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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역동성과 종결어미의 변화
그러나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³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그가 제시한 형용사를 따라다니다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 쓸데없는 치장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특히 형용사 중에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 파랗다. 노랗다. 하얗다'와 같은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버려라. 조지훈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민들레꽃」 앞부분)라고 했더라도, 서정주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 일부분)라고 했더라도 당신은 '노오란' 이라는 말이 아예 한국어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우리는 그동안 '노오란'을 시에 너무 많이 동원했고, 혹사시켰다. 제발 '노오란 개나리' '빨간 장미' '빠알간 고추잠자리' '파란 바다' 파란 가을하늘' '검은 밤' '하얀 백지' 하아얀 눈송이'라고 쓰지 마라. 그 색채 형용사들을 쉬게 하라. 색채 형용사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 기어가게 하라. 뛰어가게 하라. 날아가게 하라.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⁶³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말은 조사의 종류가 많고 어미의 변화가 매우 다양한 언어다. 당신은 반드시 조사와 어미의 변화에 주목하라. 토씨, 즉 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장을 맺는 어미를 종결어미라고 한다. 우리말은 종결어미를 통해서 시제, 경어법, 화자의 태도, 시의 리듬에 적지 않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란 어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종결어미는 '-ㄴ다, -ㅂ니다, ~오'의 평서형, (느)냐, 니, 는가, -ㄹ까' 의 의문형, '구나, 군, -네'의 감탄형, '어라/-아라, -게, -오'의 명령형, '자, -세, -ㅂ시다'의 청유형으로 크게 나눈다. 이는 다시 '해라체 · 하게체 · 하오체 · 합쇼체'로 나눠지면서 경어법을 구별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시에서 주로 쓰이던 '노라, 도다, -지어다'와 같은 종결어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죽은 어미가 되었다. 그러면 '이다'는 어떤가.
나는 소금
좌판坐板 위 주발이다
장날 폭설이다
지게 목발이다
헤쳐도 헤쳐도
산山, 고드름의
저문 산山
새발 심지의
등잔燈盞
-박용래, 「겨울산」 전문⁶⁴
은유적 표현에 기대어 의미를 단정하는 '이다'는 70년대까지 시에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요즈음 시인들의 시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상대화에서 요새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같다'가 시를 점령할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종결어미 하나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다 짊어지고 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정말 그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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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김철호,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한겨레」, 2007. 12. 16.
4 박용래, 「먼 바다」, 창비, 1984, 188쪽.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5. 2. 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