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육의 문제를 논할 때, 너무나 변해버린 우리 시대의 아동들에 대해 다양한 접근과 이해를 시도하곤 한다. 아울러 7차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시행과 더불어 학교라는 제도와 패러다임의 변화,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교육이 아동․교사․학부모 3위 일체의 올바른 협력 관계 속에서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생각할 때, 학교 교육의 한 축인 학부모와 함께 하기 위한 시도가 부족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1. 불안한 학부모
할 수만 있다면 강남으로 대치동으로 몰려가고자 안달하는 우리 시대의 학부모들은 누구인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졌지만 공교육을 지극히 불신 당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지금 불안하기만 하다. 자녀를 초․중등학교에 다니게 하는 그들의 연령은 60년대에 태어나 IMF를 온 몸으로 겪으며 21세기를 열어제치는 우리 사회의 허리 세대이다. 이들은 이제 막 6․25를 거친 그 전 세대와는 다른 세대이다. 이들은 상대적인 빈곤의 불편함을 알고 있지만 절대적인 가난을 체험하지는 않았다. 물질의 풍요와 현대 산업사회의 혜택의 그 첫 물을 누리고 살면서 자신의 2세들에게 끊임없는 신분 상승과 더 낳은 삶을 물려주고자 하는 의욕이 펄떡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버림받는 첫 번째 새대」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집착과 불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녀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설소대) 수술을 시키고 여름 방학이면 몇 백만원 짜리 해외 어학 연수도 마다 않는 것은 이제 일부 부유층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옆 집 아이와 비교하여 학원을 아니 보낼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저학년 때는 그런대로 버티다가도 마침내 많은 가계 부담 속에서 학원으로 사교육으로 아이를 몰아가게 된다. 늘어나는 사교육비가 부담이 되지만 다른 것은 줄여도 아이 학원비 만큼은 줄일 수가 없다. 파출부․식당․대리운전 아르바이틀 해서라도 내 자식만은 남 못지 않은 교육의 혜택을 주고 싶다.
그런 까닭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어울려 놀 친구도 없게 되었고 아파트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자고 지는 것이 현실이다.
2. 불신하는 학부모 만나기
이들에게는 공교육 체계가 불안하고 아이들의 미래도 불안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학교를 믿을 수가 없단다. 물론 교사를 믿기도 어렵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빨리 빨리”는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와 도덕 규범마저 송두리 채 붕괴시켜 놓았다. 지난 20년간에 걸친 대통령과 그 친인척들 및 측근들의 비리와 권력자들의 부패는 아이들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도 판사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성직자도 부패한 마당에 온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한데 교육의 하늘 아래서만은 밝은 햇살이 반짝이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 무구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소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교육은 그 뿌리가 송두리 채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참여정부라고 다를 것이 없으며, 오히려 혼란은 더욱 더 안개 속을 헤메이듯이 가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과 학교를 단절시켜 놓은 것이 그 첫 번째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인 교육인적자원부의 목소리는 간데 없고 건설교통부장관, 서울시장, 한국은행 총재까지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부동산 대책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권력형 비리가 발생할 때 마다 우리 국민 대다수의 관심의 대상인 교육 제도의 구조적인 개선과 교사들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에 바빴다. 물론 이 일에 일부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언론이 앞장 서 왔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1년 전에 수사가 끝난 사건마저 9시 저녁 뉴스에서 다루어야 할 만큼 학교 공동체를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집요했다. 그 결과 시중에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학교와 교사들이 문제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이라는 것 들이, 학교를 없애야 돼” 하면서 교육 문제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게 되었다. 학교를 우습게 보고 교사를 우습게 보는 학부모들의 출현이 이 즈음이다. 이러자 아이들마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교사에게 불손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이른바 『학교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의 머리 채를 흔들어 대는 학부모와 112 범죄 신고 경광등을 단 차가 교내에 진입하여 수업 중인 교사를 연행하는 것도 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아이들은 담임교사를 휴대폰으로 신고하고 수업 중에 휴대폰을 통화해도 만류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사회가 되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 찾아와 학원처럼 시험을 자주 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인근 ○○학교처럼 성적을 알려달라고 주장한다. 학교에 찾아와 자녀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선생님이 소신껏 아이들을 지도․편달해 주십사 라는 말은 이제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중에는 소위 문제 학부모들이 있다. 아이들끼리의 싸움에 학교와 찾아와 담임교사가 보는 앞에서 가해 아동을 직접 폭력을 행사하거나 내 아이의 신발을 찾아주기 위해 고사리 손을 밀쳐내는 학부모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교와 교사를 믿지 않는 것이다.
3. 불만스러운(불평하는) 학부모 만나기
주변에서 담임교사와 학교를 칭찬하는 학부모 보다는 근심하고 걱정하며 불만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을 만나기는 더욱 쉬운 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교와 교사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 없이 담임교사와 학교에 대해 불평거리를 찾아내고 이를 전파하며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고자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있는 자리라고 굳이 눈치를 보면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단 요구사항부터 말한다. 마치 가게에 와서 물건을 바꾸는 사람처럼 인사말도 “그 동안 자녀를 맡겨 놓고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불만을 말할 때 “누구 부모”라는 말을 밝히지 않는 것도 요즘 들어 나타난 특징이다. 이른바 익명성이 이런 곳에서 유감 없이 발휘된다. 전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참동안 용건만 말하고 누구 부모시냐고 물으면 대답도 없이 뚝 끊는다. 자기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그렇다고들 한다. 정당하게 실명으로 요구하지 못하는 정보라면 익명으로도 하지 않아야 옳다. 이런 정보를 교무 회의에서 흥분하며 전달하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은 공동체의 불행이다. 이러할 때, 단호히 학교와 교권을 보호하려는 교감․교장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물론 억울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실명을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 경우라면 1차 적인 이해 당사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담임교사와 가까운 선생님들과 협의하며 문제의 해결을 합리적으로 시도해야 옳을 것이다. 담임교사를 건너 뛰어 바로 교장․교감 선생님을 상대하거나 교육청을 찾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당사자들이 해결하도록 결말이 도달됨을 왜 모를까?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았다는 자녀의 말만 믿고 학교에 달려 오는 어이없는 일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자녀가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지 싸움을 말리시느라 애쓰시는 선생님에게 사죄는 드리지 못할 망정 자녀의 말만 듣고 학교에 떼로 몰려오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교사들은 깊은 좌절과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관계에는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한 쪽만을 바라보고 반대편 말은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학교와 교육을 짐짓 걱정하면서 잘못된 정보와 이야기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다. 불평하는 부모의 자녀가 학교에서 그들에게 불평의 대상인 교사로부터 올바른 시각으로 배울 수 있을지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들은 그 들 자녀의 학교에 대한 추억과 교사에 대한 존경심마저 송두리채 흔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점은 이 부메랑이 그들 부모 자신에게 대한 불만과 불효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4. 흥분한 학부모와 대화하기
간혹 학교에서 흥분한 상태로 방문하는 학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학교에까지 오게 되는 대에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당함이 그 곳에 있으며 오죽하면 바쁜 일 다 밀쳐 놓고 학교에까지 쫒아 오게 되는가 하는 감정의 홍수가 있다.
감정이 극도에 다다른 사람을 대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우선 감정을 가라 앉히는 것이다. 감정의 풍선에 바람을 빼지 않으면 이성이 밀고 올라와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일단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자.
첫 번째는 왜 찾아 왔는지 이유를 따지고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우선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고 살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속이 상 하셨어요” “당근, 속에 불덩이가 치밀어 올라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 아닌가?” 그 감정을 인정해주고 나면 흥분이 가라 앉고 이유를 말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에 들어선다.
두 번째 단계에는 “자녀의 장점 칭찬 해주기”이다. 흥분해서 찾아 온 학부모의 속 상한 감정을 일단 인정해 주고 감정의 흥분 상태를 가라 앉힌 다음, 자녀의 장점을 칭찬해 준다. 오늘 있었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보다는 평소에 보아 온-비록 보기 드문 것이라 하더라도- 자녀의 장점 한 가지를 먼저 칭찬해 주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학부모도 교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옳고 그름의 시비를 말하면 논쟁을 하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단계이다. 자녀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 백을 교사로부터 받은 학부모는 적의가 누그러뜨려 지기 마련이다. 이제 자신 혹은 자녀가 겪은 억울함에 대해 호소해 온다. 일의 전말을 마음으로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며 들어준 다음, 교사가 학생의 입장에서 도와 드릴 것을 묻는다. 학부모와 싸워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 교사에 대한 존경심의 부족과 대화 환경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에 대해 말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 단계는 이 것이다. 만약 학부모님께서 평소에 저와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으시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찾아오셔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만의 하나 귀 댁의 자녀가 부모님으로부터 교사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을 듣게 된다면 존경심은 고사하고 그 공부가 귀에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교사의 입장을 반영해서 전달할 수 있겠는지요? 하며 교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 교육을 위해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의 필요성(중요성)을 강조하는 약속으로 대화를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교장, 교감 선생님이나 다른 동료교사가 아니라 다른 학부모들이 보호하고 지지해 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부모가 달려와서 따질 만한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으나 아이들끼리의 싸움이나 다툼 등에는 교사가 무한책임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교사의 보호자는 같은 반 학부모임을 잊지 말라.
5. 불편한 관계를 넘어
그렇다면 학부모와 학교와의 관계는 이토록 불편하고 껍데기만 남아 있게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많은 교실에서, 학교에서 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와 아이들이 하나가 되어 『즐거운 교실, 오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실』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작지만 큰 걸음들을 내 딛고 있다.
무엇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학교를 신뢰하게 하는가? 이토록, 불편한 관계를 넘어 함께 가는 동반자로서 협조자로서 무너진 교육을 더불어 살리는 파트너가 되게 할 것인가? 지금, 이대로 우리 교육을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기적이고 불신하는 마음이 강물처럼 넘쳐흐르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이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 문제의 열쇠는 아동이나 학부모 편에서 시작하기가 어렵다. 교사가 학교에서 먼저 시작해 주어야 한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아이들의 알림장을 통해, 학교신문을 통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요즈음은 학교마다 홈페이지가 잘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가 얼마든지 교통할 수 있음이 세계 제일의 인터넷 강국인 우리 시대의 특징의 하나이기도 한다.
먼저 교사의 학급 운영 철학과 운영 방법에 대해 학부모들의 협조를 구하자. 이는 학기 초 가정통신문을 통한 학급 운영 철학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일이다. 한 해동안 귀 댁의 자녀들은 저의 이러한 철학의 바탕 위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가르치겠노라고 알려 드리자. 학급의 모둠 구성은 이렇게 하며, 수업은 어떤 식으로 전개하겠노라고 하자. 담임인 교사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범위를 분명하게 그어 주자. 정 선물을 주시고 싶다면 학년이 마치고 난 다음에 주십사고 말해 보자. 2월 달에 성적 처리가 다 끝난 뒤 주는 선물이라면 마음에서 우러난 선물이 아닐까?
늘, 아이의 담임교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학부모들에게 전해 질 때 학부모는 안심하게 된다. 안심하면 불안감이 덜어지고 그 것이 쌓이면 신뢰에 이른다. 학부모가 학교에 오는 기회를 만들자. 어떤 기회로 오게 할 것인가?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자. 이른바 학부모의 날 행사를 가져보자. 학부모와의 대화는 학생들과의 대화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는 경우는 학기초 “학부모 총회의 이름을 빈 인사하기”가 대부분의 학부모들에게 해당되었다. 한 반의 몇 분 정도는 학교의 도서관이나 상담실 등에서 고정적인 봉사를 하거나 스승의 날 등에 일일교사로서 봉사하기도 한다. 더러는 장학지도가 있기 전 청소를 위해 오기도 한다. 이 모두가 일방적인 관계일 뿐이다. 이러한 기회에 방문하여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의 위상을 보여주는 방문의 형태이다.
6. 진정한 실력이란 무엇인가? (학부모가 알아야 할 공공연한 비밀)
많은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의 연장선에는 대학입시가 있고, 학벌주의가 있고, 이를 부추기는 메스컴과 교육 시장의 논리들이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공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다.
원동연(1999) 박사는 21세기의 리더가 될 학생의 실력을 지적 능력 외에도 체력, 자기관리력, 인간관계력 등을 지적하고 있다. 시험 치는 기술은 지적 능력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왜 공부하여야 하는지? 학습 동기가 없는 학생은 중학교 무렵이면 뒤로 쳐지기 시작한다. 학문의 기본 원리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학생들은 창의적이지 못하고 자신을 이기는 진정한 의미의 리더 즉,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어떤 환자도 의사에게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어떤 약을 쓰고 어디를 몇 바늘 꿰메어 달라고 주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많은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일년에 몇 번 시험을 볼 것이며 성적표는 석차를 매겨서 매달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수행평가와 개인별 지도를 지향하는 7차 교육과정은 이를 명백히 금하고 있다. 아이의 학업성취에 대해 논술형으로 방향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교사들의 소신과 철학보다도 매스컴을 통해 스스로 설계한 자녀교육의 방식에 더욱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와서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지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시험 범위가 나오면 학원에서는 기출 문제에 대한 분석과 문제 풀이가 들어가고 주말까지 아이들은 시험 준비에 메달리게 된다. 최단 시간에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들이 집중적으로 지도될 수 있다. 실력을 올리는 것이라면 왜 교사가 이를 꺼려할 것인가? 수학을 초전에 박살내고 이런 형태의 문제는 이런 지문에서는 답이 아니고 이런 지문에서 답일 가능성이 제일 많다고 배운 아이들이 공부를 재미 있어 하겠으며 학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부하면 징그러워서, 피해갈 곳을 찾다가 중학교가 되면 부모의 시선을 피해서 책은 앞에 있으되 마음은 다른 곳에 갈 수 있도록 생존 훈련을 체득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실력이란 무엇인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며칠 전 충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어린이가 오르지 않는 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버렸다. 누구 이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가? 누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빼앗아 가며 너의 장래를 위해서 라고 강변하는가? 아버지가 하루에 직장에 다니며 일하시는 시간보다 내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다며 “물고기처럼 자유럽게 살고 싶다”는 아이들을 부모는 아름다운 황금 어항 속에 가두곤 다 너를 위해서라고 한다. 아이들이 커서도 정녕 그 부모님의 마음을 고마워 할 자신이 있는가?그 자신은 아이의 동의를 받은 것인가? 아이들은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는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꿈과 친구들을 더 이상 빼앗지 말라. 아이들의 실력은 공부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통해 동기가 부여될 때 자랄 수 있을 것임을 기억하자. 좋은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쌓아가며 인간관계의 문제를 갈등이 아니라 조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갈 수 있는 인간관계의 실력을 기르자. 무엇보다 건강해야 만이 공부도 할 수 있느니,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 밥부터 제대로 먹이고 잠 자야할 시간에는 재우자. 자신의 몸을 낯선 곳에서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력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물에 빠졌을 때 죽지 않을 만큼의 수영 실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돈을 관리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것을 가르치자. 자기 관리력이야 말로 리더의 필수적인 덕목이다. 명품으로 치장시킨 자녀가 사회의 지도층의 된들 자기관리가 안되면 행복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가족 간의 대화가 살아 숨쉬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자. 자녀들 앞에서 아이 공부 문제로 학원 문제로 싸우지 말라. 자녀가 정말 원하는 것은 서로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먹고 자란 자녀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익숙하다. 사랑 받는데도 익숙하다. 가정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실력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이다.
Ⅱ. 학부모와의 연대 - 이렇게 해봐요
1. 학부모의 권리를 찾아
학부모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담임교사의 내어 주는 숙제의 분량과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체벌 방식이 불만스럽기도 하고 학급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해결 방식이 매우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것이라면 한번 쯤 균형 있는 판단을 위해 사실을 확인하고 정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아이들이 거짓말하겠느냐”?는 반문을 한다. 그렇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우려할 만큼 철저하게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폄해하며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정에서의 아이들의 생활과 학교에서의 생활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교육의 일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놀이와 게임을 통해, 애완동물 기르기와 TV 시청 등을 통해 학교 밖에서 하는 모든 일에서도 배운다. 초등교육은 배움에 대한 열의, 좋은 학습 습관 등 학문의 기본틀을 갖추는 단계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사는 부모 자신인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미국선 이렇게 가르친다, 1999).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부모들의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문제에 직면되어 있으며 그것은 급변하는 교육과정과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의식 및 개별화 등이다. 이제는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학교 교육의 협조자로서 교사를 도와 학교 교육의 한 축으로 참가하여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참가하고자 할 때 그의 권리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내 자녀가 어떤 과목을 어떤 방식을 통해 배우며 공동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친구 관계는 어떠하며 체력은 얼마나 되는가? 내 자녀의 학교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가? 내 자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이면 그 시간에 그(녀)는 어떻게 수업하는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이며 왜 친한지? 그 것을 담임교사와 함께 의논하고 협의할 수가 있겠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많은 물질과 관심을 투자하지만 정작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여러 군데 학원에 보내는 것만으로 위안삼지만 그 것이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다.
2. 수준 낮은 교사에 대처하기
아주 가끔씩 학부모는 이른바 수준 낮은 교사와 만나게 된다. 집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귀중한 아들이고 딸이지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공동 생활을 하다가 보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것은 학습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 생활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 처리 과정에서 불합리하고 비교육적인 교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질이 부족한 교사와의 지속적인 갈등은 자녀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성격 형성에도 많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수준이 낮은 교사란 어떤 교사를 말하는가? 숙련된 교사, 훌륭한 교사에 대한 정의는 많지만 수준 낮은 교사에 대한 정의는 참으로 어렵다. 그냥 그 반대편이 서 있거나 훌륭한 요소들이 결여된 교사라고 보면 되겠다. 좋은 말로 하면 훌륭한 교사의 어떠한 덕목을 쌓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거나 노력 중인 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가 훌륭한 교사와 만나지 못했을 경우, 이른바 그 수준이 낮은 교사와 만나게 되어 학교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는 이러하다. 먼저 그 조짐은 자녀의 행동에서 나타난다.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하거나 자주 울고 불평하며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등교 시간만 되면 배가 아프다거나 학교에 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얼굴에 상처를 입고 오며 넘어 졌다고 둘러댄다.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우울하다.
이러할 때 학부모는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미국선 이렇게, 1999).
먼저, 자녀의 담임교사와 상담하자. 담임교사가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만 상담 교사나 교장을 찾아간다. 우리의 경우 상담교사가 학교마다 배치되어 있지 않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좁다. 상담을 하되 싸우려고 하지 말라. 자녀의 문제니만큼 감정이 앞설 수 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하라. 아울러 평소에 자녀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보라. 자녀의 행동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자. 학부모-교사 회의에 자주 참여하라. 의논하고 싶은 주제를 미리 준비하여 상의하자.
교사와의 갈등은 그 것이 단순히 어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전학을 하게 되면 상처는 더 크게 남는다.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학부모에게는 전학이라는 마지막 수단이 있지만 교사의 선택은 더욱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처도 치명적이다. 대화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처는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불신과 혐오의 늪으로 빠뜨린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완곡하게 접근하였다. 다음 기회에 더 깊이 다루기로 하자.
3. 학부모의 관심이 교육을 살린다.
우리는 21세기의 학교를 논하면서 학교가 『배우는 것을 배우는 곳이며,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인간관계를 배우며, 문제해결력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데에는 담임교사 혼자의 힘만으로 부족하다. 학부모가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학교의 변화는 가능하다.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일부 잘못된 행정가의 전횡 위에 우리 아이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 다행이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민주적이고 교육적이라면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반대편이라면 학부모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더 요구된다.
학부모의 힘이 학교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내 자녀 하나만을 전학시킬 뿐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당신의 자녀들에게 커다란 실패와 좌절하나를 체험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참가 할 수 있는 문은 다양하게 열려있다. 먼저 자녀의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담임교사와 상담할 수 있다. 그 것이 제도적인 문제와 관계된 것이라면 교감․교장 선생님께도 건의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이를 학교 홈페이지 등에 실어 여론화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참여는 학교 학부모회 혹은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에 참가하여 학교의 운영과 제반 결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학운위는 광역교육단체의 수장인 교육감 선거의 선거권으로부터 학교의 제반 예산과 집행 및 의사결정과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부모 위원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대한 제반 법적 지위와 역할 및 기능과 권한 등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채 거수기 역할만 한다면 학교의 발전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학운위의 성공적인 운영은 교사와 학부모의 상호 이해와 협력관계를 만들어 내는데 달려있다고 하겠다(학교운영위원회, 1997)아울러 교사와 함께 자주 대화하고 함께 협의하여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4. 함께 하는 학부모 교육
필자는 초임교사 시절부터 학부모 교육을 매달 빠짐 없이 실시하여 왔다. 학교 교육의 한 축인 학부모 교육이야말로 학생들에 교육을 완성하고 보완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아동들의 문제는 가정과 관련되어 있다. 아동이 학교와 부모로부터 같은 교육을 받게 될 때 그 믿음과 효과는 배가 된다.
학부모 교육에 대한 안내는 필자의 경우 학기초 가정 통신문에 함께 싣는다. 학부모 교육이라는 용어에 대해 일방적인 가르침을 연상한다면 「학부모의 날」혹은 「학교 방문의 날」등의 명칭도 가능하겠다. 금년도 우리학교의 학부모 교육 계획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수년 전에 만들 것이라 날짜와 요일이 다르다).
주 제
월/일/요일
주 제
비 고
3월 8(금)
교사-학부모 만남의 시간(교사의 학급운영 철학, 방법 및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바라는 점, 토론하기)
4월 12(금)
효과적인 자녀와 대화 방법 (감정 전달법, 5차원의 대화 등)
5월10일(금)
성격 유형에 따른 올바른 자녀 양육 방법
6월14(금)
내 아이의 진로 교육(자녀의 특기를 살리는 진로 교육)
7월12일(금)
가족 규칙, 가족 문화 이렇게 만들어 봅시다
(자녀를 리더로 기르려면......)
8 월
MBTI 집단 가족 상담
방학 중 희망 가족
9월 13일(금)
영어 공부 잘 하는 아이 - 이렇게 지도하면.......
10월 11일(금)
사춘기의 자녀와 중년의 부모 - 평행선에서 만나기
11월 15일(금)
아버지의 자리는 어디인가?
12월 13일(금)
자녀와 함께 만드는 가족 신문(한 해를 마무리하는)
1, 2월
학부모 교육 평가 및 정리
5.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의 관계
오늘날 우리 교육의 문제를 논할 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에서 이미 망쳐놓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바로 잡기란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저학년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 아이들이 자신 밖에 모른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유치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폐 끼치지 않기”는 “내 자식 기죽이지 않기”에 밀려 갈수록 교실은 소란하고 통제가 어려워진다. 물론 지하철이나 기차 안, 식당 등의 공공 장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W. Glass는 좋은 학교 만들기 운동(Quality School)에서 교육(Education)이 있기 위해서는 학교화(Schooling)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학교에 최소한의 질서와 체계가 없다면 좋은 교육은 고사하고 학교 자체가 존재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의 연계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수레의 두 바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교와 가정의 가르침이 다르다면 학생들의 혼란은 물론 결국은 큰 흔적을 그릴 뿐 처음 자리로 되돌아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인 학교 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고 보람 있는 교단을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접근이 필요하지만 상대방의 변화를 기다리고 요구하면서 “네가 먼저 무기를 던진다면 나도 던지겠다는” 자리에서 “그대가 비록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변하겠노라”는 멋진 마음으로 뛰어 들어 보자.
교사가 행복하여야 아이들이 행복하다. 교사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학교와 교사가 행복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순서가 아니겠는가?.
☀ 마음을 이어주는 자녀와의 효과적인 대화 방법
Ⅰ. 나는 어떤 부모입니까?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좋은 부모에 속할 것이라고 믿지만 내 자녀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먼 훗날 자녀들이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때, 비로소 자녀 교육에 성공을 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용린(1995)은 좋은 부모란 『바로 자기가 받아온 양육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자식에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된 방식들만을 골라 다시금 반복하며 베풀어주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라는 가정(假定)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지나는 우리 사회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고 눈부시어 부모 세대의 교육방식과 가치관이 자녀 세대에도 관심과 흥미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 것을 목격합니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의 생채기들을 만나기가 쉬운 형편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모에게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 자녀 교육에 관해 생각해보면서, 자녀에게 심어 줄 많은 바람직한 교육의 첫 단추는 「나는 어떤 부모인가?」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일 것입니다. 자신의 교육관과 교육 방법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성공적인 자녀 교육을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Ⅱ. 우리 가정에 대화는 있는가?
『아이들과의 대화는, 하나의 예술과 같아서, 그 뜻하는 것과 법칙이 특이하다』라는 하임 기너트(1997)의 말은 대화의 오묘함을 말해 줍니다. 대화란 무엇입니까? 두 시간동안 함께 앉아 있었다는 것이 곧 두 시간을 대화하였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자녀의 관심과 어려움에 대해 들어주고 이를 해결하여 주려는 시도는 누구나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심정을 공감하여 주며 자녀의 관심과 흥미에 관해 함께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한 것이 언제였습니까?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학원과 예절에 대해 교육하지만 아이들은 이 것을 대화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대화」라고 부르는 상황이 우리 가정에 얼마나 되는지 점검하여 봅시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의 뒤편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흔히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대화 중에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훈계나 설교일 수도 있습니다. 일방적인 가치관의 전달,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는 강요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인하려는 몸부림 일 수도 있습니다.
Ⅲ. 아이들의 마음을 닫는 대화 유형 10가지
날마다 아이들과 부대끼지만 크고 작은 사건 들 속에서 무심코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게 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다음 몇 가지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각 항목을 5점 기준으로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 1점, 간혹 있었던 것 같다 2점, 보통이다 3점, 가끔 있다 4, 자주 있는 편이다 5점으로 계산하여 자가 진단을 해 봅시다.
⑴ 아이들이 말을 걸어올 때 딴 일하며 대답하기(설거지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신문을 보면서 무척 바쁜 표정으로 하면 더 효과적이다, 이 때 아이들은 우리 부모님은 지금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할 것이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부모가 말할 때 딴 짓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심정을 생각하면 그 효과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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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대화 중에 말허리를 자르기(핵심만 말해, 그래서 이랬단 말이지.......)(아이들은 내가 지금 부모님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고 알아챌 것이다. 성급하게 판단하기와 사촌지간이며 명령하기와는 형제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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⑶ 설교하기(도덕적인 설교로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을 자주 인용하면 더 효과가 있다. 충고하기와 오랜 친한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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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 상처 싸매기(상대방의 고통에 오버하면서 감정을 퍼낸다. 슬픔과 기쁨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면 좋다. 성급한 위로와 동정도 사촌지간이다. 나 보다 더 슬퍼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아이들을 한방에 감정의 홍수에 침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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⑸ 무시하기(상대방의 무지와 실수에 때를 놓치지 않고 반응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체험하게 한다. 비꼬아서 말하기와 꼬투리 잡기가 친한 친구사이이다. 모욕적인 말과 경멸하는 눈빛 등을 함께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아동들의 자존심 세워주기와는 극히 사이가 좋지 않음)
⑹ 분노 속에 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리기(작은 일을 확대하고 감정을 극대화하여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분노에 함몰되기. 고함 소리와 함께 값이 작게 나가는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다소 과격한 행동과 상기된 얼굴 표정이 함께 하면 가정은 의도하는 것 이상의 공포가 가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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⑺ 극단적인 언어 표현과 약속하기(감정의 조절이 잘 안된 상태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좀 더 중량감이 있고 부담이 되는 언어를 사정없이 골라 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다시 주어 담기 어려운 놀라운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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⑻ 비교하기(누나는 몇 점인데, 사촌 누구를 보아라.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 동생 반만 닮아라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비교하되, 구체적인 수치를 활용하면 파괴력이 크다. 이는 우리 부모님들께서도 많이 사용하시던 바 “형제간에 비교하기, 옆집 아이와 비교하기, 친척 또래와 비교하기 등과 남매지간으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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⑼ 편애하기(특정 자녀의 이름을 집중적으로 불러주기, 심부름시킬 때와 상을 줄 때 등 식사시간에도 옆에 앉게 하여 친밀한 정을 대․내외에 과시한다. 칭찬 받는 어린이의 자존감을 극대화시켜주고 다른 형제, 자매를 무시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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⑽ 짜증내기(집안의 공기 한 올 한 올을 파스텔 톤으로 무채색에서 군청색을 지나 사포 위에 그린 그림처럼, 못으로 끓어내는 심정으로, 겨울철 유리창이 억지로 열릴 때 들리는 제그러운 소음으로 신경질적인 되받아 치기(그래서...)를 함께 사용하면 더욱 더 파급효과가 크다.
나의 점수는? ( ) 점.
20점 이하 시라고요? 부럽습니다. 아니 30점 이하입니까? 공감이 가시겠군요! 35점이 넘는다고요? 바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군요.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세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으니까요?
Ⅳ.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좋은 대화 방법 10가지(하임 기너트, 1996)
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실습 1. 경청 안 하기와 경청하기 - 2인 1조, 1분간씩 최근에 있었던 가장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경청 안 하기와 경청하기 실습을 통해 비교해 보기)
⑵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말(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기, 단체를 대상으로 경어 쓰기와 따뜻한 눈빛과 인격을 인정해 주는 말)과 능동적인 경청 기술(실습 2. 명료화, 재진술, 반영, 요약)
⑶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말 - 개성이나 성격에 대한 이야기는 NO
⑷ 분노의 표현은 화가 나더라도 흥분하지 않고 사실에 머물러야.
⑸ 협력 구하기 - 아동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대화(아동을 교사에게 의존적으로 기대게 하지 말아야)
⑹ 판단을 신중하게 : 구별과 예측을 피하고 섣부른 진단하지 않기(상황에 대해서만 말하고 사람은 구분하지 않아야)
⑺ 빈정거리지 않기 : 아픈 곳을 치유하기와 상처 입히기의 차이
⑻ 성급하게 도와주지 않기 : 대신 문제해결 주지말고 의견을 들어보고 문제해결의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주기
⑼ 요점을 말하기 : 간단히 결론에 이르는 습관을
⑽ 부모․교사의 언어 습관은 아동의 거울
실습 2 : 능동적인 경청 기술 4가지(시험을 망치고 일찍 집에 온 딸과의 대화)
상황 : 시험을 마치고 일찍 집에 돌아 온 딸이 엄마를 보고는 “나 오늘 시험 망쳤어! 기분이 엿 같아!” 하고는 미쳐 말을 걸 여유도 없이 문을 쾅 닫으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⑴ 명료화 : 모호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정리하여 반응
⑵ 재진술 : 시험을 망쳐서 기분이 나쁘구나(메세지의 반복).
⑶ 반영 : 시험을 망쳐서 무척 속이 상한 것 같이 느껴지는구나(메세지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전달).
⑷ 요약 : 재진술 + 반영
Ⅴ. 효과적인 대화는 무엇을 가져다 줄까요?
⑴ 학습동기를 유발시킨다.
⑵ 자율성을 권장한다.
⑶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
⑷ 자신감을 갖도록 한다.
⑸ 불안을 해소시킨다.
⑹ 공포심을 없애준다.
⑺ 욕구 불만을 해소시킨다.
⑻ 격분을 가라앉힌다.
⑼ 갈등을 해소시킨다.
Ⅵ. 대화의 다섯 가지 차원(연문희, 1996)
⑴ 일차원적 대화 : 형식적인 관계
☞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말(잘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⑵ 이차원적 대화 : 사무적인 관계, 피상적인 관계
☞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너와 내가 아닌 제3의 “그 것”에 관한 대화
⑶ 삼차원적 대화 :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표현하는 단계
☞ “내 생각에는 .......입니다” 등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단계
⑷ 사차원적 대화 : 사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단계
☞ 숨겨진 느낌과 감정을 표현
⑸ 오차원 대화 : 가장 깊은 차원의 대화 단계
☞ 절친한 친구나 금슬 좋은 부부관계에서 경험하는 이심전심의 공감
Ⅶ. 새로운 출발은 위하여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자녀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교사는 부모 자신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부모에게도 그러하지만 아동에게는 세상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체험입니다. 이러한 대화의 단절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히, 무의식 속에서 생활 속에서 시나브르 쌓여갑니다. 《이제 우리 부모님은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구나. 소용이 없어. 이런 말을 했더니 이렇게 손해를 보았구나》 하는 체험이 쌓이게 되면 아동은 조금씩 대화의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사춘기에 접어 든 자녀가 그 고민을 나와 나누지 않는 것의 책임은 자녀에게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부모님에게 있는 것이겠습니까? 가장 늦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먼 훗날 자녀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려울 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내 고민을 함께 아파해 주셨다」는 기억으로 남고 싶으십니까? 「학원과 공부로 나를 몰아내어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노라」는 말을 듣고 싶으십니까? 오늘 바로 자녀에게 물어 보세요. 심문하듯이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너란다. 너의 이야기에 내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하고 싶구나」하고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