은 오래전부터 마애불과 가까이 했더랬다. 예를 마치며 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 천수대다라니 정진을 해보자!
휴정 스님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숙업을 제거하고,
마사(魔事)를 여의기 위해 주(呪)를 지송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편도 40여분 거리의 대흥사와 북미륵암을 오가며
새벽(3시∼7시), 오전(9시∼12시), 오후(2시∼6시), 저녁(9시∼12시)에 걸쳐
‘108독 하루 4회’를 21일 동안 이어갔다. 걷고, 공양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전부를 천수대다라니 정진에 쏟아 부은 셈이다.
회향을 앞두고는 꿈에서도 천수대다라니를 염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회향하는 날, 밑동이 싹 빠지는 듯했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한 마디로 형언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세계에 마주설 힘이 생긴 듯했습니다.”
대구 안일사에서 불자들과 함께
‘천수대다라니 108독 정진’을 처음 열었는데 의외의 호응을 얻었다.
일정기간 동안 참여한 대중에게는
등석여(鄧石如. 청나라 서예대가, 1743∼1805)의 전서체 ‘觀自在(관자재)’를
새긴 염주를 선사했다.
“안일사를 30년, 40년씩 다니시던 불자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천수대다라니 정근을 시작했고,
작은 선물 하나라도 드리고 싶어 염주를 택했습니다.”
대흥사 법회에서도 일정 기간 참여한 불자들에게 드릴 선물로 저 염주를 선택했다.
‘관자재’를 새겨 넣은 연유가 궁금하다.
“관자재(觀自在)의 관(觀)은 단순히 ‘본다’는 의미의 견(見)과는 다릅니다.
관(觀)은 겉모습뿐 아니라 보이는 대상의 실상까지 꿰뚫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실상 하나하나를 자유자재로 선택해 볼 수도 있기에 관자재(觀自在)라 합니다.
또한 관세음(觀世音)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빠짐없이 듣고 꿰뚫는다는 것은, 들리는 소리의 이면에 배인 소리,
즉 고통의 소리까지 헤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관자재·관세음은 ‘세상의 고통을 듣고 없애주는 보살’입니다.
천수대다라니를 하며 관자재·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보시고,
관자재·관세음보살님의 마음도 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생으로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한
자비행을 넉넉히 펼쳐보자는 뜻이다.
‘스님의 삶’에 의문을 던진 연유를 여쭈니 인도의 기억을 가져왔다.
북미륵암에서 천수대다라니 21일 정근을 회향한 후
법열에 휩싸였던 법상 스님은 인도로 발길을 돌렸다.(2006)
순례 경비는 도반의 서울 포교당에서 20일 동안 부전을 보며 모았더랬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바이크를 빌려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바이크를 몰고 가는데 인적 드문 남인도의 시골길에
‘시주함’ 놓고 홀로 앉아 있는 사두(sadhu)가 시야에 들어왔다.
넉넉하지 않은 ‘순례 예산’이기에 사두를 만날 때마다 덜어낸다면
인도 전역을 밟아보겠다는 당초 계획에 균열이 간다. 잠깐 멈칫 했지만 지나쳤다.
왠지 모를 답답함이 밀려왔다. 바이크를 돌렸다. 남아있던 총 예산의 절반을 털어 넣었다.
인도 순례가 고난의 길이 될 건 자명해졌다. 무주상보시의 공덕일까!
다시 길을 나서는 순간 천수대다라니 회향 때 느꼈던 법열·환희가 벅차게 차올랐다.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확연히 알았습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을 영위해 가는 양식도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정관념의 틀을 깨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성냄과 욕심을 조금은 더 덜어내고 청정심을 길러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법등을 전해 받은 스님으로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는 일이 결코 작지 않음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습니다.”
대자유와 함께 승복의 무게를 직시했음이다.
천수대다라니를 지송하며 걸었던 18개월의 인도 여정에서 품은 보물이다.
“옛 어른 스님들이 자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절은 가난해야 해. 그래야 수행자가 나와!’
저는 ‘승려의 사명(使命)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스님이 해야 할 일, 저는 크게 두 가지를 꼽습니다.
‘수행’과 ‘촛불 켜기’입니다. 전법은 승·재가 모두 해야할 일입니다.”
불자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깨달음이니 스님의 사명에 수행이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촛불 켜기’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불·보살님 뵙고 신심 돈독히 하시는
신자님들을 위한 스님의 첫 번째 일이 촛불을 켜 법당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일은 목탁 들고 불자님들을 위해 축원하는 것입니다.
지자체 사람들 만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건 부차적인 일입니다.”
촛불 켜고 방석 놓는 단순한 일에 무게를 둔다는 건
산문 밖의 일 이전에 산문 안의 일부터 세심히 살피겠다는 뜻일 터이다.
“불서 편찬이 어려웠을 때는 설법·강독이 긴요했고,
전쟁이 휘몰아친 뒤에는 계율정신에 입각한 생명존중 사상이 시급 했습니다.
억압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가슴이 절실했습니다.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스님들은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현 시대에서의 스님 역할을 무엇일까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불.(국보 308호)
불교사상·철학 관련 정보는 차고 넘친다.
작심하면 서점, 인터넷, 교양대학에서 필요한 자료를 습득해
단기간에 내실화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스님의 표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저는 ‘위의’에서 실마리를 찾습니다.”
청정비구로서의 위의를 말함이다.
“간장 한 방울도 시주님들의 피 한 방울이라고 여기신 옛 어른스님들은
‘밥 한 톨 입에 들어갔으니 수행해야 한다’시며 정진의 고삐를 당기셨습니다.
도반과의 대화라도 쓸데없는 말이나 마음 다치게 하는 말은 삼갔습니다.
승복 한 벌이지만 단정히 입으셨고, 앉거나 서거나 걸을 때도 경망스럽지 않으셨습니다.
원효, 의상, 휴정 스님 등 고승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명예와 이익에 따라 감정을 움직이거나 걸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왕 앞에서도 당당했던 겁니다.”
승복 입고 일주문을 나섰다면 ‘움직임 자체가 법칙이 되게 하라’ 했던
진나라 도안 법사의 가르침이 스쳐간다. 위의는 언행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하여,
법상 스님은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을 엄히 다스리며 정진했던
옛 스님들의 가르침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현대사회가 갈구하는 스님의 표상 단초가 여기에 있을 듯싶다.
‘승려가 막중하면 법도 막중하고, 승려가 가벼우면 법도 가볍다’고 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대흥사 ‘천수대다라니 108독 기도’를 발원한 연유를 알겠다.
대흥사 동국선원을 살피는 건 승가를 향한 마음이고,
‘천수대다라니 108독 기도’는 재가불자를 향한 마음인 거다.
법상 스님은 장기적으로 북미륵암을 기도도량으로 조성하겠다는 원력을 갖고 있다.
국보로 평가 받은 마애불을 사부대중에게 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진불암·북대미륵암 구간 중 약 600여 미터의 길을 다듬어야 한다.
바윗돌들이 들쑥날쑥 솟아 있어 대중이 한꺼번에 걷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이 길이 완성되면 대흥사와 북미륵암을 연결한 체계적인 기도법회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라니기도를 하는 불자라면 대흥사와 북미륵암을 한 번 쯤은 찾아와
참배하는 명실상부한 기도도량으로 조성해 보고자 합니다.”
주지 소임을 보며 꼭 하고 싶은 불사가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대흥사는 13분의 대종사(大宗師)와 13분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한 도량입니다.
스님들의 수행처인 동국선원을 살피는데 결코 허투루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림을 세워보자는 대중스님들의 고견도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법회를 진행하며 모연된 보시금을 토대로 ‘다라니 공덕회’를 꾸려 보려 합니다.
세납 65세 이상의 대흥사 대중스님들에게 소액이나마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병원비, 약값 등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주지 소임 덕에 제 주머니로 들어 온 정재도 ‘다라니 공덕회’에 넣을 것입니다.
사부대중의 불심으로 운영되는 ‘다라니 공덕회’인만큼 재정은 투명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
승려노후복지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정성이 읽힌다.
지침으로 삼는 일언을 부탁드리자 한 문장을 전했다.
“당신이 마음먹은 건 하늘의 도장으로 찍힌다!”
진심·진실을 말함이다. 그러고 보니
‘진실하여 거짓됨이 없는 비밀스런 주문’을 의미하는 진언(眞言)과도 맥이 닿는다.
법상 스님은 다시 한 번 다라니의 의미를 설파했다.
“‘여래가 간직한 뜻을 드러내기에 진언이라 하고,
무명을 타파하기에 명주(明呪)라 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긴 주(呪)를 억지(憶持)’해 주기에 다라니라고 한다 했습니다.
그 어떤 망념·업장·장애를 뛰어 넘게 해주는 다라니는 ‘걸림 없는 바람’입니다.”
‘정전백수자’ 화두를 들면서도
‘다라니’를 통해 사중의 대중· 재가불자들과 소통하려는 법상 스님의 원력이 청량하다.
땅 끝 북미륵암의 마애불 미소 아래서 울린 천수대다라니 지송이
대흥사 일주문을 통해 세간으로 흐를 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천수천안의 마음이 담긴 지송이 이 땅을 정토로 일궈갈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2019년 7월 31일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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