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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7화 ― 「성가대석의 찢어진 악보」
“신부님!”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사제관에서 아침을 먹으려던 김맑음 신부는 성당 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박복례가 바로 눈을 흘겼다.
“앉으세요.”
“누가 부르는데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쓰러진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가봐야 알지요.”
“밥 세 숟갈 남았어요.”
그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큰일 났어요!”
김맑음 신부가 일어섰다.
박복례가 한숨을 쉬었다.
“저 성당은 왜 아침밥 먹을 때마다 큰일이 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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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간 김맑음 신부는 성가대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닥이 온통 종이였다.
악보였다.
정확히는—
**찢어진 악보였다.**
이번 주 토요일 은솔성당에서는 본당 설립 기념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은솔성당 성가대가 몇 달 동안 준비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성가대원들의 악보가 모조리 찢어져 있었다.
오미자가 찢어진 종이를 한 장 들고 분노했다.
“이건 사건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악보를 내려다봤다.
“그런 것 같네요.”
“고의예요. 고의!”
최병철이 말했다.
“어젯밤 제가 성당 문을 잠글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성가대석 문은요?”
“잠그지 않습니다.”
“어젯밤 마지막으로 성당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최병철이 수첩을 펼쳤다.
“성가대 연습이 아홉 시쯤 끝났고, 성가대원들이 돌아간 뒤 장 관리장님이 창문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아홉 시 반에 성당 문을 잠갔고요.”
오미자가 팔짱을 꼈다.
“그럼 답 나왔네요.”
“뭐가요?”
“안에서 한 거예요.”
“누가요?”
오미자가 성가대석을 가리켰다.
“성가대 사람 중 하나가.”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없다면서요.”
“그렇다고 성가대원이 했다는 뜻은 아니지요.”
“신부님.”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성가대 분위기가 요즘 안 좋아요.”
“왜요?”
“그걸 모르셨어요?”
“뭘요?”
오미자가 주변을 살피더니 속삭였다.
“지휘자 바뀐다는 소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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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솔성당 성가대 지휘자는 **한정수 라파엘**이었다.
예순두 살.
은솔성당에서만 십칠 년째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음악교사였고 퇴직한 뒤에도 성당 성가대만큼은 한 번도 놓지 않았다.
단원들에게는 엄격했다.
박자가 틀리면 다시.
음정이 틀리면 다시.
한 사람이 늦어도 다시.
그래서 성가대원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있었다.
**한 번 더 선생님.**
“다시 하겠습니다.”
연습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엄격한 만큼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지휘자 이야기가 나왔다.
젊은 음악가 **서재민**이 은솔시로 이사 왔고, 몇몇 성가대원이 그에게 다음 지휘를 맡기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오미자가 말했다.
“한 선생님하고 서재민 씨가 며칠 전에 크게 다퉜대요.”
“누가 그럽니까?”
“성가대에서 다 봤대요.”
“무슨 일로요?”
“지휘 방식 때문에요.”
최병철이 덧붙였다.
“이번 음악회 곡을 두고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미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서재민 씨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회장님.”
“왜요?”
“경찰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부님이 조사하세요.”
“저도 경찰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탐정이잖아요.”
“저는 신부입니다.”
오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탐정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결국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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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한정수 지휘자가 도착했다.
그는 성가대석에 흩어진 악보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김맑음 신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한정수가 천천히 악보 한 장을 주웠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다 찢어졌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한정수는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공연은 취소해야겠군요.”
오미자가 깜짝 놀랐다.
“취소라니요?”
“악보가 없잖습니까.”
“다시 복사하면 되죠.”
“며칠 남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몇 달을 연습했는데 악보 좀 찢어졌다고 포기해요?”
한정수의 표정이 굳었다.
“그만합시다.”
“선생님.”
“저는 이번 공연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성당을 나갔다.
김맑음 신부는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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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소문은 더 커졌다.
누군가 일부러 공연을 망치려 했다.
새 지휘자를 데려오려는 쪽에서 벌인 일이다.
아니다.
한정수 지휘자를 지지하는 사람이 새 지휘자 이야기를 없애려고 일을 벌였다.
심지어 성가대원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는 분명히 봤어요.”
한 성가대원이 말했다.
“서재민 씨가 어제 연습 끝나고 다시 성당으로 들어왔어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확실합니까?”
“네.”
서재민을 만난 것은 그날 오후였다.
그는 마흔 살쯤 된 피아노 강사였다.
“제가 성당에 다시 간 건 맞습니다.”
“몇 시쯤이었습니까?”
“아홉 시 십 분쯤이요.”
“왜요?”
“휴대전화를 두고 와서요.”
“성가대석에 올라갔습니까?”
“네.”
“악보는요?”
“멀쩡했습니다.”
오미자가 끼어들었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서재민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악보를 찢었다는 겁니까?”
“제가 언제 그랬어요?”
“지금 그러고 계시잖아요.”
“나는 가능성을 말하는 거예요.”
김맑음 신부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만하시지요.”
그리고 서재민에게 물었다.
“한정수 선생님과 다투셨습니까?”
서재민이 잠시 침묵했다.
“다툰 건 아닙니다.”
“그럼요?”
“제가 이번 공연의 일부 곡은 지휘를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반응은요?”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서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덧붙였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무엇이요?”
“제가 뒤에서 불렀는데 못 들으셨어요.”
김맑음 신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언제요?”
“지난주 연습 때요.”
“얼마나 가까이서 불렀습니까?”
“두세 걸음 뒤에서요.”
“그런데 못 들었다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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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는 다시 성가대석으로 올라갔다.
찢어진 악보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한 장.
두 장.
세 장.
악보를 차례로 살폈다.
최병철이 뒤따라왔다.
“뭐가 보이십니까?”
김맑음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찢어진 악보 중 한 장을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악보를 들었다.
이상했다.
모든 악보가 똑같이 찢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가운데가 크게 찢겨 있었다.
그런데 몇 장은—
특정 부분만 찢겨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종이를 맞춰봤다.
악보의 중간 부분.
높은 음이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또 다른 악보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장님.”
“예.”
“성가대원들이 쓰는 악보가 전부 같은 겁니까?”
“기본적으로는 그렇지요.”
“지휘자 악보도요?”
“지휘자용은 따로 있습니다. 표시가 많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 악보는 어디 있습니까?”
최병철이 지휘대 위를 살폈다.
없었다.
“없네요.”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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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김맑음 신부는 성가대 연습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한정수 지휘자가 들어왔다.
“신부님께서 저를 찾으셨다고요?”
“네.”
“무슨 일입니까?”
김맑음 신부는 의자를 가리켰다.
“잠깐 앉으시지요.”
한정수는 앉지 않았다.
“공연은 취소하는 게 좋겠습니다.”
“악보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악보는 다시 출력할 수 있습니다.”
“연습할 시간이 없습니다.”
“성가대원들은 이미 곡을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한정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어렵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예.”
“요즘 잘 안 들리시지요?”
한정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지난주 미사 후에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
“세 번 불렀는데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그랬겠지요.”
“그런데 바로 옆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정수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김맑음 신부가 말을 이었다.
“서재민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선생님 뒤에서 불렀는데 듣지 못했다고요.”
“그래서요?”
“성가대원들도 말했습니다. 요즘 선생님께서 음정이 틀렸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요.”
한정수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물었다.
“언제부터입니까?”
대답은 없었다.
“병원에는 가보셨습니까?”
오랜 침묵 끝에 한정수가 말했다.
“여섯 달 전입니다.”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한쪽 귀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요?”
“점점 음이 흐려졌습니다.”
한정수는 자신의 귀를 만졌다.
“사람 말은 아직 들립니다. 가까이서 이야기하면 괜찮습니다.”
잠시 멈췄다.
“그런데 음악은 다릅니다.”
김맑음 신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 사람만 음이 조금 흔들려도 알았습니다.”
한정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그의 눈이 지휘대를 향했다.
“소프라노가 틀린 건지, 내가 잘못 들은 건지.”
“그래서 공연을 포기하려고 하셨습니까?”
한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악보도 선생님이 찢으셨습니까?”
침묵.
한정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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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했습니다.”
한정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젯밤 모두 돌아간 뒤 다시 들어왔습니다.”
“왜 악보를 찢으셨습니까?”
“공연을 못 하게 하려고요.”
“그냥 못 하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잖습니까.”
“뭐라고 말합니까?”
한정수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어져 있었다.
“내가 이제 음악을 제대로 못 듣는다고요?”
목소리가 떨렸다.
“십칠 년입니다, 신부님.”
그가 가슴을 두드렸다.
“십칠 년 동안 저 자리에서 지휘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이 ‘귀가 안 들려서 그만둔 지휘자’가 되는 게 싫었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차라리 누군가 악보를 망쳐서 공연이 취소됐다고 하면…….”
한정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휘자용 악보도 가져가셨군요.”
“네.”
“왜 몇몇 악보의 특정 부분만 더 심하게 찢으셨습니까?”
한정수가 고개를 숙였다.
“그 부분이…….”
잠시 후 말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안 들립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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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선생님.”
“예.”
“공연을 그만두고 싶으신 겁니까?”
한정수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마지막 공연을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우신 겁니까?”
한정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천천히 말했다.
“둘은 많이 다릅니다.”
“신부님은 모르십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휘자가 아니니까요.”
“평생 음악을 했습니다.”
“그러셨지요.”
“음악을 듣지 못하는 지휘자가 무슨 지휘자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은 성가대를 귀로만 지휘하셨습니까?”
한정수가 그를 바라봤다.
“십칠 년 동안 성가대원들의 숨 쉬는 순간도 보셨을 겁니다.”
“…….”
“누가 긴장했는지, 누가 박자를 놓칠 것 같은지, 누가 자신 없어 하는지도 아셨을 테고요.”
김맑음 신부가 지휘대를 바라봤다.
“음악은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정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음악 아닐까요?”
한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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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저녁.
성가대원 전원이 연습실에 모였다.
한정수가 앞에 섰다.
손에는 지휘봉이 없었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악보를 찢은 사람은…….”
한정수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접니다.”
연습실이 술렁였다.
오미자의 입이 벌어졌다.
“선생님이요?”
한정수는 자신의 상태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누구도 말을 끊지 않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연습실은 조용했다.
한정수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이번 공연은 다른 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한 성가대원이 말했다.
“싫습니다.”
한정수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이 하세요.”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십칠 년 했잖아요.”
“그래도…….”
“우리도 십칠 년 동안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서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그가 말했다.
“제가 옆에 서겠습니다.”
“서 선생.”
“선생님께서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있습니다.”
서재민이 웃었다.
“저도 한정수 선생님한테 배운 사람입니다.”
한정수의 눈이 커졌다.
“제가요?”
“십오 년 전에 은솔고등학교 합창반 학생이었습니다.”
한정수가 한참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기억난 듯 말했다.
“재민이?”
서재민이 웃었다.
“이제 알아보시네요.”
성가대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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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
은솔성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휘대 앞에 한정수가 섰다.
그 옆에는 서재민이 있었다.
한정수의 손에는 오래 사용해 손때가 묻은 지휘봉이 들려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성가대원들도 숨을 들이마셨다.
첫 음이 성당 안을 채웠다.
한정수는 예전처럼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가대원들의 얼굴을 보았다.
입술을 보았다.
호흡을 보았다.
서재민이 아주 작은 손짓으로 박자를 알려주었다.
한정수의 지휘봉이 움직였다.
노래는 계속됐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음이 성당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잠시 정적.
그리고 큰 박수가 터졌다.
한정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성가대원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공연이 끝난 뒤 김맑음 신부는 성가대석에 올라갔다.
한정수가 혼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떠셨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한정수가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네.”
“중간에 몇 군데는 잘 안 들렸습니다.”
“그랬군요.”
“예.”
그는 잠시 성당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요?”
“예전보다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무엇을요?”
한정수가 성가대원들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사람들을요.”
김맑음 신부가 미소 지었다.
한정수가 말했다.
“이제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아보려고 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임 지휘자도 천천히 준비해야겠지요.”
“그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한정수가 웃었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을 정하는 건 병이 아니라 선생님이셔야지요.”
---
사제관으로 돌아오자 박복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님.”
“네.”
“이번에는 누가 범인이었어요?”
김맑음 신부가 잠시 생각했다.
“지휘자 선생님이요.”
박복례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그런데 범인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네요.”
“악보를 찢었다면서요?”
“네.”
“그럼 범인이지.”
“그렇긴 한데…….”
박복례가 식탁을 가리켰다.
“됐고 앉으세요.”
“왜요?”
“밥.”
“아까 먹었는데요.”
“언제요?”
김맑음 신부가 생각했다.
아침에 세 숟갈 남기고 뛰어나갔다.
점심은 사건 때문에 잊었다.
저녁은 공연 준비 때문에 못 먹었다.
박복례가 팔짱을 꼈다.
“신부님.”
“네.”
“추리도 밥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김맑음 신부가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박복례가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어머니.”
“왜요?”
“저도 귀가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지요?”
“걱정 마세요.”
“왜요?”
“신부님은 원래 남의 말 잘 안 듣잖아요.”
김맑음 신부가 숟가락을 들다 멈췄다.
“제가요?”
“봐요. 지금도 처음 듣는 표정이잖아요.”
사제관에 박복례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김맑음 신부도 결국 웃었다.
창밖으로 은솔성당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그곳을 채웠던 노래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음악은 소리만으로 남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함께 맞춰온 호흡.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
한 사람이 흔들릴 때 옆에서 박자를 잡아주는 손.
어쩌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그와 비슷한 것인지 몰랐다.
혼자서는 놓칠 수 있는 박자를—
누군가 곁에서 다시 알려주는 것.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밥 한 숟갈을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마지막이 아니라,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 제77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78화 「공원 벤치의 세 번째 도시락」
매일 같은 시간, 공원 벤치에 놓이는 도시락 세 개.
그런데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사이 **세 번째 도시락만 사라진다.**
김맑음 신부는 멀리서 벤치를 바라보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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