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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주택
김 광 식
1
퇴근 시간, 오후 다섯시를 지난 서울의 거리. 종로·을지로·세종로·남대문로·소공동·명동의 거리. 오가는 남녀노소의 물결에는 긴장이 풀린 호흡이 흐른다.
그들은 가끔 화려한 상품이 진열된 쇼윈도에 비친 자기 얼굴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지나간다. 사치한 상품의 강렬한 색채가 그들의 눈을 황홀케 하나 그것은 한갓 원색 그림인 양 바라보며 지나갈 뿐이다.
어떻게 하면 가족을 부양하는가, 이것만이 머리에 가득 찬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갖고 싶다는 욕망은 한낱 사치스러운 욕망이라고 관념할 뿐이다.
전차 정류장, 버스 정류장에는 이렇게 거리를 지나온 사람들이 어제도 오늘도 교외로 달리는 버스를 기다린다. 간신히 탄 전차나 버스는 발을 옮길 길이 없다. 남녀노소의 육체와 육체가 맞부딪쳐 안고 등지고,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밀고 당기고 엎치고 덮치고…… 그래도 타고 가야 하는 전차요 버스다.
버스는 오늘도 오후 다섯시를 넘는 이 시각에 만원이 되어 교외로 교외로…… 신촌으로, 청량리로, 약수동으로, 미아리로, 돈암동으로, 흑석동으로, 상도동으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서울의 남편들을 싣고 달려간다.
기사 김명학(金明學)씨는 오늘도 매일과 같은 오후 여섯시를 지나 공장에서 나와 상도동행 버스를 탔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간다는 의식도 없이 손잡이를 붙잡고 흔들려 가고 있었다. 침울한 얼굴이었다. 밀고 덮치고 해도 그는 동상처럼 흔들려 가고 있었다.
김명학씨는 조경 인쇄주식 회사 공장 기사였다. 이 공장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의 하나다. 김명학씨는 일제시 고공(高工) 기계과 출신으로, 회사에서는 그를 채용하고 기사장이라는 사령장을 주었다. 그의 밑에 기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돕는 조수가 한 사람 있을 뿐이었다.
그는 부산서 환도와 더불어 이 공장에 취직을 했다. 본래 그는 방직공장 기사였으나 그 공장이 동란으로 파괴되고, 환도 후도 재건의 길이 막히어서 그는 임시로 이 인쇄공장에 취직했던 것이다. 그 후 방직공장이 재건된다고 해서 가려 했으나 인쇄공장에서는 그를 놓지 않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입한 인쇄기와 주조기와 제본기와 재단기들이 들어와 그 설치에는 기계과 출신인 그가 절대로 필요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 수입되어 들어온 기계들을 설치하고, 그 기능과 조종을 시험하여 직공들에게 그 운전과 조종법을 지도하는, 그야말로 이 공장설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기사였다. 그는 묵묵히 일하고 묵묵히 돌아가는 사십 대의 건실한 기사였다. 회사에서는 사장 이하 직공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술과 인격을 믿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이 한 달 사이, 제23호 인쇄기와 특히 자가발전기의 빈번한 고장으로 우울한 고된 날을 보냈다.
이 인쇄공장의 제일 중요한 시기는 신학기 교과서를 인쇄하는 이삼월이다. 한데 이월에서 삼월에 걸쳐 발전기와 인쇄기의 고장은 이 공장의 제일 큰 타격이었다. 인쇄기의 빈번한 고장은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되어 고장을 고치고 수리하고 해서 면목이 섰으나 발전기만은 하루가 멀다 하여 고장이 나고, 한 달이나 되었어도 그 고장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장과 공장장은 그의 기계에 대한 권위를 믿지 않게 되었다. 야간 조업을 한다든가 또는 정전이 되면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데 그것이 고장만 났다. 이렇게 되면 수백 명의 직공이 하릴없이 놀아야 하고, 회사 측에서는 그로 인한 손해만을 계산했다. 회사의 간부들은 그 전 책임을 기사장 김명학씨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오늘은 사장과 공장장 앞에서 권고사직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은 파면인 것이다.
2
서울역에서 남으로 향하여 한강 인도교를 건너가면 왼편으로는 흑석동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이 뻗었고, 우편으로는 사육신 무덤이 있는 산을 돌아 영등포로 향한 아스팔트 길이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그늘을 받고 뻗어갔다. 노량진 장터를 지나면 바로 왼편으로 넓은 오르막길이,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오르막길을 아침 저녁으로 오르내리는 산 너머 사람들은 이 고개를 아리랑고개라고 한다. 산 너머 사람들이라고 하면 마치 두메산골 사람으로 관념할 지 모르나 이 아리랑고개를 아침저녁으로 넘나드는 사람들은 대개가 서울 장안에 직장이 있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인 양복을 입은 한국의 지식인들이다. 처음으로 이 아리랑고개를 올라선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것이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우거진 넓은 길이 좌우로 갈라져서 내려가고, 종로 화신 앞 같은 로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로터리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십자로 길가로는 주택영단,* 꼭 같은 형의 특호 주택이 즐비해 섰다. 이 로터리에서 서로 향한 길을 내려가면 또 아담한 로터리가 있다. 여기에서 동으로 관악산을 바라보는, 가로수가 늘어선 길 한복판으로 맑은 산물이 흘러내리는 내천이 있다. 이 내천 양편으로 수양버드나무 늘어진 가지가 푸른 바람을 받고 실가지를
내천에 적신다. 멋진 길이 이러한 데 있으리라고는 상상 못할 것이다. 이 로터리 이 길을 기점으로 주택이 좌우로 줄지어 아득히 보이는 산허리에까지 뻗치었다. 잔잔한 계곡을 타고 자리 잡은 꼭같은 형의 특호 주택, 꼭같은 형의 갑호 주택, 꼭같은 형의 을호 주택이, 줄줄이 좌우로 마치 전차 기갑사단이 푸른 기를 꽂고 관병식장에 정렬하여 서 있는 것 같은 감이다. 관악산의 줄기가 병풍처럼 천여 호의 주택을 둘러쌌다. 이 주택촌을 상도동이라고 한다.
오늘도 저녁이 되자 달려오는 버스마다 만원이 되어 무거운 듯이 굴러온다. 질식할 듯한 이 버스를 매일 꼭같이 꼭같은 시각에 타야하는 그들은 모두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속에는 여인도 있고 남녀 학생도 있을 것이다. 대개는 역시 피곤한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들이다.
그 남편들은 그렇게도 집이 그리워설까. 늦게 돌아가면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이 무서워설까. 배가 고파설까. 할 수 없어서 그렇게도 꼭같은 시각에 질식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일까. 도심지에서 주택이 늘어선 교외로 달려가는 남편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 하루를 온갖 정력을 기울여 일했다. 돌아가는 길에 한 컵의 단술로 메마른 목을 축이지도 못하고, 숨도 돌리지 못하고 곧장 집으로 가야하는 남편들이다. 그들은 가끔 이러한 자기 자신들을 생각하며 버스에 흔들려 간다. 그러나 김명학씨는 오늘 사장의 사직 권고의 이야기만 해석 해보는 것 이다.
“김기사장의 인격이나 기술을 우리 사에서는 믿고 맡기고 있었소. 한 회사라는 것은 그 회사의 사업을 위주로 해서 사람을 쓴다는 것은 두말도 할 필요 없겠지요. 김기사는 우리 회사가 환도 후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금년 삼월에 들어 발전기와 제23호 인쇄기의 고장은 우리 회사의 치명적인 타격이었소. 이렇게 되면 회사에서는 그 기계를 다루는 기사장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소. 기사라는 것은 기계의 고장을 사전에 발견하는 것이라고, 아니 고장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 큰 직책이라고 회사에서는 생각하고 있소. 한두 번이 아닌 고장의 수리가 이삼일이 멀다 해서 또 고장 또 고장이라면 결국 기사는 고장의 원인을 모르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 책임을 기사장이 져야 한다면 현명한 기사장은 자기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여기서 민망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이해해줄 것이라고 아오. 회사의 고충을…….”
“네 알았습니다.”
“이해해주어서 고맙소.”
기사장은 공장장실에서 사장의 이 말을 듣고 나와 전기실 자기 의자에 앉아 침울한 생각에 자기 자신을 걷잡을 수 없었다. 기사로서의 패배감이 머리를 쳤다. 그러나 사직원을 썼다.
기사장으로서 사고 전에 고장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윤리의 세계, 그는 이것만을 생각했다.
우리나라 전기 사정은 공장마다 자가발전기를 놓아야 하는 현실이다. 이 공장의 총마력은 백 마력이 조금 넘는다. 야간조업과 정전에 대비해서 자가발전기를 설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막대한 금액으로 100kW의 출력 발전기를 수입했다. 사실 이렇게 되면은 제2종 전기기사를 채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기사를 채용하지 않고 기사장의 전기기술을 믿는다고 하며 전기실의 책임도 김명학 기사장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전기실 책임도 맡기는 맡았으나 전기에 대해서는 기계과 출신으로서의 상식밖에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쇄공장의 요만한 전기시설쯤은 그의 기술로써 감˙당 못할 바도 아니었다.
전기기계에 있어서 우기(雨期)라는 것은 가장 고장이 나기 쉬운 시기다. 금년따라 교과서 인쇄기(期)에 눈비가 그치지 않는 우기를 만나 습기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나 발전기와 인쇄기 모터에 고장만 났다. 하루는 단상교류(單相交流)로 인해서 인쇄기의 모터들이 우우 하는 비명을 지르며 파란 연기를 내며 모터의 코일이 타버리고 말았다. 이 수리는 즉석에서 고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터 수리공장 직공들을 불러 고쳤으나 사흘이 걸렸다.
사장과 공장장은 김명학씨만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왜 고장이 일어날 것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는가고 했다. 그럴 때마다 동력의 삼상교류(三相交流)의 원칙을 설명하고, 공장 밖에서 합선이 된 것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장이라고 변명 했으나, 사장과 공장장은 구구한 그의 변명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고장이 일어난 얼마 후에, 또다시 발전기의 스리플링과 인슐레이션*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지 그것이 또 타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날 밤을 밝혀서 수리를 완성했다. 그는 고장의 원인을 과열로 인한 고장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튿날 협소한 발전기실의 냉각을 위해서 큰 창을 두 개나 내게 했다. 한데 그 고장의 수리가 일주일도 못되었는데 또 그것이 타버리고 말았다. 그는 야간종업을 싫어했다. 그날 조수에게 맡기고 여섯시 정각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에 일어난 것이었다.
갑자기 때 아닌 모진 바람에 눈비가 뿌렸다. 그 발전기실의 통풍창으로 휘날려 들어간 눈비는 발전기를 녹인 모양이었다.
조수는 발전기실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전기실 자기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다가 발전기가 완전히 타버린 후에야 당황해했다.
기사 김명학씨는 성심성의를 다해서 기계와 살아왔으나 기계는 기계대로 고장만 냈다. 그리고 기계는 김기사장을 면직케 했다.
김명학씨는 사직원을 쓰고 의자에서 일어나 인쇄공장으로 들어가 제1호기에서부터 32호까지 하나하나 바라보며, 이 인쇄기의 고장은 어디에서 나고, 저 인쇄기는 어디가 약하고…… 직공들이 인사하는 것도 모르고 기계만을 응시하며 지나갔다. 제1, 제2, 제3, 제4, 제5 기계실을 빙 돈 후 출입구에 서서 인쇄기를 바라볼 때, 그는 그 인쇄기들이 움직이는 괴물처럼 보였다. 또 자기를 덮칠 것같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강한 고독을 느꼈다. 공허한 가슴을 느꼈다. 매일같이 매만지고 바라보던 저 인쇄기들을 다시 대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차가운 고독이 절박해오는 것 일까.
이 공장의 일체가 자기에게 적의를 갖고 자기를 조소하고 자기와는 무관(無關)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자기를 공허하게 하는 것 일까.
그는 사직원을 내고 모자를 들고 나오며, 그는 자기의 이 시간을 무슨 행동으로써 자기의 공허한 가슴을 메우려는 충동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시간이 자기를 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3
삭막한 상도동 버스 종점에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어두워서야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서성거리고 서 있다. 때로는 남편을 기다리는 젊은 여인이 한둘 서 있으나 그것은 아마도 신혼한 꿈 많은 아내들일 것이다.
만원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길 한복판으로 내천이 흐르는 우편 길의 수양버드나무 가지와 플라타너스 잎을 스치며 달려와 정거했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먼저 내리려고 앞을 다투다시피 내려 뿔뿔이 흩어져 갔다.
그들 남편들 속에는 그리웠던 처와 즐거운 저녁식사가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편들은 따분한 주택에 아무런 사랑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맞아주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만원 버스에 흔들려 가는 남편들은 가끔 꿀벌이 꿀을 빨아가지고 벌집으로 찾아가는 것처럼, 자기도 월급을 받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꿀벌은 꽃을 상대로 한 아름다운 정이 있다. 꿈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오늘의 직장에는 아름다운 인정도 꿈도 없다. 비정(非|靑)의 기계가, 비정의 의자가 있을 뿐이다.
김명학씨는 버스에서 내려 무거운 걸음으로 갑호 주택 길을 건너가 제3행 을호 주택 길에 들어 묵묵히 걸어갔다. 그는 무작정 걸어갈 것 같았으나 발은 습관대로 213호 자기 집 현관문 앞에 가 섰다. 그는 아내 얼굴을 생각했다. 가난한 살림에 신경질이 된 아내의 여윈 얼굴이나 또 자식들의 얼굴을 생각했다. 건방져가기만 하는 고등학교 졸업반인 장남 석기의 얼굴. 멋만 내고 맵시만 내겠다는 여고생 장녀 석란의 얼굴. 팔목시계가 갖고 싶다는 중학 이학년짜리 이남 석훈이.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의 손만 바라보는 석희와 석만이.
내일부터 직장이 없는 이 남편 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무수한 얼굴을 그는 생각만 해도, 그 시선 그 표정은 바늘 끝 같았다.
그는 오늘 저녁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실직당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느꼈다. 이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침울해서 눈치 채일 것만 같았다. 그는 돌아서 걸었다. 구멍가게의 불빛을 느끼자 그는 그리로 가서 막과자* 한 봉지를 샀다. 수다스러운 구멍가게 할머니는
“석희와 석만이가 귀엽지요. 그 애들은 아버지를 잘 만나서 과자도 늘 먹구…….”
그는 못 들은 척 과자 봉지를 받자 돌아섰다. 그때 그의 앞으로 양키와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성이 팔을 끼고 지나갔다. 그들은 을호 주택 4행 길로 접어들어 갔다. 그도 그들의 뒤를 따라 4행 길로 들어서 걸었다. 얼마 후 그들은 한 집으로 들어갔다. 김명학씨는 생각했다. 저이들이 이 동네에서 산다는 미국 군인과 한국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4행 길을 빙 돌아 자기 집 문 앞에 섰다. 그는 문을 드르륵 열고 현관문을 들어서며,
“우리 막내 있나? 아버지 왔다.”
하고 구두끈을 푸는 것이나 자기가 한 말에 어색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현관으로 우르르 달려 나왔다. 아이들은 과자 봉지를 보자 서로 들고 들어가겠다고 야단들이었다. 그 야단이 그만 과자 봉지를 마룻바닥에 터치고 말았다. 아이들은 흩어진 과자를 제가끔 자기 포켓에 넣고 치마에 싸고 서로 빼앗고, 집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김명학씨는 이러한 자기 자식들의 꼴을 바라볼 때 갑자기 서러움 같은 것이 가슴에 왔다.
장남 석기놈이 나오더니,
“이 돼지 같은 것들, 이게 뭐야.”
하며 닥치는 대로 동생들을 갈기는 것이다. 엄마가 또 뒤따라 나오며,
“야, 이것들아 사흘 굶은 거지애들이라도 이러지 않겠구나. 다 이리들 내놔, 똑같이 나누어줄 테니까, 방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날카로운 소리에 석희가 먼저 치마에 쌌던 과자를 방바닥에 쏟아놓고 뾰로통해서 구석지로 가 섰다. 입들이 부어서 한 사람씩 내어놓았다. 멋만 부리고 맵시만 내던 석란이도 어느새 감추었던지 슬그머니 내어놓는다.
“여보, 당신은 돈도 많군요. 돈이 있거든 찬거리나 사오지 이건 뭐요. 불집 *을 일어놓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면 좋우?”
“이럴 줄이야 알았나.”
이렇게 말을 했으나 억지로 한 말이다.
아이들의 야단도 슬펐고 아내의 말도 슬펐다.
그는 저녁상을 받았으나 몇 술 뜨는 척만 했다. 친구들과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렇다고 변명을 했다.
명년 대학시험을 앞두고 밤을 밝히다시피 공부한다는 석기가 아버지 밥상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밤을 밝히려면 밤참을 먹어야겠어. 석란이 너, 저 밥상 그대루 신문지 덮어서 내 방에 가져다놔.”
“흥.”
“뭐 흥이야, 가져다 놓으라면 가져 다놔.”
“솔직하게 두부찌개가 먹고 싶다면 먹고 싶다고 그러지, 내 방에 가져다놔. 난 오빠 심부름하러 이 세상에 나오진 않았어.”
“요것이……”
하더니 벌써 석란의 뺨을 갈겼다. 아버지는 이렇게 되면 그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만들 못해.”
하고 벌떡 일어섰을 때는 석기놈은 재빠르게 자기 방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벌떡 일어선 김명학씨는 또 슬퍼졌다. 모두가 가슴을 메우는 술픔이었다.
아버지가 되어서 남같이 아이들을 먹이고 기르지 못한다는 슬픔보다도 저 눈들이 저 몸부림들이 아팠다. 내일부터 면직을 당한 아버지를 바라볼 아내와 자식들의 눈들이 슬펐다.
그는 오늘 저녁, 이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술을 혼자 즐기는 편은 아니나, 술의 힘을 빌려 아픈 생각을 잊어야 할 것 같았다. 아내에게 술을 사오라고 했다. 아내는 남편의 울적한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사온 과자가, 물린 밥상이 남편을 상심케 한 것이라고 알았다. 또 그의 아내는 가끔 신경질이 된다해도 남편의 말을 거역해본 적은 없다.
김명학씨는 아내가 사온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그는 억지로 기분을 돌려 막내를 안고 좋아하는 척도 했다.
맏딸 석란이는 이렇게 기분 좋은 아버지에게서 용돈이 타고 싶어 어리광을 부렸다.
“자, 내일 저녁에 네 청구대로 줄 테니까 네 방에 가자.”
“네, 오백 환만, 네, 아버지.”
하고 방을 나가는 딸의 뒷모양을 바라보면 옛날의 아내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석란이는 꼭 당신 닮았소. 당신 여학교 시절의 사진과 비슷해.”
이러한 말이 오고 가고, 밤은 깊어갔다.
자리에 누운 그의 아내는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라고 생각하며 가끔 하는 말을 또 했다.
그의 아내는 젊은 시절을 회상도 하고…… 또 그래도 남만치 살며 집구석에서 이렇게 박혀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때로는 산뜻한 옷차림으로 문안으로 나가 거리를 걷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다고. 밖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자유스럽게 남과 사귀고, 사회적 호흡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집을 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 집의 일이 밀리고 그보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아리랑고개를 넘어 노량진 시장이나, 어쩌다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으로 나가는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맡긴 집 생각을 하면 빨리 돌아가야 하겠다는 마음부터 앞선다는 것이다.
김명학씨는 아내의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는 아내를 억지로 집구석에 가두어놓고 마구 부리는 무지막지한 고용주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식사를 만들고 남편의 와이셔츠를 빨고…… 역시 개미 모양 모든 즐거움을 잊고 자기의 몸이 지쳐 허리가 구부러질 때까지 일하여야 하는 것이겠는가, 그는 자기의 아내만은 이렇게 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지금의 자기 현실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한 사내로서, 한 기사로서 성심껏 일하고 일했다. 아내에게 대한 변명이라면 이것뿐이었다.
그는 잠든 아내의 손을 붙잡고 이러한 생각을 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온갖 정력을 기울여 일하고 일했다. 기계와 살아왔다. 한데 발전기와 인쇄기들은, 아니 사장은 고장의 사전 발견을 못했다고 나를 내어쫓는다. 기계나 사람이나 너희들은 나의 식구를 생각지 않아도 좋으냐? 사장 당신은 인간이 아닌가. 내가 고장의 사전 발견은 못했으나 고쳐놓은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기계란 건 특히 전기란 전혀 예측 못하는 데 고장이 난다는 것을 기술자라면 안다. 기사는 사람이다. 사람은 고장 전에 기계의 고장을 발견하는 기계는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못되는 것이다. 나는 기사로서 십칠 년간 기계의 고장을 고친 사람이다. 못 고친 것이 없다. 고장이 문제가 아니고, 고장을 고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고 전에 고장날 것을 발견하라고, 그리고 나를 면직시킨다?
그러나 그의 울분도 잠으로 사라졌다.
4
김명학씨는 이튿날도 언제나같이 같은 시각에 집을 나와 버스를 탔으나 회사로는 가지 않았다. 대서소(代書所)에 들러 이력서를 부탁했다. 글씨를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쓸 장소와 도구도 없었고 또 사십이 넘어서 정성스럽게 이력서를 쓰기가 싫어서였다.
믿을 만한 친구들을 찾아가 이력서를 주고 취직을 부탁했다. 쑥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처자의 얼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후 세시가 넘어 회사에 들러 회계과로부터 이달 월급과 다소의 퇴직금이라는 것을 수표로 받았다. 가까스로 마감시간 전에 은행에 들러 십만 환만은 보증수표로 하고 나머지 만 환 정도는 현금으로 받아 넣고 은행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오래간만에 다방이라는 곳에 들러 차도 마시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오늘만은 이대로 집으로 갈 수 없는 것 같았다. 다방을 나와 또 걸었다. 사치한 사람들이 물밀듯 흘러가고 흘러오는 명동 입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도 그 물결에 흘러들어갔다.
학생 시절에 이 거리를 걷던 기억이 새롭다. 저 젊은 남녀와 같이 희망과 꿈을 안고 걸었다. 인생은 즐겁기만 했었다. 지금은 자기에게도 이러한 기억 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5
김명학씨는 취하고 싶었다. 친구가 따라줄 사이도 없이 자기 손으로 따라 마셨다. 고공 동창인 오학삼은 이렇게 술만 마시는 김명학을 보지 못했다.
“여보게, 천천히 술을 마셔. 공장을 고만뒀다고 이래선 안돼. 취직은 곧 된다니까.”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쫓겨났어.”
그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우리 이야기 좀 해보자. 자네는 아나? 오늘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타락시켰어……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을 고통으로 아는 거야.”
“이 친구가 또 갑자기 왜 이래.”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사회란, 그놈의 조직이란 의무도 약속도 규칙도 질서도 강제적으로 인간에게 요구해. 우리는 대등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는 노동에서 고통을 느끼는 거야.”
“이 친구가 왜 자꾸 이래. 그런 말은 후에 하고 술이나 마셔.”
“그따위 소린 말구 내 말에 대답해봐.”
“그럼 하나 물어볼까. 노동이 강제적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나. 미래에도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아나?”
“나는 역사고 미래고 몰라. 그러나 나는 기사로서 직장의 의무와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왔어. 그런데 웅, 나는 쫓겨났어. 사고 전에 고장날 것을 발견 못했다구. 나는 귀신이 아니야. 사람에게 귀신이 되라고 강요하는 거야 뭐야, 응.”
“그러니까 현 대인은 고독하지.”
“자네는 고독이란 것을 가지고 위로하나. 자네가 정말 자유라면 고독은 경멸할 것이다. 임마 고독이 무엇이야 고독이.”
“자넨 그럼 자유인이 되고 싶던가. 자윤 또 뭐야. 응…… 기계과를 나온 놈이 기계 앞에서 자유를 부르짖나? 도피하지 않는 자유가 필요해. 자유는 절대로 도피처가 아니야. 자유는 최고의 선은 아니야.”
“임마 누구한테 설교야 응…….”
“아아, 우리 취했네 취했어……”
그들은 자기네 한 말이 싱거워졌다. 두 사람은 묵묵히 술을 마셨다.
“자, 우리 남과 같이 살아가……”
“그렇다. 그러나 외롭다.”
“자네는 고독은 경멸해야 한다고 하더니 외롭다는 건 뭐야.”
“뭐 시비야. 외로우니까 외롭다는 거지.”
“나도 외롭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데 자네는 외롭고 나는 고독하구나.”
그들은 주점을 나와 명동 거리를 걷다가 파아란 불이 비치는 스탠드바에 들러 또 마셨다.
6
김명학씨가 상도동행 종차 버스를 타고 종점에 가 내린 것은 통행금지 예고 싸이렌이 난 후였다. 종차에 내린 손님이라고는 칠팔 명뿐이었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어둠길로 사라져갔다. 김명학씨는 그저 내일부터의 자기의 처신이 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어릿한 취기에 흥얼흥얼 어둠 속을 걸었다. 213호 자기 집으로 간다는 의식도 없이 그저 걸어간다. 그러나 그 걸음은 무의식이라고 해도 집으로 향해 걷는 것만은 사실이다.
김명학씨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들 자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돌아온다고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현람까지 마중은 못나오나 불은 켜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어렴풋이 그러한 생각을 하며 구두를 아무렇게나 벗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 공기가 이상했다. 별안간,
“후아유?”
“누구요. 누구요.”
놀란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여 나왔다.
김명학씨는 그만 기절을 할 뻔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플래시를 비추며 사내가 침대에서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야 사태를 짐작했다. 그는 현관으로 달아나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했다. 그러나 사내는 뒤따라 나와 억센 손으로 김명학씨의 뒷덜미를 잡아 낚아채는 것이었다. 그는 그만 현관 마룻바닥에 꽝 하고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는 마릇바닥에 넘어져 며리가 아찔했으나 벌떡 일어섰다. 자기를 넘어친 사내를 봤다. 양키였다.
그는 그저 당황해서,
“아이 앰 쏠리. 아이 엠 쏠리.” .
를 연발했으나 팬츠만 입은 사내는 그를 다시 넘어쳤다. 슈미즈를 걸친 젊은 한국 여자가 양키에게 옷을 내다주는 것이었다.
김명학씨는 다시 일어날 생각도 않고 정말 미안해서 아이 앰 쏠리만을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울음 섞인 비명이었다.
사내는 옷을 입고 그를 일어서라고 했다. 그는 일어서서 슈미즈를 입은 젊 은 여자에게 허리를 굽혔다.
“미안합니다. 그만 술이 취해 길을 잘못 들어 이렇게 됐습니다. 용서 하시오. 나는 213호에 사는 사람이오.”
젊은 여자는 쌀쌀하게 바라볼 뿐이다. 김명학씨는 모든 것을 알았다. 4행 길로 잘못 들어 걸었기 때문에 양키와 젊은 한국 여자가 산다는 집에 뛰어든 것을 알았다.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생각하나, 외국 사람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는 한국 여자는 얼음과 같이 차가웠다.
김명학씨는 현관에 떨어진 모자를 집어 들고 양키를 따라 나섰다. 그는 모든 것을 각오했다. 양키는 그의 팔을 붙잡고 로터리 앞 파출소로 갔다. 양키는 숙직 순경에게 도둑놈이라고 했다.
순경은 양키를 눈짓 손짓으로 잘 처리할 것이라고 일러 보냈다.
김명학씨는 이렇게 된 사유를 잘 말했으나 순경은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순경은 본서로 연락을 취하는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열한시 통금 싸이렌이 들려올 때, 오늘 저녁은 집에서 잘 수 없는 몸이라 생각하자 눈이 뜨거워왔다.
열두시경에 지프차가 달려와 두 형사가 그를 본서로 연행 했다.
7
김명학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남은 모르되 나에게만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넓적다리를 꼬집어보면 분명히 아픈 감각이 온다. 꿈은 아니다. 현실이다. 자기가 뜬눈으로 분명히 저 유치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유치장에 들어간다? 아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김명학씨는 절망에서 떨었다.
형사는 그에게 취조를 계속했다.
“도둑이라는 것이, 나는 도둑놈입니다 하고 어디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야.”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똑똑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야.”
“글쎄 아무리 변명을 해도 왜 이렇게 안 통합니까. 저희 집은 을호 주택 3행 길로 들어가 육십 미터쯤 가면 틀림없는 저희 집 213혼데…… 그만 제가 술이 좀 취해서 4행 길로 잘못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 집인 줄 알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 소리만 말고 양심으로 대답해. 회사는 파면이라…… 생각하니 도둑짙 이라도 해야겠다고…….”
“아, 아아닙니다. 아무리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남의 것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집 변소 똥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뭐 어쩌구 어째?”
형사는 그만 이 말에 성을 내고 말았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여기 있는 우리가 바본 줄 하나. 다시 한 번 말해봐.”
김명학씨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어째서 성을 내는지 몰랐다. 형사는 자꾸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저는 본래 아무리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남의 것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남의 집은 우리 집 변소 똥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듣고 있던 형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봐. 몇 살이야, 응?”
“네, 마흔두 살입니다.”
“임마, 마흔두 살이나 처먹었어?”
“네, 그렇게 먹었습니다.”
형사는 처음에 김명학을 적어도 고공을 나온 지식인이요 기사라고 생각해서 지능적으로 자기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하기는 범죄자 가운데 형사를 놀리려 드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형사는 내일 아침 다시 취조하기로 하고 유치장 문 앞에 가서 그를 오라고 했다.
“이리 와, 유치장 맛을 한 번도 못 봤다지.”
“네, 못 봤습니다.”
“하룻밤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이리 와.”
김명학씨는 가지 않고 그저 허리만 굽혀 그것만은 용서하라고 했다. 사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을 본다는 것은 난생처음이다. 유치장만 바라봐도 떨리는 것이 이 말을 듣자 더 떨렸다.
형사는 그가 몹시 떠는 것이 우스웠다. 형사는 그의 떨리는 팔을 잡아끌어 유치장 문 앞에까지 와서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과 턱으로 들어가라고 가리켰다.
김명학씨는 울상이 되어,
“이거 정말입니까?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형사는 시끄러워졌다. 그의 등을 밀어 유치장 감방 속에 넣었다. 형사는 생각했다. 저런 놈은 지능범이 아니면 바보일 것이라고.
8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 유치장에서 형사실로 나온 그는 아내를 봤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핑 돌아 아내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형사는 어제저녁과 달리 친절했다.
“이리 앉으시오. 조사를 해보니 그럴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약주를 좀 덜하시고 주의해서 이웃집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네, 고맙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김명학씨는 아내와 같이 경찰서를 나와 걸어가나 눈물이 자꾸 고이고, 인생이 슬펐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나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머리를 숙이고 걸어갈 뿐이었다.
그는 을호 주택 5행 길을 접어들면서 눈을 감고 소경처럼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이 창피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만 보고 걸어갔다.
눈을 감고 걷던 김명학씨는 육십 미터쯤에서 눈을 떴다. 틀림없는 자기 집 앞이었다. 그는 현관에 들어가 웃저고리를 벗어던지고 곳간으로 나가 삽을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길가에서 현관으로 들어가는 뜰길에 발자국을 내어놓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를 파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보다 못해,
“여보, 왜 이러세요, 왜 이래요.”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그는 곳간 담 밑에 가서 벽돌을 안고 왔다. 벽돌을 수없이 날라놓고 그 발자국 구멍에 벽돌 둘씩을 가지런히 놓고 발돋움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이러한 남편이 슬프게만 보였다.
“여보, 당신, 정말 이게 뭐예요. 사람이 돌기도 한다더니 정말 돌았수?”
“돌아? 누가…… 돌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해놓는 거야.”
그는 발돋움길이 되자 몇 번이고 그 발돋움길을 걸어본다. 또 눈을 감고 걸어본다.
아내는 남편이 가엾었다.
김명학씨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내는 남편의 칼 든 손을 붙들고 그 칼을 뺏으려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는 아내를 밀어버리고 현관문의 손잡이 근방을 깎아내는 것이다. 마치 일본 빨래판 모양 손잡이 부근을 깎아내고 파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손잡이 부근을 쓸어보는 것이다.
김명학씨는 다시 길가로 나와 현관 발돋움길을, 눈을 감고 걸어가 문의 손잡이 부근을 쓸어보고, 문을 드르륵 하고 열어보는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형용할 수 없는 서러운 눈물에 흐느꼈다.
『문학예술』 15호(1956. 6); 『환상곡』 (정음사 1958)
김 광 식
김광식(金光植)은 192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메이지(明治)대학 문예과를 졸업했다.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1959년부터 경기대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 단편 「환상곡」을 『사상계』에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규격화된 기계문명의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의 존재의식을 파헤친 단편 「213호 주택」 외에 『천사의 생활』 『고독한 양지』 등의 작품이 있다. 2002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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