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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스특허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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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볼거리 스크랩 섬진강 물길_꽃길 따라, <경남 하동>
킴스특허 추천 0 조회 22 09.03.24 16: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0여 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목포행 기차를 타고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열차 칸에서 만난 한 남자가 물었었다. “학생들, 어데로 가는데?” “글쎄요, 하동으로 갈지, 남해로 갈지….” 그는 말했다. “여름인데 당연 남해로 가야지, 하동은 머하러 갈라꼬?” 아마 그는 남해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너도나도 바다로 향하는 여름. 청개구리 정신이 발동한 우리는 하동으로 길을 잡고, 쌍계사로 들어갔다. 벚꽃이 있을 리가 없지만 벚꽃 십리길을 지날 땐 <빨강머리 앤>에서 봤던 꽃 터널을 지나는 듯 황홀했고, 쌍계사에 들어갈 땐, 도인이 된 듯 세속의 때가 말끔히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10여 년 만의 하동행은 밤잠을 설치게 했다.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아침엔 안개, 오후엔 황사가 기승을 부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서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올려다본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렀고, 햇살은 투명했다.

  하동의 봄을 찾아 나선 우리 일행이 하동읍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 4시간 만에 도착하는 거리에 하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먼저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에 들러 하동에 봄이 얼마나 와 있는지 물어보았다. “봄예? 날은 다 풀렸지만 매화꽃도 안 폈는데예. 녹차축제 열리는 3월에 오시지 그랬어예.” 하며 지도와 안내책자를 내민다. 날은 설날 전부터 풀렸지만 아직 매화가 만개하지 않았으니 하동에서 봄을 찾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 하동의 봄은 매화의 만개와 함께 시작되는 계절인가 보다. 그러나 가는 길마다 봄의 여신이 부지런히 작업 중인 걸 알 수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봄의 여신이 갈색 오솔길 사이를 누비며 푸른 물감을 뿌리고 있었으니 봄동이 오르고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맺고, 매화의 꽃봉오리는 알차게 영글었다. 햇살 좋은 자리에는 홀로 꽃을 피우고 얼떨떨하게 서 있는 매화나무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섬진강 촬영에는 송림이 좋다고 해서 하동읍 경찰서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차를 돌려 송림으로 들어간다.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솟아난 소나무들이 하늘 아래서 손을 맞잡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팔을 펼쳐 점심 후 산책 나온 사람들의 머리 위로 솔잎 향과 봄 햇살을 버무려 뿌려주는 듯한 풍경이 다정하다. 그런데 사진기자들은 띄엄띄엄 서 있는 소나무밭 뒤로 보이는 섬진강의 풍경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읍으로 들어오는 길 언저리가 더 좋았다며 그리로 돌아가야겠단다. 돌아가 보니 과연 그렇다. 굽이쳐 흘러드는 저 섬진강이 있어서 물동네, 하동인 것이다. 하동에 꽃이 피고 지는 순서를 말씀드리자면 인터넷 뉴스에서는 하동이 온통 꽃천지인 양 매화가 만개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아, 그 성급함이라니. 매실로 살아가는 매화마을의 끝까지 가봤지만 뉴스에서 본 매화는 볼 수 없었다. 대신 매화보다 더 수줍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매실농장의 주인장으로부터 하동의 녹차와 정을 넘치게 대접받았다. 하동은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며 하동에 봄이 오면 꽃이 어떤 순서로 산과 들을 장식하는지를 들려준다. “먼저 매화꽃이 핍니다. 그리고 노란 산수유가 피고,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배꽃이 올라오지요. 그때쯤이면 산에 진달래가 만발합니다. 5월이 되면 벚꽃이 또 피는데, 이는 토종벚꽃으로 산중에 솜뭉치처럼 군데군데 피어나 보기가 정말 좋지요. 7월이 되면 깊은 산속에서 함박꽃이 피고요.” 신명나게 꽃 이야기를 하는 매실농장 주인장의 표정이 봄꽃 같다. 그는 하동에서 나고 자라 매실농장을 일군 하동토박이다. 나무와 꽃을 잘 아는 그가 말하는 매화의 매력은 수령이 오랠수록 꽃의 자태가 화려하고 요염하다는 것. 이백 년, 삼백 년 된 매화나무에 꽃이 피는 걸 보면, ‘고목에 꽃이 피길 기다린다’는 속담도 헛말 같기만 하다고. 이 속담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일을 기약 없이 기다릴 때 쓰는 말이지만, 매화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말인 셈이다. 매화는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오랜 세월 눈비를 맞고, 가물에 견디고, 이리저리 옮겨 심기면서도 때가 되면 묵묵히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다. 퇴계 선생의 마지막 말씀이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였다. 살고 죽는 일 또한 매화분에 물을 주는 일처럼, 흥하고 망하는 것 또한 매화가 피고 지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삶의 무게로 짓눌린 어깨가 가볍게 풀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넓은 유리창 밖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 뎅그렁 뎅그렁 화답하듯 울린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듯 손을 흔드는 매화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매실농장에서 나와 악양으로 향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에서 바라본 평사리 너른 들판과 멀리 보이는 섬진강의 풍경은 감탄사조차 함부로 내뱉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다. 비록 드라마 세트장으로 지어진 것이지만, 시선 닿는 곳마다 그림이 되는 이 마을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우리 역사와 문학, 그리고 민족정신의 한 페이지로 간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을 끌어들이는 이 낮은 분지에 저토록 넓고 멋진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만 보면 최참판댁과 평사리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소설 속에 나오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실재 이야기임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이곳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으로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입혀 가고 있지만, 이곳은 변함없이, 그리고 영원히 <토지>의 자리일 것이다. 누렁소의 울음소리, 흑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 물레방아 도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거문고 소리. 다양한 소리들이 조화를 이루며 그 어떤 입체음향보다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최참판댁에서의 한때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일몰을 보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쌍계사로 가는 길, 전에 없던 작은 초소와 시 한 편 읽고 가라는 특이한 호객행위를 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라는 제목을 단 다섯 권의 시집이 예쁘게 놓여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국립공원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만든 이 시인마을 시리즈는 100명의 시인들이 자연과 세상을 노래한 500편의 시를 모아 엮은 것이다. 앉아서 시를 감상할 여유는 없고, 가져가서 읽고 돌려주겠노라는 약속으로 시집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요구할 배짱은 솟아오른다. 봄처럼 맑고 투명한 눈의 젊은이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의논하다가 결국 방명록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하고 다섯 권의 시집을 내어준다. 이 500편의 시를 가방에 넣자 마음에 봄의 푸른 물이 흠씬 번져나는 듯했다. 그 마음을 안고 쌍계사 건너편 언덕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로 올라간다. 오래 전, 그 여름에 묵었던 민박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염소들이 풀을 뜯던 풀밭 자리는 음식점과 주차장 자리가 되어 있고, 그 집은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이제 민박은 받지 않는단다. 명절이라 내려온 듯, 딸들이 저녁을 짓고 있었다. “제가 10여 년 전에요…” 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뒤돌아 나온다. 마음엔 섭섭함과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왠지 모를 감동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쌍계사를 둘러보고 내친 김에 칠불사에 오르기로 했다. 굽이굽이 끝도 없는 도로를 올라가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 즈음 고색창연한 칠불사가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런데 칠불사는 말끔히 단장해 예전의 그 빛바랜 모습은 없다. 대웅전을 흘낏 들여다보니 명상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절하는 사람 셋이 고요하다. 설을 보내고 돌아가다 잠깐 방문한 듯한 중년 부부가 등 뒤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처님은 설도 쇠러 안 가셨나 보네.” “그러게, 힘드시겠구만.” 휴일도, 휴가도, 밤낮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온갖 중생들의 기도와 소원을 듣고 계신 부처님 모습을 보니, 종교를 떠나서 삶이란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평상심으로 고요할 수 있는 내공으로 좌우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칠불사에서 내려와 평사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물오른 매화꽃봉우리들과 작별하며 서울로 향하는 길에 섬진강 물줄기는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봄물 오른 하동의 풍경들이 더 애틋했다. 다시 돌아가 더 머물고 싶은 욕심을 누르며 펼쳐든 시집에서 고은 시인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노래하고 있었다.

글_이하영(방송작가) 사진_조병선


 

 

 

<출처;tong.nate.네이트 우수 블로그 왕관이예요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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