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di, Don
Carlo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Giuseppe
Verdi
1813-1901
Don Carlo: Pl?cido
Domingo
Elisabetta: Mirella
Freni
Fillipo II: Nicolai
Ghiaurov
Rodrigo: Louis
Quilico
Eboli: Grace
Bumbry
Tebaldo: Betsy
Norden
Metropolitan Opera
Chourus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Conductor: James
Levine
Mets Opera House, New
York
1983.03.26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19세기 유럽에서는 대규모 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위해 유명 오페라 작곡가에게 신작을 의뢰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1867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베르디를 택했습니다. 당시 파리는 세계 오페라의 중심이었지만,
파리 오페라극장은 음모와 뇌물, 스캔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베르디는 이 의뢰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고전문학 작품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베르디는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스>(Don Carlos, Infant
von Spanien)의 정치적 이상과 휴머니즘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소재를 대본가 프랑수아 조제프 메리 및 카미유 뒤 로클에게 의뢰해
프랑스어 오페라로 탄생시켰습니다.
군주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정혼시킨 여자를 정략적인 이유에서 왕비로 맞아들입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을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게 된 아들은 그 고통과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경계하죠. ‘베르디 오페라의 진수’로 불리는 <돈 카를로>는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를 바탕으로 정치적 이상의 좌절과 비극적
가족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실존인물 돈 카를로스는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 펠리페 2세(1527-1598)의 아들로 왕위계승권을 지닌
왕자였지요. 하지만 세계를 호령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카를로스 왕자는 심약한데다 정신질환이 있었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왕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버지는 발작을 일으킨 그를 감금해 스물셋의 나이에 홀로 죽어가게 만들었답니다. 뒤주에 갇혀 죽은 조선시대 사도세자와
비슷한 운명이었던 셈이군요. 베르디의 오페라 속에는 이 왕자(카를로스는 이탈리아어로 카를로가 됩니다)가 테너 주인공으로, 아버지 펠리페
2세(오페라에서는 필리포 2세)는 베이스 주인공 배역으로 등장합니다.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원래는 동갑내기 카를로스 왕자와 약혼한 사이였으나, 두 명의
왕비와 사별한 펠리페 2세의 세 번째 왕비가 됩니다. 오페라 속 소프라노 여주인공 엘리자베타가 그녀죠. 마드리드 최고의 미녀로 불렸고 펠리페
2세의 정부라는 소문이 있었던 실존인물 에볼리 공녀(公女) 역시 메조소프라노 배역으로 오페라에 등장합니다.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창작된 인물은
돈 카를로 왕자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이상주의자 로드리고(포사 후작)로 바리톤 배역입니다. 1867년 3월 11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5막으로 초연된 이 작품을 베르디는 이탈리아어 4막본으로도 개작해 1884년 1월 10일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 재초연했습니다. 4막본에서는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트가 처음 만난 퐁텐블로 숲 장면이 생략되었는데요, 오늘은 초연판 5막본의 줄거리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Pl?cido Domingo/Margaret
Price/Claudio Abbado - Verdi, Don Carlo
Don Carlo:
Pl?cido
Domingo
Elisabetta: Margaret
Price
Fillippo II: Jevgeny
Nesterenko
Rodrigo: Renato
Bruson
Eboli: Jelena
Obraztsova
Tebaldo: Maria Fausta
Gallamini
Coro e orchestra del Teatro
alla Scala
Conductor: Claudio
Abbado
La Scala,
Milano
1978.01.07
Part 1
Part 2
권력자의 고독, 정치적 이상의
좌절
1막: 퐁텐블로
숲
1막은 1560년경, 프랑스의 퐁텐블로 숲에서 시작됩니다. 스페인의 카를로 왕자는 정혼 상대인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가 궁금해, 외교사절단에 끼여 슬쩍 프랑스로 옵니다. 퐁텐블로 숲에서 처음 마주친 두 사람은 곧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전령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죠. 펠리페 2세가 스페인과 프랑스의 화의를 위해 엘리자베타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아버지에게
연인을 빼앗긴 카를로 왕자는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2막: 산 주스토
수도원
2막은 스페인의 산 주스토 수도원이
배경입니다. 연인 사이가 모자관계로 변한 운명에 절망하는 카를로 왕자 앞에 플랑드르에서 막 돌아와 나타난 절친한 친구 로드리고(포사 후작)는
이런 개인적인 고통을 극복할 처방으로 플랑드르로 가서 억압받는 백성을 구하고 평화를 건설하라고 왕자를 격려하죠. 두 사람은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라고 노래로 영원한 우정을 다짐합니다. 귀족부인들이 모여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수도원의 정원에서 왕의 정부 에볼리 공녀는 ‘베일의
노래’를 부르며 암시적으로 왕비를 조롱합니다. 로드리고는 왕비 엘리자베타에게 카를로를 만나보라고 당부하는데, 카를로는 왕비에게 자신을 플랑드르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는 과거의 환상에 빠져 왕비를 포옹하려 합니다. 갈등으로 마음이 찢기는 엘리자베타는 “그처럼 나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 묻은 손으로 나를 결혼제단으로 이끌라”며 카를로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한편 필리포 왕은 무력으로 다스려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자신의 신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로드리고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게 됩니다. ▶돈 카를로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지만 의붓어머니가 된
엘리자베트.
3막: 마드리드 왕궁의
정원
3막은 마드리드 왕궁의 정원입니다. 카를로 왕자를 연모하는 에볼리 공녀는 그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
밀회를 약속합니다. 사실 엘리자베타의 편지인 줄 알고 밀회 장소에 나온 카를로는 다른 여자를 발견하고 놀라 마음을 들키게 됩니다. 에볼리는
왕자와 왕비 엘리자베타의 관계를 알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로드리고가 달려와 에볼리를 죽이려 하지만 왕자는 이를 말립니다. 에볼리는 질투에 눈이
멀어,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로드리고는 카를로에게 반역의 증명이 될 만한 문서가 있으면 자신에게 맡기라고
충고합니다.
아토차 성당 앞 광장. 이단자들의 화형식을 보기 위해 군중이 광장에 모여듭니다. 왕이 등장하자
카를로는 플랑드르의 사절들을 데리고 와 왕에게 자비를 간청합니다. 성직자들은 반역자들의 처형을 주장합니다. 카를로가 아버지에게 칼을 빼들어
대들자 로드리고가 나서서 칼을 빼앗아버리죠. 카를로가 놀라는 가운데 천상의 소리가 ‘이단자들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4막: 왕의
집무실
4막은 왕의 집무실입니다. 필리포 왕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왕비 때문에 서글퍼하면서, 군주의
외로움을 노래합니다. 종교재판장이 들어오자 왕은 카를로의 반역죄를 어떻게 처벌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재판장은 사형을 주장합니다. 왕은 여전히
교회의 권력에 굴복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죠. 이때 왕비가 보석함을 도둑맞았다며 달려 들어옵니다. 왕은 보석함에 들어있던 카를로의
초상화를 내보이며, 왕비가 왕자와 더불어 간통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엘리자베타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기절하고 맙니다. 이 상황에 방에 들어온
에볼리는 죄책감을 느끼고는 자신이 보석함을 훔쳐 왕에게 주었으며 사실은 왕의 정부라고 왕비에게 고백합니다. 왕비가 에볼리를 수도원으로 추방하자
에볼리는 자신의 미모를 저주합니다. 로드리고는 카를로가 갇힌 감옥에 찾아와 자신이 플랑드르 반란의 선동죄를 뒤집어썼으며 곧 왕의 자객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카를로에게 꼭 플랑드르로 가서 선정을 베풀라고 간청합니다. 이때 자객이 로드리고를 총으로 쏘고, 쓰러진
로드리고는 카를로에게 최후의 작별을 고합니다. 필리포 왕은 감옥에 찾아와 카를로를 풀어주려고 하지만, 카를로는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비난합니다.
군중이 감옥으로 몰려와 왕을 협박하지만 종교재판장의 개입으로 잠잠해집니다.
5막: 산 주스토
수도원
5막은 다시 산 주스토 수도원이 배경입니다. 엘리자베타는 수도원에서 카를로를 기다리며 카를로 5세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 찬 노래를 부릅니다. 왕비는 카를로 왕자를 격려해 플랑드르로 떠나보내려 하지만, 왕비와 왕자의 관계를 의심한 필리포 왕은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현장을 덮쳐 왕자를 종교재판관에게 넘겨주려 하죠. 그러나 그때 무덤에서 선왕이자 카를로 왕자의 조부인 카를로 5세가 걸어
나와 손자를 데리고 사라집니다.
강력한 왕 펠리페
2세(가운데)와 그에 대항하는 아들 돈 카를로(왼쪽).
바리톤과 베이스, 관현악의
오페라
권력자의 고독, 정치적 이상의 좌절,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 부자관계와 군신관계, 종교와
정치의 상관관계 등 인간사의 다양한 주제와 인간 심리를 밀도 있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돈 카를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실러 원작에서는 계몽주의 사상과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 더욱 강조된 반면, 오페라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부자간의 갈등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그 때문에 극적인 재미는 원작보다 오페라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돈
카를로와 로드리고가 함께 부르는 ‘우정의 이중창’, 그리고 ‘왕의 망토 아래 잠들어’, ‘아, 나는 죽는다, 그러나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의
허무함을 아시는 이여’ 등의 가슴 저미는 아리아가 특히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오페라에는 비중 있는 저음역 남성 가수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로드리고와 필리포 왕의 바리톤/베이스 이중창, 종교재판장(대심문관)과 필리포 왕의 베이스/베이스 이중창 등은 다른 오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합의 중창들이죠. 모놀로그의 피아니시모에서 합창의 포르티시모까지 강약의 폭이 넓고 그 전환이 극적인 <돈 카를로>의 음악적 매력은
베르디 중기에서 후기로 가는 과도기적 혼융과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어둡고 깊은 화성이 가수들의 저음과 어우러져,
베르디 전기 및 중기 초반의 명징하고 통일성 있는 오페라 음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진보적인’ 음악이 탄생한 것이죠.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 <아이다>만큼 자주 공연되지 않는 <돈 카를로>가 음악인들이나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베르디 오페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