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삭제
AI 활용 설정
/웨스트포인트 제공
“그를 존경하지도, 친구로 여기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지 아직 그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의 1966년 졸업 앨범 374쪽. 사관생도 정복을 입은 아서 보니파스 소령(사건 당시 대위)의 젊은 시절 사진 아래 실린 짧은 인물평이다. 말수가 적고 온화했던 네브래스카주(州) 출신 청년은 정확히 10년 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흔적을 찾아 13일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를 찾은 본지에 학교 측이 공개한 1966년 졸업 앨범엔 생도 시절 보나파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사진 삭제
AI 활용 설정
/웨스트포인트 제공
1943년생 보니파스는 1962년 7월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 웨스트포인트 졸업생협회 기록에 따르면 생도 시절 그는 수구와 스쿠버다이빙 클럽에서 활동했고 생도 중위(cadet lieutenant)를 맡았다. 졸업 앨범 인물평에도 만능 스포츠맨으로 그의 매력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그의 한 지인은 “4년 내내 우리(수구) 팀의 골키퍼로 골문을 지키며 보여준 적극성과 투지는 팀이 미 동부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적었다.
1966년 졸업한 그는 공수학교와 레인저 과정을 마친 뒤 야전과 학교를 오갔다. 포트 베닝 제2대대 10포병연대 포대장, 베트남 제5대대 16포병연대 포대장과 작전참모 보좌관을 지냈고 포트 실의 포병 고급 과정을 수료했다. 시러큐스대 대학원을 거쳐 모교로 돌아와선 수학과 교수진으로 근무하며 미적분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마지막 부임지가 한국의 유엔군사령부였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JSA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보니파스는 갑작스러운 북한군의 공격에 동료 마크 배럿 중위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건은 미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 사건 다음 날인 1976년 8월 19일 뉴욕타임스(NYT)는 ‘비무장지대 충돌에서 북한군에 미국인 2명 피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숨진 지 엿새 뒤인 8월 24일 보니파스는 웨스트포인트에 돌아와 묻혔다. 최고의 군사적 예우를 갖춘 장례식에는 1000명에 가까운 조문객이 몰렸다. 웨스트포인트 예배당의 토머스 J 컬리 신부는 보니파스를 “삶을 온전히 살았고 이웃을 충만하게 사랑한 사람”이라고 추모했다. 보니파스의 웨스트포인트 동기 짐 가드너 소령은 “미국인과 한국인, 특히 내 눈에는 언제나 영웅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삭제
AI 활용 설정
/김성모 특파원
그의 묘지는 웨스트포인트 출신 전몰 장병 등 9500여 명이 묻힌 웨스트포인트 묘지 34구역 C열 137번에 있다. 1817년에 공식 묘역으로 지정된 미국 최고(最古)의 군인 묘지다. 이날 함께 묘지를 찾은 웨스트포인트 관계자는 “도끼 만행은 다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다”면서 “보니파스는 당시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정말 젊었을 때였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아직도 보니파스 소령을 기리고 기억해 줘서 참 고맙다”고 했다.
사진 삭제
AI 활용 설정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북한군에게 희생된 고(故) 아서 보니파스 미 육군 소령의 자녀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2026.8.14 /박성원 기자
한편 19일 주한 미군과 유엔사령부 주최로 판문점에서 열리는 50주기 추모식 주빈으로 초청돼 13일 한국에 온 보니파스와 마크 배럿(당시 25세·사건 당시 중위)의 가족들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가족들은 추모비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연신 손으로 쓰다듬었다. 보니파스의 큰딸 베스 보니파스(57)는 “가족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아버지 없이 살아왔다”며 “내 삶은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며 살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보니파스의 외손자 브레이디 디코어(18)는 1976년 여름 그가 아내에게 쓴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당시 보니파스는 “6월 들어 저들(북한군)이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한다”면서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계속 모두 안전하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가족들은 6·25 전쟁 이후 전사한 미군 103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추모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가족을 포함해 마이클 베이커 신임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UNCSB-JSA) 대대장, 2015년부터 매년 추모식에 참석해온 스티븐 달프 미 육군 예비역 장교, 김문환(79) 예비역 소령의 육사 선후배인 예비역 장성들,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영문 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
사진 삭제링크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김성모 기자
2006년 조선일보 입사. 경제부와 사회정책부에서 오래 취재했고, 현재 국제부에서 글로벌 이슈를 다루고 있다. 2024~2025년 WEEKLY BIZ 편집장을 지냈으며, 2021년 코로나 시기 복지팀장, 2020년 노조위원장, 2018년 경영기획실 기자를 지냈다.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 구독수 111 |
사진 삭제링크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최하연 기자
2024년 입사, 사회부 기동팀과 시청팀을 거쳐 국제부에서 취재하고 있습니다.
|
|