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6500>육상경기와 한국인
발행일 : 2004.09.26 / 여론/독자 A1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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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의 스타들이 겨루고 있는 부산 국제육상경기는 여느 종목의 국제경기에 비해 한국인의 관심이 덜 쏠리는 듯한 느낌이다. 명절이 겹친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육상경기의 부진에 대한 예상된 무심이기도 할 것이다. 영어로 육상경기를 뜻하는 애슬레틱스(Athletics)가 운동의 보통명사가 돼있을 만큼 서양사람에게 있어 육상경기는 스포츠의 본(本)이요 꽃으로, 미국의 소도시에서 열리는 육상경기일지라도 대도시의 축구경기보다 관중이 많이 몰린다. 한국에서는 선수 가족들이 스탠드 관객의 대부분이며, 가족도 이등친 이내라고 자조하는 것을 들었다. 올림픽에서 수년 동안 10위권 안에 들어온 한국인데도 육상은 메달권과의 거리를 가장 멀게 느끼게 해온 종목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머슴을 고를 때 손바닥의 옹이를 보고 그 근면도를 가늠했는데, 프랑스 농촌에서는 발바닥의 옹이를 보고 그 사람 노동력의 질을 가늠했다. 한국춤은 어깨 팔꿈치 손목을 너울거리며 추는데 서양춤은 왈츠·탱고·트로트·룸바·삼바·차차차 등 많은 춤이 손을 묶어두고 발로 춘다. 해부학의 상식인데 한국사람은 손재간을 좌우하는 장장근(長掌筋)이 발달한 데 비해 서양사람들은 발재간을 좌우하는 족척근(足蹠筋)이 발달했다. 서양에는 발병 전문 외과인 풋서전(foot surgeon)이 우리나라의 안마 시술소나 손금 보는 집보다 훨씬 많다. 곧 생업에 있어 손을 주로 써온 민족과 발을 주로 써온 민족의 차이가 문화를 이렇게 크게 갈라놓는다. 열대지방의 작물인 벼를 온한대(溫寒帶)의 경계인 한반도에서 농사지으려면 그 기후의 불리함을 손을 몇 곱절 더 쓰는 근면으로 보전해야 한다. 이에 비해 수렵 유목민족은 먹이가 찾아오지 않기에 발로 쫓아다녀야 한다. 옛 게르만 민족이나 아프리카 토인들은 잠도 작대기에 기대어 서서 자고 앉는 자세도 한 발을 세우고 앉는 게 정자세인데, 한국 아이는 업어서 기르고 무릎을 꿇려 성장시키며 어른이 되면 양반앉음으로 발의 활동을 무력화하는 족쇄 일생으로 꾸려졌다. 달리는 경기에 한국인의 발이 적성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폰과 수험교육의 기승으로 문화인류학적 족쇄는 풀릴 날이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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