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변화 3 / “예수님을 믿으면 달라져야 합니다!”
+ 본 문 : 누가복음 15장 11절 - 24절 (신약성경 121쪽)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서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멘!
제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을 때 “나는 과연 목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나 자신에게 던지면서, 제가 목사에게 필요한 자격과 적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몸부림치며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그 당시 제 힘든 환경이나, 제 성격과 기질로 볼 때, 목사에 적합한 적성을 가지지를
못했다고 제 스스로가 저 자신을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일부는 사실에서, 일부는 상처에서 비롯되었고, 그리고 일부는 미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다.’ 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입니다만,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부르신다고 확신하게 되니까 다른 것들은 하나도
염려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른 것들을 하나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의 실수는 너무 오랜 기간 동안에 제 자신을 바라보고, 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데에 있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나는 이것도 부족하고, 나는 저것도 부족하다.’라고
저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나를 바라보던 시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뜨겁게 감동시키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내게 들려 온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I can do all things.」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부족한 것들은 더 이상 염려할 아무런 이유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나는 못한다 위축되고, 염려되고, 그리고 미혹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부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모세를 불러서 그를 선지자로 애굽으로 보내실 때, 모세가 하나님에게 질문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애굽으로 가며, 바로에게 가리이까?’ 모세가 ‘내가 누구관대’ 라는
질문을 할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세가 선지자로 바로에게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해서 간 것도 아니고, 모세가 의롭기 때문에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허물과 약점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모세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그 어떤 일이든지 자신만만하게! 당당하게! 해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있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여러분! 우리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의가 있어서도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하늘 권세, 곧 성령의 권능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그 능력으로! 복음을 들고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 이름과 그 권세에 힘입어서 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이 원리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이 달라지느냐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얘기인데, 그러다보면 내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나에게 실망합니다. 내게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낙심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죄감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나라는 인간 자체는 부족하고 연약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렇게 내가 중심이 되면, 정말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거기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도다.’ 내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들어야 됩니다. /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변화시키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를 도웁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 「네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이 말씀은 육신의 키를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고, 영적인 것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내가 염려한다고, 내가 나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거룩하게 변하는 것도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주, 자립, 독립, 주체 이런 것을 강조하지만, 신앙은 자립이 아니고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쉽게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가고, 포기하고, 숨으려고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수도 있고, 홍해를 가를 수도 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 스스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저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함께 해 주시고 능력 주시옵소서!’
저나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부족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다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나의 부족함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럴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능히 이루게 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해야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먼저 믿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내가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마치 기차를 연결할 때, 제일 앞에 기관차를 두고 그 다음에 객차와 화물차를 연결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관차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신 것을 먼저 앞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할 일, 우리의 역할, 이런 것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 아버지가 해 주신 것을 보면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대로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돌아오는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제일 좋은 옷이 뜻하는 것은 의, 가락지가 뜻하는 것은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 자식 됨을
보증해 주시는 것이고, 그리고 발에 신을 신기우는 것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종은 맨발로 다닙니다. 자유인은 신을 신고 다닙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맨발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이제는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발에 신을 신겨 주신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짐승처럼 생각하고, 짐승처럼 살고, 남들을 짐승처럼 여기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돌아오면 잃어버린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엄성을 지닌
소중한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상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들이 나에게 죄를 지으므로 내게 남는 흔적을 상처라고 말합니다.
남들이 내게 죄를 지으면 그것이 나에게 상처가 되고, 이 상처가 우리의 존엄성을 훼손시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현대인들의 심각한 정신적 황폐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받고 돈을 많이 벌어도
이 인간의 정신적인 황폐함은 신앙 이외의 것으로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래서 사탄의 종이었고, 죄의 종이었고, 진노의 자식이었고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만큼,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나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품꾼의 하나로! 종이 되는 것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했던 탕자에게 아버지는
그 발에 신을 신김으로 품꾼이 아닌, 종이 아닌,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영적 신발을 신겨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부터 종이 아니라, 나의 자녀라고 선포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애쓰는 죄인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그 지위에 합당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가 있지요. 왕자와 어느 거지가 생긴 것이 똑같아서 그 지위를 바꾸어 보았습니다.
왕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거지가 하루아침에 왕자가 되고 보니까
지위는 왕자인데 행하는 것은 거지. 그래서 이제 왕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걷는 것도 왕자처럼 걷고, 말하는 것, 식사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왕자와 거지에서는 거지가 가짜 왕자가 된 것이지만, 우리는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거지처럼 살던 버릇과 모든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셨다면, 이제는 다른 주인을 좇아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을 버리고, 이전에 행하던 죄의
습관을 버리고, 다른 것을 좇아가지 말고, 다른 주를 좇아가지 말고 예수님만 섬겨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와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의라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음을 보증해 주시는 성령이라는 가락지를 끼워 주셨습니다.
너는 종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존귀한 내 자녀라는 확증으로 발에 신을 신기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답게, 성령의 가락지를
끼고, 발에 존귀케 되는 은혜의 신을 신은 그리스도인답게, 달라지고 변화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